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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새끼들은 하루 빨리 부관참시를 시전합시다.


개요

파일:폴 포트.jpg
폴 포트
Pol Pot
ប៉ុល ពត
생년월일1925년 5월 19일 (출생)
1998년 4월 15일 (사망)
국적캄보디아
출생지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캄보디아 캄퐁톰주
별명폴 포트, 형제 1호(Brother Number One)
직업혁명가, 정치인, 독재자
추가 정보
소속캄보디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3년 ~ 1981년)
정당캄보디아공산당
경력민주 캄푸치아 총리
(1976년 ~ 1979년)
표방이념좌익 ~ 극좌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주의, 급진적 농본주의

동남아시아 최악의 독재자

순수 학살이나 계엄령으로 인구를 감소시킨 악인

캄보디아판 마오쩌둥

마오쩌둥 같은 더 큰 나라의 독재자들에 비하면 규모만 작은 하위호환. 그런데 자국민을 갈아버린 비율로 따지면 전혀 만만하지 않다.

본명은 썰롯 써(សាឡុត ស, Saloth Sar)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독재자이자 킬링필드로 자국민의 ¼ 가량을 부르주아 적폐로 몰아 처형한 극악무도한 학살자이다.

정확히는 희생자 전원이 직접 처형된 것은 아니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는 대규모 학살뿐 아니라 강제노동, 기아, 질병, 의료체계 붕괴 등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1975년 4월 17일부터 1979년 1월 7일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약 150만~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숫자는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다.[1]

원래 부르주아 집안에 잘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위 은수저라고 보면된다.

처음에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해 폴리티컬 포텐셜(Political Potential; 숨겨진 정치가)로 불렀고, 그 줄임말인 폴 포트(Pol Pot)가 널리 퍼져서 본명보다도 폴 포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다만 폴 포트라는 이름이 미국 정보기관의 Political Potential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은 확인된 정설이 아니다. 정치적 잠재력을 뜻하는 프랑스어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폴 포트 본인이 가명의 유래를 명확하게 설명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학살자들 중에서도 탑 3 마오쩌둥, 히틀러, 스탈린에 맞먹는 개씹새끼다.

사실 스탈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진 않다. 스탈린의 숙청은 씨발 권력강화 및 중공업 육성과 급속한 개발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라도 있었지 이새끼의 숙청은 이유도 없었다. 안경 써도 처형, 글 읽을줄 알아도 처형, 그냥 처형

스탈린의 권위주의 정책은 장제스와도 비슷한 개발독재 형식이였다. 반면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새끼는 비상식적인 명분을 만들어대서 좆같은거다.

공산주의의 대숙청은 북한을 제외하면 농업 중심의 사회를 중공업으로 재편하고 국가 축적을 개발을 위해 무리하게 소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특징인데 이새끼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지식인을 증오해서 몽땅 갈아댔다는 거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스탈린 치하에선 국가발전을 생각해서 과학자와 공돌이들이 숙청을 당하더라도 죽이진 않고 그냥 굴라그에서도 나름 꿀보직을 줬는데, 이 새끼는 오히려 공업과 과학을 국가 정책으로 거의 대놓고 말살시켰다.

다만 스탈린의 대숙청 역시 과학자와 기술자를 포함한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가운데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소련에서는 과학자와 기술자가 절대로 처형되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호찌민도 폴포트에 비하면 선군이다. "김원봉 vs 노덕술" 정도?

덕분에 캄보디아는 아직도 자체적인 공업이 없이 60년대마냥 재봉틀 돌려서 옷만드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솔직히 북괴 혹부리보다도 심한데, 그래도 북괴는 자원수급 좆망전에는 그럭저럭 중공업도 잘 되고 있었단 것을 생각해보자.[2]

다만 현대 캄보디아에 제조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류와 신발, 여행용품 제조업 등 수출 중심의 산업이 성장했으며, 경제구조 역시 폴 포트 집권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 캄보디아의 경제발전 수준에는 크메르 루주의 폭정뿐 아니라 오랜 내전, 국제정세, 투자환경, 교육 및 산업기반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그 씹병신 마오후도 문화재와 문돌이들을 갈아버리면 갈아버렸지 과학자와 공돌이들을 싸그리 죽여버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새끼는 가히 공산권 최악의 지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이 새끼를 뛰어넘는게 북쪽에 읍읍......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도 과학자와 기술자, 교수 및 연구자들이 박해를 받았으며 연구와 교육체계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마오쩌둥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보호했지만 폴 포트만 이들을 탄압했다는 식으로 구별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생애

출생과 성장

폴 포트는 1925년 캄보디아 캄퐁톰 지역의 비교적 부유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였다.

