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롤라오스 Philolaus | |||||||||
| 본명 | Φιλόλαος | ||||||||
|---|---|---|---|---|---|---|---|---|---|
| 생년월일 | 기원전 약 470년 | ||||||||
| 사망일 | 기원전 약 385년경으로 추정 | ||||||||
| 출생지 |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크로톤 또는 타렌툼 | ||||||||
| 직업 | 철학자, 자연철학자 | ||||||||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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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건 누가 정했냐?
ㄴ 그렇다고 태양이 중심이라는 것도 아니다.
개요
필롤라오스(Φιλόλαος, Philolaus)는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요 사상가다.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인 크로톤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타고라스, 아르키타스와 함께 고대 피타고라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인다는 우주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태양과 달, 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적 관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필롤라오스는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 지구 역시 우주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불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가 주장한 것은 오늘날의 지동설이나 태양중심설과는 다르다. 필롤라오스가 생각한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 아니라 중심불이라는 별도의 불이었고, 태양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그 주위를 도는 천체 중 하나였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지구중심설을 부정한 비지구중심 우주론에 해당한다.
또한 필롤라오스는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한정하는 것과 무한정한 것, 그리고 양자를 결합하는 조화에서 찾았다. 이러한 조화는 수학적 비율로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음악과 수의 관계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려 했다. 그가 남긴 사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주었고, 훗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의 운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역사적 선구자로 언급되었다.[1]
생애
출생과 피타고라스 학파
필롤라오스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70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385년경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는 여러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활동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한 연대다. 출생지 역시 크로톤이라는 기록과 타렌툼이라는 기록이 공존한다.
두 도시 모두 당시 이탈리아 남부에 형성된 그리스 식민도시권인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속했다. 이 지역은 피타고라스주의가 번성했던 중심지로, 사모스 출신의 피타고라스가 크로톤으로 이주하여 종교적·철학적 공동체를 조직한 곳이기도 하다.
필롤라오스는 피타고라스보다 약 한 세기 뒤에 태어난 인물이므로 피타고라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아니다. 그가 누구에게 철학을 배웠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피타고라스 학파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파르메니데스 등 이전 자연철학자들의 문제의식까지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하지만, 본래는 수학만 연구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수와 비율을 우주의 근본 원리로 이해했으며, 윤회, 영혼의 정화, 공동체 생활과 종교적 금기까지 중시했다. 때문에 철학자 집단이면서 종교적 결사체의 성격도 강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성장한 필롤라오스는 숫자와 조화의 중요성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실제 세계의 구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철학적 체계로 발전시켰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박해와 이동
기원전 5세기 중엽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여러 그리스 도시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반발과 정치적 공격이 발생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종교적 공동체에 속했을 뿐 아니라 일부 도시의 정치에도 관여했기 때문에, 지역 내 권력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필롤라오스가 피타고라스 학파의 집회 장소가 불타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더욱 오래된 전승에는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실제로 해당 사건에 연루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이탈리아 남부에서 그리스 본토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비교적 신뢰할 만하다. 특히 테바이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타렌툼으로 돌아가 활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정확한 이동 경로는 재구성하기 어렵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필롤라오스는 소크라테스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가 실제로 소크라테스를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사상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플라톤의 《파이돈》에는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심미아스와 케베스가 필롤라오스의 가르침을 들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테바이 출신이며, 대화의 배경은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둔 기원전 399년이다.
이 기록은 적어도 필롤라오스가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그리스 본토에서 알려진 철학 교사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다. 또한 피타고라스주의가 이탈리아 남부의 지역적 사상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 본토의 철학계에도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필롤라오스는 훗날 아르키타스의 스승이었다는 전승도 남겼다. 사실이라면 초기 피타고라스주의와 기원전 4세기 수학·음악 이론을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철학
한정자와 무한정자
필롤라오스 철학의 핵심은 우주의 모든 사물이 한정자(limiters)와 무한정자(unlimiteds)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탈레스는 물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중요한 근원으로 보았으며, 엠페도클레스는 불·물·공기·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를 제시했다.
