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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고려 왕 목록
高麗 · 역대 34대 국왕 · 복위 기록 포함
순종
국적고려
본명왕훈(王勳)
출생지고려 개경
능묘성릉(成陵)
묘호순종(順宗)
추가 정보 (16개)
사망1083년 10월
시호정헌영명선혜대왕(靖憲英明宣惠大王)
아버지문종
어머니인예태후 이씨
왕후정의왕후 왕씨, 선희왕후 김씨
자의공(義恭)
재위기간1083년 7월 ~ 1083년 10월(음력)
전임문종
직위고려 제12대 국왕
초명왕휴(王烋)
출생1047년
한자順宗
향년37세(당시 기준)
형제선종, 숙종, 의천
후궁장경궁주 이씨
후임선종

고려국의 12대 대왕이다. 문종의 장남. 이름은 훈.

고려왕 가운데 제일 빨린 뒤진 왕이다. 불과 재위 3개월 만에 37세로 뒈짖. 안그래도 약골인 새끼가 애비인 문종이 뒤지자 존나게 슬퍼한 나머지 뒤졌다는데 참 씨발ㅉㅉㅉ

너무 빨리 뒤지는 바람에 동생인 선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선종은 졸지에 아빠랑 형님까지 2명분 장례식을 동시에 치르게 됐다.

특히하게도 조선 12대왕 인종과 같이 한 나라의 군주들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았다.

개요

고려의 제12대 국왕이자, 고려 역사상 재위기간이 가장 짧았던 왕.

1047년에 태어나 1083년에 사망했으며, 재위기간은 1083년 음력 7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이었다. 아버지는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문종, 어머니는 인예태후 이씨다. 휘는 왕훈(王勳), 초명은 왕휴(王烋), 자는 의공(義恭)이다.

어린 시절부터 왕태자로 책봉되어 무려 29년 동안 차기 국왕으로서 준비해 왔으나, 정작 왕위에 오르자마자 병세가 악화되어 제대로 통치해 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오랫동안 왕이 되기 위해 준비했는데 정작 왕으로 보낸 시간은 3개월에 불과했던 셈이다. ~~튜토리얼을 29년 동안 했는데 본게임 시작하자마자 게임 오버.~~

아버지 문종이 37년 동안 고려를 통치하면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만 순종은 단순히 병약한 왕족이 아니라, 오랜 기간 태자로서 정무를 경험하고 외교 활동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재위기간이 너무 짧아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뿐, 왕위 계승을 위한 준비 자체는 상당히 충실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생애

출생과 태자 책봉

순종은 1047년 문종과 인예태후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인예태후는 당시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귀족 가문인 인주 이씨 출신으로, 권력자 이자연의 딸이었다. 인주 이씨는 고려 왕실과 여러 차례 혼인관계를 맺으며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문이었다.

순종은 왕의 장남이면서 유력한 외척 가문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054년(문종 8년) 2월, 불과 8세의 나이로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이때 이름을 왕휴에서 왕훈으로 바꾸었다.

문종은 왕훈을 후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태자 책봉 사실을 요나라에 알렸으며, 요나라도 이듬해 왕훈을 삼한국공(三韓國公)으로 책봉했다. 고려의 왕위 계승권자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고려는 요나라 및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차기 국왕의 지위를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문종은 왕훈의 교육과 정치 경험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056년에는 태자에게 왕족과 신하들이 참석하는 연회를 주관하도록 했으며, 1063년에는 궁중의 비각에 보관되어 있던 여러 서적을 하사했다. 1074년에는 과거 급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복시를 주관하게 했으며, 1078년에는 송나라 사신단을 맞이하는 임무까지 맡겼다.

즉, 순종은 1083년에 갑자기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로 교육받았고, 성장한 뒤에는 외교와 인사 등 여러 분야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준비된 왕이었으나, 정작 왕이 된 뒤에는 그 준비를 활용할 시간이 없었다.

문종의 말년

문종은 고려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장기 집권 군주로, 약 37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문종의 재위기간 동안 고려는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문벌귀족 중심의 정치질서를 안정시켰으며, 불교문화와 유학도 발전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풍비(風痺)라는 질병으로 고생했다.

