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은 고려 고종 때인 1215년경 승려 각훈(覺訓)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한국의 고승 전기집이자 불교 역사서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한반도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전체 가운데 유통편(流通篇) 2권만 전해지고 있다.
|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 |
|---|---|
| 저자 | 각훈(覺訓) |
| 편찬 시기 | 1215년경(고려 고종 2년) |
| 편찬 국가 | 고려 |
| 편찬 배경 | 고려 고종의 왕명 |
| 종류 | 역사서, 불교 전기집 |
| 원래 분량 | 불명(최소 5권 이상으로 추정) |
| 현존 분량 | 2권 1책(유통편 일부) |
| 현존본 수록 인물 | 정전 18명, 방전 17명(총 35명) |
| 사용 문자 | 한문 |
| 주요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 |
개요
한국의 승려들이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려고 만들었는데, 정작 책 자체가 대부분 사라져 버린 역사서.
제목의 '해동'(海東)은 중국에서 바다 동쪽에 있는 한국을 가리키던 표현이고, '고승'(高僧)은 높은 수행 경지와 학덕을 갖춘 승려를 의미한다. 따라서 제목을 풀어 보면 '한국의 뛰어난 승려들의 전기'라는 뜻이다.
중국에는 일찍부터 불교의 전래와 발전에 기여한 승려들의 생애를 정리한 고승전이라는 문헌 전통이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교가 삼국시대부터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그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문헌이 충분하지 않았다. 각훈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한국 불교의 전래와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해동고승전》은 현존하는 한국의 고승 전기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로 평가된다. 이보다 앞서 신라의 김대문이 《고승전》을 편찬한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해당 저술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처럼 한국 고대사를 연구할 때 참고하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승려들의 활동과 불교 교류, 고대 사회의 종교적 인식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원래 책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기록에도 설화와 역사적 오류가 섞여 있어 내용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과 그 기록이 모두 정확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편찬 배경
고려의 불교와 역사 편찬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불교를 중요한 국가적 이념으로 받아들였으며,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 아래 다양한 불교 종파와 사찰이 발전했다. 승려들은 종교적 활동뿐 아니라 학문, 외교, 문화 교류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고려 이전의 불교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았다. 삼국시대의 불교 전래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러 역사서, 사찰 기록, 비문 등에 흩어져 있었고, 일부 문헌은 이미 고려시대에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1145년에는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치와 제도, 전쟁, 인물 등을 정리했기 때문에 불교사 자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불교계의 입장에서는 수백 년 동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친 승려들의 활동을 독자적인 역사서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해동고승전》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편찬된 것으로 이해된다.[1]
각훈은 단순히 유명한 승려들의 이름을 남기려 했던 것이 아니다. 불교가 어떻게 전래되었고, 누가 이를 전파했으며, 한국의 승려들이 중국과 인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후대에 전달하고자 했다.
저자 각훈
저자인 각훈(覺訓)은 고려 후기의 화엄종 승려로, 개경 일대의 흥왕사와 오관산 영통사 등에서 활동했다. 영통사는 고려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찰로, 의천과도 관계가 깊은 곳이었다.
각훈은 불교 교리에 밝았을 뿐 아니라 유학과 문학에도 상당한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다. 이인로, 이규보, 임춘 등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과 교유했으며,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고종의 명령을 받아 고승들의 전기를 편찬한 것으로 보아 당시 불교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일정한 위상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구체적인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해동고승전》을 집필한 시기는 일반적으로 1215년경으로 본다. 이는 책에서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뒤 844년이 지났다고 언급한 기록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다. 따라서 1215년이라는 연대는 문헌 내부의 기록을 근거로 추정한 편찬 시기이지, 정확한 완성 날짜가 별도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각훈이 이 책을 편찬할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 아래에 있었다. 이후 고려가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게 되는 것은 1231년부터의 일이므로, 《해동고승전》은 본격적인 대몽항쟁 이전에 편찬된 역사서이기도 하다.
