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부터 1947년까지 당시 일본 제국에 존재하였던 특수 신분
당시 일본은 신분제(귀족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이때 계급의 순위는 천황 - 황족 - 왕공족 - 공작 - 후작 - 백작 - 자작 - 남작 - 평민 - 부라쿠민 순 이였다.
보면 천황가의 혈통인 황족 바로 아래의 계급으로 귀족이였던 화족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공작보다도 높은 등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름에 왕(王)이 들어가는 걸로 봐서 나라의 왕과 관련이 있는 거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절대 아니다. 이들은 1910년 전까지는 일본 제국의 국민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의 왕일려면 역사적으로 일본 열도의 지배층이여야 할 텐데, 1910년까지 일본 국민이 아니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대신 이들은 장사꾼 기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너무나 장사를 잘해서 원래 팔지 못하는 거도 막 팔아재끼고 그랬다고 한다.
상인을 천대했던 조선과 달리 상대적으로 상인을 대우하였던 일본이여서 그런지 이들의 이세계급 장사 실력에 너무나 감명을 받았는지 국적과 더불어서 좋은 계급까지 준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제국의 국민이 된 이들은 일제로부터 막대한 금전을 지원받았으며,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조선인(한국인)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절대로 아니다.
당시 일본 제국은 본국인(내지인)과 식민지인(조선인, 대만인 등)을 호적을 기준으로 구별하였다.
따라서 조선인이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호적에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조선호적을 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이 조선인이었으면, 무려 사실상 내지인만 가질 수 있는 공작보다도 높은 대우를 받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
친일 행위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신분에는 한계가 있다. 친일파로 유명한 이완용도 후작 지위를 받았는데, 그렇다면 왕공족은 이완용보다도 친일 행위를 한 가장 악질적인 친일파, 매국노란 말인가?
이들의 거주지는 처음에는 조선의 경성이였으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도쿄 등 내지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한다.
이들은 조선인이 아니므로, 식민 본국으로의 친일을 한 것이 아닌 일본을 조국 그 자체로 애국심을 가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조선의 왕족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개소리이다. 이들이 조선의 왕족이면 뻔뻔하게 나라를 팔아먹은 걸로도 모자라 그 댓가로 일본 제국으로부터 높은 계급과 물질적인 대우를 받고,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은 깡그리 무시하는 등 사실상 반대한 거로는 모자라 일부는 일제의 군인이 되면서까지 높은 충성을 받치는 인간 쓰레기 아니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했다는 말인가? 이는 말이 안된다.
이들은 일제 말기에는 대부분 내지에 거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이 패전하면서 좆망하자, 갑자기 왜인지 모르게 한국에 들어가서 살게 해달라고 했다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국적과, 문화재에서 살 권리까지 달라고 했다고 한다.
충성스런 일본의 국민이었던 이들이, 일개 외국인 한국에게 이러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들의 정신나간 요구와 불법체류를 정의로우신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선 용납할 리가 없었고, 이들에게 귀화를 허락하지 아니함은 물론 한국으로 입국까지도 허용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불법체류자가 판치는 지금 한국에서 본받아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근데 군사 폭동을 일으켜서 대통령 자리를 빼앗은 고목정웅씨는, 이들의 입국을 허용함은 물론, 문화재에서의 불법체류도 허용했다고 한다.
한편 패전 후에도 이들은 왕공족 지위를 누리다가, 1947년에 일본에 평화 헌법이 시행되면서 왕공족의 지위를 잃게 된다. 이 때 행정상의 착오인지는 몰라도 이들의 일본 국적까지고 박탈되고 만다. 아마 패전하고 정신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일본 내의 상황이 안정되자, 이들은 다시 일본 국적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다만 귀족이 없어지게 된 일본에서 이들에게 왕공족의 지위는 다시 부여되지 않았고, 그래서 상당히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마 원래 팔지 못하는 걸 이미 팔아버려서 더이상 팔 게 남지 않았기 때문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