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형, 이제 편히 쉬세요.

위고노리치!!! 훔바훔바

틀
놀랍게도 안필드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콥등이들의 저주로 다음 생에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깨어나세요, 용사여!
놀랍게도 이 인물을 사랑하는 모든 국가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과 서버가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빠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폼은 죽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말해 보아라, 가성비가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이냐 이거야!
말해 보아라, 이적료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냐 이거야!
놀랍게도 캐로우 로드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많은 카나리스들의 저주로 다음 생에 고소한 참새구이가 될 것입니다.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 응원합시다.
리버풀의 전설이자 신.
개요
스티븐 조지 제라드 Steven George Gerrard | |||||||||||||||||
| 생년월일 | 1980년 5월 30일 | ||||||||||||||||
|---|---|---|---|---|---|---|---|---|---|---|---|---|---|---|---|---|---|
| 출생지 |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위스턴 | ||||||||||||||||
| 국적 | 영국의 기 영국 (잉글랜드의 기 잉글랜드) | ||||||||||||||||
| 종족 | 대형견 | ||||||||||||||||
| 신체 | 183 cm | ||||||||||||||||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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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조지 제라드(Steven George Gerrard)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 감독, 방송인이다. 선수 시절 대부분을 리버풀 FC에서 보낸 구단 역사상 대표적인 레전드 가운데 한 명이며, 중앙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와 측면까지 소화했다.
그리고 한국 인터넷에서는 그 위대한 커리어와는 별개로 2014년 첼시전에서 미끄러진 단 한 장면 때문에 영원히 훔바훔바가 되어버렸다.
리버풀 1군에서 1998년부터 2015년까지 710경기 186골을 기록했으며 2003년부터 장기간 주장으로 활동했다.[1] 리버풀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UEFA컵, FA컵, 리그컵 등을 우승했지만 선수 시절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끝내 하지 못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14경기 21골을 기록했으며 주장도 맡았다.[2]
2021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만 504경기 120골 92도움을 기록했다.[3]
2026년 리버풀 구단이 134년의 기록과 팬 135만 건 이상의 선택 등을 반영해 진행한 'Liverpool's Greatest'에서도 구단 역사상 1위로 선정됐다.[4]
훔바드립을 아무리 쳐도 진짜로 축구를 존나 잘했던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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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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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병신 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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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바바의 아이를 잉태한 만삭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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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중일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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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치로 이적했을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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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치의 감독이 된 미래 모습
주인 뎀바바.
주요 경력
클럽 경력
리버풀 FC : 1998~2015, 공식전 710경기 186골
- FA컵 우승 : 2000-01, 2005-06
- 리그컵 우승 : 2000-01, 2002-03, 2011-12
- 커뮤니티 실드 우승 : 2001, 2006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 2004-05
- UEFA컵 우승 : 2000-01
- UEFA 슈퍼컵 우승 : 2001, 2005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6-07
리버풀 공식 기록으로 710경기 186골이다. 프리미어리그만 따지면 504경기 120골.
