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쓰이 히데키 Hideki Matsui | |||||||||||||||||||||
| 생년월일 | 1974년 6월 12일 | ||||||||||||||||||||
|---|---|---|---|---|---|---|---|---|---|---|---|---|---|---|---|---|---|---|---|---|---|
| 국적 | 일본 | ||||||||||||||||||||
| 출생지 | 일본 이시카와현 노미시 | ||||||||||||||||||||
| 별명 | 고질라(Godzilla) | ||||||||||||||||||||
| 학력 | 세이료 고등학교 | ||||||||||||||||||||
추가 정보
| |||||||||||||||||||||
소개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 1974년 6월 12일 ~ )는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좌타 거포다.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 중 한 명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일본인 타자로, 고질라(Godzilla)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일본야구를 평정을 넘어 아예 박살을 내버리고 MLB 진출후 그 메이저리그도 완벽하게 성공한 동양인 최고의 철인 파워히터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이다.
2009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0.615,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면서 MVP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 출신 선수로는 최초의 월드 시리즈 MVP였으며, 월드 시리즈에서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해 MVP를 수상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했다.
이 기록은 2025년까지 일본인 선수로서는 유일했으나, 202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면서 두 번째 일본인 수상자가 나왔다. 다만 마쓰이는 여전히 일본인 최초이자 일본 출신 타자 최초의 수상자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10시즌 동안 332홈런을 기록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10시즌 동안 175홈런을 기록했다. 양국 통산 홈런은 507개이며, NPB와 MLB에서 모두 10년씩 활약했다. 특히 일본 시절의 압도적인 장타력과 메이저리그에서의 꾸준한 타점 생산 능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2013년 일본의 국민영예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15년부터는 뉴욕 양키스 단장 특별고문으로 활동하며 구단의 마이너리그 선수 육성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시절
놀랍게도 도쿄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요미우리빠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쓰이는 암 걸리는 일본의 롯데 자이언츠의 골수팬인 아빠 따라 야구를 접하게 되었고 아빠의 강요로 야구를 시작하나 감독의 지시에 불만을 품고 유도와 스모으로 진로를 옮긴다.
중학교때 유도와 야구의 갈림길에서 진학한 중학교에 유도부가 없어서 그냥 야구를 선택하게 되었다. 주 포지션은 포수와 투수
이미 중학교때 와꾸가 90KG로 파워후가 되면서 야구 적합 몸매가 되고 있었다. 이미 중학부는 마쓰이가 아예 초토화되었다(타율 6할)
원래 우타자였으나 같이 야구하던 친형과 그 친구들이 밸런스 붕괴를 몸소 느끼고 마쓰이 보고 좌타자만 하라고 강요를 하였다. 그래서 마쓰이는 좌타자의 길에 들어서는데...
왠걸? 스팀팩 빨은 풀 체력마린처럼 더 밸런스 붕괴된 모습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는 자신을 알아준 세이료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주로 3루수로 활약을 했다.
고3때 고시엔에서 3루수로써 요미우리 3루수 레전드 앞에서 호무랑을 까면서 그를 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회전에서 마쓰이에게 5연속 고의사구를 주는 개졸렬한 방법(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을 쓴 명문고교 메이토쿠기주쿠고교에게 져서 탈락한다.
1992년 여름 고시엔에서 발생한 5연속 고의사구 사건은 일본 고교야구 역사에서도 유명한 논란이다. 당시 세이료 고등학교의 마쓰이는 이미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강타자였으며, 상대였던 메이토쿠기주쿠 고등학교는 마쓰이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피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마쓰이는 해당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정상적인 타격 기회를 얻지 못했고, 세이료 고등학교는 2-3으로 패배하면서 대회에서 탈락했다. 경기 후 메이토쿠기주쿠의 승부 회피 전략을 둘러싸고 일본 전역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야구 규칙상 고의사구 자체는 합법적인 작전이지만, 고교야구에서 특정 선수에게 5타석 연속 고의사구를 지시했다는 점 때문에 스포츠맨십을 둘러싼 비판이 거셌다. 이후에도 일본 고교야구에서 승부를 위한 전략과 정면 대결의 가치가 충돌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건으로 남았다.
