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만약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 같이 떠들 사람? 노바위키 디스코드


호안 미로
Joan Miró
생년월일 1893년 4월 20일
사망일 1983년 12월 25일
국적 스페인
출생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학력 바르셀로나 미술학교
직업 화가, 조각가, 도예가
장르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호안 미로(Joan Miró i Ferrà, 1893년 4월 20일 ~ 1983년 12월 25일)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화가·조각가·도예가로, 20세기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검은 선과 원색, 별·달·눈·새·여성처럼 보이는 단순화된 기호를 조합한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벽화·도자기·공공미술까지 매우 넓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미로의 그림은 처음 보면 상당히 단순해 보인다. 화면에 파란 점 하나 있고, 빨간 원 하나 있고, 검은 선이 구불구불 지나가며 어디선가 눈처럼 생긴 기호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애가 낙서한 거 아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단순함은 실제로 어린아이처럼 아무렇게나 그린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과 인체를 계속 줄이고 변형해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만든 결과다.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꿈속의 기괴한 장면을 거의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렸고, 르네 마그리트가 현실적인 사물의 논리를 비틀었다면, 미로는 아예 현실의 형태를 부숴버리고 기호 몇 개만 남겨서 꿈과 감정을 표현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미로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장난스럽고 밝지만 자세히 보면 성과 죽음, 폭력, 전쟁, 우주, 인간의 불안 같은 상당히 무거운 주제도 자주 숨어 있다.

생애

바르셀로나와 초기 활동

미로는 189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계공이자 금세공업자였고, 어머니 쪽 집안 역시 장인 계층과 관련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가족은 그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랐고, 미로는 미술 공부와 함께 상업학교에도 다녔다. 이후 사무직으로 취직했지만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심한 신경쇠약과 장티푸스까지 겪으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회복을 위해 가족이 소유한 카탈루냐 남부 몬트로이의 농장에 머문 경험은 미로의 작품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 이후에도 미로는 이 지역의 풍경과 농촌생활, 카탈루냐의 흙과 식물, 동물들을 반복해서 작품에 등장시켰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농장》도 이 시기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농촌의 사물들을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초기 대표작이다.

초기 미로는 아직 우리가 아는 단순한 기호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카탈루냐 민속미술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구조적인 형태를 사용했고, 풍경과 인물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다만 초기 작품에서도 사물의 실제 모습보다 자신이 느끼는 리듬과 형태를 강조하려는 경향은 이미 나타난다.

1920년 미로는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했다. 당시 파리는 피카소, 브라크, 다다이스트와 여러 전위예술가들이 모여 있던 현대미술의 중심지였고, 미로는 이곳에서 자신의 화풍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이후 한동안 파리와 카탈루냐를 오가며 작업했고,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초현실주의

1920년대 중반 미로는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자들과 가까워졌다. 브르통은 미로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미로 역시 꿈과 무의식, 자동기술법 같은 초현실주의의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다만 미로는 어떤 예술운동에도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 그룹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작가는 아니었다.

1924~1925년경 제작된 《할리퀸의 카니발》은 이 시기 미로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화면 안에는 현실에서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와 기호들이 떠다니며, 악기·곤충·동물·눈·별처럼 보이는 형태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실제 공간의 원근법은 거의 사라지고, 화면 전체가 꿈속의 생물들이 움직이는 무대처럼 보인다.

미로는 굶주리던 시절 환각에 가까운 이미지를 경험했고 이것이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당시 파리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빈곤과 창작이 동시에 이어졌다. 훗날 미로의 작품이 수백억 원에 거래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시절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작품 속 사물들이 더욱 단순해졌다. 얼굴은 눈 두 개와 선 몇 개로 줄어들고, 별은 별표 같은 기호가 되며, 여성과 새·달 같은 대상도 일정한 상징 형태로 반복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로체가 본격적으로 완성된다.

