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歯黒
일본의 전통 화장법이다. 말 그대로 검은 이빨.
고대 일본에서는 이가 검을수록 미의 기준이었다. 일본 고대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이빨이 검게 표현되거나 입안이 거의 검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빨이 검을수록 입이 무겁다나 뭐라나 여자가 이빨이 허옇게 보이면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빨을 검게 만들기 위해 철분을 식초에 녹여서 이빨에 쳐발랐다. 그리고 광택을 유지하기 위해 이빨에 옻칠까지 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오하구로의 핵심 재료는 철 성분을 식초 등에 반응시킨 용액과 오배자 등에서 얻은 탄닌이었다. 둘을 치아 표면에서 반응시키면 검은 철-탄닌 화합물이 생겨 치아가 새까맣게 보였다.[1]
ㄴ 그러니까 진짜 옻칠해서 니스 바른 것처럼 만든 건 아니다. 옻칠설은 인터넷에서 과장되어 퍼진 설명에 가깝다.
이가 검을수록 입이 무겁다는 생각때문에 좆본에서 창녀와 유부녀를 뺀 모든 유부녀들이 오하구로를 했다고 한다(조선 통신사 오피셜)
ㄴ 문장이 꼬였다. 에도시대에는 기혼 여성을 중심으로 오하구로가 널리 퍼졌다. 특히 서민 여성은 결혼을 하면 이를 검게 물들이는 것이 기혼자라는 표시처럼 굳어진 시기가 있었다. 상류층 무가 여성의 혼례도구에도 아예 오하구로 도구가 포함돼 있었다.[2]
역사
오하구로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아직 확정된 정설이 없다.
일본치과의사회에서는 일본 자체에서 시작됐다는 설, 동남아시아 계통의 풍습이 전해졌다는 설, 인도에서 중국·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설 등을 소개하고 있다.[1]
기록상으로는 적어도 고대 일본에서 이미 치아를 검게 만드는 풍습이 존재했고, 헤이안 시대에는 귀족층의 중요한 화장법이 됐다.
이때는 여자만 한 것이 아니다.
헤이안 시대 귀족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 일정 나이가 되면 오하구로를 하기도 했고 성인이 됐다는 표시나 귀족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적인 의미도 있었다.
즉 현대인이 보기에는
왜 멀쩡한 이빨을 검게 칠하냐
싶겠지만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새하얀 치아보다 균일하게 검고 윤기 나는 치아가 오히려 세련된 외모로 받아들여졌다.
무로마치·전국시대로 내려오면서 무가 사회에도 널리 퍼졌으며 남성 무사도 오하구로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성인 취급을 받거나 정략결혼을 하는 귀족·무가 자녀에게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에도 시대에 들어가면서 남성의 오하구로는 공가 등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거의 사라졌고, 일반적으로는 기혼 여성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3]
당시 여성은 결혼 후 이를 검게 만들고 눈썹을 밀어버리는 화장법까지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에도시대 미인화를 현대인이 처음 보면
얼굴은 하얗고 입은 새까맣고 눈썹은 없음
이라는 지금과 정반대인 미적 기준을 마주하게 된다.
우키요에 미인화에서 여자가 웃는데 입안이 새까맣게 그려져 있으면 그림이 잘못 인쇄된 게 아니라 오하구로일 가능성이 높다.
만드는 법
오하구로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식은 철을 식초 등에 담가 철 성분이 녹아든 액체를 만들고 여기에 오배자에서 얻은 탄닌 성분을 사용해서 치아 표면을 검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철 용액을 카네(鉄漿)라고도 불렀다.
그냥 검은 페인트 한 번 칠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색이 빠지기 때문에 반복해서 관리해야 했고 특히 신혼 여성은 매일 아침 이를 닦고 다시 발랐다는 기록도 있다. 용액 자체의 냄새도 꽤 지독했다고 한다.[3]
오하구로 전용 도구도 있었다.