가족은 상당한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왕실과 연결된 친척도 있었다. 따라서 폴 포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억압받는 노동계급을 대표하게 되었다는 식의 인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프놈펜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불교 사원과 프랑스식 학교에서 공부한 경험도 있었다.

훗날 지식인과 도시민들을 탄압한 인물이 정작 자신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교육받았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프랑스 유학과 공산주의 활동

1949년 폴 포트는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에서는 전기 및 무선통신 관련 분야를 공부했으나 학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결국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채 캄보디아로 귀국하였다.

대신 유학 중 프랑스 공산주의 운동과 캄보디아 유학생들의 정치조직에 참여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정치적 인맥은 이후 캄보디아공산당과 크메르 루주 지도부의 핵심을 이루었다.

귀국한 뒤에는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지하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크메르 루주 지도자가 되다

1960년대 초 캄보디아 공산주의 조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1963년에는 캄보디아공산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캄보디아는 노로돔 시아누크가 통치하던 국가였으며, 공산주의 세력은 정부의 탄압을 피해 지하활동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폴 포트와 추종자들은 농촌 지역과 밀림을 근거지로 삼아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이후 캄보디아 내전 과정에서 크메르 루주의 주요 지도부로 성장하였다.

캄보디아 내전과 집권

1970년 론 놀이 쿠데타를 일으켜 노로돔 시아누크를 축출하면서 캄보디아의 정치 상황은 크게 변화하였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미국의 캄보디아 폭격과 북베트남군의 활동, 캄보디아 내부의 정치적 갈등 등이 겹치면서 내전이 격화되었다.

크메르 루주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세력을 확대하였다. 미국의 폭격과 민간인 피해가 일부 지역에서 반정부 정서를 강화하고 크메르 루주의 병력 모집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역사적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이 이후 크메르 루주가 저지른 대규모 인권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가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론 놀 정권이 붕괴하였고, 폴 포트의 독재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킬링필드

디시위키는 사회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고인드립을 지양합니다. 또한, 고인드립으로 인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 본인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ㄴ희생당한 캄보디아 국민들

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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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Killing Fields)는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살과 사망, 그리고 희생자들의 집단 매장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특히 1975년부터 1979년까지의 캄보디아 역사 전체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다.

사회주의에 미쳐서 자본주의와 관련된 국민들을 전부 죽이려고 했다. 잘 산다고 죽이고 지식인이라고 죽이고 외국어한다고 죽이고 안경 썼다고 죽이고 뭔 굳은살 페티시라도 있는지 손바닥에 굳은살 안 배겼다고 죽이고 굳은살 박히면 또 펜대 굴린다고 죽이고 해외에서 운동경기 치렀다고 죽이고 베트남인이라고 죽이고 짱깨라고 죽이고 태국인이라고 죽이고 하여간 농민 빼고 전부 죽이려고 했다. 그야말로 미친 새끼다. 이 새끼에 비하면 말 안 듣던 놈들만 죽였지 순종하고 살면 목숨은 보장해준 다른 독재자들은 양반으로 보일 정도다.

다만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처형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당시의 지식인 박해를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장되어 전해진 측면이 있다. 실제로 크메르 루주는 도시 출신과 교육받은 사람들을 체제의 잠재적인 적으로 의심했으며,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체포와 처형을 자행하였다.

