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 성씨 宜嬪 成氏 | |
| 본명 | 성덕임 |
|---|---|
| 생년월일 | 1753년 음력 7월 8일 |
| 사망일 | 1786년 음력 9월 14일 |
| 국적 | 조선 |
| 본관 | 창녕 성씨 |
의빈 성씨(宜嬪 成氏, 1753년 음력 7월 8일 ~ 1786년 음력 9월 14일)는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의 후궁이다. 본명은 성덕임.
조선시대 비빈 가운데 본명이 알려진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의빈 성씨는 그중 한 명이다.
정조의 후궁 가운데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은 인물이다.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수빈 박씨 등이 왕실의 후사를 위해 간택된 후궁이었던 것과 달리 의빈은 궁녀 생활 중 정조와 관계를 맺어 후궁이 되었다.
생애
1753년 음력 7월 8일, 홍봉한 가문의 청지기였던 성윤우와 부안 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궁중에 들어가 혜경궁 홍씨의 처소에서 궁녀로 생활했다.
정조는 왕세손 시절부터 성덕임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가 직접 남긴 기록에 따르면 처음 승은을 내리려 했을 때 성덕임은 효의왕후가 아직 자식을 두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후 다시 승은을 내리려 했을 때도 한 차례 더 거절했으며, 정조가 성덕임의 하인을 꾸짖고 벌한 뒤에야 승은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ㄴ 드라마에서 나온 “15년 동안 쫓아다닌 정조” 이미지가 완전한 창작만은 아니다. 다만 둘의 구체적인 감정선이나 연애 과정까지 기록으로 상세히 남은 것은 아니다.
1782년 왕자를 낳은 뒤 소용에 봉해졌고, 이듬해인 1783년 의빈으로 진봉되었다.
1784년 아들 문효세자가 세자로 책봉되면서 의빈은 왕세자의 생모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자식들을 잇달아 먼저 떠나보냈다.
문효세자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고, 딸인 옹주 역시 일찍 죽었다.
1786년에는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 병에 걸려 사망했다.
ㄴ 원문에는 '의문사'라고 되어 있었지만, 현재 확인 가능한 기록은 임신 중 병으로 사망했다는 정도다. 정확한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암살이나 타살로 볼 근거는 없다.
5년 동안 세 차례 임신하고 자식 둘을 먼저 잃은 뒤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점 때문에 상당히 비극적인 삶으로 기억된다.
가족관계
문효세자는 정조의 유일한 적장자는 아니지만, 정조 생전에 세자로 책봉된 아들이었다.
그러나 문효세자가 어린 나이에 죽으면서 정조는 다시 후계자를 잃었고, 이후 수빈 박씨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훗날 순조가 된다.
대중매체
의빈 성씨는 정조와의 관계 때문에 사극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대중적으로는 '정조가 오래 사랑했던 궁녀 출신 후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ㄴ 실제 기록에도 승은을 두 차례 거절했다는 내용은 남아 있지만, 드라마 속 세세한 연애 장면들은 당연히 각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