고교시절 통산 타율 .450, 60홈런을 기록하며 여러 구단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나가시마 시게오에 의해 요미우리 1차지명후보로 부상했고 결국 1992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 주니치 드래곤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등 네 구단으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아 이 중에서 교섭권을 얻은 요미우리에 입단했다.(계약금 1억 2,000만엔, 연봉 720만엔)
그리고 폭격 알지? 밑에 기록 봐라 사기캐중 씹사기캐다
10년동안 통산 타율 3할-출루율 4할-장타율 5할 극후반-OPS 10할 마이너스 2리 평균 33홈런(신인 2년 포함 하고도)등등 그냥 NPB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10년간 1250경기 연속 출장을 하면서 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이 연속 출장은 므릅 가서도 이어진다.)
정확히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요미우리에서 1,268경기에 출전했고, 1993년 8월 22일부터 시작한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이 메이저리그 이적 후에도 이어졌다. 일본 시절부터 이어진 이 기록은 2006년까지 NPB와 MLB 합산 1,768경기에 달했으며, 같은 기간 MLB에서는 518경기 연속 출전을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10시즌 동안 타율 0.304, 1,390안타, 332홈런, 889타점, 출루율 0.413, 장타율 0.582, OPS 0.996을 기록했다. 특히 마지막 2002년에는 타율 0.334, 50홈런, 107타점, OPS 1.153이라는 성적으로 일본 무대를 마무리했다.
요미우리의 간판타자
1993년 데뷔 시즌에는 5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3, 11홈런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인 1994년에는 20홈런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처음으로 30홈런을 넘어서면서 타율 0.314, 38홈런, 99타점을 기록했고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1997년 37홈런, 1998년 34홈런, 1999년 42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로 성장했다.
2000년에는 타율 0.316, 42홈런, 108타점으로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같은 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꺾고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으며, 마쓰이는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2001년에는 타율 0.333, 36홈런, 104타점으로 활약했고, 2002년에는 50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2002년 50홈런은 오 사다하루가 1970년 기록한 47홈런 이후 오랫동안 요미우리 소속 일본인 타자가 넘어서지 못했던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센트럴리그 MVP 역시 세 번째로 수상했다.
요미우리에서의 마지막 시즌까지 리그 정상급 성적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컸다.
2000시즌 후 8년간 56억엔, 2001시즌 후 5년간 50억엔을 요미우리 쪽에서 오퍼를 넣었으나 딱 잘라 거절했다.
이미 그에게는 NPB는 동네야구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신인시절 벤치클리어링 때 자신은 다툼에 끼지않고 싸움에 휘말린 호리우치 코치의 안경이 떨어지자 조용히 다가와 안경만 줍줍하고 나온적이 있다.
일본 시절 주요 수상
마쓰이는 요미우리에서 활동하는 동안 센트럴리그 MVP를 3차례 수상했으며, 홈런왕과 타점왕도 각각 3차례 차지했다.
- 센트럴리그 MVP: 1996년, 2000년, 2002년
- 홈런왕: 1998년, 2000년, 2002년
- 타점왕: 1998년, 2000년, 2002년
- 베스트나인: 8회
- 골든글러브: 3회
- 일본시리즈 우승: 1994년, 2000년, 2002년
특히 2002년에는 타율 0.334에 50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에 차지했다. 일본에서 이미 정상급 타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했지만, 이후 더 높은 수준의 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택했다.
MLB
5년 50억엔(연간 108억)을 뿌리치고 뉴욕 양키스와 3년 2100만달러(연간 74억)의 자유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2003년부터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한다.
그 당시 양키스 프런트와 지역 언론은 5년간 계속 OPS 10할~11할을 넘긴 마쓰이에게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3년간 2할9푼의 타율에 강력한 클러치 히터능력으로 타점과 득점은 꼬박꼬박 쳐먹으며 고질라 소리 들으면서 100타점-100득점을 넘겼지만 홈런 갯수는 거포 슬러거라고 보기 힘들었다.(평균 20홈런 중반정도)
그렇게 마쓰이는 2004년 31홈런 100타점,득점 OPS 9할중반을 찍은 거포 시즌을 제외하고는 악마가 바라던 장거리 홈런타자가 아닌 OPS 8할 중후반정도 찍어주는 중장거리타자로 머물게 되었다.