또한 크메르 루주에 순종한다고 해서 반드시 생존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강제노동과 기아,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았으며, 정권에 충성을 바치던 간부들조차 반역자로 몰려 숙청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ㄴ 디시위키에서 이런 새끼들은 죽여야 한다고 드립친거 정말 그대로 실행하면 딱 이 꼴이 난다. 386 세대라고 죽이고 지잡대 나왔다고 죽이고 뚱뚱하다고 죽이고 롤 브론즈라고 죽이고. 집권한 놈이 부먹충이면 찍먹충 학살 들어가고 찍먹충이면 그 반대다. 그래도 위의 이유들보단 그나마 납득이 가는 이유다. 그렇기에 더더욱 폴 포트 이 새끼가 병신인거다. 디시위키만도 못한 새끼니.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완전한 형태로 자리잡은 뒤에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그걸 씹고 지 꼴리는 대로 설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사회주의의 인식을 씹창낸 또라이 새끼들이 20세기에 넘쳐났고, 이 새끼도 그 중 하나다.

ㄴ 자본주의가 완전한 형태로 자리잡은 뒤에야 프롤레타리아 혁명 가능 이건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일 뿐이고, 실제로 자본주의가 완전히 자리잡은 OECD 각국에서 보다시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커녕

배뙈지 부르주아지들은 프롤레타리아를 존나 억압해서 착취하다 혁명으로 죽창처맞는것 보단 어느정도 생활을 보장해주고 타협할 정도의 대가리 정도는 있었다.

실제로 자본주의 다음 단계가 공산주의라는 건 카를 마르크스 혼자 지껄어고 다닌 것이지 실제로 가능한진 아무도 모른지만 사실 불가능할것이라는 점이 주류 경제학의 대세이다.

ㄴ어쨌거나 그 20세기 빨갱이들이 지 꼴리는 대로 설쳤다는 건 빼박캔트 팩트다. 자본주의가 아직 미숙하던 시절에 살았던 마르크스의 헛예언보다 또라이 새끼들이 자본주의를 건너뛰고 바로 사회주의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성급하게 내걸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조졌다는 거에 중점을 두자 이거다.

얘는 그냥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미친 놈이다.

ㄴ공산주의자라는 탈을 쓴 살인마지 저런게 사람이냐

어찌나 사람을 많이 죽여댔는지 4년만에 캄보디아 인구가 100만명이나 줄었다. 집권 기간 중 관련 기록들이 개판으로 쓰여졌고 그것마저 상당수 사라지는 바람에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하여튼 4년만에 어마어마하게 죽였다.

실제 인명 피해는 원문에서 언급한 100만 명보다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역사학 및 인구학 연구에서 150만~200만 명 안팎의 사망자가 거론되며, 연구 방법에 따라 그 이상의 추정치도 제시된다.

희생자의 숫자를 정확히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에는 당시 인구통계의 부정확성과 기록의 부족, 내전 이전과 이후의 인구 이동 및 사망자 집계 방식의 차이 등이 있다.

이 시기를 흔히 킬링필드라고 한다.

웃긴건 저 기준대로라면 부르주아 집안 자식인 폴 포트는 척살대상 0순위인데도 자살을 안했다. 병신

사실 죽창술의 대가다. 보면 자기가 죽창질하고 싶은 애들은 전부 찔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침 주변에 대나무도 많았을 것이다. 죽창 잘못 휘두르면 나라가 저꼴난다. 물론 니들은 능력이 없으니 한명 찔러 죽이고 나면 끗이지만 얘는 지부터가 죽창 맞아야 할만큼 잘난놈이었던 것이 문제다. 부적절한 자의 손에 들어가면 몇만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힘이 죽창 안에 잠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반도의 반신께서 Charge Iron이 알려준 킬링필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가 재규어에게 judge당했다.

이때 캄보디아의 지식층은 그야말로 절멸했으며 2020년 현재도 복구하지 못했다.

지식인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지식인이 사망한 것은 아니다. 생존자와 해외로 피난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후 캄보디아에서는 교육기관과 전문인력의 재건이 이루어졌다.

프놈펜 주민 강제이주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가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자마자 시행한 정책 가운데 하나는 도시 주민들의 강제이주였다.

수도에 거주하던 약 200만 명의 주민들은 짧은 시간 안에 집을 떠나 농촌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크메르 루주는 미국의 공습이 임박했다거나 며칠 뒤 도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도시 생활과 기존 사회구조 자체를 해체하려는 정책의 일부였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환자와 노인, 어린이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량과 물, 의료 지원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다.[3]

새로운 인민과 기존 인민

크메르 루주는 주민들을 대체로 기존 인민(Base People)과 새로운 인민(New People)으로 구분하였다.

