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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는 중국 전국시대에 수많은 식객을 거느리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네 명의 유력 인물을 가리킨다.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 또는 전국사군(戰國四君)이라고도 한다.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 위나라의 신릉군 위무기,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각자 수천 명에 달하는 식객을 거느리며 인재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늘날로 치면 자기 돈과 권력으로 사설 싱크탱크와 인재풀을 운영하던 전국시대의 거물급 정치인들이었다. 물론 그 식객이라는 사람들 중에는 학자와 전략가뿐 아니라 도둑질이나 닭 울음소리에 재능이 있는 양반들까지 있었다.

특징

전국사군자의 공통점은 신분이나 출신을 크게 따지지 않고 인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유능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특히 진나라가 강대해지면서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각국의 귀족들은 외교와 군사 분야에서 활약할 인재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이들이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충신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식객을 거느리는 행위는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으며, 국가의 이익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네 사람의 능력과 업적이 모두 비슷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신릉군은 군사적 업적과 인재를 대하는 태도로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평원군은 장평대전 전후의 정치적 판단 등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담

  • 이름에 '군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네 사람이 전부 도덕적으로 훌륭한 성인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유력한 귀족이자 식객을 거느린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 네 사람 중 춘신군 황헐만은 왕실 출신이라는 사실이 확실하지 않다. 나머지 세 사람은 왕족이었다.
  • 맹상군의 식객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계명구도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으며, 평원군의 식객 모수에게서는 모수자천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 신릉군은 절부구조의 주인공으로, 왕의 명령을 어기고 병권을 탈취해 조나라를 구원한 일화로 유명하다.
  • 이들이 거느린 식객은 각각 수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숫자인 만큼 정확한 규모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밥 먹여줘야 할 식객이 수천 명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재력과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이들의 생애와 일화는 사마천의 《사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