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화승 오즈(Hwaseung OZ)는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프로게임단이다. 2006년 스포츠용품 기업 화승이 기존의 플러스(Plus) 게임단을 인수하여 르까프 오즈(LECAF OZ)로 창단했으며, 2009년에는 모기업의 이름을 따서 화승 오즈로 변경했다. 2011년 8월 31일 해체되었다.
전신인 Ideal Space(IS) 시절에는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를 보유한 올스타팀이었으나, 이후 팀이 분할되면서 성학승 원맨팀의 최약체 팀까지 추락했다. 그러다가 오영종을 발굴한 뒤 강팀으로 올라갔고, 이제동까지 성장하면서 한때 프로리그 최강팀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이 이적하거나 군에 입대하면서 다시 전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이제동 원맨팀으로 변질되었다.
스타판에서 부침이 가장 심했던 팀 가운데 하나.
연도별 전력 요약
- 2002년: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를 보유한 초호화 올스타팀.
- 2003~2004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최약체 팀으로 전락.
- 2005년: 오영종의 스타리그 우승으로 부활의 신호탄.
- 2007년: 박지수, 이제동, 오영종 쓰리펀치.
- 2008년: 이제동, 박지수 투펀치.
- 2009년: 이제동 원펀치.
- 2010년: 한상용 핵펀치.
- 2011년: 게임단 해체.
마지막의 한상용 핵펀치는 당시 감독대행 체제와 팀의 어려운 상황을 풍자한 표현이다. 한상용이 실제로 선수로 출전하여 핵 공격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
아이디얼 스페이스 시절
화승 오즈의 역사는 2000년 창단된 IBSNET과 이후의 Ideal Space(I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 IS는 오늘날의 기업형 프로게임단과는 구조가 달랐다. 여러 선수와 매니저, 소규모 팀들이 모인 형태였으며, 당시에는 프로게이머가 개인별로 매니저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2002년 무렵에는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등 스타크래프트 역사에 남을 선수들이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테란의 황제, 천재 테란, 폭풍 저그를 한 팀에 모아 놓은 미친 올스타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선수 구성이다.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인기 선수였고, 홍진호와 이윤열 역시 당시 개인리그에서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IS는 조직적인 운영체계가 확립된 팀이라기보다 여러 선수와 매니저들이 느슨하게 결합한 집단에 가까웠다.
결국 내부 갈등과 선수들의 독립, 스폰서 계약 등을 거치면서 팀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임요환은 이후 동양 오리온을 거쳐 SK텔레콤 T1의 상징적인 선수가 되었고, 이윤열과 홍진호도 다른 팀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IS에 남은 선수들은 기존의 화려한 명성을 이어 가지 못했다.
ㄴ 임요환이 나간다.
ㄴ 홍진호도 나간다.
ㄴ 이윤열도 나간다.
ㄴ 그럼 누가 남았는데?
ㄴ 그러게.
케이텍 플러스와 플러스
IS의 주요 선수들이 이탈한 뒤 남은 인원은 조정웅을 중심으로 팀을 유지했다. 이후 케이텍 플러스(KTEC Plus)와 플러스(Plu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문제는 팀 전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임요환과 이윤열, 홍진호가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주전 선수층이 얇았고, 기업의 안정적인 지원도 부족했다.
특히 성학승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성학승 원맨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프로리그에서도 하위권을 전전했으며, 당시의 강팀들과 비교하면 선수 구성과 지원 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전직 올스타팀의 처참한 몰락.
하지만 이 시기에 훗날 팀을 다시 강팀으로 만들어 줄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오영종이다.
오영종의 등장과 2005년
2005년 오영종은 So1 스타리그 2005에서 우승하면서 스타크래프트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플러스는 기업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는 강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속 선수가 개인리그에서 우승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사건이었다.
오영종은 뛰어난 전략과 프로토스 운영으로 강력한 상대들을 꺾었으며, 결승에서는 임요환을 상대로 승리했다.