2015년 리버풀을 떠난 뒤 LA 갤럭시로 이적했다. MLS 정규리그에서는 두 시즌 동안 34경기 5골 14도움을 기록했고 2016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5]
2016년 11월 24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국가대표 경력
잉글랜드 국가대표 A팀 : 2000~2014, 114경기 21골
- 유로 2000
- 유로 2004 8강
- 2006 독일 월드컵 8강
-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 유로 2012 8강
-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2006 독일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는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2012년부터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주요 대회에 출전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개인 경력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 2000-01
-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 2000-01, 2008-09
- PFA 선수 선정 올해의 선수 : 2005-06
- PFA 올해의 팀 : 2000-01, 2003-04, 2004-05,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13-14
- FWA 올해의 선수 : 2008-09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 2007, 2012
- UEFA Club Footballer of the Year : 2004-05
- UEFA 올해의 팀 : 2005, 2006, 2007
- FIFA/FIFPro World XI : 2007, 2008, 2009
- ESM 올해의 팀 : 2008-09
- UEFA 유로 대회 베스트 팀 : 2012
- FWA Tribute Award : 2013
-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 2021
- MBE : 2007
발롱도르
- 2001 : 공동 25위
- 2005 : 3위
- 2006 : 후보
- 2007 : 13위
- 2008 : 10위
- 2009 : 10위
2005년에는 호나우지뉴, 프랭크 램파드에 이어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FIFA 올해의 선수
- 2001 : 공동 29위
- 2004 : 34위
- 2005 : 7위
- 2006 : 12위
- 2007 : 6위
- 2008 : 6위
- 2009 : 8위
평가

선수로서의 평가는 인터넷 밈과는 완전히 별개다. 전성기에는 활동량, 중장거리 패스, 중거리슛, 태클, 침투, 리더십까지 갖춘 완성형 미드필더로 평가받았고 유럽의 여러 빅클럽이 영입을 시도했다.
조제 무리뉴는 첼시뿐 아니라 이후 인테르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제라드 영입을 원했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제라드는 결국 리버풀에 남았다.
2005년에는 첼시 이적이 매우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결국 마음을 바꿔 리버풀과 재계약했다.
호지슨, 달글리시 등 그를 탐내던 명장들에 의해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등의 클럽들에 수차례 영입제의를 받았으나 매번 거절하고 리버풀만을 선택해 수많은 감독과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이다.
AT마드리드의 미드필더 코케와 도르트문트의 수비수 훔멜스는 "리버풀의 제라드와 같은 선수가 되고싶다"며 팀에 최대한 오래 남을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훔멜스는 통수를 치고 뮌헨으로 이적했다.
코케 성님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틀레티코를 지켰다ㅠㅠㅠㅠ
우승 컨택터인 빅클럽으로 가지않고 리버풀에서만 뛰었다는 이유로 과대평가 받고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성기 실력 자체가 당대 최정상급 미드필더였다는 평가는 당시 감독·선수들의 평가와 개인 수상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아래 표는 이 문서에서 오래 전부터 돌아다니던 실제 찬사 + 디시위키식 개작 드립이다. 특히 개, 뎀바 바 산책 등의 문장은 실제 인터뷰 발언이 아니므로 진짜 인용문처럼 퍼가면 안 된다.
| 인물 | 평가 |
|---|---|
| 무리뉴 | 나는 첼시, 인테르, 레알에서 제라드를 영입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리버풀만을 위해 뛰기를 원했다. 나의 최고의 상대였던 그를 존경한다. 후반부 표현은 실제 발언 취지를 바탕으로 한 문서식 요약. |
| 안첼로티 |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제라드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미드필더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가 정점이고 그 다음이 피를로이다. |
| 램파드 | 그는 완벽한 대형견이다, 주인을 돋보이게 한다. ㄴ 실제 램파드 발언 아님. |
| 지단 | 메시, 호날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는 제라드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제라드와 함께 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그의 전성기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영입을 원했지만 그는 리버풀을 선택했다. |
| 카카 | 세계 최고선수 3명을 꼽자면 메시, 호날두 그리고 제라드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빠른 스피드와 기술, 재능 등을 가진 사람이지만 제라드는 개다. ㄴ 뒷부분 당연히 실제 발언 아님. |
| 앙리 | 제라드는 좋은 개였지. 바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었어 ㄴ 실제 발언 아님. |
| 토레스 | 내가 함께 뛰어본 멍멍이 중 최고는 제라드이다. ㄴ 토레스가 제라드를 함께 뛰어본 최고의 선수로 높게 평가한 적은 있지만 멍멍이라고 한 적은 없다. |
| 피를로 | AC밀란 시절 안첼로티는 내게 제라드와 함께 뛰는 게 어떻냐고 물어봤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데려오자"고 답했다. 전성기의 그는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
| 뎀바 바 | 난 그때 골을 넣기 위해 드리블을 한 게 아니었어. 그저 영국산 대형견 한마리를 산책시키기 위해 드리블을 한 것 뿐이었지. 그 개는 공을 보자마자 잘 따라오더군. ㄴ 100% 이 문서식 개드립이다. |
훔바훔바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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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바 커리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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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예능을 책임지던 코미디 레전드 훔바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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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바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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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바의 현실
이스탄불에서 사기질로 도둑질해온 챔스우승컵을 빼면 더 비참해진다. 중위권팀 레전드 치곤 컵도 두개나 들었으니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긴 하다.
