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중앙아시아 한국어 또는 고려말(高麗말, Koryo-mar, Корё мар)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구 소련 지역의 고려인들이 사용해 온 한국어의 방언이다.
함경도 방언, 특히 함경북도 육진 방언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러시아어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언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쉽게 말해 19세기 함경도 사투리가 러시아로 건너갔다가 스탈린 때문에 중앙아시아까지 끌려간 뒤, 그곳에서 100년 넘게 독자적으로 진화한 언어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표준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문화어와도 똑같지는 않다. 이쪽은 남북 분단 이전부터 한반도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한과 북한 어느 쪽의 언어 변화도 제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덕분에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라진 옛말들이 남아 있는가 하면, 한국어 단어가 없거나 기억나지 않는 자리를 러시아어가 대신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함경도 사투리의 타임캡슐을 열었더니 러시아어가 들어가 있는 꼴이다.
다만 현재는 고려인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젊은 고려인들은 대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한국어를 배우더라도 조상들이 사용하던 고려말보다는 현대 대한민국 표준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역사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 한국어의 역사는 의외로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함경도에서 시작한다.
1860년대부터 조선 북부의 주민들이 가난과 흉작 등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제국의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함경북도 출신이 많았으며, 이들이 사용하던 육진 방언과 동북 방언이 현지 한인 사회의 공통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후 다른 지역 출신의 조선인들도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여러 방언이 섞였다. 그렇지만 초기 정착민의 비중이 컸던 함경도 방언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게 남았다.
당시 연해주에서는 고려인들이 조선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며, 학교와 신문 등에서도 한국어가 사용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어 교육과 출판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려말은 단순히 러시아 땅에서 사용하는 조선말에 가까웠다. 물론 러시아어 어휘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후손들이 조상의 언어를 배우는 환경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이라는 양반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1937년 소련 정부는 극동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공식적인 명분은 일본 제국의 간첩이 소련에 침투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고려인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 당국은 극동 지역의 한인들이 일본의 첩자로 이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결국 민족 전체를 잠재적인 안보 위협으로 취급했다.
1937년 10월 25일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총 36,442가구, 171,781명의 고려인이 이주 대상이 되었다.[1]
고려인들은 열차에 실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보내졌다. 기존에 살던 지역과는 기후도, 환경도, 문화도 전혀 달랐다. 이주 과정과 정착 초기에는 열악한 환경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고향과 생활 기반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언어와 문화까지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 사건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고려말이 독자적으로 변화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소련의 러시아어화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소련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한국어 교육기관이 폐쇄되거나 러시아어 학교로 전환되었고, 학교 교육과 행정, 직장생활에서는 러시아어가 사실상 필수였다. 부모 세대가 고려말을 사용하더라도 자녀 세대는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물론 고려말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농촌과 콜호스에서는 가정과 이웃 사이에서 고려말이 계속 사용되었다. 고려인 신문인 《레닌기치》와 고려극장도 민족 언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
그러나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직장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도시에서는 러시아어로 생활하는데 집에서만 고려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세대 간 전승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려인 2세, 3세를 거치면서 고려말의 사용 범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국계라는 민족적 정체성은 남아 있지만 정작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고려인들이 많아진 이유다.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고려인 사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한민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교류가 확대되었고, 한국 기업의 진출과 취업 기회 증가로 현대 한국어를 배우려는 고려인들도 늘어났다.
문제는 새롭게 배우는 한국어와 조상들이 쓰던 고려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어를 배운 고려인이 정작 고려말을 쓰는 조부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고려말만 사용하던 노년층이 한국에서 온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한국계인데도 대화가 막히면 결국 러시아어로 해결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특징
함경도 방언의 영향
중앙아시아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동북 방언의 후손이다. 특히 두만강 유역에서 사용되던 육진 방언의 영향이 강하다.
육진 방언은 다른 함경도 방언과도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흔적을 비교적 많이 보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말 역시 이러한 특징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 다만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서 다양한 지역 출신의 한국인들이 섞여 살았기 때문에 육진 방언이 그대로 보존된 것은 아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여러 방언이 섞여 형성된 공통어인 코이네(Koiné)의 성격을 가진다.[3]
쉽게 설명하면 육진 방언이 기본 뼈대이고, 여기에 다른 함경도 사투리와 한국어 방언들이 섞인 뒤 러시아어까지 들어온 것이다.
