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진행된 미국의 최초 유인 우주비행 계획이다.
ㄴ 위 사진의 프레디 머큐리와는 아무 상관 없다. 심지어 프레디 머큐리가 아직 무명 꼬꼬마였던 1958년에 시작했다.
개요
미국이
우리도 사람 우주에 한번 던져보자
하고 시작한 계획이다.
1인승 유인우주선 계획이었으며 종료 후 2인승 유인우주선 제미니 계획으로 이어진다.
머큐리 계획의 공식적인 목표는 상당히 단순했다.
- 인간을 우주선에 태워 지구 궤도에 올린다.
- 인간이 우주에서도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 인간과 우주선을 무사히 지구로 데려온다.
지금 보면
사람 태워서 우주 갔다가 다시 데려오는 게 목표라고?
싶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무중력 상태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조차 실제 경험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1958년 NASA가 출범한 직후 시작됐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총 6회의 유인 비행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첫 두 번은 우주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준궤도 비행이었고 나머지 네 번은 실제 지구 궤도 비행이었다.
폰 브라운이 만든 거 아님?
1958년부터 1963년까지 공식적으로 진행된 베르너 폰 브라운이 주도한 미국의 첫 우주계획.
ㄴ 이건 약간 수정이 필요하다.
베르너 폰 브라운과 그의 팀이 머큐리 계획에 존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특히 초기 준궤도 비행에 사용된 레드스톤 로켓이 폰 브라운 팀이 개발한 탄도미사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머큐리 계획 전체를 폰 브라운이 주도했다고 하면 좀 과장이다.
계획 자체는 NASA의 Space Task Group이 중심이 되어 진행했고 그 책임자는 로버트 길루스였다. 우주선은 맥도넬 항공이 제작했고 궤도비행에는 폰 브라운의 레드스톤이 아니라 아틀라스 로켓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폰 브라운은 미국 유인우주개발 전체에서 존나 중요한 양반이긴 한데
머큐리 = 폰 브라운 프로젝트
는 아니다.
머큐리 세븐
1959년 NASA는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후보를 뽑았다.
당시 군 테스트 파일럿들의 기록을 뒤져 후보를 추리고 신체검사, 심리검사, 면접 등 별의별 검사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7명이 선발됐다.
이들이 유명한 머큐리 세븐(Mercury Seven)이다.
1959년 4월 9일 NASA가 이 7명을 공개하면서 미국에서는 순식간에 국민영웅이 됐다.
근데 7명을 뽑았다고 7명 모두 머큐리 타고 우주 간 것은 아니다.
디크 슬레이턴은 심장 문제 때문에 비행자격이 정지되어 머큐리 계획에서는 우주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 유인 머큐리 비행은 6회, 6명이다.
슬레이턴은 그대로 은퇴한 게 아니라 NASA에 남아서 우주비행사 운영을 담당하다가 훗날 1975년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에서 진짜 우주에 갔다.
존버의 승리.
침팬지
인간 7명과 침팬지 2마리의 미국의 첫 우주 비행 생물체를 선발했다.
ㄴ 7명의 인간은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것이 맞지만 침팬지 두 마리를 머큐리 세븐과 같이 선발했다는 뜻은 아니다.
머큐리 계획에서 유명한 침팬지는 햄(Ham)과 이노스(Enos)다.
인간을 바로 로켓에 쑤셔넣었다가 죽으면 존나 큰일이므로 먼저 침팬지를 태워 우주선과 생명유지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했다.
햄은 1961년 1월 31일 머큐리-레드스톤 2호를 타고 준궤도 우주비행을 했다. 그냥 의자에 묶여 갔다 온 게 아니라 비행 중 신호에 맞춰 레버를 조작하는 훈련까지 받았고 우주에서도 임무를 수행했다.
햄이 무사히 돌아오자
오 시발 이거 사람 태워도 되겠는데?
해서 약 3개월 뒤 앨런 셰퍼드가 같은 계열의 로켓을 타고 올라갔다.
이노스는 1961년 11월 29일 머큐리-아틀라스 5호를 타고 아예 지구를 두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이 시험이 성공하면서 다음 아틀라스 우주선에는 존 글렌이 탔다.
침팬지 → 인간이라는 존나 정직한 테크트리였다.
참고로 미국이 우주에 보낸 최초 생물 자체가 이 침팬지들은 아니다. 미국은 머큐리 이전부터 초파리, 원숭이 등 여러 생물을 로켓에 태워 날려보냈다.
앨런 셰퍼드
1961년 5월 5일, 앨런 셰퍼드가 Freedom 7을 타고 미국인 최초로 우주에 갔다.