그래도 씹혜자계약이었기 때문에 바로 계약만료전 4년간 5200만달러(연간 140억) 연장계약을 한다.
하지만 연장계약 첫 시즌인 06년 수비중 손목골절로 사실상 시즌아웃이 된다.
그 덕분에 고액연봉 쓰레기 바비 아브레이유 를 트레이드로 데려올 수 밖에 없게 되었다.
07년은 전과 비슷한 성적을 거두며 먹튀 가능성을 낮췄다.(0.285 25홈런 103타점 100득점)
08년 무릎부상으로 슬슬 쿠크다스의 경지에 올라 전격 전문 지명타자로 전향한다.
이 부상이 의외의 결과를 낳게 된다. 마쓰이의 좌익수 자리에 노쇠한 중견수 "Caveman"이 들어가고 빈 중견수 자리에 유망주 약쟁이와 브렛 가드너를 번갈아 투입시키기 시작했다.
2003년: 메이저리그 데뷔
마쓰이는 2002년 12월 뉴욕 양키스와 3년 2,1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당시 일본인 야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스즈키 이치로가 2001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었으며, 마쓰이는 이치로와 달리 장타력을 앞세운 거포형 타자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다.
2003년 4월 8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는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양키스 소속 선수 가운데 양키 스타디움 첫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였다.
데뷔 시즌에는 163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7, 16홈런, 106타점을 기록했다. 일본 시절의 압도적인 홈런 생산력과 비교하면 장타력이 크게 감소했지만,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중심타자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특히 팀이 플로리다 말린스와 맞붙은 2003년 월드 시리즈에도 출전하면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시즌부터 월드 시리즈 무대를 경험했다. 다만 양키스는 2승 4패로 패배해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4~2005년: 양키스의 중심타자
2004년에는 타율 0.298, 31홈런, 108타점, OPS 0.912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0홈런을 넘어섰다.
2005년에는 162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5, 23홈런, 116타점을 기록했다. 안타는 192개로 메이저리그 개인 최다 기록이었으며, 2루타도 45개를 기록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전 경기에 출전했다는 점에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 양키스에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슨 지암비, 게리 셰필드 등 강력한 타자들이 있었으며, 마쓰이는 이들과 함께 양키스 타선의 중심을 구성했다.
2005년 11월에는 양키스와 4년 5,2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에서의 명성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실제로 보여준 성적을 바탕으로 대형 계약을 따낸 것이다.
2006~2008년: 부상과 지명타자 전환
2006년 5월 11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수비 도중 왼쪽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일본 시절부터 이어온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이 1,768경기에서 중단됐다.
특히 부상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518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인으로 평가받던 마쓰이에게 상당한 타격이었다.
2006년에는 51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타율 0.302를 기록하며 타격 능력 자체는 유지했다.
2007년에는 14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5, 25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반등했다. 그러나 2008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출전 경기가 93경기로 줄었고, 이후 외야 수비보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마쓰이의 선수 경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수비 부담이 감소하면서 타격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지명타자로서의 생산력이 떨어지면 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2009년: 월드 시리즈 MVP
만약 게임에서 이걸 골랐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고르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그리고 2009년 양키스는 새로운 구장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좆구좆구 한 시대를 풍미하는 그 시즌을 보낸다.
마쓰이는 포지션 변경으로 타율과 타점,득점은 많이 떨어졌지만 홈런은 미국 진출후 2번째로 많이 치게 된다.
평균이상의 투수력과 막강한 타선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하고 클리프 리와 외계인이 버티고 있는 필리스를 상대로 시리즈 0.615 3홈런을 까면서 우승에 이바지하였고, 6차전 외계인을 상대로 8타점을 조지면서 외계인을 떡실신 시킨게 백미였다.