구성과 내용
전체 구성
《해동고승전》의 원래 분량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는 유통편(流通篇)의 권1과 권2만 남아 있으며, 다른 편목과 권수는 대부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의 고승전들이 승려들의 활동을 역경, 의해, 습선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해동고승전》 역시 비슷한 분류 방식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중국 고승전의 10과 분류를 참고하여 상당한 규모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법화영험전》에서 《해동고승전》 권5의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원래 적어도 5권 이상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러한 단서만으로 원래 책이 정확히 5권이나 10권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2]
현존하는 2권에는 정전(正傳) 18명과 방전(傍傳) 17명, 총 35명의 승려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정전은 한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서술한 전기이고, 방전은 다른 인물의 전기 속에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관한 기록을 의미한다.
현재 남아 있는 내용은 크게 불교의 전래와 수용을 다룬 권1, 중국 및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의 활동을 다룬 권2로 나뉜다.
권1: 불교의 전래와 수용
권1은 '유통 1의 1'(流通一之一)로,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고 각국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순도(順道):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를 전한 승려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의 초기 불교 수용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 망명(亡名):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고구려 승려에 관한 기록이다. 각훈은 고대 불교사의 많은 인물들이 역사에서 잊혔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 의연(義淵): 고구려의 승려로, 중국에 불교의 교리와 역사에 관한 질문을 보내 교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담시(曇始): 중국에서 활동하다 고구려에도 불교를 전한 승려로 기록된다.
- 마라난타(摩羅難陀): 384년 백제 침류왕 때 불교를 전한 승려로 알려져 있다.
- 아도(阿道): 신라의 초기 불교 전래와 관련된 인물로, 여러 문헌에서 행적과 출신에 관한 서로 다른 기록이 나타난다.
- 법공(法空): 신라 불교의 정착 과정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인물이다.
- 법운(法雲): 초기 신라 불교의 전개 과정에서 언급되는 승려이다.
이 가운데 순도와 마라난타는 각각 고구려와 백제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구려는 372년 소수림왕 때, 백제는 384년 침류왕 때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불교의 공인 과정이 복잡했다. 초기에는 외래 종교에 대한 저항이 있었으며, 527년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고승전》은 이와 관련된 초기 승려들의 활동을 전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다.
다만 불교 전래에 관한 초기 기록에는 전승과 설화가 뒤섞여 있다. 승려의 출신 국가나 활동 시기를 두고 서로 다른 기록이 존재하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다른 사료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권2: 구법승들의 활동
권2는 '유통 1의 2'(流通一之二)로, 중국과 인도로 불교를 배우러 떠난 승려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법'(求法)은 불교의 가르침을 구한다는 뜻으로, 당시에는 더 깊은 교리를 배우거나 경전을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활동을 의미했다. 따라서 구법승들은 종교적 수행자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학문 교류와 문화 전달의 주체이기도 했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각덕(覺德): 신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우고 귀국한 승려이다.
- 지명(智明): 중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 활동한 승려로, 진평왕 때의 기록에 등장한다.
- 원광(圓光): 중국에서 불교를 배우고 귀국한 신라의 고승이다. 세속오계와 관련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 안함(安含): 중국과의 불교 교류에 참여한 승려로, 신라 불교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
-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인도에 건너가 불교를 공부한 신라의 구법승이다.
- 혜업(慧業): 인도 방면으로 구법 활동을 떠난 승려로 기록되어 있다.
- 혜륜(慧輪): 인도에서 불교를 수학한 신라 승려로, 중국 문헌에서도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 현각(玄恪): 중국과 서역을 거쳐 불교를 배우고자 했던 승려이다.
- 현유(玄遊): 중국과 인도 방면에서 구법 활동을 한 승려로 기록된다.
