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타나베 슌스케 渡辺 俊介 Shunsuke "5cm" Watanabe | |
| 기본 정보 | |
| 생년 월일 | 1976년 8월 27일 |
| 출생지 | 토치기현 시모쓰가군 쓰가정 |
| 국적 | |
| 학력 | 고쿠가쿠인대학 도치기고교 - 고쿠가쿠인대학 |
| 신장 | 177cm |
| 체중 | 70kg |
| 선수 정보 | |
| 입단 | 2000년 지바 롯데 마린스 드래프트 4순위 |
| 투타 | 우투우타 |
| 포지션 | 투수 |
| 경력 | 신일본제철 기미쓰 지바 롯데 마린스 (2001~2013)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2014) 랭커스터 반스토머스 (2014~2015) 레오네스 델 카라카스 (2014) 신일철주금 가즈사 매직 |
| 지도자 정보 | |
| 경력 | 한화 이글스 투수 인스트럭터 (2015) 신일철주금·일본제철 가즈사 매직 코치 일본제철 가즈사 매직 감독 (2020~2025) |
소개
와타나베 슌스케(渡辺俊介)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일본의 전 야구선수이자 지도자·해설자다.
일본판 증대다.
투구 시 타점이 땅에서 고작 5cm 떨어져있으며 이 투구폼으로 WBC 국대타자들을 반병신 만들었다.
실제로 와타나베의 별명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미스터 서브마린이다. 언더핸드 투수 중에서도 팔이 거의 땅바닥을 긁을 정도로 낮게 내려오며 공을 놓는 극단적인 투구폼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가 지면에서 약 5cm밖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소개되곤 했다.
다른 언더핸드 투수들도 보통 낮은 타점에서 던지지만 와타나베는 거기서 더 내려간다. 투수판에서 공이 나오는 모습만 보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잠수함에서 어뢰 쏘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증대보다 구속이 느리다. 직구는 대체로 120~130km/h대였으며 전성기에도 구속으로 타자를 찍어누르는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타자 입장에서는 평소 보는 오버핸드·쓰리쿼터 투수와 공이 들어오는 각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공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고, 여기에 싱커·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과 속도조절을 섞어서 타이밍을 박살냈다.
투구폼과 릴리스 포인트가 독특하지만 구위 자체가 좋지 못하고 제구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서 털릴땐 오지게 털린다. 긁힐 경우에는 진짜 마구를 던지는 투수.
다만 제구가 아주 나쁜 투수는 아니었다. NPB 통산 1,578⅓이닝 동안 볼넷 385개를 기록해 9이닝당 볼넷이 약 2.2개 수준이었다.[1]
탈삼진으로 먹고 사는 투수도 아니었다. 통산 탈삼진은 846개로 9이닝당 약 4.8개 정도다.[2]
즉 와타나베는 "공 존나 빠름 → 삼진"이 아니라 타자가 평생 익숙해진 타이밍과 시야를 이상한 각도로 비틀어서 범타를 만드는 투수였다.
선수 시절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가 2000년 말 지바 롯데의 지명을 받고 4순위로 입단했다.
고쿠가쿠인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인야구 신일본제철 기미쓰에서 뛰었으며 2000년 드래프트 4순위로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했다.
데뷔 첫 승리를 완봉승으로 기록할만큼 화려한 등장을 보여 주었지만 2002시즌까진 이렇다 할 모습을 못 보여주었다.
2001년 4월 25일 1군에 처음 등판했고 데뷔 시즌부터 완봉승을 기록했지만 2001~2002년에는 선발진에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2003시즌부터 투구폼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며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고 04년에 첫 10승 시즌을 보낸다.
정확히는 2003년부터 선발로 본격 정착해 9승 4패 ERA 3.66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2승 6패 ERA 3.59로 처음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3]
2005년엔 15승에 2.17의 평균자책점으로 커하를 찍고 그해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한신을 4안타로 틀어막고 완봉승을 거두었다.
2005년은 와타나베의 최고 시즌이다. 정규시즌에서 23경기 15승 4패, 187이닝, ERA 2.17을 기록했고 완투 8회, 완봉 3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퍼시픽리그 전체 2위였다.[4]
당시 지바 롯데는 바비 밸런타인 감독 아래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거쳐 일본시리즈에 올라갔고 한신 타이거스를 4연승으로 털어버렸다.