정확히는 6차전에서 6타점을 기록했고, 월드 시리즈 전체에서 8타점을 기록했다. 6차전 6타점은 당시 월드 시리즈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기록이었다.
2009년 정규시즌에는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4, 28홈런, 90타점, OPS 0.876을 기록했다. 홈런 28개는 2004년의 31홈런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당시 양키스는 CC 사바시아, A.J. 버넷, 앤디 페티트 등을 중심으로 선발진을 구성했고, 타선에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마크 테세이라, 호르헤 포사다 등이 포진했다. 양키스는 정규시즌 103승 59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차례로 꺾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마쓰이는 월드 시리즈 6경기에서 13타수 8안타, 타율 0.615, 3홈런, 8타점, OPS 2.027을 기록했다. 특히 필라델피아의 홈구장에서는 지명타자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발 출장 기회가 제한됐음에도 높은 타격 생산력을 보여줬다.
2009년 11월 4일 열린 6차전에서는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상대로 2회 선제 투런홈런을 기록했고, 3회에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후 5회에도 2타점 2루타를 기록하면서 한 경기에서 6타점을 쓸어 담았다.
양키스는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를 7-3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통산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마쓰이는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됐다.
그리고 동양인 최초이자 사실상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월드시리즈 MVP에 오른다.
실제로 일본인 선수의 월드 시리즈 MVP 수상 기록은 이후 16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2025년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면서 두 번째 일본인 수상자가 탄생했다. 따라서 마쓰이는 일본인 최초이자 일본인 타자 최초의 월드 시리즈 MVP 수상자로 남게 됐다.
2010~2012년: 양키스 이적 이후
하지만,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은퇴하면서 아들 할가놈이 바로 물갈이해버린다.
다만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공식적으로 구단 운영에서 물러나 아들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넘긴 것은 2008년이며, 2010년 7월 사망했다. 마쓰이가 양키스를 떠난 것은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면서 재계약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마쓰이는 무릎 부상으로 외야 수비가 어려워진 상태였으며 지명타자로서의 활용도가 높았다. 양키스는 선수단 구성과 수비 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재계약하지 않았고, 마쓰이는 2009년 12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1년 65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에인절스에서는 14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4, 21홈런, 84타점, OPS 0.820을 기록했다. 양키스를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두 자릿수 홈런과 상당한 타점 생산력을 유지했다.
2011년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해 141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0.251, 12홈런, 72타점, OPS 0.696으로 성적이 하락했다.
2012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한 뒤 메이저리그에 승격됐지만, 34경기에서 타율 0.147, 2홈런, 7타점에 그쳤다. 결국 7월 방출되면서 메이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후 에인절스,오클랜드,탬파베이등등 돌아다녔고 나쁘지 않은 기록(2할 6푼~7푼 15~20홈런)을 기록하지만 그는 은퇴할 때가 되었다고 NPB의 요구도 거절하고 칼같이 은퇴한다.
2012년 12월 27일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 나이는 38세였다. 일본 프로야구 복귀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일본 무대로 돌아가지 않고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236경기, 타율 0.282, 1,253안타, 175홈런, 760타점, 출루율 0.360, 장타율 0.462, OPS 0.822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기록한 332홈런과 합산하면 미일 통산 507홈런을 기록한 셈이다.
은퇴 이후
국민영예상과 은퇴식
2013년 5월 5일 일본 정부로부터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마쓰이의 요미우리 시절 감독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와 함께 수상했으며, 시상식은 도쿄 돔에서 개최됐다.
나가시마는 마쓰이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시킨 인물이자 선수 시절 직접 지도했던 감독으로, 두 사람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사제 관계로 유명하다.
같은 해 7월 28일에는 뉴욕 양키스와 하루짜리 계약을 체결하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이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양키스 소속으로 장식하기 위한 상징적인 계약이었다.
마쓰이는 요미우리와 양키스 모두에서 등번호 55번을 사용했으며, 이 번호는 그의 선수 경력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 양키스 단장 특별고문
2015년부터 뉴욕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 특별고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영어 직함은 Special Advisor to the General Manager로, 주로 마이너리그 선수 육성과 타격 지도 등에 참여하는 역할이다.