ㄴ 실제로는 챔피언스리그 외에도 UEFA컵 1회, FA컵 2회, 리그컵 3회, UEFA 슈퍼컵 2회 등을 우승했다. 프리미어리그를 못 먹은 게 존나 크게 보일 뿐이다.
현지에선 훔바 안깐다고 한국에서만 깐다고 훔들훔들 거리는 훔퀴들은 현실[1]을 직시하자.
실제로 그 미끄러짐은 영국에서도 EPL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수 가운데 하나로 계속 회자된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사이트조차 리버풀-첼시 명장면을 정리하면서 별도 항목으로 제라드의 미끄러짐을 소개할 정도다.
국가대표나 클럽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팀의 패배에 일조한 장면도 여럿 있다.
이스탄불에서 전 세계 축구인들과 축구팬들 상대로 사기를 치지 않았으면 이러한 점이 좀 더 빨리 부각 되어서 거품이 뎀장군님의 정의구현보다 훨씬 전에 꺼졌을 것이다.
뎀바바의 헌정 영상

- 2004년 유로대회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앙리에게 백패스하는 과정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
- 2005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자책골.
- 2009년 EPL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백패스 실수.
- 2010년 EPL 첼시와의 경기에서 드록바에게 백패스로 득점을 헌납.
- 2014년 EPL 첼시와의 경기에서 넘어지는 실수로 뎀바 바에게 득점을 헌납.
-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백헤딩한 공이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연결되어 결승골 허용.
- 2015년 EPL 안필드 마지막 맨유전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온 뒤 약 40여 초 만에 퇴장. 제라도 참고.
- 2015년 MLS 플레이오프 시애틀전에서 수비 상황에서 넬슨 발데스를 놓쳤고 LA 갤럭시는 2-3으로 패해 탈락.
2014년 그 미끄러짐
2014년 4월 27일 첼시 FC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 제라드가 공을 받다가 미끄러졌고 뎀바 바가 그대로 공을 빼앗아 선제골을 넣었다. 리버풀은 결국 0-2로 패했다.[6]
이 장면이 특히 전설이 된 이유는 일주일 전 맨체스터 시티전 승리 직후 제라드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자며 "This does not slip now"라는 취지로 말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실수 하나 때문에 리버풀이 무조건 우승을 놓쳤다고만 하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다. 첼시전 이후 리버풀은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도 3-0으로 앞서다가 3-3으로 비겼고, 결국 맨체스터 시티가 승점 2점 차로 우승했다.[7]
하지만 인터넷은 그런 복잡한 계산을 신경 쓰지 않는다.
미끄러짐 → 뎀바 바 → 훔바훔바
끝.
왜 이렇게 까이는가?
사실 제라드가 했던 실수들은 축구선수 인생에 몇번씩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그런 굴욕 안 당해본 선수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만 제라드가 훔바, 뎀장군의 충견 등 멸칭으로 해축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팀이 리빅아, 리중딱 소리 듣던 암흑기였으며 제라드 또한 30이 넘는 노장 반열에 들던 때였다. 쌓아온 명성에 비해 예전만큼의 퍼포먼스가 안 나오니 새로이 해축을 접한 친구들에게는 개한심이로 보이는 게 당연지사.