- 현태(玄太): 인도까지 이동하여 불교를 수학한 신라 승려로, 현존 판본의 마지막 전기에 해당한다. 해당 전기의 표제에는 '현대범'(玄大梵)이라는 표기가 나타나지만, 중국의 관련 문헌과 비교하여 현태의 전기로 해석한다.[3]
이 가운데 각덕부터 안함까지는 주로 중국에서 불교를 배우거나 교류한 인물들이고, 아리야발마부터 현태까지는 인도 방면으로 구법의 길을 떠난 인물들이다.
이러한 기록은 삼국시대 한국의 승려들이 단순히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까지 직접 찾아가 교리를 배우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인도로 가는 길은 오늘날처럼 항공편을 예약해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이 아니었다. 사막과 산맥, 낯선 국가들을 통과하거나 위험한 해상 교통을 이용해야 했으며, 여행 도중 사망하거나 귀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경 몇 권 배우겠다고 사실상 목숨 걸고 해외 유학을 떠났던 사람들이다.~~
각훈은 이러한 구법승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더라도 그들의 이름과 행적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인식은 책의 편찬 목적을 잘 보여준다.
사료적 가치
한국 고대 불교사 연구
《해동고승전》의 가장 큰 가치는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발전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이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불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수용되었는지, 불교의 전파에 참여한 승려들이 누구였는지, 중국과 인도를 통한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에서는 왕의 업적이나 국가의 주요 사건에 따라 불교 관련 기록이 간략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동고승전》은 승려 개인을 중심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그들의 학문적 활동과 사상, 해외 교류 등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에서 특정 승려가 중국에 다녀왔다는 사실만 간단히 기록한 경우, 《해동고승전》에서는 해당 인물의 수행과 활동을 더욱 길게 서술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추가 서술이 모두 독립적인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각훈이 기존 기록을 문학적으로 확대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승려들의 이동 경로와 활동을 통해 당시 한반도가 중국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한 광범위한 불교 문화권에 연결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라진 역사서의 기록 보존
《해동고승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오늘날 전하지 않는 옛 문헌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훈은 책을 편찬하면서 여러 한국 및 중국 문헌을 참고했으며, 상당수의 경우 출처를 함께 제시했다. 주요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삼국사기》: 삼국의 역사와 불교 관련 사건을 기록한 역사서.
- 《수이전》(殊異傳): 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설화집으로, 현재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지 않는다.
- 《화랑세기》(花郞世紀): 신라의 김대문이 저술한 화랑 관련 역사서.
- 《기로기》(耆老記): 오늘날 전하지 않는 고문헌 가운데 하나.
- 《송고승전》(宋高僧傳): 중국에서 편찬된 고승 전기집.
- 《속고승전》(續高僧傳): 중국 불교계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
-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당나라 승려 의정이 인도와 서역으로 구법 활동을 떠난 승려들을 기록한 문헌.
이 밖에도 아도비, 안함비명 등 불교 관련 비문과 최치원이 작성한 문헌 등이 인용되었다.[4]
이 가운데 일부 자료는 원본이 소실되어 오늘날 직접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해동고승전》에 남아 있는 인용문은 해당 문헌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역사학에서는 이처럼 원래 문헌이 사라졌지만 다른 책에 인용되어 남은 글을 일문(逸文)이라고 부른다. 《해동고승전》은 이러한 일문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남의 책을 인용해 놓은 덕분에 자기 책도 사라지고 남의 책도 사라진 뒤에야 진가를 인정받게 된 셈이다.~~
한국 불교의 역사적 정체성
《해동고승전》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불교의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정리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래되었지만, 한국의 승려들은 이를 단순히 수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중국과 인도를 찾아가 교리를 연구하고 경전을 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불교 문화를 발전시켰다.
