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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
본명三宅 一生
생년월일1938년 4월 22일
국적일본
출생지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학력다마미술대학 그래픽 디자인
직업패션 디자이너
활동기간1960년대~2022년
소속MIYAKE DESIGN STUDIO
사망2022년 8월 5일
영문Issey Miyake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三宅 一生, 1938년 4월 22일~2022년 8월 5일)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ISSEY MIYAKE의 창립자다. 옷에 영구적인 주름을 넣는 독자적인 플리츠 기술과 PLEATS PLEASE ISSEY MIYAKE, 한 장의 천에서 옷을 만들어내는 A-POC, 그리고 훗날 스티브 잡스의 상징이 된 검은 터틀넥으로 널리 알려졌다.[1][2]

한국에서는 브랜드 이름인 이세이 미야케로 더 익숙하며 특히 주름이 촘촘하게 잡힌 플리츠 의류와 바오바오 이세이 미야케(BAO BAO ISSEY MIYAKE) 가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미야케 본인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주름 존나 잘 잡는 일본 명품 디자이너 수준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패션을 유행에 따라 장식하는 작업보다 사람의 몸과 천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산업디자인에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3]

ISSEY MIYAKE 공식 자료는 그의 대표적인 개념을 A Piece of Cloth, 즉 한 장의 천이라고 설명한다. 미리 정해진 서양식 재단법에 몸을 끼워 맞추는 대신 천이 몸 주변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했고, 이 철학은 플리츠와 A-POC 같은 기술로 이어졌다.[4]

생애

히로시마와 원자폭탄

이세이 미야케는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가 7세였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당시 미야케는 학교에 있었으며 폭발에서 살아남았다.[2]

훗날 그는 이 경험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폭에서 살아남은 디자이너라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촉구하는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경험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파괴된 것보다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의복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5]

어린 시절 어머니 역시 원폭으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몇 년 뒤 세상을 떠났다. 미야케 본인도 건강문제를 겪었다는 전기가 존재한다.[6]

이 배경을 알고 나면 미야케가 평생 파괴보다 창조를 이야기하고, 옷을 갑부 몇 명에게 보여주는 장식품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실제로 입을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려 했던 태도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다마미술대학

미야케는 다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의복이 독립적인 디자인 분야로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1960년 세계디자인회의가 일본에서 열리자 학생이던 미야케는 왜 의복 디자인은 프로그램에 없냐는 취지의 편지를 사무국에 보냈다.[3]

이때부터 이미 그의 관점은 패션 = 예쁜 옷 만드는 일보다 옷도 하나의 디자인 문제에 가까웠다.

1963년 대학 졸업 후 첫 컬렉션인 《Poems of Cloth and Stone》을 발표했다.[1]

파리

1965년 미야케는 파리로 건너가 École de la Chambre Syndicale에서 공부하고 두 오트쿠튀르 하우스에서 조수로 일했다.[1]

전기자료에 따르면 그는 기 라로슈와 위베르 드 지방시 밑에서도 경험을 쌓았다.[6]

그러나 그의 디자인 철학에 더 큰 영향을 준 사건은 1968년 68혁명이었다.

당시 오트쿠튀르는 극소수의 부유한 고객을 위한 옷이라는 성격이 강했는데, 미야케는 1968년 파리의 학생운동과 사회변화를 보면서 소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들겠다는 방향을 잡게 됐다.[3]

패션계 최고급 코스까지 가놓고 결론이 부자 아줌마 한 명 입힐 옷 만드는 것보다 그냥 사람들 많이 입는 옷 만들래였던 셈이다.

뉴욕과 일본 귀국

1969년에는 뉴욕으로 이동해 미국의 레디투웨어 산업을 경험한 뒤 일본으로 돌아왔다.[3]

1970년 MIYAKE DESIGN STUDIO를 설립했고, 1971년 뉴욕에서 첫 해외 ISSEY MIYAKE 컬렉션을 발표했다. 1973년부터는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기 시작했다.[1]

이후 요지 야마모토, 레이 가와쿠보 등과 함께 일본 디자이너들이 세계 패션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형성하는 흐름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미야케는 서양 패션을 단순히 일본식으로 따라 하는 것보다 일본 전통의 직물, 한 장의 천이라는 사고방식과 현대적인 섬유기술을 연결하는 쪽을 선택했다.

말년과 사망

미야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일선 컬렉션 디자인에서는 점차 물러나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제조기술 연구에 계속 참여했다.

