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철인왕후 김씨 | |
| 생년월일 | 1837년 4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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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조선 |
| 경력 | 조선 제25대 철종의 왕비 명순대비 |
1837년 출생.
ㄴ 정확히는 1837년 4월 27일(음력 3월 23일) 출생이다. 본관은 안동 김씨이며 아버지는 영은부원군 김문근이다.
1851년 14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고 철인왕후 역시 순원왕후와 가까운 집안이었다.
강화도령 철종의 와이프다. 그런데 철종은 사랑하는 여인이 따로 있었다.
ㄴ 여기서 말하는 여인은 강화도에 전해지는 철종의 첫사랑 봉이 설화다. 철종이 왕이 되기 전 강화도에서 봉이라는 처녀와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사에서 확정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은 아니다.
ㄴ 다만 철종에게 왕비 외에 여러 후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858년에는 철종의 유일한 적장자인 원자 이융준을 낳았다.
그런데 이 아들은 다음 해인 1859년 생후 반 년 정도 만에 죽었다. 결국 철종과 철인왕후 사이에서는 후사가 이어지지 않았다.
철종은 빨리 앓아서 꼴까닥했지만 이 아지매는 1878년까지 살았다. 저세상 가기 전에 근대화 첫 단계를 보고 간 셈이다.
ㄴ 철종은 1863년 33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ㄴ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면서 철인왕후는 대비가 되었다. 생전에 받은 존호를 따서 명순대비라고도 한다.
ㄴ 진짜로 개항까지 보고 죽었다. 살아있는 동안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을 겪었고 1876년에는 강화도 조약까지 체결됐다.
참고로 이 아지매 살아계실 때 이승만 태어남. 근현대사에 간간히 이름 올리다가 1907년에 꼴까닥한 최익현도 1834년생이라서 얘 그리 옛날 사람은 아니다.
더 체감을 하게 설명하자면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1839년생으로 얘보다 2살 연하이다. 록펠러는 1937년에 꼴까닥했다.
1878년 6월 12일 창경궁 양화당에서 승하했다.
철종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의 예릉에 묻혀 있다.
죽고 한참 뒤인 1908년에는 대한제국에서 철종이 장황제로 추존되면서 철인왕후 역시 철인장황후로 추존되었다.
최근 드라마로 주목받는 경향과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는 아주 듣보잡이었으며 사극에 나왔다 해도 철종 시기에 나오지는 않고 흥선대원군의 비호 아래 궁에서 보호받으며 지내고 민비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다가 결핵에 걸려 꼴까닥하는 무능한 여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ㄴ 실제 역사에서 존재감이 적은 편인 것은 맞지만 무능했다고 단정할 근거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고종 초 왕실의 어른인 대비였지만 신정왕후처럼 수렴청정을 하거나 정국을 직접 주도한 기록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ㄴ 그리고 결핵으로 죽었다는 부분도 확실한 사료 근거를 붙이는 게 좋다. 확실하게 확인되는 것은 1878년 창경궁 양화당에서 승하했다는 것까지다.
한국사 마지막 대비이다. 무슨 말이냐면, 자기 남편보다 나중에 죽은 마지막 왕후라는 뜻이다.
ㄴ 앞 문장은 맞는데 뒤 설명은 틀렸다.
ㄴ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대비(大妃)'라는 지위에 오른 왕비가 맞다.
철종 시기에는 순원왕후·신정왕후·효정왕후처럼 선대 왕비가 여러 명 동시에 살아있어서 원래 대왕대비-왕대비였던 서열 아래에 별도로 대비라는 단계를 하나 더 만들었다.
고종이 즉위했을 때는 신정왕후가 대왕대비, 효정왕후가 왕대비, 철인왕후가 대비가 되었다.
철인왕후 이후에는 이 '대비' 지위에 새로 오른 왕비가 없어서 조선의 마지막 대비가 된 것이다.
ㄴ 반대로 "남편보다 나중에 죽은 마지막 왕후"는 아니다.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가 헌종보다 50년 넘게 더 살다가 1904년에 죽었으므로 철인왕후보다도 훨씬 뒤까지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