선수 시절부터 양키스 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은퇴 이후에도 구단 산하 마이너리그 팀들을 방문해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2026년 기준으로도 뉴욕 양키스 단장 특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직 스타 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의 육성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수 은퇴 이후에도 양키스와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2018년 1월 15일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헌액 당시 나이는 만 43세로,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의 최연소 헌액 기록을 세웠다.
마쓰이는 현역 시절 NPB에서 332홈런을 기록했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175홈런을 기록하며 양국에서 모두 성공한 일본인 야구선수로 평가받았다.
특히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강타자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월드 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는 점에서 일본 야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플레이 스타일
마쓰이 히데키는 강한 체격과 타구 속도, 선구안을 바탕으로 활약한 좌타 거포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뛰어난 장타력으로 홈런왕과 타점왕을 여러 차례 차지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는 상대적으로 홈런 생산력이 감소했지만 중장거리 타격과 타점 생산 능력을 유지했다.
일본 시절에는 10시즌 동안 타율 0.304, 출루율 0.413, 장타율 0.582, OPS 0.996을 기록했다. 특히 2002년에는 50홈런과 OPS 1.153을 기록할 정도로 리그 내에서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유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들의 구속과 변화구 수준, 구장 환경 등에 적응하면서 타격 성향에 변화가 나타났다. 일본 시절처럼 매년 30~4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거포는 아니었지만, 2004년에는 31홈런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192안타와 116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득점권 상황에서의 타격과 주자를 불러들이는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첫 세 시즌 동안 모두 100타점 이상을 기록했으며,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장타와 적시타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원래 좌익수로 활약했으나 2006년 손목 부상과 이후 무릎 부상으로 외야 수비 출전이 점차 줄어들었다. 2008년 이후에는 지명타자 역할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내구성 역시 마쓰이의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시작된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어졌으며, 2006년 손목 골절로 중단되기 전까지 미일 합산 1,768경기 연속 출전을 기록했다.
누구랑 닮음
"그걸 왜 사먹냐? 그 돈이면 차라리 뜨끈한 국밥 사먹고 말지."
마쓰이가 최형우랑 닮아서 최형우 별명이 한때 최쓰이였다
실제로 두 선수 모두 좌타 외야수 출신의 중심타자이며, 강한 장타력과 높은 타점 생산 능력을 보여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마쓰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 비중이 커졌고, 최형우는 KBO 리그에서 오랫동안 중심타자로 활약했다는 차이가 있다.
연도별 타격기록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3년 | 요미우리 | 57 | 203 | 184 | 27 | 41 | 9 | 0 | 11 | 83 | 27 | 1 | 0 | 0 | 0 | 17 | 0 | 2 | 50 | 1 | .223 | .296 | .451 | .747 |
| 1994년 | 130 | 569 | 503 | 70 | 148 | 23 | 4 | 20 | 239 | 66 | 6 | 3 | 1 | 4 | 57 | 1 | 4 | 101 | 12 | .294 | .368 | .475 | .843 | |
| 1995년 | 131 | 569 | 501 | 76 | 142 | 31 | 1 | 22 | 241 | 80 | 9 | 7 | 2 | 2 | 62 | 1 | 2 | 93 | 12 | .283 | .363 | .481 | .845 | |