반면 필롤라오스는 특정 물질 하나만으로는 세계의 질서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물질이 일정한 형태와 구조를 갖춘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무한정자: 그 자체로 일정한 경계나 크기, 구조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연속적인 요소를 말한다. 물질뿐 아니라 공간이나 시간처럼 계속 나누거나 구획할 수 있는 것들도 이러한 원리로 이해될 수 있다.
- 한정자: 무한정한 것에 경계와 구조를 부여하여 특정한 형태나 질서를 갖도록 하는 요소다. 형태, 구획, 일정한 비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소리는 높낮이가 연속적으로 달라질 수 있지만, 아무 음이나 무작위로 배열한다고 해서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비율에 따라 음을 구분하고 배열해야 일정한 음계와 선율이 성립한다.
필롤라오스는 이러한 관계가 음악뿐 아니라 자연계 전체에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세계는 단순히 여러 물질이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일정한 구조를 이루면서 존재하는 질서 있는 전체라는 것이다.
이 사상은 물질적 구성뿐 아니라 구조와 관계 자체를 세계의 근본적인 설명 원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화와 수학적 비율
한정자와 무한정자는 서로 성질이 다른 요소들이므로, 단순히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없다. 필롤라오스는 양자를 결합하는 원리로 조화(ἁρμονία, harmonia)를 제시했다.
여기서 조화란 단순히 보기 좋거나 듣기 좋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일정한 관계에 따라 결합되어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필롤라오스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음악이었다. 음악에서는 서로 다른 높이의 음이 특정한 수적 비율을 가질 때 일정한 음정이 형성된다.
- 옥타브: 진동수 비율 2:1
- 완전5도: 진동수 비율 3:2
- 완전4도: 진동수 비율 4:3
이러한 비율은 고대 피타고라스주의의 음악 이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다. 필롤라오스의 저술에도 음계와 음정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는 음악에 나타나는 질서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수적 질서의 한 사례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자연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사물의 겉모습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존재하는 비율과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수와 인식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상을 흔히 만물은 수다라는 말로 요약하지만, 필롤라오스가 실제로 모든 사물을 숫자 자체와 동일시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그의 남아 있는 단편에서는 사물들이 수로부터 직접 만들어진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수를 통해 사물의 성질과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입장이 두드러진다.
사물에는 일정한 구조가 있고, 그 구조는 수학적인 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으므로 숫자를 이해해야 세계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단순한 신화나 신들의 의지로 설명하던 관점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원리를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오늘날의 과학과 동일한 방법론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학적 관계가 자연현상의 설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이후 그리스 철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우주론
중심불 우주론
필롤라오스가 가장 유명해진 이유는 독특한 우주론 때문이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지구중심적 관점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가운데에 있고, 태양과 달, 행성 및 별들이 지구 주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필롤라오스는 이와 달리 우주의 중심에 중심불(Central Fire)이 있으며, 지구를 포함한 여러 천체가 그 주위를 돈다고 보았다.
이 중심불은 우주의 중심에 자리한 근원적인 불로, 그리스어로는 우주의 화덕 또는 화로에 해당하는 표현과 연결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화로는 가정과 공동체의 중심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므로, 중심불에는 자연철학적 의미와 함께 종교적·상징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 제2권 제13장에도 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지구 대신 불을 우주의 중심에 두었다는 설명이 남아 있다.[2]
필롤라오스는 이 중심불 주위에 열 개의 천체가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중심불: 모든 천체가 회전하는 중심으로, 열 개의 천체를 셀 때는 포함하지 않는다.
- 대지구: 중심불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천체
- 지구: 중심불 주위를 움직이는 천체
- 달: 지구보다 바깥쪽 궤도를 도는 천체
- 태양: 달보다 바깥쪽에서 중심불 주위를 도는 천체
- 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
- 항성들의 천구: 가장 바깥쪽에 배치된 고정된 별들의 영역
위 목록에서 중심불을 제외한 열 개가 필롤라오스 체계의 천체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천문학과 비교하면 여러 부분이 틀렸지만, 지구를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로 운동하는 존재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발상이었다.