근데 이때 미국은 이미 소련한테 한 대 쳐맞은 뒤였다.
불과 23일 전인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 우주비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가린은 지구 한 바퀴를 완전히 돌았다.
반면 셰퍼드는 약 15분 동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준궤도 비행이었다.
소련: 지구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미국: 저희도 우주 갔다 왔습니다. 15분이요.
이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존나 배가 아팠다.
그래도 미국인을 실제 우주에 보내고 무사히 회수했다는 점에서 머큐리 계획의 첫 중요한 성공이었다.
존 글렌
그리고 1962년 2월 20일 존 글렌이 Friendship 7을 타고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다.
총 3바퀴를 돌았으며 비행시간은 약 5시간이었다.
이제야 미국도
우리도 사람 태우고 지구 돌 수 있음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비행 도중에는 우주선의 방열판이 떨어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가 들어와 NASA가 식겁하기도 했다. 방열판이 실제로 떨어져나가면 대기권 재진입하면서 존 글렌이 통구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추진 로켓 장치를 원래처럼 분리하지 않고 붙여둔 상태로 재진입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방열판에는 문제가 없었고 센서 오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존 글렌은 무사히 귀환했고 미국의 국민영웅이 됐다.
그리고 이 양반은 1998년 만 77세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또 우주에 갔다.
36년 만에 재접속.
유인 비행
머큐리 계획에서 실제 사람이 탄 비행은 총 6번이었다.
| 임무 | 날짜 | 우주비행사 | 내용 |
|---|---|---|---|
| Mercury-Redstone 3 Freedom 7 |
1961년 5월 5일 | 앨런 셰퍼드 | 미국 최초 유인 우주비행. 준궤도 비행 |
| Mercury-Redstone 4 Liberty Bell 7 |
1961년 7월 21일 | 거스 그리섬 | 두 번째 미국 유인 우주비행. 준궤도 비행 |
| Mercury-Atlas 6 Friendship 7 |
1962년 2월 20일 | 존 글렌 | 미국 최초 유인 지구궤도 비행. 3회 공전 |
| Mercury-Atlas 7 Aurora 7 |
1962년 5월 24일 | 스콧 카펜터 | 지구 3회 공전 |
| Mercury-Atlas 8 Sigma 7 |
1962년 10월 3일 | 월리 시라 | 지구 6회 공전 |
| Mercury-Atlas 9 Faith 7 |
1963년 5월 15~16일 | 고든 쿠퍼 | 지구 22회 공전. 머큐리 최종 비행 |
처음에는 고작 15분짜리였는데 마지막 고든 쿠퍼의 비행은 34시간 이상 지속됐다.
5년 동안
일단 사람 안 죽이고 우주 한번 찍고 오자
에서
하루 넘게 지구 22바퀴 돌고 오자
까지 발전한 것이다.
존나 좁다
머큐리 우주선은 1인승이다.
크기도 존나 작다.
지름 약 1.9m 정도의 원뿔형 캡슐에 우주비행사 한 명을 사실상 처박아놓는 구조였다.
지금 우주선처럼 안에서 둥둥 떠다니며 노트북 펼치고 밥 먹는 그런 걸 생각하면 안 된다.
우주비행사는 몸에 맞춘 좌석에 거의 누운 상태로 비행했고 앞에는 계기판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초기 미국 우주개발에서는 우주비행사를 pilot으로 봐야 하느냐 그냥 우주선에 실려가는 passenger로 봐야 하느냐는 논쟁도 있었다.
우주비행사들은 당연히
시발 내가 조종사인데 버튼은 줘야지
라고 주장했고 결국 머큐리 우주선에는 자세제어 등 사람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갔다.
실제 비행에서도 자동장치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우주비행사가 직접 조작한 경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우주선 안에서 그냥 살아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판단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것도 머큐리 계획에서 확인됐다.
소련과의 우주경쟁
머큐리 계획은 냉전 한복판에서 진행됐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날리면서 미국은
씨발 소련이 우리보다 먼저 우주 먹는 거 아니냐
하고 충격을 받았다.
1958년 NASA가 창설됐고 그해 머큐리 계획이 시작됐다.
그런데 인간까지 소련이 먼저 보냈다.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갔고 미국의 셰퍼드는 그 다음 달에야 우주에 갔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공위성도 2등, 인간도 2등이었다.
그래서 존 F. 케네디가 아예 목표를 존나 크게 질렀다.
달에 사람 보내고 무사히 데려오자.