2022년 8월 5일 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였다.[2]

그가 사망한 뒤에도 ISSEY MIYAKE는 독립적인 디자인팀과 후임 디자이너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현재 공식 브랜드 체계에는 ISSEY MIYAKE 외에도 PLEATS PLEASE ISSEY MIYAKE, HOMME PLISSÉ ISSEY MIYAKE, A-POC ABLE ISSEY MIYAKE, BAO BAO ISSEY MIYAKE 등 여러 라인이 존재한다.[7]

디자인과 대표작

A Piece of Cloth

미야케 디자인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개념은 A Piece of Cloth다.[4]

서양의 전통적인 의복은 몸의 형태에 맞춰 천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재봉하는 방식이 중심이다.

반면 미야케는 일본의 기모노처럼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한 장의 천이 사람의 몸을 만나면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드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게 몸과 옷 사이의 빈 공간도 디자인 대상이었다.

그래서 ISSEY MIYAKE의 옷을 보면 마네킹에 걸어놓았을 때보다 실제 사람이 입고 움직일 때 훨씬 이상한 모양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옷을 정지된 조각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여야 완성되는 물건으로 본 것이다.

플리츠

이세이 미야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플리츠(Pleats), 즉 주름이다.

미야케는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리츠 기술을 실험하기 시작했다.[8]

전통적인 플리츠 의류에서는 보통 천에 먼저 주름을 만든 뒤 이를 재단하고 봉제한다.

미야케의 대표적인 방식은 반대였다.

옷을 먼저 크게 재단하고 봉제한 다음 열처리를 통해 주름을 고정했다.[9]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든 옷을 원래 크기보다 크게 봉제한 뒤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하면 영구적인 주름이 잡힌다.

이 방식의 장점은 옷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늘어나면서도 다시 원래 모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볍고 잘 구겨지지 않으며 세탁하기 쉽고 몸의 크기와 움직임에 비교적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다.[9]

명품옷인데 여행가방에 대충 쑤셔넣어도 원래부터 존나 구겨져 있어서 티가 안 나는 기적의 설계다.

PLEATS PLEASE ISSEY MIYAKE

1991년 미야케는 파리 컬렉션에서 훗날 PLEATS PLEASE ISSEY MIYAKE의 원형이 되는 플리츠 의류를 선보였다.[1]

이후 무용가 윌리엄 포사이스가 이끄는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실제 움직임 속에서 플리츠의 기능을 시험했고, 1993년 PLEATS PLEASE ISSEY MIYAKE를 독립 브랜드로 발표했다.[1]

공식 브랜드 설명에서는 1994년 봄·여름 시즌부터 독립적인 컬렉션을 전개했다고 설명한다.[9]

PLEATS PLEASE의 핵심은 옷을 귀한 예술품처럼 모셔놓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입고, 움직이고, 세탁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가격표 보면 서민 일상복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이지만 적어도 디자인 철학은 그렇다.

A-POC

A-POC은 A Piece Of Cloth의 약자다.

1998년 미야케와 섬유 엔지니어 다이 후지와라 등이 시작한 프로젝트로, 컴퓨터로 제어되는 편직기에서 거대한 하나의 튜브 형태 직물을 만들어 사용자가 필요한 형태를 잘라 옷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1][10]

즉 기존 의류산업의

원단 제작 → 재단 → 남은 천 버림 → 봉제 → 옷 완성

과정을

기계에서 거의 옷 자체가 나옴 → 필요한 부분만 잘라 입음

식으로 바꾸려 한 것이다.

1998년에 이런 짓을 했으니 현재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미래적인 발상이다.

옷 만드는 공장을 보고 이거 프린터처럼 한 줄로 뽑으면 안 됨?이라고 생각한 뒤 실제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A-POC은 이후 A-POC ABLE ISSEY MIYAKE라는 브랜드로 이어졌다.[10]

BAO BAO ISSEY MIYAKE

BAO BAO ISSEY MIYAKE는 한국에서도 특히 인지도가 높은 가방 브랜드다.

삼각형 조각들이 망처럼 연결돼 내용물과 움직임에 따라 가방 표면의 형태가 계속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딱딱한 삼각형 패널을 유연한 메시 소재 위에 배치해 평면일 때와 물건을 넣었을 때 전혀 다른 입체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 역시 미야케 디자인에서 반복되는 평면 → 움직임 → 입체라는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이세이 미야케 본인의 옷보다 바오바오 가방을 먼저 본 사람이 꽤 많을 정도라, 결과적으로 삼각형 몇 개 붙여놓고 브랜드 인지도 존나 뽑아낸 효자상품이 됐다.