기존 인민은 주로 크메르 루주가 이전부터 통제하던 농촌 지역 주민들을 가리켰으며, 새로운 인민은 1975년 4월 이후 점령한 도시와 지역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주민들을 뜻했다.

새로운 인민은 이전의 도시 생활과 자본주의적 경제활동, 론 놀 정권과의 관련 가능성 때문에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강제노동과 식량 배급, 이동의 자유 등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기존 인민이라고 해서 안전했던 것은 아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었던 농민과 당원들에게도 가혹한 노동과 처벌을 강요하였다.

강제노동과 기아

크메르 루주는 국가의 경제구조를 집단농업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였다.

농민들은 집단농장에 편입되어 벼농사와 관개시설 건설, 수로 및 제방 공사 등에 동원되었다.

정권은 현실적인 생산능력과 노동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높은 농업생산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주민들은 처벌이나 식량 배급 제한에 시달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노동력의 과도한 소모와 식량 부족을 초래하였다.

많은 주민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렸으나 의료체계가 붕괴한 상황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킬링필드의 희생자 가운데에는 직접적인 처형뿐 아니라 정권의 정책이 초래한 기아와 강제노동,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상당수 포함된다.

소수민족과 종교 탄압

크메르 루주는 베트남계 주민과 참족 등 여러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박해를 실시하였다.

특히 베트남계 주민에 대한 집단적인 살해가 발생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참족 공동체도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았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활동 역시 억압되었고 사원과 종교시설의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훗날 크메르 루주 특별재판소의 재판에서 집단학살죄와 반인도범죄 등을 판단하는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S-21과 투올슬렝 수용소

투올슬렝 학살박물관으로 알려진 S-21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대표적인 비밀 구금 및 고문시설이었다.

프놈펜의 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이 시설에서는 반역자로 의심받은 사람들을 구금하고 고문하여 허위 자백을 강요하였다.

정권 내부의 간부와 군인들도 숙청 대상이 되었으며, 외국의 첩자나 베트남의 협력자라는 의혹만으로 체포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감자들은 강요된 자백을 바탕으로 처형되는 일이 많았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적었다.

S-21은 오늘날 크메르 루주의 국가적 폭력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 현장으로 남아 있다.

막장 정치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인권을 밥말아먹은 독재자입니다.
저게 사람이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좆병신이니 이놈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국민들을 존나게 학살해댄 엄청난 폭군입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인권을 밥 말아먹은 건 덤이고 국민들을 밥 먹듯이 쳐죽여댄 존나 잔인한 폭군들입니다.
이 새끼가 당신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피하는 게 좋지만 만약 길을 가다가 이 새끼를 보시면 죽창으로 관통시키십시오.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병신입니다.
그냥 개좆병신 그 자체입니다.

또 정책도 대국적이지 못해서, 모든 산업을 농경산업으로 돌려버렸으며 외국어와 소수민족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캄보디아가 동남아에서 특히나 빌빌대는 이유는 거의 60%가 이 새끼 때문이다.

다만 캄보디아의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정확히 60%가 폴 포트 때문이라는 수치는 검증된 통계가 아니다. 크메르 루주의 폭정이 인적자본과 사회기반시설에 심각한 손상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의 내전과 정치적 혼란, 국제적 고립 등도 경제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4년만에 망한 이유도 가관인데 옆 동네 베트남한테 피해망상이 있어서 괜히 먼저 건드리다가 베트남군이 15만이 쳐들어와서 정권은 무너지고 자기는 부하들과 함께 밀림으로 도망갔다. 어찌나 이 개새끼의 폭정이 심했는지 캄보디아 국민들은 엄연히 외세이자 수백년동안 웬수지간이던 베트남군을 환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당시 베트남은 미국도 때려부순 나라다.