IS 시절에 같은 계열 팀에 있었던 임요환을 플러스 소속 오영종이 결승에서 꺾은 셈이다.
이 우승은 플러스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이후 기업의 스폰서십을 유치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한때 최약체였던 팀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르까프 오즈 창단
2006년 3월 스포츠용품 업체 화승은 플러스 게임단을 인수하여 르까프 오즈를 공식 창단했다.
2006년 3월 23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창단식이 개최되었으며, 당시 화승은 자사의 스포츠 브랜드인 르까프를 홍보하기 위해 게임단 이름에 해당 브랜드를 사용했다.[1]
팀 이름의 OZ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꿈과 모험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감독은 조정웅이었다.
오영종이라는 스타리그 우승자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이제동, 박지수, 구성훈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전력이 급격하게 강화되었다.
2006년 후기리그에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여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르까프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2007년: 쓰리펀치의 전성기
박지수, 이제동, 오영종 쓰리펀치.
2007년은 르까프 오즈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프로토스 오영종, 저그 이제동, 테란 박지수가 각각 팀의 주력 선수로 활약했으며, 여기에 구성훈, 손찬웅, 손주흥 등 다른 선수들도 힘을 보탰다.
세 종족 모두에서 강력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 팀이 특정 종족만 집중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웠다.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전기리그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삼성전자 칸에 0:4로 완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후기리그에서는 18승 4패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고, 2008년 1월 27일 결승에서 CJ 엔투스를 4:2로 꺾고 우승했다.
창단 첫 프로리그 우승.[2]
이후 2008년 2월 16일에는 삼성전자 칸과의 2007 통합 챔피언전에서 4:1로 승리하면서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개인리그에서도 이제동이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우승하면서 팀의 명성을 높였다.
ㄴ 전기리그 준우승.
ㄴ 후기리그 우승.
ㄴ 통합 챔피언전 우승.
ㄴ 이제동 스타리그 우승.
ㄴ 이게 우리가 알던 플러스 맞냐?
2008년: 투펀치
이제동, 박지수 투펀치.
2008년에도 르까프의 강력한 선수들은 개인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이제동은 곰TV MSL 시즌4에서 우승하면서 스타크래프트 최정상급 저그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박지수 역시 Arena MSL 2008에서 우승했다.
그런데 결승 상대가 하필 같은 팀의 이제동이었다.
팀킬 결승전.
르까프 입장에서는 누가 우승하든 자기 팀 선수가 우승하는 것이므로 행복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동 팬들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였다.
한편 프로리그에서는 2007년의 압도적인 성적을 이어 가지 못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 정규시즌 6위에 머물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또한 오영종이 공군 ACE에 입대하면서 프로토스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2007년에 보여줬던 쓰리펀치의 위력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화승 오즈와 이제동 원맨팀
2009년 1월 29일 르까프 오즈는 팀 이름을 화승 오즈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르까프라는 개별 스포츠 브랜드뿐 아니라 모기업인 화승 전체를 홍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3]
그러나 이름을 바꾸었다고 선수층까지 두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영종은 군 복무 중이었고, 박지수는 2009년 KT 롤스터로 이적했다. 손찬웅도 부상으로 정상적인 활약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구성훈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까지 기복을 보이면서 팀의 승리가 이제동에게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나타났다.
이제동 원펀치.
사실상 이제동 혼자 팀을 먹여 살리는 수준이었다.
이제동은 개인리그에서 BATOO 스타리그 08~09와 박카스 스타리그 2009를 연달아 우승하며 엄청난 기량을 보여줬다.
하지만 팀의 다른 선수들이 부진하면 아무리 이제동이라도 프로리그에서 혼자 모든 경기를 승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2008~2009 시즌 화승 오즈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SK텔레콤 T1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제동은 존나 잘하는데 팀은 우승을 못 하는 기묘한 상황.
ㄴ 이제동이 이긴다.
ㄴ 다른 선수들이 진다.
ㄴ 이제동이 또 이긴다.
ㄴ 그래도 팀은 진다.
ㄴ 이제동: 시발.
