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입자가 파동성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분명 알갱이인데 파동처럼 군다.
'빛이 이중적인 것을 보면 설마 물질도 이중적인게 아닐까?' 라는 발상에서 나온거.
1924년 드 브로이가 처음 주장했고, 이후 1927년에 데이비슨-저머의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고전물리학식 상식으로는 입자는 입자고 파동은 파동이어야 하는데 양자역학 세계에서는 그런 거 없다. 전자도 상황에 따라 입자처럼 찍히면서 동시에 파동처럼 간섭무늬를 만든다.
상세
1905년 아인슈타인이 광전 효과를 설명하면서 빛이 단순한 파동만이 아니라 광자라는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자 루이 드 브로이가 역으로
| “ |
빛도 파동이면서 입자면, 입자도 파동일 수 있는 거 아님? |
” |
이라는 존나 대담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게 맞았다.
광자의 에너지 공식인
E = pc
와 플랑크의 양자 가설
E = hf
를 이용하면 광자의 운동량과 파장을 연결할 수 있다.
여기서
c = fλ
이므로 정리하면
p = h/λ
가 되고, 따라서
λ = h/p
가 된다.
드 브로이는 이 식을 광자에만 적용하지 말고 모든 물질에 적용하자고 했다.
그래서 질량이 있는 일반적인 입자라면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훨씬 작을 때 운동량이 대략
p = mv
이므로
λ = h/mv
가 된다.
이걸 드 브로이 파장이라고 한다.
즉 질량이 작고 속도가 느릴수록 파장이 길고, 질량이나 운동량이 커질수록 파장은 짧아진다.
데이비슨-저머 실험
1927년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저머가 전자를 니켈 결정에 쏴봤다.
전자면 그냥 조그만 총알처럼 여기저기 박혀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특정 각도에서 전자가 유난히 많이 검출되는 회절 패턴이 나타났다.
이건 파동이 결정 격자를 통과할 때 생기는 현상과 똑같았다.
측정된 파장도 드 브로이 식으로 계산한 전자의 물질파 파장과 맞았다.
결국
전자도 파동처럼 회절한다
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에 조지 패짓 톰슨도 얇은 금속막에 전자를 통과시켜 전자 회절을 관측했다.
웃긴 건 조지 패짓 톰슨의 아버지 J. J. 톰슨은 전자를 입자로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았고, 아들은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걸 보여줘 노벨상을 받았다.
아빠: 전자는 입자임.
아들: 전자는 파동이기도 함.
둘 다 맞았다.
이중슬릿 실험
물질파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게 이중슬릿 실험이다.
전자를 두 개의 좁은 틈을 향해 쏘면 스크린에는 처음에는 점 하나하나가 찍힌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입자다.
그런데 전자를 계속 쏘다 보면 점들이 아무렇게나 쌓이는 게 아니라 간섭무늬를 만든다.
이건 파동 두 개가 서로 겹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더 골때리는 건 전자를 한 번에 하나씩 쏴도 충분히 오래 반복하면 똑같은 간섭무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전자끼리 서로 부딪쳐서 무늬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입자 하나하나가 검출될 때는 분명 한 점에 찍히는데 전체적인 확률분포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입자를 작은 공처럼만 생각하면 바로 머리가 터진다.
관측하면 왜 달라지냐
이중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어느 구멍으로 지나갔는지 확인해보자
하고 측정하면 간섭무늬가 사라진다.
그래서 흔히
사람이 쳐다보면 전자가 눈치보고 행동을 바꾼다
같은 설명이 돌아다니는데 그런 뜻은 아니다.
여기서 관측은 인간의 의식이나 눈깔이 아니라 입자와 측정장치 사이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얻으려면 전자와 측정장치가 상호작용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두 경로 사이의 위상관계가 깨져 간섭이 사라진다.
현대적으로는 이것을 결맞음과 데코히런스 문제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전자가
"씨발 인간이 보고 있네. 입자 모드 ON"
하는 게 아니다.
큰 물질도 파동인가?
과거에는 입자 하나하나씩 하거나 간단한 분자로도 이중슬릿 실험을 해서 이중적임을 다시금 증명했는데 요즘은 분자량이 꽤 큰 유기물로 해도 입자와 파동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전자나 중성자 같은 작은 입자에서만 확인됐지만 이후 원자, 분자에서도 물질파 간섭이 확인됐다.