한편 베트남은 국제사회로부터 침략자라고 조리돌림을 당했는데 얘가 한 킬링필드 관련 정보를 외부로 까발려서 여론을 진정시키고 이미지세탁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같은 병신이었던 문혁시기 중국이 동맹국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을 욕하자 결국 중월전쟁이 터지고 만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976년에 종료되었으며, 중월전쟁은 1979년에 발생하였다. 따라서 중월전쟁 당시 중국을 문화대혁명 진행 중인 국가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민주 캄푸치아의 정치체제

폴 포트 정권이 사용한 공식 국호는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였다.

그러나 국호에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실제로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력은 캄보디아공산당 지도부에 집중되었으며, 일반 국민들은 정책 결정이나 지도부의 교체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크메르 루주는 앙카르(Angkar)라는 혁명조직의 명칭을 사용하며 정권의 의사결정 구조와 지도부의 정체를 외부에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

폴 포트는 이러한 체제에서 당 총비서이자 핵심 정책 결정권자로 활동하였다.

화폐와 시장의 폐지

크메르 루주는 정권 수립 이후 화폐와 은행, 시장을 사실상 폐지하였다.

개인적인 상업활동과 사유재산도 극도로 제한하였으며 주민들은 집단농업과 국가의 배급체계에 의존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시행된 일반적인 국가 주도 경제정책을 넘어 기존의 도시경제와 화폐경제 자체를 급진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농업생산 목표는 현실성이 부족했고, 기존의 유통체계가 파괴되면서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교육과 과학기술의 붕괴

크메르 루주는 기존 교육제도와 지식인 계층을 구체제의 잔재로 의심하였다.

학교와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교사와 교수, 전문직 종사자들이 체포되거나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전문적인 의료 인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는 질병과 부상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는 국가의 경제적 기반뿐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전승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다만 크메르 루주가 모든 형태의 산업기술을 원천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다. 정권은 일부 군사시설과 산업시설을 유지하거나 건설하려 했으며 중국으로부터 기술적 지원도 받았다.

따라서 정확한 문제는 산업과 과학을 완전히 없앴다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육과 전문인력 체계를 파괴하고 비현실적인 국가 계획과 정치적 숙청을 우선시했다는 점에 있다.

내부 숙청

폴 포트의 공포정치는 일반 국민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자신들의 당원과 군인, 지방 간부까지 외국의 첩자 또는 반역자로 의심하며 체포하고 처형하였다.

특히 베트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정권 내부에서 베트남과 연결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들이 대규모 숙청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숙청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정조직과 군사조직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자기 부하들조차 믿지 못하고 숙청하는 전형적인 독재체제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마오쩌둥 같은 더 큰 나라 독재자들의 하위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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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당신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피하는 게 좋지만 만약 길을 가다가 이 새끼를 보시면 죽창으로 관통시키십시오.
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이 문서에서는 인간을 대량으로 도살해버린 쓰레기 새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인간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Ah! Fresh Meat!!!!

어떻게 보면 마오쩌둥 같은 더 큰 나라 독재자들의 하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가 작아서 절대적인 피해자 수가 적었을 뿐, 벌인 짓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막대한 인명 피해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 역시 마오쩌둥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농촌과 농민을 혁명의 중심으로 삼고 급진적인 집단화를 추진하였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크메르 루주를 지원한 주요 외부 세력이었으며, 폴 포트 정권은 중국과 긴밀한 외교·군사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폴 포트는 여기서 한술 더 떠 도시 자체를 비우고 화폐경제를 폐지하는 등 사회구조를 단기간에 완전히 뜯어고치려 했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지만, 폴 포트 정권은 훨씬 짧은 기간에 기존의 도시경제와 교육·의료체계를 급격하게 해체하였다.

마오쩌둥이 통치한 중국은 수억 명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었으며, 캄보디아는 당시 인구가 수백만 명 수준인 소국이었다.

따라서 절대적인 사망자 수만 비교한다면 마오쩌둥의 집권기에 중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더 크다.