와타나베는 일본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한신 타선을 상대로 9이닝 4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해 롯데가 일본시리즈 4경기에서 한신을 상대로 낸 점수는 33점, 한신은 4점이라서 시리즈 자체가 거의 학살이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2005년 사토자키 토모야와 함께 퍼시픽리그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
2006시즌 이후로는 퐁당퐁당했지만 대부분은 4점대 자책점에서 놀았으며 10년대 이후부터는 부상과 부진, 기량 쇠퇴화가 겹치며 은퇴각을 잴 때가 오고만다.
다만 진짜로 계속 4점대만 찍은 것은 아니다.
2006년에는 5승 11패 ERA 4.35로 급락했지만 2007년에는 9승 6패 ERA 2.44로 다시 살아났고, 2008년에는 13승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 3승 13패, 2010년 8승 8패, 2011년 7승 9패 등 롤러코스터가 상당했다.[5]
WBC
와타나베의 괴상한 투구폼이 국제대회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했다.
2006년 초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선발돼 3경기에 등판해 13⅔이닝 ERA 1.98을 기록했다.[6]
평소 일본 투수의 정교한 제구와 빠른 포크볼 같은 걸 예상하고 들어온 해외 타자들에게 갑자기 땅바닥에서 공이 튀어나오니 존나 적응하기 힘들었다.
특히 국제대회에서는 한 번 보고 끝나는 단기전이라 이런 변칙 투수가 더욱 효과적이다. 시즌 내내 상대하다 보면 영상 보고 타이밍을 맞출 수 있지만 WBC에서 처음 보는 타자가 몇 타석 안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2009년 WBC에도 다시 일본 대표로 뽑혀 2경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일본의 대회 2연패에 함께했다.[7]
즉 WBC 2회 우승 멤버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량이 떨어지면서 등판기회도 감소했다. 2012년에는 13경기 4승 4패, 2013년에는 6경기에 나와 0승 4패 ERA 4.62를 기록했다.[8]
그런데 2013시즌 종료 후 뜬금없이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구단을 뛰쳐나왔다.
정확히는 롯데에서 더 이상 꾸준한 선발기회를 얻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미국 도전을 선택했다. 30대 후반이었으니 일반적인 일본 선수의 메이저 진출 타이밍과 비교하면 존나 늦었다.
NPB 통산 성적은 255경기 1,578⅓이닝 87승 82패 ERA 3.65, 846탈삼진이다.[9]
원문에 적혀 있던 249경기, 1,559이닝, 87승 78패, ERA 3.62, 837K는 통산 최종기록과 조금 다르다.
미국 이후
보스턴과 마이너 계약을 맺고나서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하였다.
2013년 12월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 스프링캠프 정식 초청선수는 아니었지만 계약상 시범경기에 등판할 기회를 얻었고 2014년 시범경기에서 3경기 3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10]
결국 개막 직전인 3월 말 방출됐다.
단 한번도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마운드는 밟지 못하였다.
근데 여기서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4월 미국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의 랭커스터 반스토머스와 계약하고 계속 미국에 남았다.[11]
2014년에는 39경기, 16선발에 등판해 8승 2패 ERA 3.36을 기록하면서 의외로 꽤 잘 던졌다.[12]
시즌 종료 후에는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의 레오네스 델 카라카스에서도 뛰었다. 6경기에 선발등판해 1승 1패 ERA 2.91을 기록했고 주간 MVP까지 받았다.
2015년에도 랭커스터에서 뛰었고 이후 귀국했다.
그러니까 미국시절을 단순히 "보스턴 갔다가 1년 만에 퇴단"이라고 하면 중간이 너무 많이 빠진다.
보스턴에서는 실패했지만 미국 독립리그에서 2년을 더 존버하면서 끝까지 메이저를 노렸다.
한화 이글스
2015년에는 한화 이글스 스프링캠프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일했다.
퇴단이후 똥칰의 투수 인스트럭터를 맡아 똥칰 옆구리를 개조시키려 하였으나 투수들이 워낙 좆병신이라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한화의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했다.
물론 와타나베 투구폼은 그냥 옆구리 투수한테 "야 너도 이렇게 던져봐" 한다고 복사되는 물건이 아니다.
저 폼 자체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관절각도와 릴리스 위치를 갈아엎은 인간이라 사실상 와타나베 전용기다.