1999년에는 탄소 원자 60개로 된 축구공 모양의 거대 분자인 C60 풀러렌의 간섭까지 관측됐다.
이후에는 C60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유기분자에서도 간섭실험이 성공했다.
2019년에는 2,000개가 넘는 원자로 이루어지고 질량이 약 25,000 원자질량단위에 달하는 분자를 이용한 물질파 간섭까지 관측됐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커져야 양자역학이 끝나고 고전역학이 시작되냐
라는 경계선을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야구공, 사람, 지구 같은 것도 물질파 파장을 가진다.
단지 존나 작아서 안 보이는 것이다.
사람도 물질파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질량 70kg인 사람이 초속 1m로 움직인다고 하자.
드 브로이 식
λ = h/mv
에 넣으면 파장은 대략
9.5 × 10^-36 m
정도다.
원자핵 크기보다도 말도 안 되게 작다.
그래서 사람이 문 두 개를 지나가면서 간섭무늬를 만드는 꼴은 볼 수 없다.
게다가 사람 같은 거대한 물체는 공기분자, 빛, 바닥, 주변 물질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서 데코히런스가 거의 즉시 일어난다.
즉 사람에게도 물질파가 있기는 한데 실생활에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질파는 진짜 물결인가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된다.
물질파라고 해서 전자 주변에 물 같은 게 출렁출렁 흐르는 것은 아니다.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상태를 파동함수로 표현한다.
파동함수 ψ 자체를 바로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략
|ψ|²
이 특정 위치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밀도와 관련된다.
따라서 물질파는 옛날 기계적 파동처럼 어떤 물질이 실제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그림과는 다르다.
드 브로이가 처음 물질파를 제안했을 때와 현대 양자역학에서 이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지금은 단순히
입자가 파동으로 변신한다
고 보기보다는 양자 상태가 파동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고, 측정하면 입자처럼 국소적인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파동-입자 이중성
빛도 파동처럼 간섭과 회절을 일으키면서 광전 효과에서는 광자라는 입자 단위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전자도 입자처럼 한 점에서 검출되면서 동시에 파동처럼 간섭과 회절을 한다.
이런 성질을 파동-입자 이중성이라고 한다.
다만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평소에는 입자인데 가끔 파동으로 변한다
같이 두 개의 고전적인 모습 중 하나를 골라 변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자나 광자는 고전적인 공도 아니고 고전적인 물결도 아닌 양자적 대상이고, 실험방법에 따라서 입자적 또는 파동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주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냐고 물으면 물리학자도 모른다.
실험해보니까 그렇다.
활용
물질파는 양자역학 교과서에서 머리 아프게 만드는 개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기술에도 존나게 쓰인다.
대표적인 게 전자현미경이다.
광학현미경의 해상도는 사용하는 빛의 파장 때문에 한계가 있는데, 빠른 전자의 드 브로이 파장은 가시광선보다 훨씬 짧다.
그래서 전자를 이용하면 빛으로는 보기 어려운 매우 작은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전자 회절은 결정구조 분석에도 사용된다.
또 중성자 회절, 원자 간섭계 같은 기술도 물질의 파동성을 직접 이용한다.
그러니까 100년 전에는
"혹시 전자도 파동 아님?"
이라는 존나 이상한 아이디어였는데 지금은 반도체, 재료과학, 나노기술에서 없으면 곤란한 기본개념이 됐다.
여담
- 루이 드 브로이는 물질파 이론으로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데이비슨은 전자 회절 연구로 1937년 조지 패짓 톰슨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 드 브로이의 아이디어가 나왔을 당시에는 너무 황당해서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들도 판단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논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전자현미경이 일반 광학현미경보다 훨씬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전자의 짧은 드 브로이 파장이다.
- 물질파는 물질이 실제 물결처럼 출렁인다는 뜻이 아니다.
- 큰 물체도 원칙적으로 드 브로이 파장을 갖는다. 단지 너무 짧고 주변환경과 상호작용이 너무 심해서 양자적인 간섭을 보기 존나 어렵다.
- 양자역학 입문할 때 "전자야 입자야 파동이야?"라고 묻는 순간 이미 고전물리학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냥 전자는 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