각훈은 이러한 인물들의 활동을 한국 불교사의 중요한 성취로 인식했다. 중국의 고승전이라는 문헌 형식을 참고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맞게 내용을 구성하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해동고승전》은 한국의 승려들이 불교의 국제적 전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보여준다. 이는 당시 승려들이 종교적인 활동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 교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문제점과 한계
역사적 오류와 설화
《해동고승전》이 오래된 사료라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을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책에는 불교의 전래와 승려들의 활동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 담겨 있지만, 일부 내용은 다른 역사서와 차이가 있으며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특히 초기 불교 전래와 관련된 기록에는 서로 다른 전승이 혼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순도와 아도의 출신 및 활동 시기,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과정 등은 여러 문헌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문제다. 이러한 기록은 당시 사람들의 역사적 인식과 종교적 전승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지만, 사건의 실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료와 대조해야 한다.
불교 전기라는 장르 자체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고승들의 뛰어난 수행 능력이나 특별한 행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설화적 요소가 삽입되거나 인물의 생애가 이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 과장과 사료 비판
각훈은 뛰어난 문장가였지만, 역사서 편찬 과정에서 원래 기록을 문학적으로 다듬거나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신라 승려 지명에 관한 기록이다. 《삼국사기》에는 지명이 중국에서 불교를 배운 사실이 비교적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해동고승전》에서는 그의 행적이 더욱 장황하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서술이 원래 사료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실제 연대와 맞지 않는 표현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각훈은 안함의 비문을 인용하면서 비문 일부가 훼손되어 판독할 수 없는 글자를 문맥에 따라 추정해 문장을 구성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역사학에서는 원문이 훼손되었다면 그 사실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원문과 연구자의 추정을 구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각훈은 문장의 완성도를 중시하면서 사료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해동고승전》이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당대 지식인의 문학적 표현과 종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저술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5]
일연의 비판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역시 《해동고승전》의 일부 기록을 비판했다.
일연은 자신의 저술에서 이 책의 잘못된 서술이 후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해동고승전》이 편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고려 후기에도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논쟁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일연이 《해동고승전》의 내용을 전부 부정한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는 《해동고승전》 또는 그와 관련된 승전류 문헌을 인용한 흔적이 여럿 나타난다.
일연은 기존 기록을 참고하면서도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문헌을 비교하면 고려시대 지식인들이 고대 불교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결국 《해동고승전》은 사료적 가치는 높지만, 그 자체로 무오류의 역사서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원본의 소실과 재발견
원본의 소실
《해동고승전》은 고려 후기까지 다른 문헌에서 인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1637년 김휴가 편찬한 《해동문헌총록》에도 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후 완전한 원본이 전해지지 않게 되었으며, 오랫동안 실전된 문헌으로 취급되었다.
정확히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대부분의 권이 사라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란이나 화재, 장기간의 보관 과정에서 발생한 훼손과 분실 등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특정 사건을 소실 원인으로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현존하는 권1과 권2 역시 원래 편찬 당시의 원본이 아니라 후대에 옮겨 적은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20세기의 재발견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해동고승전》은 1910년대에 일부가 다시 발견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필사된 자료가 일본으로 전해져 1917년 《대일본불교전서》의 관련 총서에 수록되었으며, 뒤이어 《대정신수대장경》 제50권에도 편입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불교학자들이 문헌의 내용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완전한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현존하는 것은 유통편의 2권뿐이다. 그러나 이 두 권만으로도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승려들의 구법 활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도 《해동고승전》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이 필사본은 1940년 7월 13일 최성환이 옮겨 적고 같은 해 8월 20일 이홍직이 교정한 것으로, 규장각 소장본을 바탕으로 필사하고 《대정신수대장경》의 수록 내용과 대조한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1215년경이라는 편찬 시기와 현재 소장된 필사본의 제작 연도는 서로 구분해야 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책이 고려시대에 직접 제작된 원본이라는 뜻은 아니다.[6]
사라진 나머지 권의 내용
현존하는 2권은 삼국시대 승려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래 《해동고승전》에는 고려시대 승려들의 전기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는 유통편의 논평에 의천과 같은 고려시대 고승의 활동이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삼국유사》와 《법화영험전》 등에서 인용된 내용을 통해 현존본에 없는 승려들의 전기가 원래 책에 수록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원효, 의상, 자장 등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기록도 원래의 《해동고승전》과 관련하여 거론된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 모든 인물의 전기가 어떤 권에 어떤 형태로 수록되었는지 복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해동고승전》은 각훈이 구상한 전체 역사서의 일부에 불과하다.