| 1996년 | 130 | 569 | 487 | 97 | 153 | 34 | 1 | 38 | 303 | 99 | 7 | 2 | 0 | 7 | 71 | 1 | 4 | 98 | 5 | .314 | .401 | .622 | 1.023 | |
| 1997년 | 135 | 596 | 484 | 93 | 144 | 18 | 0 | 37 | 273 | 103 | 9 | 3 | 0 | 6 | 100 | 10 | 6 | 84 | 5 | .298 | .419 | .564 | .984 | |
| 1998년 | 135 | 603 | 487 | 103 | 142 | 24 | 3 | 34 | 274 | 100 | 3 | 5 | 0 | 4 | 104 | 2 | 8 | 101 | 7 | .292 | .421 | .563 | .984 | |
| 1999년 | 135 | 573 | 471 | 100 | 143 | 24 | 2 | 42 | 297 | 95 | 0 | 4 | 0 | 6 | 93 | 3 | 2 | 99 | 3 | .304 | .416 | .631 | 1.047 | |
| 2000년 | 135 | 590 | 474 | 116 | 150 | 32 | 1 | 42 | 310 | 108 | 5 | 2 | 0 | 7 | 106 | 5 | 2 | 108 | 1 | .316 | .438 | .654 | 1.092 | |
| 2001년 | 140 | 611 | 481 | 107 | 160 | 23 | 3 | 36 | 297 | 104 | 3 | 3 | 0 | 7 | 120 | 6 | 3 | 96 | 9 | .333 | .463 | .617 | 1.081 | |
| 2002년 | 140 | 623 | 500 | 112 | 167 | 27 | 1 | 50 | 346 | 107 | 3 | 4 | 0 | 3 | 114 | 17 | 6 | 104 | 4 | .334 | .461 | .692 | 1.153 | |
| 2003년 | NYY | 163 | 695 | 623 | 82 | 179 | 42 | 1 | 16 | 271 | 106 | 2 | 2 | 0 | 6 | 63 | 5 | 3 | 86 | 25 | .287 | .353 | .435 | .788 |
| 2004년 | 162 | 680 | 584 | 109 | 174 | 34 | 2 | 31 | 305 | 108 | 3 | 0 | 0 | 5 | 88 | 2 | 3 | 103 | 11 | .298 | .390 | .522 | .912 | |
| 2005년 | 162 | 703 | 629 | 108 | 192 | 45 | 3 | 23 | 312 | 116 | 2 | 2 | 0 | 8 | 63 | 7 | 3 | 78 | 16 | .305 | .367 | .496 | .863 | |
| 2006년 | 51 | 201 | 172 | 32 | 52 | 9 | 0 | 8 | 85 | 29 | 1 | 0 | 0 | 2 | 27 | 2 | 0 | 23 | 6 | .302 | .393 | .494 | .887 | |
| 2007년 | 143 | 633 | 547 | 100 | 156 | 28 | 4 | 25 | 267 | 103 | 4 | 2 | 0 | 10 | 73 | 2 | 3 | 73 | 9 | .285 | .367 | .488 | .855 | |
| 2008년 | 93 | 378 | 337 | 43 | 99 | 17 | 0 | 9 | 143 | 45 | 0 | 0 | 0 | 0 | 38 | 6 | 3 | 47 | 10 | .294 | .370 | .424 | .795 | |
| 2009년 | 142 | 526 | 456 | 62 | 125 | 21 | 1 | 28 | 232 | 90 | 0 | 1 | 0 | 2 | 64 | 1 | 4 | 75 | 4 | .274 | .367 | .509 | .876 | |
| 2010년 | LAA | 145 | 554 | 482 | 55 | 132 | 24 | 1 | 21 | 221 | 84 | 0 | 1 | 0 | 4 | 67 | 6 | 1 | 98 | 10 | .274 | .361 | .459 | .820 |
| 2011년 | OAK | 141 | 583 | 517 | 58 | 130 | 28 | 0 | 12 | 194 | 72 | 1 | 1 | 0 | 9 | 56 | 3 | 1 | 84 | 10 | .251 | .321 | .375 | .696 |
| 2012년 | TB | 34 | 103 | 95 | 7 | 14 | 1 | 0 | 2 | 21 | 7 | 0 | 0 | 0 | 0 | 8 | 1 | 0 | 22 | 5 | .147 | .214 | .221 | .435 |
| NPB : 10년 | 1268 | 5506 | 4572 | 901 | 1390 | 245 | 16 | 332 | 2663 | 889 | 46 | 33 | 3 | 46 | 844 | 46 | 39 | 934 | 59 | .304 | .413 | .582 | .996 | |
| MLB : 10년 | 1236 | 5066 | 4442 | 656 | 1253 | 249 | 12 | 175 | 2051 | 760 | 13 | 9 | 0 | 46 | 547 | 35 | 21 | 689 | 106 | .282 | .360 | .462 | .822 | |
NPB와 MLB에서 각각 10시즌씩 활동하면서 미일 통산 2,504경기, 2,643안타, 507홈런, 1,649타점을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였고, 메이저리그에서는 타격 스타일이 다소 변화했지만 꾸준한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특히 2009년 월드 시리즈 MVP 수상은 마쓰이의 선수 경력을 대표하는 성과로 평가된다.