이 시기의 이제동은 팀을 홀로 지탱한다는 의미에서 청년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0년: 한상용 핵펀치
2010년 한상용 핵펀치.
2009~2010 시즌에 들어서면서 화승의 전력은 더욱 약해졌다.
박지수가 팀을 떠났고, 오영종은 여전히 군 복무 중이었으며, 다른 선수들도 이제동의 부담을 충분히 나눠 주지 못했다.
결국 2009~2010 시즌 정규리그에서 28승 27패를 기록하며 12개 팀 가운데 8위에 머물렀다.
2007년 프로리그 우승팀이 불과 몇 년 만에 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이다.
2010년 9월에는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조정웅 감독이 사퇴했고, 이후 한상용이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한상용 체제에서도 이제동 중심의 팀 구조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다만 한상용 감독대행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2010~2011 시즌 위너스리그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따라서 한상용이 팀을 완전히 망쳤다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ㄴ 감독이 바뀌었다.
ㄴ 이제동은 여전히 잘한다.
ㄴ 그런데 나머지 선수들은?
ㄴ 아....
2011년: 마지막 시즌과 해체
2010~2011 시즌 화승 오즈는 정규리그 24승 30패로 10개 팀 가운데 7위를 기록했다.
팀의 핵심은 여전히 이제동이었지만, 선수층의 부족과 부진으로 과거와 같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2011년 8월 31일 화승 오즈의 해체가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해체에는 모기업의 경영전략 변화와 e스포츠에 대한 지원 축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자체도 팀들의 잇따른 해체와 후원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렇게 화승 오즈는 전신인 IS 시절부터 이어진 약 10년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해체 이후 이제동을 비롯한 일부 선수와 한상용 감독은 한국e스포츠협회가 운영하는 제8게임단에 합류했다.
제8게임단은 이후 진에어 그린윙스의 전신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화승 오즈가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존속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화승 오즈 자체는 2011년에 해체된 게임단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역대 팀 명칭
| 명칭 | 시기 | 비고 |
|---|---|---|
| Ideal Space (IS) | 2000년대 초반 | 임요환·이윤열·홍진호 등이 소속된 초기 팀 |
| 케이텍 플러스 | 2003년 무렵 | IS 분열 이후의 팀 |
| 플러스 (Plus) | 2003~2006년 | 오영종의 2005년 스타리그 우승 |
| 르까프 오즈 | 2006~2009년 | 화승의 인수 및 공식 창단, 2007년 프로리그 우승 |
| 화승 오즈 | 2009~2011년 | 모기업 명칭 사용, 2011년 해체 |
IS에서 화승 오즈까지 동일한 법인과 운영체계가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니다. 초창기에는 팀의 합병과 분열이 있었고, 2006년 화승의 기업 게임단 창단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프로게임단 체제가 형성되었다.
주요 성적
프로리그
| 시즌 | 팀명 | 정규리그 순위 | 최종 성적 |
|---|---|---|---|
| 2006 전기 | 르까프 오즈 | 9위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 2006 후기 | 르까프 오즈 | 2위 | 플레이오프 진출 |
| 2007 전기 | 르까프 오즈 | 2위 | 준우승 |
| 2007 후기 | 르까프 오즈 | 1위 | 우승 |
| 2007 통합 챔피언전 | 르까프 오즈 | - | 우승 |
| 2008 | 르까프 오즈 | 6위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 2008~2009 | 화승 오즈 | 2위 | 준우승 |
| 2009~2010 | 화승 오즈 | 8위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 2010~2011 | 화승 오즈 | 7위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2008~2009 시즌에는 위너스리그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10~2011 시즌에는 위너스리그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주요 개인리그 우승
- 2005년 So1 스타리그: 오영종 우승. 플러스 시절의 대표적인 성과.
- 2007년 EVER 스타리그: 이제동 우승.
- 2008년 곰TV MSL 시즌4: 이제동 우승.
- 2008년 Arena MSL: 박지수 우승. 결승 상대는 같은 팀 이제동.