~~800년 넘게 이어진 불교사를 정리해 놓았는데, 후손들에게 남은 것은 고작 첫 부분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역사서와의 비교
삼국사기
《삼국사기》는 1145년 김부식 등이 편찬한 역사서로, 삼국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을 국가 중심으로 서술했다.
반면 《해동고승전》은 불교와 승려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따라서 두 문헌은 같은 시대를 다루면서도 관심 분야와 서술 목적이 다르다.
《삼국사기》에서 간단히 언급된 승려의 행적이 《해동고승전》에서 보다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다만 각훈이 기존 기록을 문학적으로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내용이 더 자세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정확한 기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두 역사서를 함께 살펴보면 삼국시대의 정치적 사건과 종교적 활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
《삼국유사》는 13세기 후반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로, 삼국의 역사뿐 아니라 건국 신화, 불교 설화, 향가, 민간 전승 등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해동고승전》과 마찬가지로 불교 관련 기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삼국유사》는 순수한 승려 전기집이 아니라 여러 주제를 종합한 역사서라는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해동고승전》을 인용하거나 그 내용을 검토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일부 기록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두 문헌을 비교하는 작업은 고려시대의 불교사 인식뿐 아니라, 같은 사건에 관한 전승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김대문의 고승전
신라의 학자 김대문 역시 《고승전》이라는 저술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문은 신라 중대에 활동한 인물로, 《화랑세기》 등 여러 역사서를 편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고승전》은 현재 전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과 편찬 체제를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에서 최초로 고승전을 편찬한 인물을 각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김대문의 《고승전》이 먼저 존재했지만, 오늘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의 고승 전기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가 각훈의 《해동고승전》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평가
《해동고승전》은 고려시대의 불교적 역사 인식과 삼국시대 승려들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한국의 불교가 단순히 외부에서 전래된 종교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및 인도의 불교 문화권과 교류해 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 전하지 않는 여러 고문헌의 인용문을 보존했다는 점에서 불교사뿐 아니라 문헌학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만 상당한 분량이 소실된 데다 현존 기록에도 설화와 문학적 과장, 역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대 역사학에서는 이 책을 독립적인 근거로만 활용하기보다 중국의 고승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금석문 등 다른 자료와 함께 비교하여 검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동고승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고대 불교사에서 확인하기 어려웠을 기록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라진 역사서의 일부가 다른 사라진 역사서의 내용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문헌이 얼마나 쉽게 없어질 수 있는지와 동시에 단편적인 기록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담
- 《해동고승전》은 현존하는 한국의 고승 전기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지만, 최초로 편찬된 한국의 고승전은 아니다. 신라의 김대문이 이보다 앞서 《고승전》을 저술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 원래의 전체 권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 고승전의 편찬 체계와 다른 문헌의 인용 기록을 고려하면 상당한 분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권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 현존본에 등장하는 승려 가운데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인물도 있다. 각훈은 이러한 무명의 승려들까지 기록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는 유명한 인물뿐 아니라 역사에서 잊힌 인물들의 행적도 남기려 했음을 보여준다.
- 《해동고승전》의 일부 내용은 《삼국유사》에 인용되었지만, 일연은 그 가운데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부분을 비판하기도 했다.
- 각훈이 사용한 자료 중에는 오늘날 원본이 전해지지 않는 문헌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책 자체가 불완전하게 전해지고 있음에도 다른 소실 문헌의 내용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 고대 사료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동고승전》의 원문과 국역, 주석을 열람할 수 있다. 고대 불교사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실제 기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