주요 기록 및 수상
NPB
- 센트럴리그 MVP 3회: 1996년, 2000년, 2002년
- 센트럴리그 홈런왕 3회: 1998년, 2000년, 2002년
- 센트럴리그 타점왕 3회: 1998년, 2000년, 2002년
- 센트럴리그 베스트나인 8회
- 골든글러브 3회
-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94년, 2000년, 2002년
- 2002년 시즌 50홈런
- NPB 통산 332홈런
MLB
-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2회: 2003년, 2004년
- 월드 시리즈 우승: 2009년
- 월드 시리즈 MVP: 2009년
- MLB 통산 1,253안타, 175홈런, 760타점
- 2003~2005년 3년 연속 시즌 전 경기 출전
은퇴 이후
- 2013년 일본 국민영예상
- 2018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 2015년부터 뉴욕 양키스 단장 특별고문
관련 문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뉴욕 양키스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탬파베이 레이스
- 나가시마 시게오
- 오 사다하루
- 스즈키 이치로
- 마쓰이 가즈오
- 야마모토 요시노부
- 데릭 지터
- 알렉스 로드리게스
- 페드로 마르티네즈
- 최형우
- 월드 시리즈
- 2009년 월드 시리즈
-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 일본프로야구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2021년 New York Yankees 40인 로스터 | |
|---|---|
| 투수 | Gerrit Cole (45) · Masahiro Tanaka (19) · Luis Severino (40) · Jonathan Loaisiga (43) · Luis Cessa (85) · Chad Green (57) · Adam Ottavino (0) · James Paxton (65) · Aroldis Chapman (54) · Zack Britton(53) · Nick Nelson (79) · Jordan Montgomery (47) · Jonathan Holder (56)· J.A. Happ (34) · Domingo Germán (55) · Albert Abreu (87) · Chance Adams (35) · Clarke Schmidt (86) · Ben Heller (61) · Stephen Tarpley (71) · Corey Kluber (--) · Michael King (73) · Luis Medina (80) · Luis Gil (81) · Brooks Kriske (82) · Deivi García (83) · Albert Abreu (84) · Miguel Yajure (89) |
| 포수 | Gary Sanchez (24) · Kyle Higashioka (66) |
| 내야수 | Miguel Andujar (41) · Gleyber Torres (25) · DJ LeMahieu (26) · Mike Ford (36) · Gio Urshela (29) · Tyler Wade (14) · Luke Voit (45) · Michael Ford (36) · Thairo Estrada (71) |
| 외야수 | Brett Gardner (11) · Aaron Judge (99) · Mike Tauchman (39) · Aaron Hicks (31) · Greg Allen (--) · Clint Frazier (77) · Giancarlo Stanton (27) · Estevan Florial (90) |
40000번째 문서
40000
4만번째 문서와 관련된 어느 빠따충 위키러의 일화
마쓰이 가즈오 문서 만들면서 불현듯 이 문서가 생각났음. "왜 문서 이름이 히데키 마쓰이냐... 확 그냥 마쓰이 히데키 만들어서 옮겨버려?" 하며 만들던 문서 내버려두고 내용 옮길랬다가 4만번째 문서라는것을 알고나서는 상징성을 위해 걍 냅두고 마쓰이 히데키를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 시키는걸루 정했었다는 이야기--위키충 (토론) 2017년 1월 8일 (일) 03:05 (KST)
이후 문서 제목은 일본인의 성명 표기 순서에 맞춰 마쓰이 히데키로 정리됐다. 위 기록은 당시 문서명이 '히데키 마쓰이'였던 시절 작성된 것으로, 4만 번째 문서가 만들어진 경위를 설명하는 역사적 기록이므로 원문을 보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