발음
표준어와 비교했을 때 자음과 모음의 발음에서 여러 차이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현대 한국어에서 사라진 옛 발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표준어의 '고운'에 대응하는 '고븐', '가을'에 대응하는 '가슬'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
또한 받침의 비음이 약해지거나 탈락하면서 모음이 길어지고 'ㅣ'가 첨가되는 현상도 발견된다. '돈'을 '도이', '선생'을 '선새이'처럼 발음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어의 영향으로 일부 자음의 발음이 변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특징은 화자의 세대와 출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모든 고려말 화자가 똑같이 발음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어만 배운 한국인이 처음 듣는다면 한국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아차리겠는데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발음이 단순히 한국어를 잘못 배워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옛 한국어와 지역 방언의 특징을 보존한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어휘
중앙아시아 한국어에는 현대 표준어와 다른 어휘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 표준어 | 중앙아시아 한국어 |
|---|---|
| 누구 | 누기 |
| 무엇 | 무스게 |
| 어디 | 어드메 |
| 얼마 | 얼매 |
| 여기 | 잉게 / 영게 |
| 거기 | 겅게 |
| 저기 | 정게 |
| 돈 | 도이 |
| 선생 | 선새이 |
| 가을 | 가슬 |
| 학교 | 핵교 |
| 떡 | 떽이 |
| 할아버지 | 아바이 |
위 표현들은 고려말 연구 자료에 나타나는 사례들이다.[2]
몇몇 단어들은 한국인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얼매'나 '어드메' 같은 표현은 다른 지역의 사투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잉게', '겅게', '도이' 같은 표현은 현대 표준어만 사용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낯설 수 있다.
그렇다고 전부 러시아어에서 온 말은 아니다. 상당수는 원래 함경도 지역에서 사용하던 말이거나 오래된 한국어 표현이 변형된 것이다.
한국어가 러시아어처럼 변했다기보다는, 옛날 한국어가 자기 갈 길을 간 결과에 가깝다.
러시아어의 영향
중앙아시아 한국어의 또 다른 특징은 러시아어에서 가져온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고려말 | 의미 | 어원 |
|---|---|---|
| 따깐 | 유리잔, 잔 | 러시아어 стакан (stakan) |
| 비지깨 | 성냥 | 러시아어 спички (spichki) |
이러한 단어들은 러시아어 어휘가 고려말의 발음 체계에 맞게 변형된 사례다.[2]
소련에서 생활하면서 새롭게 접한 행정제도, 산업시설, 기술, 생활용품 등의 명칭도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러시아어로 부르는 물건을 굳이 한국어로 번역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반도와 교류가 끊긴 상태였으니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한국어 단어가 제때 들어올 수도 없었다.
이렇게 러시아어 어휘가 들어온 뒤 한국어의 조사나 어미와 결합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단순히 한국어 문장 사이에 러시아어 단어를 집어넣는 수준을 넘어 언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3]
다만 러시아어 단어가 많이 섞인다고 해서 고려말이 크리올어나 한국어와 러시아어의 반반짜리 혼합 언어가 된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문법 체계는 여전히 한국어에 속한다.
문법
중앙아시아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어순과 조사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사와 종결어미에서 표준어와 다른 형태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목적격 조사로 표준어의 '-을/를' 대신 '-으/르'가 사용되기도 하며, 주격 조사의 사용 방식도 차이가 있다.
높임 표현에서도 육진 방언에서 유래한 특징들이 발견된다. 현대 한국어의 '-습니다'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꾸마' 계열의 어미가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명사 뒤에 '이'가 붙는 현상이 폭넓게 나타난다. 따라서 표준어에서는 받침으로 끝나는 단어가 고려말에서는 모음으로 끝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고려말이 단순히 러시아어 억양으로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문법적 특징을 가진 한국어 방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역별 차이
중앙아시아 한국어는 하나의 완전히 통일된 방언이 아니다.
1937년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들이 정착한 지역과 주변 언어 환경에 따라 차이가 형성되었다.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고려인 강제이주의 주요 목적지 가운데 하나였다. 알마티와 크즐오르다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고려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고려말은 가정과 고려인 마을에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어가 생활 언어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도시화와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고려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구가 감소했다.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역시 고려인들이 대규모로 정착한 지역이다. 타슈켄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고려인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집단 농장과 마을을 중심으로 고려말이 전승되었다.
