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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영쑤!! 돈 두 댓!"


간단한 설명

전쟁을 계속하기 위한 일부 군부의 쿠데타 계획이다.

반란준비

하타나카 켄지 소장의 사진 쿠데타 지도자

1945년 8월 12일 밤 하타나카켄지 소장은 이이타 마사타카 중령, 타케시 타마사히코, 이나바 마사오 군부대장 , 오키츠 구아라오 대령이

아나미 장군에게 항복에 반대할 것과, 병력동원계획의 발동을 요청했다.

아나미는 일단 이들의 제의에 우메즈 요시지로에게 먼저 설명을 좀 해야겠다라고 했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아나미는 우메즈에게 항복에 반대하는것과 병력동원의 계획에 대해서 말했지만 우메즈는 뭔 개소리냐며 반대했고

아나미도 역시 이러한 우메즈의 말에 찬성했다. 그리고 이후 일왕의 항복선언에 이의를 제기하지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는 와중에 하타나카 켄지 소장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계획하고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하타나카는 자신들의 지지자를 모으기 시작했고 8월 13일과 8월 14일 아침에 지지자를 모으고 내각의 고등부로부터의 지원을 구했고 쿠테타 준비를 끝마쳤다.

몰려드는 전운

타나카 시즈키치의 사진, 9일후 자살한다.

항복이 마침내 결정된 8월 13일과 14일 밤의 회의가 있은직후, 아나미장군을 포함한 고위 육군장교들이 인근방에 모였고, 참석한 모든 이들은 쿠데타 발생가능성을 우려했다.

침묵한후, 토라시로 카와베 장군은 모든 고위장교가 일왕의 항복명령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육군은 일본제국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것이다." 

아나미 , 스기야마 하지메 , 요시지로 우메즈 , 도이하라 켄지 , 가와베 토라시로 , 카와베 마사카즈 , 와카마츠 다다이치 를 비롯한 모든 고위간부가 서명했다.

육군의 최고 고위 장교에의한 서면합의는 도쿄에서 쿠데타를 자극하려는 시도에도 큰 방책으로 작용했다.

반란의 시작

하타나카의 반란군은 8월 14일 21시 30분경에 계획을 세웠다. 하타나카는 지로 시아자키 중령과 함깨

하가 토로지로 대령 제국경비대 2연대 지휘관에게 같이 동참하자고 설득을 했다. 동부 군부와 제국 경비대 모두 그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하타나카는 동부 군부 지휘관 타나카 시즈키치 사무소에 가서 그에게도 같이 동참하자고 설득을 했으나, 타나카 시즈키치는 하타나카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물론, 하타나카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같은날 23시 30분 항복방송 녹음이 끝이났다.

원래 하타나카는 황궁을 점령하고 쿠데타의 시작을 보여주는것이 항복하는것에 대항하여 일어서로록 고무시킬것이라 기대했다.

하타나카의 상관의 지원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을 추친하기위해서 여러 무리수를 뒀고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리라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을했던것이다.

하타나카와 그의 지지자들은 경비대가 황궁을 02:00에 점령할것이라 결정하고 그때까지 최대한 하타나카의 지지자를 끌어모으게끔 계속 노력했다.

거의 같은 시기 아나미 장군은 이런 메세지를 남기고 할복한다.

 "나는 내 죽음으로 이 반역에 대해서 천황에게 사과한다." 


아나미 장군에 이런 행동으로 보아 논란이 좀 있다.

반란의 시작 2

01:00 이후, 하타나카와 그의 부하들은 황궁을 에워쌌다. 모리 타케시 중장은 하타나카와 협력하지않겠다고 했고 하타나카는 모리 타케시 중장의 머리를 권총으로 쏴서 죽였다.

하타나카는 모리 타케시 중장의 제국 경비원들이 쿠데타를 멈출것을 염려했지만 우에하라가 시라이시를 권총으로 쏴죽였다. 시라이시는 모리 타케시 중장의 처남이다.

그리고 위조명령을 내려 모리 타케시의 병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모리 타케시의 직인을 도용하기도 했다.

궁전 경찰의 무장은 강제 해제 되었고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고 하타나카의 반란군은 밤중에 NHK 노동자와 사역자들을 포함해 18명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하타나카가 이끄는 반란군은 몇시간동안 코이치기도와 이시와타 소타로 총독과 열심히 항복 연설문을 찾았다. 코이치기도와 시이와타 총독은 하타나카의 반란군을 피해서 제국 황궁 아래의 "은행 금고" 에 숨어있었다.

연합군 폭격에 대비한 강제정전과 황궁내각의 구식조직배치로 인해 하타나카의 수색작업이 매우 어려워졌다. 방이 많았던것도 요인중 하나였다.

반란군은 방공호에서 도쿠가와를 찾았고 하타나카는 일본도를 들고 그를 납치하겠다라고 협박했다. 도쿠가와는 항복녹음본이나 코이치기도와 총독이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수색하는 그 동안 반란군은 황궁과 외부의 통신망을 완전히 차단했다.

동부군부가 병력을 동원하여 쿠데타 진압준비를 시작했고 모리 타케시의 병력 역시 자신의 지휘관인 모리 타케시가 죽었다는것을 깨닫고 쿠데타군에게 분노를 느끼며 빠지기 시작했다.

03:00경 하타나카는 동부 지방군 육군참모 총장에게 NHK 라디오 방송에서 적어도 10분간 방송을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고 하가 대령은 하타나카에게 궁전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후

하타나카는 필사적으로 NHK 방송을 하려고 했으나 아나운서의 시간끌기로 마찬가지로 실패했고

항복녹음본 찾는것도 실패했다. 일왕도 새벽에 깨서 이 소식을 듣기도 했다.

이후로는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전단지를 길거리에 뿌리고 다녔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뭐지 저병신은" 이라는 반응

쿠데타에 실패했고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다.

이후 이야기는 디키러들 아는그것대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