풍비는 팔다리의 마비와 운동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는 질환을 가리키는 전통 의학 용어로, 오늘날의 특정 질병 하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종은 송나라에 의사를 요청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장성한 태자 왕훈에게 일부 국정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순종으로서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상당한 정치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순종 자신도 어려서부터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도 아프고 아들도 아픈 상황이었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문종이었다.

즉위

1083년 음력 7월, 문종이 사망하자 왕훈이 고려의 제12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미 왕태자로서 오랫동안 정치적 경험을 쌓았고 왕위 계승권도 확고했으므로, 즉위 과정에서 별다른 정치적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순종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한편, 좌습유 지제고 오인준(吳仁俊)을 요나라에 파견하여 문종의 사망을 알렸다.

같은 해 음력 8월에는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사면령을 내렸다.

사면령은 국왕의 즉위 등 중요한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죄인들의 형벌을 감면하거나 용서하는 조치로, 새로운 국왕의 권위를 알리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음력 10월에는 회경전(會慶殿)에서 3일 동안 불교 의식인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고 승려 3만 명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반승(飯僧)을 실시했다.

이는 불교가 국가 운영과 왕실의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고려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

재위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순종이 독자적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기록된 행적도 대부분 선왕의 장례, 즉위 관련 의례, 외교적 통보 및 불교 행사에 집중되어 있다.

병세 악화와 사망

순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며, 아버지 문종의 죽음 이후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고려사》에 따르면 순종은 부친의 상을 치르는 동안 슬픔에 잠겨 몸이 쇠약해졌고, 기존의 질병까지 악화되었다고 한다.

당시 왕실에서는 부모가 사망하면 엄격한 상례를 치러야 했으며, 국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순종 역시 여막(廬幕)에 머물며 문종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이미 병약했던 순종에게 이러한 상례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기록만으로 순종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기존 질환이 무엇이었는지, 슬픔과 신체적 쇠약이 병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병세가 심각해지자 순종은 동복동생이었던 국원공(國原公) 왕운(王運)에게 국정을 맡겼다.

이 왕운이 바로 다음 국왕인 선종이다.

결국 순종은 1083년 음력 10월에 사망했다.

재위기간은 약 3개월, 향년 37세였다.

고려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기록한 국왕이 되었다.

일부 역사 자료에서는 즉위한 음력 7월부터 사망한 10월까지를 포함하여 4개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재위기간은 약 3개월이므로 일반적으로 3개월 재위라고 설명한다.[1]

왕위 계승

순종이 사망하자 동생 왕운이 고려 제13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선종 역시 문종과 인예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므로 순종과는 친형제 관계였다.

순종에게는 여러 왕비와 후궁이 있었지만 왕위를 계승할 자녀가 없었다.

따라서 순종의 사후 왕위는 그의 직계 후손이 아니라 형제에게 넘어갔다.

다행히 선종은 이미 성인이었으며, 왕실 내부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왕위 계승 과정에서 즉각적인 대규모 내전이나 쿠데타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종 입장에서는 1083년이 참으로 기가 막힌 한 해였을 것이다.

아버지 문종이 죽어서 장례를 치렀는데, 불과 몇 달 뒤에는 형 순종마저 죽어 다시 장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본인은 왕위까지 이어받아야 했다.

~~아버지 장례식 끝나니까 형님 장례식에 왕위 계승까지 풀코스로 당첨.~~

다만 문종과 순종의 장례가 문자 그대로 동시에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문종은 음력 8월에 매장되었고, 순종은 그 뒤인 10월에 사망했다. 원문의 '2명분 장례식'은 같은 해에 부친과 형을 연달아 잃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선종은 이후 1094년까지 약 11년 동안 재위하며 문종 시기부터 이어져 온 고려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발전을 유지했다.

선종 사후에는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했지만, 병약한 어린 국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면서 문종의 또 다른 아들인 숙종이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결국 문종의 아들 세 명이 각각 순종·선종·숙종으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가족 관계

순종의 아버지는 문종, 어머니는 인예태후 이씨다.