- 2009년 BATOO 스타리그: 이제동 우승.
-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이제동 우승.
- 2009년 NATE MSL: 이제동 우승.
개인리그에서는 여러 우승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영종과 박지수가 이탈하고 이제동에게 성적이 집중되면서 팀 전체의 전력과 개인리그 성과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역대 스타크래프트 팀 멤버
아래는 화승 오즈뿐 아니라 전신인 Ideal Space, 케이텍 플러스, 플러스, 르까프 오즈 시절까지 포함한 역대 소속 인물 목록이다.
초창기 IS 출신 선수들이 모두 화승 오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것은 아니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대 감독 및 운영진
- 송호창: IS 팀 매니저.
- 김양중: IS 팀 매니저 및 초기 운영진.
- 조정웅: IS 팀 매니저 출신으로 플러스와 르까프 오즈, 화승 오즈를 이끈 감독. 화승 오즈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
- 한상용: 코치 출신으로 2010년 조정웅 감독 사퇴 이후 감독대행을 맡았다.
주요 코칭 스태프
테란
저그
프로토스
주요 선수
임요환·이윤열·홍진호
IS 시절에 소속되어 있었던 전설적인 선수들이다.
세 명 모두 스타크래프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였지만, IS 팀의 분열 과정에서 다른 게임단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이들이 함께 활동했던 초기 IS의 전력과 2006년 이후 르까프 오즈의 전력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전설들이 있었지만 전설들을 붙잡아 두지 못했던 팀.
성학승
IS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이후 플러스 시절을 대표했던 선수 가운데 하나다.
한동안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선수로 활약하면서 성학승 원맨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성학승 혼자서 모든 프로리그 경기를 책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팀의 선수층이 그만큼 얇았다는 뜻이다.
오영종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플러스의 부활을 상징하는 선수다.
2005년 So1 스타리그 우승으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르까프 오즈의 주축 프로토스로 활약했다.
2007년에는 이제동과 박지수 등과 함께 쓰리펀치를 형성하면서 팀의 프로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8년 공군 ACE에 입대하면서 팀 전력에 큰 공백이 발생했다.
오영종이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이후 화승의 전력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팬들의 아쉬움도 존재한다.
박지수
2007~2008년 르까프의 주력 테란이었다.
특히 2008년 Arena MSL 결승에서 같은 팀 이제동을 꺾고 우승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2009년 KT 롤스터로 이적하면서 화승은 중요한 테란 카드를 잃었다.
박지수의 이적은 오영종의 군 입대와 함께 화승의 전력이 약화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구성훈
르까프 오즈와 화승 오즈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테란 선수다.
주전 선수로 성장하면서 2007년과 2008년 팀의 주요 경기에 출전했다.
특히 이제동을 제외한 선수들이 부진했던 시기에 테란 종족의 승리를 책임져야 했던 선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력의 기복이 나타나면서 이제동의 부담을 충분히 나눠 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제동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화승 오즈의 알파이자 오메가.
조정웅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하여 스타크래프트 역사에 남을 정상급 저그가 되었다.
2007년부터 개인리그에서 연달아 우승하면서 팀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으며, 프로리그에서도 높은 승률과 많은 승수를 기록했다.
특히 2009년 이후에는 박지수의 이적과 오영종의 군 입대, 다른 선수들의 부진 등이 겹치면서 사실상 혼자서 팀을 지탱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문에 청년가장이라는 별명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제동이 이기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패배하면 팀은 경기에서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제동을 매번 출전시킬 수도 없었으므로 팀의 성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개인리그에서는 세계 최강급 저그, 프로리그에서는 불쌍한 가장.
ㄴ 이제동이 1승을 한다.
ㄴ 다른 선수가 3패를 한다.
ㄴ 오늘도 화승이 졌다.
ㄴ 이제동: ....
화승 오즈 해체 이후 이제동은 제8게임단에 합류했고, 이후 스타크래프트 2와 해외 e스포츠 무대에서도 활동했다.