지구의 운동
필롤라오스의 이론에서 지구는 정지해 있지 않다. 지구는 중심불 주위를 약 하루에 한 바퀴 돌며, 이러한 운동을 통해 낮과 밤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오늘날에는 지구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생긴다고 설명하지만, 필롤라오스의 체계에서는 지구가 중심불 주위를 도는 운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지구는 중심불을 향한 면이 항상 같은 방향을 유지하도록 회전한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의 면에서는 중심불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 가능했다.
태양 역시 중심불 주위를 운동하며, 지구에서 관찰되는 태양의 위치는 두 천체의 상대적인 운동에 따라 변화한다. 지구가 중심불을 하루에 한 번 도는 반면 태양은 약 1년에 한 번 도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구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왜 사람들은 운동을 느끼지 못했을까? 필롤라오스가 이 문제를 현대적인 물리학으로 설명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이론은 지구의 운동을 우주의 기본적인 구조로 받아들였으며, 관찰되는 천체의 운동을 그 구조에 맞추어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중요한 것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발상 자체였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유럽 천문학에서 지구의 위치와 운동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지구설
필롤라오스 우주론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대지구(ἀντίχθων, Antichthon)라는 가상의 천체다. 한국어로는 반대지구 또는 대응지구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대지구는 중심불과 지구 사이에 존재하며 지구와 함께 중심불 주위를 도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지구의 사람이 거주하는 면이 중심불의 반대편을 향하도록 배치되었기 때문에 대지구 역시 직접 관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왜 굳이 관측할 수도 없는 지구 하나를 더 만들어 넣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숫자 10을 완전한 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지구를 제외하면 중심불 주위를 도는 천체가 아홉 개뿐이므로, 이를 열 개로 맞추기 위해 새로운 천체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주에 천체가 아홉 개밖에 없어서 하나를 더 끼워 넣었다는 이야기다.
우주는 완전해야 한다.
완전한 숫자는 10이다.
그런데 천체가 9개네?
그럼 하나 더 있겠지.
이러한 설명만 보면 관측 자료보다 숫자에 대한 신념을 우선한 상당히 황당한 주장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관찰된 현상에 이론을 맞추기보다 자신들의 이론에 현상을 억지로 맞춘다고 비판했다.
다만 대지구가 단순히 숫자를 맞추기 위한 존재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지구가 월식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소개했으며, 현대 연구에서도 필롤라오스의 우주 모형에서 특정 월식 현상을 설명하는 기능이 있었을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3]
따라서 대지구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적 신념과 당시의 천문현상 해석이 복잡하게 결합한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물론 실제 우주에 필롤라오스가 상상한 대지구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태양중심설과의 차이
필롤라오스는 흔히 지동설의 선구자로 소개되지만, 그가 현대적인 의미의 태양중심설을 주장했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 구분 | 필롤라오스의 우주론 | 근대 태양중심설 |
|---|---|---|
| 우주의 중심 | 중심불 |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계 |
| 지구의 운동 | 중심불 주위를 회전 |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자전 |
| 태양의 위치 | 중심불 주위를 도는 천체 | 행성계의 중심에 위치 |
| 낮과 밤 | 중심불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으로 설명 | 지구의 자전으로 설명 |
| 대지구 | 존재한다고 가정 | 존재하지 않음 |
필롤라오스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적 우주 모형을 제시했다. 이후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지구의 운동은 다시 본격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필롤라오스의 역사적 의의는 태양중심설을 완성했다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반드시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깨뜨렸다는 점에 있다.
우주론의 한계
필롤라오스의 우주론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심불과 대지구는 직접 관측되지 않았으며, 그 존재를 검증할 수 있는 독립적인 증거도 없었다. 또한 각 천체가 일정한 원운동을 한다는 단순한 체계만으로는 실제 행성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밤하늘에서 행성이 일시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역행 현상은 필롤라오스의 모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일부 월식 현상을 설명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실제 월식의 진행 방향과 지속 시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었다.
그의 체계에는 경험적 관찰뿐 아니라 수학적 완전성, 종교적 상징, 철학적 직관도 강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보면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만으로 필롤라오스의 업적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당시에는 망원경도 없었고, 뉴턴의 운동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활동한 시대는 천체 운동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천문학이 형성되기 시작한 단계였다.
오히려 기존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지구중심적 관념에서 벗어나, 지구도 다른 천체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발상 자체가 중요한 변화였다.