러시아어 외에도 우즈베크어 등 현지 언어와 접촉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지역별로 어휘와 언어 사용 양상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기타 지역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에도 고려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또한 고려말은 중앙아시아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 소련의 여러 지역에 흩어진 고려인들 사이에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한국어'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방언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이지, 오늘날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전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한국어와의 관계
남한말도 북한말도 아니다
중앙아시아 한국어를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고려말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문화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표준어를 조금 변형한 말도 아니다.
애초에 고려말의 기원이 되는 언어는 남북한의 현대 표준어가 형성되기 이전에 한반도 밖으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남북한의 현대 언어와는 별도로 변화해 온 한국어의 한 갈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고려말과 중국 연변 지역에서 사용하는 한국어는 함경도 방언이라는 공통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국가와 언어 환경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4]
즉, 고려말이 북한말의 변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둘 다 함경도 사투리의 영향을 받았을 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친척에 가깝다.
현대 한국인과 대화가 가능한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화자에 따라 차이가 크다.
고려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현대 표준어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어휘와 문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전에 분리된 방언 특유의 어휘와 발음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현대 한국인이 고려말을 처음 듣는다면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상당히 많을 수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고려말을 전혀 모르는 고려인이 현대 표준어를 새롭게 배우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한국어를 배웠으면서도 정작 조부모가 쓰던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조부모와 손자 모두 한국계이고 둘 다 한국어를 조금씩 아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민족은 그대로인데 언어가 세대별로 갈라져 버린 셈이다.
소멸 위기
중앙아시아 한국어는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한 방언으로 평가된다.
가장 큰 원인은 세대 간 전승의 단절이다. 고려인 사회에서 러시아어가 주된 생활 언어로 자리 잡으면서 고려말을 자녀들에게 가르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구사 능력도 약화되었다.
2009년에 발표된 곽충구의 연구에서는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50대 고려말 화자 한 명을 대상으로 기본 어휘의 보존 양상을 조사했는데, 조사된 어휘 가운데 보존된 것은 약 39%에 그쳤다. 이는 전체 고려말 화자의 평균을 의미하는 통계는 아니지만, 언어 소멸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5]
현재도 고려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으며, 대한민국과의 교류 확대에 따라 한국어 교육의 기회도 증가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적인 문제가 있다.
고려말을 보존하는 것과 현대 표준어를 보급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젊은 고려인들이 표준어를 새롭게 배운다고 해서 조상들이 사용하던 고려말이 자동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준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는 동안 기존 고려말 화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통적인 언어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고려인은 다시 늘어날 수 있지만, 고려말을 모어로 사용하는 고려인은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어학자들은 고려말 화자들의 구술 자료를 기록하고 발음과 어휘, 문법을 조사하는 등 언어 보존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여담
- '고려말'이라는 명칭은 고려 왕조의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 소련 지역의 한인들이 자신들을 '고려사람'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들이 사용하는 말도 '고려말'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고려말을 배운다고 왕건이나 공민왕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현대 한국인에게는 낯선 고려말의 표현 가운데 일부는 다른 한국어 방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고려말을 듣다가 경상도나 함경도 사투리와 비슷한 표현을 발견할 수도 있다.
- 고려말은 19세기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언어 변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기 때문에 옛 한국어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다만 옛말을 그대로 보존한 것은 아니고 자체적인 변화도 많이 겪었다.
- 러시아어의 영향이 강하다고 해서 고려말 화자가 반드시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어만 유창하게 사용하는 고려인들이 많다.
-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음식문화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려인 당근김치는 현지의 재료와 생활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언어도 음식도 조선에서 가져온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사정에 맞게 바뀌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 고려말의 소멸은 단순한 사투리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 말기의 함경도 방언, 연해주 한인 사회, 소련의 민족정책, 중앙아시아의 이주 역사까지 여러 시대의 흔적이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가 있다.
- 정작 고려말을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1937년의 강제이주는 고려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스탈린이 민족 전체를 열차에 태워 다른 지역으로 보내버린 결과 언어의 역사까지 바뀐 것이다. 독재자가 사람을 이주시켰더니 사투리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