다만 BAO BAO라는 별도 브랜드의 전개는 미야케 개인의 일선 디자인 활동 이후까지 이어지는 회사 차원의 프로젝트이므로 모든 제품을 미야케 본인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이해하면 안 된다.

HOMME PLISSÉ ISSEY MIYAKE

HOMME PLISSÉ ISSEY MIYAKE는 2013년 시작된 남성 중심의 플리츠 브랜드다.[10]

PLEATS PLEASE와 마찬가지로 옷을 봉제한 뒤 주름을 넣는 기술을 활용하며, 가볍고 구김이 적고 빨리 마르며 움직임이 편하도록 설계됐다.[10]

특유의 넓은 바지와 재킷 때문에 잘 입으면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같고 잘못 입으면 아코디언이 출근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소재실험

미야케는 전통적인 비단이나 면뿐 아니라 종이, 플라스틱, 금속성 소재와 다양한 합성섬유를 의복에 적용했다.

그에게 새로운 소재는 단순히 튀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옷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야케가 일본적인 미학을 개척하면서도 서양 오트쿠튀르의 구조적 실험과 다양한 문화권의 직물 전통을 결합했다고 평가한다.[11]

옷과 움직임

미야케는 젊은 시절 운동선수나 무용수가 되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관심은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옷을 만드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2]

실제로 그의 옷은 무용수와 함께 자주 전시됐고 런웨이에서도 모델을 그냥 걷게 하기보다 뛰거나 춤추게 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사람이 가만히 서 있어야 예쁜 옷보다 뛰어다녀야 존나 살아나는 옷을 만들었다.

영향과 대중문화

일본 패션의 세계화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 패션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디자이너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부터 파리에서 활동하며 일본적 전통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서양의 의복구조, 산업기술, 전통 직조와 현대 합성섬유를 자유롭게 섞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의 작업을 동서양 미학을 결합한 세계적인 의복 디자인의 사례로 평가한다.[11]

이후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등이 1980년대 파리에서 일본 패션의 존재감을 크게 높이면서 미야케는 이 흐름의 선배 격으로 자리잡았다.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세이 미야케 작품을 존나 많이 본 이유가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매일 입던 검은 터틀넥이 바로 미야케의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2]

잡스는 일본 소니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회사 유니폼을 입는 것을 보고 애플에도 비슷한 문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 과정에서 미야케와 가까워졌고 직원용 조끼 디자인을 부탁했지만 애플 직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대신 잡스 본인은 미야케에게 자신이 평생 입을 검은 터틀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미야케가 약 100벌을 만들어줬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결국 잡스는 매일

검은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 + 리바이스 청바지 + 뉴발란스 운동화

라는 사실상의 개인 유니폼을 입었다.

잡스 사진 수천 장이 전부 똑같아 보이는 이유가 세탁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옷을 존나 많이 똑같은 걸로 사놨기 때문이다.

향수

1992년에는 향수 L'Eau d'Issey가 출시되면서 패션 외 분야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프랑스어 이름은 이세이의 물이라는 뜻이지만 발음하면 L'Odyssey와 비슷하게 들리는 언어유희도 포함돼 있다.

미니멀한 병 디자인과 깨끗한 수생계 향으로 1990년대 대표적인 향수 가운데 하나가 됐다.

현재도 ISSEY MIYAKE PARFUMS는 공식 파트너십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7]

미술관과 전시

미야케의 작업은 패션상품뿐 아니라 디자인과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도 다뤄졌다.

1977년에는 A Piece Of Cloth - Issey Miyake in Museum 전시를 열었으며 이후 파리 장식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등 다양한 미술기관에서 전시가 열렸다.[1]

1998년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ISSEY MIYAKE MAKING THINGS는 이후 뉴욕과 도쿄로 순회했다.[1]

그에게 옷은 패션쇼 시즌 지나면 할인매대 가는 소비재이면서 동시에 재료와 제조방법을 연구하는 디자인 실험이었다.

수상

이세이 미야케는 디자인과 문화 분야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연도 주요 수상
1977년 마이니치 디자인상
1984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상
198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
1990년 제1회 히로시마상
1991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코망되르
1993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12]

평가와 여담

패션보다 디자인

미야케는 자신을 단순한 패션디자이너로 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옷을 산업디자인의 문제처럼 접근했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매 시즌 색깔 좀 바꾸고 새 옷 파는 것보다

  • 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재단을 없앨 수 있는가
  • 몸이 움직이면 옷이 어떻게 변하는가
  • 세탁하고 여행하기 편한가
  • 산업적으로 반복생산할 수 있는가
  • 버려지는 원단을 줄일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명품 디자이너인데 사고방식은 묘하게 섬유공학과 공장 생산관리 담당자 같다.