음악과 천구의 조화
필롤라오스의 철학에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수단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일정한 음정이 수학적 비율과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러한 발견은 인간의 감각으로 경험하는 음악적 아름다움이 숫자와 비율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필롤라오스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일정한 비율에 따라 조화를 이룰 때 질서 있는 전체가 형성된다는 원리를 우주 전체에 적용했다. 음악에서 음정이 수학적 비율로 이루어지듯, 우주도 수적 관계에 따라 구성된 질서 있는 체계라는 것이다.
이는 천구의 음악이라는 피타고라스주의적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천구의 음악은 하늘의 천체들이 일정한 비율에 따라 운동하면서 거대한 우주적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이다.
다만 필롤라오스가 각 천체의 운동에 구체적인 음계를 대응시켰다거나, 천체가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그의 철학과 천구의 음악 사이에는 분명한 사상적 연관성이 있지만, 후대 피타고라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서 발전한 모든 설명을 필롤라오스 자신의 주장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주의 질서를 음악적 비율과 연결하려는 생각은 오랫동안 서양의 철학과 천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훗날 요하네스 케플러도 행성의 운동과 음악적 조화의 관계를 탐구했는데, 물론 케플러의 이론은 훨씬 발전된 천문 관측과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생명과 의학에 관한 사상
필롤라오스는 우주론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생명현상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의학적 견해는 고대 의학사를 정리한 문헌들이 후대에 전해지면서 알려졌다.
그는 인간의 탄생과 우주의 형성 사이에 유사한 원리가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중심에 뜨거운 불이 형성되고 주변의 공기가 유입되는 것처럼, 인간의 태아 역시 본래 뜨거운 상태에 있으며 출생 후 호흡을 통해 차가운 공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 발생학이나 생리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현상을 신화적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열, 냉기, 호흡과 같은 자연적 원리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당시 자연철학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질병의 원인과 관련해서도 혈액, 담즙, 점액 등의 역할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신체 내부의 열과 냉기의 균형, 영양 상태의 불균형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필롤라오스의 생명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인간과 동물, 식물의 능력을 구분한 점이다. 그는 신체의 각 부위와 정신적·생물학적 기능을 연결했다.
- 머리: 사고와 지성의 중심
- 심장: 감각과 정서적 작용의 중심
- 배꼽: 영양 공급과 성장의 중심
- 생식기: 생식과 번식의 중심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사고능력과 동물의 감각능력, 식물의 성장능력을 서로 구별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지성의 중심을 머리에 두었다는 점에서 심장을 사고의 중심으로 여겼던 일부 고대 철학자들과 차이를 보였다.
필롤라오스의 이론에는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내용이 많지만, 생명현상을 서로 다른 기능과 구조로 나누어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고대 의학사와 심리학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저술
《자연에 관하여》
필롤라오스의 대표 저술은 《자연에 관하여》(Περὶ φύσεως, Peri Physeos)로 알려져 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철학을 책으로 정리했으며, 이 저술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상을 기록한 가장 이른 문헌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피타고라스 자신은 확실하게 인정되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고, 초기 피타고라스주의는 구전과 공동체 내부의 전승에 크게 의존했다. 따라서 필롤라오스가 철학을 문자로 체계화했다는 사실은 피타고라스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연에 관하여》에는 우주의 구성 원리, 수와 조화의 관계, 천체의 운동, 인간의 정신과 신체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후대 저술가들이 인용하거나 요약한 단편들을 통해서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작의 진위 논란
문제는 필롤라오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모든 문장이 실제 그의 저술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후대에 피타고라스 학파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여러 철학적 저술이 피타고라스나 그 제자들의 이름으로 유통되었다. 일부는 기존의 사상을 권위 있게 보이게 하기 위한 위작이었고, 일부는 후대의 철학적 개념을 초기 피타고라스주의의 사상인 것처럼 소급하여 서술한 것이었다.
필롤라오스의 저술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단편은 20개 이상이지만, 현대 연구에서는 그중 약 11개를 진본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머지는 후대에 작성된 위작이나 진위가 의심되는 문헌으로 평가된다.[4]
특히 필롤라오스의 원래 사상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덧씌운 문헌들은 그의 철학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진본으로 인정되는 단편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 사이에는 상당한 일치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필롤라오스가 단순히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적 철학자는 아니며,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가진 실존 사상가였다는 점에는 큰 의문이 없다.
