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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동물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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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람리섬 전투
(버마 전역의 일부)
람리섬에 상륙하는 연합군
람리섬에 상륙하는 연합군
날짜 1945년 1월 21일 ~ 1945년 2월 22일
장소 미얀마 람리섬
결과 영국군의 승리
교전국
영국
영국령 인도 제국
일본 제국
지휘관
시릴 로맥스 카니치 나가자와
병력
약 6,000명 약 1,000명
피해 규모
정확한 수 불명, 비교적 경미 약 500명 전사
20명 포로
약 500명 본토 탈출


“

천황폐하께서 주신 일본군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
 
— 람리섬 악어 일동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버마 전역에서 영국·인도 연합군이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람리섬을 탈환한 전투다.

그런데 정작 이 전투가 유명해진 이유는 영국군도 일본군도 아니고 바다악어 때문이다.

널리 퍼진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군한테 쳐발리던 일본군 약 천 명이 본대와 합류하려고 맹그로브 늪을 통해 탈출하다가 그곳에 살고 있던 바다악어들에게 걸렸다고 한다.

하필 인성 쓰레기에 황소상어도 잡아먹을 수 있는 세계 최대급 악어가 사는 동네를 야밤에 단체로 건너가 버린 것.

전설에서는 일본군이 16km에 달하는 악어 집에 거주지 무단 침입을 한 뒤 존나 튀다가 광역 어그로를 끌었고, 몰려든 악어들이 밤새 일본군을 씹어먹어 결국 천 명 가운데 2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

일본군: 늪으로 튀면 영국군이 못 따라오겠지?
악어: ㅎㅇ

”

이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져서 한때 기네스북에도 역사상 최악의 동물 공격 비슷한 내용으로 실렸다.

ㄴ 근데 바다악어 수컷 성체는 보통 4~5m 정도고 아주 큰 개체가 6m를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영역성이 강해서 맹그로브 늪 하나에 수만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일본군 뷔페를 기다렸다는 건 생태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

ㄴ 수만마리는 커녕 그런 규모의 악어 개체군이 있었으면 일본군 오기 전에 먹을 게 없어서 악어들부터 망한다.

천명이 들어가서 500명이 악어뱃속으로 집단 거주지 이전신청했고 나머지 500은 거의 대부분 포로가 됐다는 이야기도 퍼졌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일본군 약 1,000명 가운데 약 500명이 전사했고 20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나머지 약 500명은 해협을 건너 본토로 탈출한 것으로 영국 측 공식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

1000명 늪 진입 → 악어 980킬 → 생존자 20명

”

은 아니다.

비슷한 예로는 일본 잠수함의 뇌격으로 침몰한 미국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조원들이 바다에서 상어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다. 다만 인디애나폴리스 역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실종자 전부가 상어에게 먹힌 것은 아니고 익사·탈수·부상 등이 더 큰 사망원인이었다.

전투

연합군은 버마 본토 진격을 지원할 비행장을 확보하기 위해 람리섬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1945년 1월 21일 영국군과 영국령 인도군이 섬 북부에 상륙했다. 주력은 영국령 인도 제26보병사단의 2개 여단이었고 전차와 해군, 영국 해병대 일부도 지원했다.

일본군은 제54사단 제121보병연대 제2대대를 중심으로 약 1,000명 정도였으며 지휘관은 나가자와 간이치 대좌였다.

영국 해군은 상륙 전에 전함 HMS 퀸 엘리자베스까지 끌고 와 해안을 포격했고 공군도 폭격과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당연히 일본군 입장에서는 좆됐다.

그래도 일본군은 섬 곳곳에서 계속 저항했고 영국·인도군은 남쪽으로 진격해 2월 9일 람리 시가지를 점령했다. 일본군 일부가 동쪽 해협을 건너 버마 본토의 일본군과 합류하려 하자 연합군은 해안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맹그로브 늪과 갯벌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전설의 악어 이야기가 탄생한다.

일본군의 조직적 저항은 2월 17일경 사실상 끝났고 연합군은 22일까지 해상 봉쇄를 유지했다. 일본군 구조정 여러 척이 격침됐지만 상당수 병력은 결국 본토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진실

악어가 일본군 500명 또는 980명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원문에는

“

공식적으로는 영국군 쪽본군 양쪽 다 기록이 없다.

”

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반만 맞는다.

람리섬 전투 자체와 일본군 피해에 대한 군사기록은 당연히 존재한다. 없는 것은 수백 명이 악어에게 잡아먹혔다는 대규모 악어 학살 기록이다.

영국 공식 전사에서는 일본군 약 500명이 전사하고 20명이 포로가 됐다고 기록하지만 이걸 악어 전과로 기록하지 않았다. 약 500명은 본토로 탈출했다.

악어 이야기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캐나다 출신 자연학자이자 당시 영국군 측에서 활동했던 브루스 S. 라이트였다.

그는 1962년 자신의 책에서 1945년 2월 19일 밤 일본군이 악어들에게 공격당했고 약 1,000명 중 20명만 살아남았다는 취지의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문제는 라이트 본인이 그 장면을 직접 본 게 아니었다.

후대에 확인된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당시 모터런치 승조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이었고, 해당 기록 역시 그의 다른 체험담과 달리 3인칭으로 작성되어 있다.

그래도 유명한 자연학자가 쓴 이야기라

“

전문가가 썼네? 진짜인가보다.

”

하고 여러 책에 재인용되면서 전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

악어가 일본군 몇 명 물어감

”

이

“

악어 수천마리가 일본군 980명을 밤새 몰살시킴

”

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파충류학자 스티븐 플랫 일행이 람리섬을 직접 조사하고 당시 전쟁을 겪었던 현지 주민들을 인터뷰했는데, 주민들은 대규모 악어 학살 이야기를 일제히 부정했다.

현지 증언에서 확인되는 악어 피해는 일본군이 민 차웅이라는 조수 수로를 건너던 중 약 10~15명이 악어에게 죽었다는 정도였다.

즉 악어가 일본군을 공격한 일 자체까지 완전히 허구였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바다악어가 실제로 서식했고, 굶고 다친 병사들이 밤중에 맹그로브 늪과 수로를 지나고 있었으니 몇 명이 잡아먹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규모 사망원인은 영국군의 총격과 포격, 익사, 부상, 탈수, 질병 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 악어가 시체를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

악어가 일본군 980명을 섬멸한 전투

”

가 아니라

“

영국·인도군에게 포위된 일본군이 존나 위험한 맹그로브 늪으로 탈출했고, 그 과정에서 악어 피해도 일부 있었는데 후대에 이야기가 100배쯤 부풀려진 전투

”

정도가 실제 역사에 가깝다.

애초에 생태학적으로도 수백~수천 마리의 대형 바다악어가 16km 남짓한 늪에 떼거지로 살면서 인간 천 명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ㄴ 바다악어는 한 끼 먹었다고 바로 다음 일본군 찾으러 뷔페 줄서는 동물이 아니다.

ㄴ 결국 악어 연합의 980킬은 억울한 누명이다.

그래도 최소 몇 명은 진짜 당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

람리섬 악어 연합 0승

”

까지는 아니다.

사실 일본군이 질 수밖에 없는게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라 육식동물인 악어에게 질 수밖에 없다 카더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