그러나 인구 대비 피해 규모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교 항목 마오쩌둥 폴 포트
국가 중국 캄보디아
주요 관련 정책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급진적 집단농업화, 도시 주민 강제이주, 대규모 숙청
주요 인명 피해 대기근과 정치적 박해 등으로 수많은 사망자 발생 약 150만~200만 명 안팎의 사망자 추정
피해 규모의 특징 절대적인 인명 피해 규모가 매우 큼 짧은 집권 기간과 당시 전체 인구 대비 높은 사망 비율
공통점 강제적인 사회개조, 정치적 탄압, 비현실적인 국가계획, 권력 집중

마오쩌둥 집권기 중국의 전체 인명 피해는 정책별 기간과 사망 원인, 연구 방법에 따라 추정치가 크게 달라지므로 하나의 숫자로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한편 폴 포트 정권에 대한 인구학적 연구에서는 초과사망자 수의 중간 추정치가 약 190만 명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는 당시 위험에 노출된 인구의 약 21%에 해당하는 규모다.[4]

결국 폴 포트가 하위호환이라는 말은 국가의 크기와 절대적인 학살 규모를 놓고 하는 조롱에 가깝다. 인구 대비 피해 규모나 정책의 급진성을 생각하면 단순히 규모가 작은 마오쩌둥 정도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두 정권 모두 국가권력을 동원한 강제적인 사회개조와 탄압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폴 포트의 관계

폴 포트 정권은 중국으로부터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1970년대 중국은 소련과 대립하고 있었으며,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는 중국의 중요한 동남아시아 협력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은 크메르 루주에 무기와 장비, 기술적 지원 등을 제공하였다.

다만 중국이 폴 포트 정권의 모든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통제한 것은 아니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독자적인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체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이 지원한 정권이 자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상황에서도 양국의 관계가 유지되었다는 점은 냉전기 국제정치의 중요한 사례로 다루어진다.

베트남과의 전쟁

국경 분쟁과 관계 악화

크메르 루주는 집권 초기부터 베트남과 영토 및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두 나라는 모두 공산주의 정권이었지만, 이것이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베트남의 지역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했으며, 역사적인 영토 문제와 강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베트남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 크메르 루주군의 공격과 민간인 학살이 발생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베트남 역시 크메르 루주 정권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였고, 캄보디아를 상대로 군사행동을 확대하였다.

1978년 베트남의 침공

1978년 12월 베트남군은 캄보디아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당시 크메르 루주군은 내부 숙청과 비효율적인 군사 운영 등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어 있었으며, 베트남군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였다.

결국 1979년 1월 7일 베트남군과 캄보디아의 반크메르 루주 세력이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폴 포트 정권이 붕괴하였다.

정권 지도부는 수도를 떠나 국경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베트남군의 진입을 환영한 캄보디아 주민들도 있었으나, 베트남의 장기적인 군사 주둔과 새 정권의 성격을 둘러싼 갈등도 발생하였다.

따라서 당시 캄보디아 국민 전체가 베트남군을 일률적으로 환영했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다.

중월전쟁

1979년 2월 중국은 베트남을 공격하면서 중월전쟁이 발발하였다.

중국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과 소련과의 밀접한 관계 등을 문제 삼았다.

이 전쟁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해서 언제나 같은 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과 소련은 이미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고, 베트남은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반면 크메르 루주는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

결국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분쟁은 냉전기의 중소 갈등 및 동남아시아 국제정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정권 붕괴 이후에도 이어진 내전

폴 포트 정권이 붕괴했다고 해서 캄보디아의 전쟁이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크메르 루주는 태국 국경 지역 등을 거점으로 계속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베트남의 캄보디아 주둔과 새로운 친베트남 정권의 수립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논쟁이 발생하였다.

중국은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원을 계속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베트남의 군사 개입과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였다.

특히 국제연합에서 캄보디아의 대표권을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가 외교적 쟁점이 되었다.

일부 국가는 크메르 루주의 잔혹행위를 비판하면서도 베트남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당시 국제정치가 인권문제만이 아니라 냉전기의 세력 균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후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망하는 것은 쌤통입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그렇기에 천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따잇^

이후로도 밀림에서 찌질거리다 결국 크메르 루주 부하들한테 뒤통수맞고 법정으로 끌려가서 자기 집에 연금된 뒤 거기서 심장마비로 뒈짖해서 베프 호치민 보러 갔다. 이후 쓰레기랑 함께 화장됐다.