팀의 특징
극단적인 전력 변화
화승 오즈의 가장 큰 특징은 팀의 전력이 시대에 따라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IS 시절에는 임요환과 이윤열, 홍진호가 함께 활동했지만 선수들이 떠나면서 약체로 전락했다.
이후 오영종의 우승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제동과 박지수 등 주축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프로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팀의 전력은 약화되었다.
결국 화승의 역사는 올스타팀 → 약체팀 → 우승팀 → 원맨팀 → 해체라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제동 의존증
2009년 이후 화승은 이제동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구성훈과 다른 선수들도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했으며 모든 성과가 이제동 혼자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팀 전체에서 이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상대 팀에서는 이제동만 잡으면 화승을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그 이제동을 잡는 게 존나 어려웠다는 것이다.
ㄴ 화승을 이기려면 이제동을 잡아라.
ㄴ 그래서 이제동을 어떻게 잡는데?
ㄴ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조정웅 감독의 육성 능력
조정웅 감독은 플러스와 르까프 오즈 시절 여러 선수를 발굴하고 성장시킨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영종과 이제동을 중심으로 강력한 팀을 구축했으며, 기업의 후원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팀을 유지했다.
2007년 프로리그 후기리그와 통합 챔피언전 우승을 달성했다는 점에서도 지도자로서의 성과가 크다.
그러나 팀이 특정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과 후반기에 선수층이 약화되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2010년 사퇴하면서 화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도자도 팀을 떠나게 되었다.
해체 이후
2011년 해체 이후 화승 오즈 출신 선수들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제동과 일부 선수들은 한국e스포츠협회가 운영한 제8게임단에 합류했으며, 한상용 감독도 제8게임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 갔다.
이후 제8게임단은 진에어의 후원을 받아 진에어 그린윙스로 발전했다.
다만 화승 오즈가 진에어 그린윙스로 직접 이름을 변경한 것은 아니며, 일부 선수와 지도자가 새로운 팀에 합류하는 형태였다.
2011년 화승의 해체는 당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같은 시기 다른 기업 게임단들도 후원을 중단하거나 팀을 해체하면서 프로리그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평가
화승 오즈는 대한민국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역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신인 IS 시절에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한 팀에 모여 있었고, 이후 플러스 시절에는 기업의 후원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오영종의 2005년 스타리그 우승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고, 2006년 르까프 오즈 창단 이후에는 정상급 게임단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7년에는 프로리그 우승과 통합 챔피언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이제동이 최고의 저그 선수로 성장하면서 개인리그에서 수많은 우승을 기록했지만, 선수층이 약화되면서 팀 전체의 성적은 떨어졌다.
결국 화승 오즈는 2011년 해체되었다.
임요환과 이윤열, 홍진호가 있었던 팀이 성학승 원맨팀이 되었다가 오영종과 이제동을 앞세워 우승하고, 마지막에는 다시 이제동 원맨팀으로 돌아간 기구한 역사.
여담
- 전신인 IS 시절에는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가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 플러스 시절인 2005년에는 오영종이 So1 스타리그에서 우승했다.
- 2006년 화승의 후원을 받으면서 르까프 오즈로 창단했다.
- 2007년에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후기리그와 통합 챔피언전에서 우승했다.
- 2008년 Arena MSL 결승에서는 같은 팀 선수인 박지수와 이제동이 맞붙었다.
- 2009년부터 팀명을 화승 오즈로 변경했다.
- 이제동의 높은 활약과 팀 전체의 전력 차이 때문에 청년가장이라는 별명이 유명해졌다.
- 2011년 8월 31일 해체되었으며, 일부 선수와 지도자는 제8게임단에 합류했다.
관련 문서
외부 링크
각주
- ↑ 전자신문, 화승 르까프 OZ 공식 출범, 2006년 4월 1일.
- ↑ 게임메카, 르까프 OZ 후기리그 첫 우승, 2008년 1월 28일.
- ↑ 스포츠경향, 르까프 오즈에서 화승 오즈로 팀명 변경, 2009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