플리츠가 혁신적이었던 이유

옷에 주름을 잡는 기술 자체는 당연히 미야케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마리아노 포르투니 등 훨씬 이전부터 플리츠 의류는 존재했다.

미야케의 혁신은 합성섬유와 열처리를 이용해 옷을 다 만든 다음 주름을 넣고, 그 주름이 실제 일상생활과 세탁에서도 유지되도록 산업화했다는 데 있다.[9]

즉 주름을 장식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옷의 구조 자체로 만들어버렸다.

일본 전통복을 그대로 복제한 것은 아니다

미야케의 옷은 기모노나 일본 전통 직물과 자주 연결되지만 일본 전통복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디자이너라고만 설명하면 부족하다.

그는 인도 직물, 아프리카 직물, 유럽 오트쿠튀르, 미국 레디투웨어와 최신 합성섬유를 전부 가져다 썼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그의 작업에서 아프리카·중동·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영향을 확인한다.[11]

전통 일본인 코스프레를 세계에 판 사람이 아니라 세계 직물기술을 존나 섞은 뒤 결과물이 일본적으로 보이게 만든 쪽에 더 가깝다.

원폭 경험을 브랜드로 팔지 않았다

미야케는 원폭 생존자였지만 대부분의 경력 동안 이를 공개적으로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죽음과 파괴의 기억이 아니라 창조적인 작업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5]

이 때문에 그의 생애에서 히로시마 경험은 매우 중요한 배경이지만 모든 작품을 원폭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지금 판매되는 이세이 미야케는 본인이 디자인한 건가

대부분 아니다.

이세이 미야케는 생전에 이미 여러 브랜드의 일상적인 디자인 작업을 후임 디자이너들에게 넘겼다.

현재 ISSEY MIYAKE 본선은 디자이너 사토시 곤도가 이끌고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는 2020년 봄·여름 시즌부터 곤도가 브랜드 디렉팅을 맡았다고 설명한다.[4]

따라서 현재 백화점에서 신상 이세이 미야케를 샀다고 2022년에 사망한 미야케 선생이 저승에서 패턴 뜬 것은 아니다.

ISSEY MIYAKE는 현재 개인 이름인 동시에 회사와 디자인 철학을 계승하는 브랜드명이다.

바오바오가 너무 유명하다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BAO BAO ISSEY MIYAKE의 인기가 특히 높아 이세이 미야케라는 이름을 삼각형 가방 만드는 회사 정도로 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야케 디자인사에서 더 중요한 작업은 의복과 섬유 제조방식을 바꾼 플리츠와 A-POC 쪽이다.

미켈란젤로를 다비드상 굿즈회사라고 기억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꽤 많이 생략한 이해다.

주요 브랜드

브랜드 특징
ISSEY MIYAKE 본선을 계승하는 메인 패션 브랜드.
PLEATS PLEASE ISSEY MIYAKE 여성 중심의 플리츠 의류 브랜드.
HOMME PLISSÉ ISSEY MIYAKE 플리츠 기술을 활용한 남성 중심 브랜드.
A-POC ABLE ISSEY MIYAKE A-POC 개념을 발전시키는 실험적 브랜드.
BAO BAO ISSEY MIYAKE 삼각 패널 구조의 가방으로 유명한 액세서리 브랜드.
132 5. ISSEY MIYAKE 평면적인 구조가 입체적인 의복으로 변형되는 디자인을 연구하는 브랜드.
me ISSEY MIYAKE 일상적이고 가벼운 의류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

현재 회사가 운영하는 전체 브랜드 체계는 ISSEY MIYAKE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7]

주요 용어

용어 설명
이세이 미야케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동명의 브랜드 창립자.
Issey Miyake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과 브랜드 표기.
三宅一生 일본어 이름. 일본어 독음은 미야케 잇세이.
A Piece of Cloth 한 장의 천과 몸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미야케의 대표적인 디자인 개념.
PLEATS PLEASE 옷을 완성한 뒤 열처리로 주름을 넣는 플리츠 기술을 활용한 대표 브랜드.
A-POC A Piece Of Cloth. 한 장의 연속된 직물에서 옷을 만들어내는 제조 개념.
BAO BAO 삼각형 패널 구조로 유명한 ISSEY MIYAKE의 가방 브랜드.

검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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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에서는 브랜드 검색결과가 쇼핑몰에 존나 많이 점령돼 있으므로 디자이너 본인의 생애나 디자인사를 찾으려면 Issey Miyake designer, Issey Miyake biography, 三宅一生 デザイン처럼 검색하는 편이 낫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