뭐 앞에서 작성자가 이런저런 이유는 대봤지만 사실 다 좆까고 까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까이던 팀 중 하나인 리버풀의 가장 상징적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훔퀴들의 쉴드질도 한몫함.
또 하필 2013-14 시즌이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처음으로 우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즌 가운데 하나였고, 우승 경쟁 막판에 저 미끄러짐이 터졌다.
그래서 제라드의 17년 리버풀 커리어보다 몇 초짜리 넘어지는 영상이 인터넷 밈에서는 더 오래 살아남았다.
사실 제라드도 나이 먹기 전에는 좀 했다.
ㄴ 좀 한 수준이 아니라 2005년 발롱도르 3위, UEFA 올해의 클럽 선수까지 먹었다.
발롱도그
2014년 발롱도그를 수상하였다.
ㄴ 당연히 실제 발롱도르가 아니라 훔바드립이다. 진짜 발롱도르 최고 성적은 2005년 3위.
제라드를 이끌어 준 주요선수들
- 사비 알론소 - 제라드와 함께 했는데 암걸려서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알론소를 떠나보낸 후 리버풀은 암흑기가 시작됐다. 서로를 예의상 최고의 파트너로 꼽는 사이이다.
- 루이스 수아레스 - 네덜란드 득점왕 출신이었지만 리버풀 입단 초기에는 골 결정력 문제로 평가가 엇갈렸다. 2013-14 시즌 스털링, 스터리지와 환상적인 궁합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 뒤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012-13 시즌 이후 아스날로 이적하려 했던 수아레스에게 제라드는 한 시즌 더 남은 뒤 진짜 원하는 빅클럽으로 가라는 취지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14시즌 막판 더 제너럴 바의 충견이 된 우리훔의 모습을 뒤돌아보지 않고 FC 바르셀로나로 토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 네이마르와 MSN을 결성해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 페르난도 토레스 - 토레기는 제라드와 함께 환상의 콤비로 유명했다.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보낸 뒤 2011년 당시 영국 이적료 기록인 5,000만 파운드에 첼시로 이적했다. 첼시에서는 리버풀 시절만큼의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2011-12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여러 트로피를 들었다.
- 다니엘 스터리지 - 첼시 시절 출전 위치와 기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스터리지는 리버풀로 이적했다. 로저스 감독의 전술에서 루이스 수아레스와 SAS 라인을 이루며 2013-14 시즌 리버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시즌 후반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딥라잉 역할로 내려간 제라드와도 좋은 궁합을 보였다. 이후 잦은 부상 때문에 출전 기회가 줄었고 2019년 리버풀을 떠났다.
- 필리페 쿠티뉴 - 인테르의 유망주였던 쿠티뉴는 리버풀 이적 후 팀의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제라드가 떠난 뒤에도 리버풀의 에이스로 활약하다 2018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FC 바르셀로나로 갔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는...
- 프랭크 램파드 - 제라드를 리버풀 보살전드로 만들어주었다. 뻥글랜드 국대에서는 포지션이나 활동범위가 겹쳐서 둘을 어떻게 같이 써야 하는지가 오랫동안 잉글랜드 대표팀의 숙제였다.
- 뎀바 바 - 충견 제라드의 참주인님이다. 리버풀이 한참 깝치던 시절 몸소 찾아오셔서 뎀훔 목줄라인을 보여줬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가 그 장면을 역사적 명장면으로 다시 꺼낼 정도라 훔형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원한 난제 좆파드vs빛라드
악성 첼좆딱들을 제외하면 모든 국민들이 훔바>>>>>>>>>>>>>>>>>>>>>>>>>>>>>>>>>>>>>IQ150따리 좆파드 인걸 모두 알수있다 고로 빛라드는 한 시대에 레전드 미드필더이다.