에도시대 상류층 여성의 혼수품에는 철 용액을 보관하는 용기, 탄닌 재료, 입을 헹구는 대야 등이 한 세트로 들어갔다. 일본 문화유산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오하구로 도구도 꽤 많다.[4]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에도시대 오하구로용 대야가 소장돼 있다. 설명에 따르면 철 성분과 오배자 분말을 반응시켜 만든 검은 안료를 사용했다.[5]
의외의 효과
보기에는 충치가 한 방에 생길 것처럼 생겼는데 오히려 충치 예방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철과 탄닌 성분이 치아 표면에 막을 형성하면서 산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고 세균 활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본치과의사회가 소개하는 고고학적 조사에서는 오하구로를 한 옛 치아에서 충치가 적게 발견됐으며 이미 충치가 시작된 뒤 오하구로를 하기 시작한 여성에서도 진행이 억제된 사례가 관찰됐다고 한다.[6]
물론 당시 사람들이 현대 치의학을 알고
불화물 대신 철-탄닌 코팅 가즈아
하면서 만든 것은 아니고 미용과 사회적 풍습으로 한 행동이 우연히 치아 보호에도 도움이 된 것이다.
매일 이를 닦고 오하구로를 다시 바르는 관리 과정 자체도 구강위생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왜 검은 이빨이 예뻤나
현대 기준으로 보면 누런 이빨도 싫어서 치아미백까지 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반대로 완전히 검게 만들었다.
이유는 하나로 딱 정리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검고 윤기 나는 치아가 아름답다고 여긴 미적 기준이 존재했고, 흰색으로 칠한 얼굴과 대비되면서 입매를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다.
결혼한 여성이 오하구로를 하는 시대에는 기혼자·성인의 사회적 표시 역할도 했다.
또한 치아가 검으면 얼굴을 매우 희게 칠하는 일본 전통 화장과 대비되면서 입 안쪽이 눈에 덜 띄는 효과가 있었다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 현대인이 오하구로 사진을 보고
옛날 일본인은 썩은 이빨을 좋아했냐
라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다.
썩어서 제멋대로 검어진 치아가 아니라 모든 치아를 일부러 고르게 새까맣고 윤기 있게 관리하는 것이 미적 기준이었다.
게이샤도 다 했나
오하구로 이미지가 게이샤와 많이 엮이지만 모든 게이샤가 항상 이를 검게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풍습이 달랐고 에도시대에 오하구로의 가장 일반적인 사회적 의미는 게이샤라는 직업보다 기혼 여성에 가까웠다.
현대 교토에서도 마이코가 게이코로 승격되기 직전에 일정 기간 오하구로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식의 설명이 많이 퍼져 있으나 실제 현행 관습은 지역·유파별 차이가 크므로 에도시대의 일반적인 오하구로와 현대 관광문화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폐지
이 풍습은 에도시대까지 이어졌다가 메이지 유신이 되어서야 서양식 미의기준이 보편화되면서 사라졌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아침에
오늘부터 검은 이빨 금지
하고 싹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메이지 초기 정부는 서구식 근대국가 이미지를 만들면서 전통적인 복식과 외모 관습을 바꾸려고 했고 오하구로도 그 대상이 됐다.
메이지 초기에 화족 등을 대상으로 오하구로 금지조치가 나왔지만 풍습은 바로 없어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상징은 1873년 메이지 천황과 황후가 오하구로와 눈썹을 미는 풍습을 중단한 것이었다. 이후 상류층과 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줄어들었고 서양식 미용관념이 퍼지면서 일반 여성에게서도 점차 사라졌다.[3]
19세기 후반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오하구로를 보고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
당시 서구에서는 하얀 치아가 건강과 미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예쁘다고 일부러 만든 치아를 서양 여행자들은 썩은 이빨처럼 봤다.