동복형제로는 고려 제13대 국왕 선종, 제15대 국왕 숙종, 그리고 고려 불교계의 대표적인 승려인 의천 등이 있다.

특히 의천은 천태종을 개창하는 등 고려 불교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순종에게는 다음과 같은 배우자가 있었다.

  • 정의왕후(貞懿王后) 왕씨 : 평양공 왕기의 딸.
  • 선희왕후(宣禧王后) 김씨 : 김양검의 딸.
  • 장경궁주(長慶宮主) 이씨 : 이호의 딸.

그러나 순종에게는 알려진 자녀가 없었으며, 이것이 사후 왕위가 동생 선종에게 넘어간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평가

역대 고려 국왕 가운데 최단 재위

순종은 고려 왕조의 역사에서 가장 짧게 재위한 국왕이다.

고려에는 1년 남짓 재위한 헌종이나 창왕처럼 짧게 왕위에 있었던 군주들도 존재하지만, 순종의 약 3개월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순종은 정치적 변란이나 쿠데타 때문에 왕위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즉위 직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차이가 있다.

조선에서는 제12대 국왕 인종이 약 8개월 동안 재위한 뒤 사망하여 조선 왕조의 최단 재위 기록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고려의 최단 재위 국왕인 순종과 조선의 최단 재위 국왕인 인종은 모두 각 왕조의 제12대 국왕이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왕태자로서 후계자 교육을 받은 뒤 왕위에 올랐으나, 병으로 단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2대 왕의 저주라도 걸린 건가.~~

물론 어디까지나 역사적 우연일 뿐이며, 두 왕의 재위기간과 사망 원인에 특별한 연관성이 있다는 근거는 없다.

준비된 왕이었지만

순종을 단순히 아무런 업적도 없는 국왕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29년 동안 왕태자로 생활했으며, 문종의 지시에 따라 과거시험, 외교, 국가 행사 등 여러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경험을 고려하면 순종에게 충분한 재위기간이 주어졌을 경우 어떤 정치를 펼쳤을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치세는 즉위와 관련된 행사, 사면령, 외교적 통보, 불교 의례 정도에 불과하다.

정책적 성과가 부족하다고 해서 반드시 능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반대로 뛰어난 성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오랫동안 준비된 후계자였으나,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군주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문종 시대와의 대비

순종의 짧은 재위는 아버지 문종의 장기 집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문종은 약 37년 동안 통치하며 고려의 제도적·문화적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순종은 고작 3개월 정도 왕위에 있었다.

문종이 구축한 정치체제와 왕실의 권위가 상당히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순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곧바로 국가적인 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종이 비교적 원활하게 즉위하면서 고려 왕실은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순종 본인의 업적은 거의 없지만, 그의 즉위와 사망을 통해 당시 고려 왕실의 후계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능묘

순종의 능은 성릉(成陵)이다.

현재 북한 개성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왕릉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순종이 사망한 뒤 개경 나성 남쪽에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성릉에는 봉분과 병풍석, 석수, 석인 등 여러 석조 유물이 남아 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현존하는 봉분은 높이가 약 1.6m, 지름은 약 8m로 조사되었다. 봉분과 주변 석물의 상태를 보면 후대에 보수된 흔적도 확인된다.[2]

여담

순종은 고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태자 생활을 한 인물 중 하나였다. 1054년부터 1083년까지 약 29년 동안 왕위를 기다렸지만, 실제 국왕으로 통치한 기간은 3개월 남짓이었다.

또한 순종에게는 왕후와 후궁이 있었음에도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직계 혈통으로 왕위가 이어지지 않았다.

순종이 사망했을 당시 어머니 인예태후는 생존해 있었다. 인예태후는 1092년에 사망했으므로, 남편 문종과 장남 순종의 죽음을 모두 지켜본 셈이다.

한편 순종의 시호는 처음에 선혜(宣惠)였으며, 이후 영명(英明)과 정헌(靖憲)이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정헌영명선혜대왕(靖憲英明宣惠大王)이라는 시호를 갖게 되었다.

관련 문서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