플라톤이 책을 샀다는 이야기
고대 전승에는 플라톤이 필롤라오스의 책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는 플라톤이 필롤라오스와 관련된 책 세 권을 입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일부 전승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다고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철학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과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연구에서는 이 일화를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플라톤의 권위를 피타고라스주의와 연결하거나 위조된 피타고라스 저술의 진본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승일 가능성이 있다.
플라톤이 필롤라오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에게서 책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는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철학적 비교를 통해 논의할 수 있지만, 후자는 사료의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다.
후대에 미친 영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필롤라오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인 《필레보스》에는 무한정한 것과 한정하는 것, 그리고 이들의 결합에 관한 논의가 등장한다. 이는 필롤라오스의 철학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며, 플라톤이 피타고라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자신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두 철학자의 체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필롤라오스는 자연세계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원리를 사용했지만, 플라톤은 이를 더욱 추상적인 철학적 문제에 적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과 《천체론》에서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사상을 여러 차례 논의했다. 특히 수와 자연의 관계, 우주의 중심에 관한 이론을 검토하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롤라오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견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 연구에서는 그가 설명한 피타고라스주의의 핵심 체계가 필롤라오스의 저술에 상당 부분 의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지동설
필롤라오스의 이름은 근대 천문학의 역사에서도 등장한다.
16세기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새로운 발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고대 철학자들 가운데 지구의 운동을 주장한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필롤라오스는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서문에서 고대 사상가들의 지구 운동설을 언급했다. 다만 필롤라오스의 중심불 우주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은 아니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고대 그리스의 다양한 천문학적 전통과 수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필롤라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학문적 계보를 단순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구의 정지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필롤라오스는 지구 운동설의 역사적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과학사적 평가
필롤라오스의 가장 큰 공헌은 우주의 구조를 기존의 상식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오래된 관념을 깨뜨렸지만, 그 대신 수학적 완전성과 종교적 상징성이 강한 중심불과 대지구라는 새로운 가정을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은 기존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과학과 철학의 발전은 처음부터 올바른 답을 제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설명이 유일한 가능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새로운 질문과 모형을 제시하는 일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롤라오스의 중심불 우주론은 오늘날 틀린 이론이지만, 지구를 우주의 절대적인 중심에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고대 천문학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여담
- 필롤라오스의 이름은 피타고라스나 플라톤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초기 피타고라스주의의 구체적인 철학을 이해하려면 오히려 필롤라오스의 저술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피타고라스 본인이 남긴 확실한 저술이 없기 때문이다.
- 그가 주장한 대지구는 현대적인 의미의 평행우주나 또 다른 지구형 행성과는 다르다. 필롤라오스가 상상한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반대쪽에 존재하는 별도의 천체로, 특정한 우주론을 성립시키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었다.
- 중심불이라는 이름 때문에 태양을 가리킨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필롤라오스의 이론에서 태양은 중심불과 명백히 구별되는 별도의 천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관측 결과보다 수학적 신념을 우선한다고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필롤라오스가 천문 관측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우주 모형에는 당시 알려진 다섯 행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 천문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확인된다.
- 필롤라오스의 이론에서 천체의 수가 열 개라는 설명은 자칫 중심불까지 포함해서 열 개라고 오해하기 쉽다. 정확히는 중심불 주위를 도는 천체가 열 개이며, 중심불 자체는 계산에서 제외된다.
- 그가 실제로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박해에서 살아남았는지, 플라톤에게 직접 책을 판매했는지 등 생애에 관한 유명한 일화들은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고대 철학자들의 생애에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같이 보기
각주
각주
-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hilolaus, Carl A. Huffman, 2024년 개정.
- ↑ Aristotle, On the Heavens, Book II, Part 13.
-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hilolaus, 4.2 Astronomical System. 대지구의 수적 의미와 월식 설명에 관한 고대 기록 및 현대 연구를 정리하고 있다.
- ↑ Oxford Classical Dictionary, Philolaus, of Croton or Tarentum, Carl Huffman,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