아폴로 계획과의 관계
1962년 당시 천조국의 존 F. 케네디 머통령이 한 발언("우린 달에 갑니다, 우린 달에 갑니다, 우린 10년안에 달에 갑니다, 그것이 쉬운것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린 달에 가야하는것입니다.") 인해 달경쟁이 시작된 아폴로 계획의 사실상 선행미션이 된다.
대충 맞는데 시간순서는 조금 다르다.
케네디가 미국의 유인 달 착륙 목표를 공식적으로 제시한 것은 1961년 5월 25일 의회 연설이었다. 앨런 셰퍼드가 미국인 최초로 우주에 갔다 온 지 불과 20일 뒤였다.
유명한
We choose to go to the Moon
연설은 그보다 나중인 1962년 9월 12일 라이스 대학교 연설이다.
즉 1962년 연설 때문에 아폴로 계획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때는 이미 달에 가겠다고 국가 목표를 정한 뒤였다.
다만 머큐리 계획이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 미국 유인우주개발의 첫 단계였다는 것은 맞다.
머큐리
1명 태운다.
우주에서 인간이 안 뒤지는지 확인한다.
지구 궤도를 돈다.
↓
2명 태운다.
며칠씩 우주에 있어본다.
우주유영한다.
다른 우주선과 랑데부하고 도킹한다.
↓
3명 태운다.
달까지 간다.
2명 내려서 걸어다닌다.
다시 데려온다.
이렇게 보면 각 계획이 왜 필요했는지 존나 이해하기 쉽다.
아폴로부터 냅다 시작해서
자 여러분 이제 달에 착륙하세요
했다가는 우주에서 다른 우주선과 만나는 방법부터 몰랐을 것이다.
종료
마지막 머큐리 비행은 1963년 5월 고든 쿠퍼의 Faith 7이었다.
NASA는 한때 더 긴 머큐리 비행인 Mercury-Atlas 10도 검토했지만 이미 머큐리의 기본 목표는 달성한 상태였다.
게다가 미국의 목표는 더 이상
사람이 우주에서 살 수 있습니까?
가 아니었다.
소련보다 먼저 달에 사람 꽂을 수 있습니까?
로 바뀌어 있었다.
1963년쯤에는 NASA 유인우주개발 인력 대부분이 이미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머큐리를 더 우려먹기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의의
머큐리 계획만 보면 달에도 안 갔고 우주정거장도 안 만들었고 제일 오래 비행한 것도 하루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면 안 된다.
미국은 머큐리를 시작할 당시 사람을 우주에 보내본 경험이 0이었다.
우주비행사 선발부터 훈련, 발사, 우주선 조종, 지상과의 통신, 대기권 재진입, 낙하산 전개, 바다에 떨어진 우주비행사 회수까지 전부 경험을 쌓아야 했다.
머큐리에서 이걸 해보고 제미니에서 더 복잡한 짓을 해본 다음 아폴로에서 달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머큐리 최초 유인비행인 1961년 5월에서 아폴로 11호 달 착륙인 1969년 7월까지는 겨우 8년밖에 차이가 안 난다.
1961년:
와 씨발 미국인이 우주에서 15분이나 살아있었어!
1969년:
달 갔다옴.
냉전이 사람을 존나 갈아넣으면 기술발전이 얼마나 미쳐돌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여담
- 머큐리 우주선은 전부 1인승이다.
- 우주비행사들은 자기 우주선에 이름을 직접 붙였으며 모두 이름 뒤에 7을 붙였다. 머큐리 세븐 7명을 상징한다.
- 앨런 셰퍼드는 훗날 아폴로 14호 사령관으로 진짜 달까지 갔다. 그리고 달에서 골프공도 쳤다.
- 존 글렌은 1962년 미국 최초 지구궤도 비행을 한 뒤 1998년 우주왕복선을 타고 다시 우주에 갔다.
- 거스 그리섬은 머큐리와 제미니에 모두 참가했지만 1967년 아폴로 1호 지상시험 화재로 사망했다.
- 머큐리 세븐 가운데 머큐리 계획에서 못 날아간 디크 슬레이턴도 결국 1975년 우주에 갔다.
- 침팬지 햄은 우주비행 후에도 살아남아 1983년까지 살았다.
- 머큐리의 준궤도 비행에는 레드스톤, 궤도비행에는 더 강력한 아틀라스 로켓을 사용했다.
- 미국 최초 우주인은 앨런 셰퍼드지만 미국 최초 지구궤도 우주비행사는 존 글렌이다. 둘을 헷갈리지 말자.
- 인류 최초 우주인은 둘 다 아니고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다.
-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는 끝까지 안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