메이지 정부 역시 외국인이 일본을 '미개한 나라'로 본다는 걸 존나게 신경 쓰던 시절이라 전통적인 오하구로가 근대화 과정에서 빠르게 밀려났다.
현재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오하구로를 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으며 시대극, 전통축제, 가부키, 역사 재현 등에서 볼 수 있다.
한반도에도 있었나
참고로 가야, 신미제국같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고대국가에도 유행했다는 썰이 있다.
ㄴ 이건 확정된 사실이라고 쓰기에는 근거가 약하다.
일본 오하구로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한반도를 거쳐 전래됐다는 설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한다. 일본치과의사회 역시 인도에서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다는 대륙전래설을 여러 가설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지만 정설은 아니다.[1]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사이에 고대부터 사람과 문화가 활발하게 오간 것은 사실이고, 치아를 의도적으로 변형하거나 뽑는 풍습 역시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경남 사천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약 2천 년 전 인골에서도 의도적으로 이를 뽑은 발치 풍습이 확인됐는데 일본 조몬인의 발치 방식과는 형태가 달랐다.[7]
또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6세기 가야 여성 인골의 치아도 정밀 조사됐지만 충치·마모·법랑질 이상 등이 확인됐을 뿐 해당 연구에서 오하구로식 인위적인 치아 흑색 염색은 보고되지 않았다.[8]
따라서
가야인들도 일본인처럼 오하구로를 했다
라고 확정하기보다는 동아시아에서 치아를 변형하거나 꾸미는 여러 풍습이 존재했고 일본 오하구로의 기원 중 한반도를 거친 전래설도 있다는 정도로 적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신미제국까지 오하구로와 바로 연결하는 건 현재로서는 추측 영역이다.
다른 지역의 흑치 풍습
그리고 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 자체가 일본만의 미친 발상은 아니다.
중국 남부 일부 민족, 베트남, 라오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도 전통적으로 치아를 검게 만드는 풍습이 존재했다.
일본식 오하구로와 제조법이나 의미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성인이 됐다는 표시, 미용, 결혼, 충치 예방 등 여러 이유로 치아를 검게 만들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검은 치아를 아름답다고 보는 미적 기준이 비교적 오래 유지됐다.
따라서 오하구로를 단순히
일본만의 기괴한 화장
이라고 설명하면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흑치 문화 전체를 놓치게 된다.
다만 일본에서는 귀족문화와 무사계급, 혼례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천 년 가까이 유지됐고 관련 도구까지 화려한 혼수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히 유명해졌다.
여담
오하구로 도구 중에는 지금 보면 치아염색 세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존나게 고급스러운 물건도 많다.
에도시대 다이묘 집안 딸의 혼수품에는 금·은으로 장식된 칠기 오하구로 도구가 포함됐다. 그냥 식초통과 붓 하나 던져주는 게 아니라 신부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제대로 된 혼례용품이었다.[9]
당시 일본인에게는 오하구로가 괴상한 벌칙이 아니라 오늘날 결혼식 화장이나 웨딩드레스 같은 사회적으로 익숙한 풍습에 가까웠던 셈이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존나 낯설지만 미의 기준이라는 게 시대 하나 바뀌면 얼마나 뒤집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 1.0 1.1 1.2 일본치과의사회 - お歯黒について
- ↑ 일본 문화유산 데이터베이스 - 丸蝶紋散蒔絵歯黒道具
- ↑ 3.0 3.1 3.2 가나가와현 치과의사회 - 江戸時代女性は、みんなお歯黒を塗っていた?
- ↑ 일본 문화유산 온라인 - 唐草文黒地蒔絵耳盥
- ↑ National Museum of Korea - Washing basin for teeth blackening
- ↑ 일본치과의사회 - お歯黒の化学
- ↑ Dental Information about Human Skeletal Remains from Nukdo, South Korea
- ↑ Forensic odontological examination of a 1500 year-old human remain in ancient Korea (Gaya)
-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Japanese Weddings in the Edo Peri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