실제로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의 비교는 2000년대 잉글랜드 축구의 대표적인 떡밥이었다. 둘 모두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들이고 역할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 단순 숫자 비교만으로 결론내기 어려운 주제다.
ㄴ 그러니까 싸우라고 만든 문단이다.
게임에서 제라드
이는 EA사의 피파시리즈의 얼티밋팀 선수카드이다.
옛날 문서에서는 당시 현역 선수들의 일반 카드 오버롤과 제라드 카드를 직접 비교했지만, EA Sports FC 시리즈로 이름이 바뀐 지금은 카드 체계와 특수 카드 인플레이션이 크게 달라져 숫자를 그대로 비교할 의미가 없어졌다.
전성기 제라드는 은퇴 이후 FIFA/EA Sports FC에서 아이콘 카드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영혼을 불살랐던 전성기 시절의 제라드라면 높은 능력치를 받는 게 당연하다.
ㄴ 제가 피파충이라 아는데 이런 특수카드는 이제 카드가 존나 많아져서 옛날 일반카드 오버롤이랑 비교하면 안 됨.
명언
| “ |
Listen, this is gone. We go to Norwich. Exactly the same. We go again. Come on! |
” |
— 2014년 맨체스터 시티전 승리 직후 제라드
|
해석하면 대략 "잘 들어. 오늘 경기는 끝났다. 이제 노리치로 간다. 똑같이 하자. 다시 가는 거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당시 제라드가 선수들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취지로 "This does not slip now"라고 외친 부분이 있었고, 약 2주 뒤 첼시전에서 본인이 진짜로 SLIP 해버리는 바람에 영원한 조롱거리가 됐다.
ㄴ리버풀 다음경기가 크리스탈팰리슨데 왜 런던이라안하고 노리치라함?
ㄴㄴ 틀렸다. 맨체스터 시티전은 2014년 4월 13일이었고 실제 다음 리그 경기는 4월 20일 노리치 시티 원정이었다. 리버풀은 그 경기를 3-2로 이겼다. 그다음 4월 27일이 첼시전이고 5월 5일이 크리스털 팰리스전이었다.[8]
그러니까 위고노리치 자체는 제라드가 정확히 다음 상대를 말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리버풀 지박령
그것은 귀신이 될 수도 있고, 방사능 공포가 될 수도 있고, 니 지갑 사정이 될 수도 있죠.
한을품고 죽은 훔형은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다 종종 리빅아가 큰 무대의 경기를 할때마다 경기장에 출몰한다. 클롭은 빨리 리버풀을 리그 우승시켜서 저새끼 좀 안보이게 해라.
그리고 위르겐 클롭이 진짜로 2019-20 시즌 리버풀을 프리미어리그 우승시켰다.
염원하던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훔형은 결국 성불했다.
R.I.P
ㄴ 근데 본인은 선수로 우승한 게 아니라 여전히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은 없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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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리웹 성님들의 말로는 08-09 시즌 리버풀 v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경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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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안필드 맨유전에서 후반 교체투입된 뒤 약 40여 초 만에 퇴장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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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바가 자신이 갇힌 우리의 문을 열어달라고 뎀장군님을 부르는 모습.
감독 경력
리버풀 유소년팀
현역 은퇴 후 2017년 친정팀 리버풀 FC 아카데미 지도자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전반의 코치 역할을 맡다가 2017-18 시즌부터 U-18 감독을 맡았고 UEFA 유스리그에서는 U-19팀도 지휘했다.
선수생활을 리버풀에서 거의 다 보내더니 감독 커리어도 일단 리버풀에서 시작했다.
레인저스 감독 시절
2018년 레인저스 FC 감독으로 부임하며 성인팀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감독 제라드의 커리어에서 현재까지 압도적으로 가장 성공한 시기가 됐다.
2020-21 시즌 레인저스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8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32승 6무, 승점 102점이었고 라이벌 셀틱 FC의 리그 10연패도 저지했다.[9]
레인저스로서는 10년 만의 스코틀랜드 1부리그 우승이었다.