정확히는 폴 포트가 국제법정에서 정식 재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97년 자신이 이끌던 크메르 루주 내부 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내부 재판을 받았으며, 이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1998년 4월 15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부근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일반적으로 심부전 또는 심장질환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그의 사망 경위를 둘러싼 의혹도 제기되었다.

또한 원문의 호찌민 관련 표현은 풍자에 가깝다. 호찌민은 1969년에 사망한 베트남의 정치지도자로 폴 포트와 친밀한 관계였다는 의미의 표현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이 새끼가 지식인들을 하도 죽여대는 바람에 후임 정권들이 캄보디아를 재건하는 데 피똥을 싸야 했으며,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어 동남아시아 중에서도 빈곤국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원주민들은 4년 동안 자신들에게 잘 대해줬다고 아직까지도 숭배하니 가히 캄보디아의 반인반신이라 할 수 있겠다.

1997년 크메르 루주 내부 재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크메르 루주는 점차 세력을 상실하였다.

간부들의 이탈과 내부 분쟁이 이어졌으며, 폴 포트의 지도력도 약화되었다.

1997년 폴 포트는 자신의 측근이었던 손 센과 그 가족의 살해에 관여한 사건 등을 계기로 다른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크메르 루주 내부 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종신 가택연금에 해당하는 처분을 받았다.

다만 이는 국제사회가 구성한 독립적인 형사재판이 아니라 크메르 루주 내부에서 진행된 재판이었다.

따라서 폴 포트가 자신의 집권기에 저지른 대규모 인권범죄에 관하여 공정한 국제형사재판을 받고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재판도 제대로 받지 않고 사망

폴 포트는 1998년 4월 15일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했을 때에는 이미 정권이 무너진 지 약 19년이 지난 상태였지만, 캄보디아는 여전히 크메르 루주가 남긴 정치적·사회적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었다.

폴 포트는 1979년 친베트남 정권이 주도한 재판에서 궐석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이후 국제적 기준에 따른 본격적인 전범 재판을 받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핵심 지도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충분한 사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망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 특별재판소

폴 포트 사망 이후 캄보디아 정부와 국제연합은 크메르 루주 주요 지도자들의 범죄를 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소를 설치하였다.

이 재판소는 캄보디아 법원 내 특별재판부(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Cambodia, ECCC)로 불린다.

재판에서는 집단학살죄와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 발생한 중대한 범죄들이 다루어졌다.

대표적인 피고인에는 누온 체아와 키우 삼판, S-21 수용소 책임자였던 캉 켁 이우 등이 있다.

누온 체아와 키우 삼판은 재판을 통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폴 포트 본인은 재판소가 활동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으므로 ECCC의 피고인으로 재판받지 않았다.

캄보디아에 남긴 영향

폴 포트 정권의 폭정은 단순히 일시적인 인명 피해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가 파괴되었으며, 교육과 의료 및 행정제도의 붕괴로 국가 재건에도 장기간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특히 대규모 학살과 강제노동을 경험한 생존자들에게는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남았다.

이후 캄보디아에서는 투올슬렝 학살박물관과 청아익 학살현장 등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관련 역사를 기록하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폴 포트 정권의 역사는 국가권력이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기본적인 인권과 법적 절차를 무시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평가

폴 포트는 현대사에서 대규모 학살과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사회개조 정책을 추진한 독재자로 알려져 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도시 주민들을 강제로 농촌에 이주시켰으며, 화폐경제와 기존의 교육·의료체계 등을 급격하게 해체하였다.

또한 대규모 강제노동과 정치적 숙청, 민족적·종교적 박해 등을 통해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였다.

특히 집권 기간이 약 3년 8개월에 불과했음에도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이 정권이 남긴 피해의 규모를 보여준다.

마오쩌둥과 스탈린 같은 훨씬 큰 국가의 독재자들과 비교할 경우 절대적인 피해자 수는 적지만, 이러한 차이는 해당 국가들의 인구와 집권 기간 및 역사적 조건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가의 크기는 작았어도 그 안에서 벌어진 참사는 결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폴 포트 정권의 역사는 이념적 목표를 앞세운 급진적인 사회개조와 국가폭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 집중이 결합하면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련 문서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