가즈사 매직
똥칰을 나와서는 사회인 야구 코치 겸 선수로 뛰다가 올해부터는 지바 롯데 경기 해설위원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현재 기준으로 상당히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2015년 말 일본 사회인야구팀 신일철주금 가즈사 매직의 코치로 취임했고 선수 겸임으로 현역생활까지 이어갔다.[13]
여기가 와타나베가 프로 입단 전에 뛰었던 신일본제철 기미쓰의 후신이라 사실상 친정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후 선수에서 완전히 물러나 코치로 활동하다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제철 가즈사 매직 감독을 맡았다.[14]
감독으로 사회인야구팀을 6년 동안 이끌었으니 은퇴 후 경력만 놓고 보면 그냥 전직 선수 해설자 수준은 아니다.
2026년 현재는 감독직에서는 물러났으며 야구 해설과 지도자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15]
2026년에도 지바 롯데 구단 행사에서 경기 해설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친정팀과의 관계도 이어지고 있다.[16]
투구폼과 기타
본래는 구속과 탈삼진에 집착하여 구속을 140대까지 끌어 올리려했으나 선배 투수들인 구로키와 구도가 셋포지션에 관해 이야기 하는것을 계기로 지금처럼 타자가 치기 어려워 하는 투수가 되었다.
젊었을 때는 다른 투수들처럼 구속을 올리는 데 상당히 집착했다고 한다.
문제는 언더핸드로 140km/h를 찍으려고 폼을 억지로 끌어올리면 자기 장점인 특이한 각도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좋은 공"보다 타자가 치기 싫어하는 공을 던지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면서 지금의 극단적인 서브마린 투구폼이 완성됐다.
릴리스 포인트가 지나치게 낮다 보니 오른손이 마운드에 닿을 듯 말 듯 지나가고 실제로 손가락이나 손등을 땅에 긁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낮게 던지기만 해서는 공이 가운데로 몰려 배팅볼 된다.
와타나베의 진짜 무기는 같은 낮은 팔각도에서 직구와 싱커, 슬라이더, 커브 등 여러 구종을 던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구속차를 이용해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리는 데 능했다.
한마디로 최고구속 160km 투수와 정반대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이다.
2004년 미일 야구
2004년 미일 야구 올스타전에서 약티즈한테 160미터짜리 초대형 홈런을 허용했다.
여기서 약티즈는 데이비드 오티즈.
도쿄돔에서 와타나베의 낮은 공을 제대로 퍼올렸고, 타구는 오른쪽 외야 상단까지 날아간 초대형 홈런이 됐다. 일본 언론에서는 비거리 약 160m 안팎으로 소개됐다.
와타나베의 투구폼이 처음 보는 타자에게는 존나 까다롭지만 일단 타이밍이 제대로 걸리고 공이 한가운데 들어오면 구속이 120~130km/h대라 이런 참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 투수의 커리어 전체가 딱 이렇다.
긁히는 날에는 메이저리거도 이게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씨발 하면서 범타친다.
안 긁히는 날에는 어? 125km네? 하고 담장 넘어간다.
그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도 NPB에서 13시즌 동안 1,500이닝 넘게 던지고 87승을 올렸으니 변칙투수 중에서는 대성공한 케이스다.
특히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과 2006·2009년 WBC 일본 대표 2연패에 모두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 야구사에서도 상당히 기억에 남는 언더핸드 투수다.
각주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2005年度 パシフィック・リーグ 個人投手成績, NPB.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日本代表個人成績 2006 WORLD BASEBALL CLASSIC, NPB.
- ↑ 日本代表個人成績 2009 WORLD BASEBALL CLASSIC, NPB.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渡辺俊介 個人年度別成績, NPB.
- ↑ 渡辺俊介 2014成績, TSP SPORTS.
- ↑ 俊介が米独立Lと契約「メジャー目指す」, 닛칸스포츠, 2014-04-15.
- ↑ 米国・独立リーグで秋を迎えた渡辺俊介, Sports Navi, 2014-09-25.
- ↑ 元ロッテ渡辺俊介、社会人野球の投手兼任コーチへ, 닛칸스포츠, 2015-11-30.
- ↑ それはまるで “濃密なドラマ”!渡辺俊介が語る社会人野球の魅力, 퍼시픽리그닷컴, 2026.
- ↑ 渡辺俊介氏が明かす社会人野球の濃密ドラマ, Full-Count, 2026-08-25.
- ↑ OBゲスト決定|TEAM26有料会員限定解説付きチケット, 지바 롯데 마린스,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