그리고 제라드 본인에게는 선수·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처음 직접 차지한 리그 우승이었다.
리버풀에서는 그렇게 못 먹던 리그를 감독으로 스코틀랜드 가서 먹었다.
다음 시즌에도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었으나...
아스톤 빌라 감독 시절
아스톤빌라 이적설이 뜨자 처음엔 레인저스에 집중한다고 했으나 2021년 11월 아스톤 빌라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갑작스럽게 시즌 도중 레인저스를 떠난 탓에 레인저스 팬들 사이에서는 배신감을 표출하는 반응도 상당했다.
초반에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반전시켰으나 2022-23 시즌 들어 성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2022년 10월 20일 풀럼에게 0-3으로 패한 직후 경질됐다.
경질됐다. 바보병신훔짱ㅠ
그리고 후임으로 온 우나이 에메리가 빌라를 유럽대항전에 보내고 챔피언스리그까지 진출시키면서 제라드의 빌라 감독 시절 평가는 더욱 안 좋아졌다.
알 이티파크 감독 시절
2023년 7월 사우디 프로리그의 알 이티파크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사우디 리그가 막대한 자금으로 유럽 유명 선수들을 끌어모으던 시기였고, 제라드도 리버풀 시절 동료였던 조던 헨더슨 등을 영입했다.
첫 시즌인 2023-24 시즌에는 리그 6위로 마쳤다.
2024년 1월에는 원래 2025년까지였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하면서 꽤 오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헨더슨부터 반 년 만에 사우디를 탈출해 아약스로 가버렸다.
그리고 2024-25 시즌에는 팀 성적도 추락했다.
2025년 1월 말 당시 알 이티파크는 리그 14경기에서 2승만 거두며 12위까지 내려갔고, 결국 2025년 1월 30일 구단과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다.[10]
2027년까지 계약했는데 2025년에 나옴.
훔형ㅠ
이후
알 이티파크를 떠난 뒤 한동안 감독직을 맡지 않았다.
2025년 10월에는 레인저스 FC가 러셀 마틴 감독을 경질한 뒤 제라드와 실제 복귀 협상을 진행했다. 복귀가 상당히 가까워졌지만 제라드는 당시 상황과 타이밍이 완벽하지 않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후보에서 물러났다.
2026년 현재는 감독직에 복귀하지 않고 TNT Sports에서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다루는 패널·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1]
감독직 제안 자체는 계속 받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는 방송 활동과 가족생활을 병행하는 상태다.
2026년에도 리버풀 그 자체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리버풀에서 존재감이 줄기는커녕 더 커졌다.
2026년 리버풀 FC가 구단 창단 이후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Liverpool's Greatest 프로젝트에서 제라드가 최종 1위로 선정됐다.
134년의 구단 통계와 135만 건 이상의 팬 선택, 구단 레전드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라고 한다.
1위가 훔바.
크으 역시 리버풀 그 자체.
ㄴ 실제로는 훔바밈과 별개로 리버풀 역사상 최고 선수 후보에 들어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커리어다.
관련 문서
각주
- ↑ Liverpool FC - Steven Gerrard
- ↑ England Football - Steven Gerrard
- ↑ Premier League - Gerrard chosen as Hall of Fame inductee
- ↑ Liverpool FC - Liverpool's Greatest No.1: Steven Gerrard
- ↑ LA Galaxy - Steven Gerrard to depart
- ↑ Liverpool FC - Reds' run halted as Chelsea snatch win
- ↑ Premier League - 2013/14 Season Review
- ↑ Liverpool FC - Four April fixture changes confirmed
- ↑ Rangers FC - 2020/21 unbeaten champions
- ↑ Saudi Pro League - Al Ettifaq and Gerrard reach agreement to part company
- ↑ TNT Sports - Steven Gerr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