작품 세계

미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구체적인 대상을 완전히 없애지 않으면서도 거의 추상기호 수준까지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화면에 보이는 검은 선 하나가 사람의 몸이기도 하고 새의 다리이기도 하며, 검은 점 두 개가 눈이 되기도 한다. 대상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지는 않는 방식이다.

색채 역시 매우 중요하다. 미로는 빨강·파랑·노랑 같은 강렬한 원색을 자주 사용했고, 검은색 선과 넓은 흰색 또는 단색 배경을 함께 배치했다. 색이 많아 보이지 않는데도 화면 전체에 강한 리듬감이 생기며, 밝고 어린아이 같은 분위기와 불안하고 폭력적인 느낌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미로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회화의 암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는 그림을 실제로 없애겠다는 뜻이라기보다 기존 미술의 권위와 전통적인 회화방식을 파괴하고 싶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당시 미술시장은 화가의 작품을 고급 장식품처럼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고, 미로는 이런 부르주아적 미술관념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품을 일부러 거칠게 만들거나 값싼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고, 캔버스를 불태우거나 찢고 구멍을 내는 작업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미로의 그림이 워낙 밝고 귀여워 보이기 때문에 이런 급진적인 태도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기존 미술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부수려 했던 작가였다.

쉽게 말하면 그림은 귀여운데 작가 생각은 “회화라는 제도 자체 한번 박살내보자” 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이미지

별과 달

별과 달은 미로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별은 보통 작은 점과 선이 결합된 기호처럼 그려지고, 달은 초승달 형태로 단순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천체는 단순한 밤하늘 장식이라기보다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사용됐다.

미로는 우주와 별에 대한 관심이 강했고 특히 1940~1941년 제작한 《별자리》 연작에서는 작은 별과 생명체, 눈·새·여성 형태가 화면 전체에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미로는 오히려 현실에서 벗어나 우주적이고 시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연작은 미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평소 미로 그림만 보고 점 몇 개 찍은 작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별자리 연작을 자세히 보면 생각보다 화면에 들어간 정보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과 새

여성 역시 미로의 대표적인 반복 주제다. 작품 제목에서도 《여성과 새》, 《밤의 여성과 새》 같은 조합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다만 실제 사람이나 새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둥근 몸과 선·눈·성기를 연상시키는 기호로 표현하고 새 역시 몇 개의 선과 점으로 단순화한다.

미로에게 여성은 생명과 성, 지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됐고, 새는 하늘과 자유, 우주를 연결하는 존재로 나타났다. 다만 마그리트와 마찬가지로 미로 작품도 이 기호는 무조건 이것이라고 사전처럼 해석하면 곤란하다. 같은 기호가 작품마다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하고, 형태 자체의 리듬과 움직임이 의미보다 중요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미로는 현실의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자신만의 문자처럼 형태를 반복했다. 그래서 작품을 여러 점 보다 보면 처음에는 정체불명의 낙서 같던 기호들이 어느 순간 “아 저건 미로가 새 그릴 때 쓰는 형태구나.” 하고 읽히기 시작한다.

눈도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검은 원이나 점으로 표현하거나 얼굴과 상관없는 위치에 거대한 눈을 그려넣는 경우도 있다. 미로의 눈은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고, 화면 바깥을 바라보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그냥 하나의 시각적 기호로 사용된다.

눈이 너무 자주 등장하다 보니 미로 그림을 간단하게 패러디하려면 흰 배경에 검은 선 몇 개 긋고 빨간 원 하나 그리고 눈 하나 넣으면 대충 분위기가 난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그려놓고 “미로 스타일입니다.”라고 하면 미술전공자한테 욕먹을 수 있다.

주요 작품

《농장》

1921~1922년 제작된 초기 대표작이다. 미로 가족이 머물던 몬트로이 농장을 소재로 했으며, 건물과 나무, 동물, 농기구 등 화면 속 요소를 매우 세밀하게 묘사했다. 후기의 단순한 추상작품과 비교하면 거의 다른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구체적이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작품을 매우 좋아했고 결국 구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헤밍웨이는 작품을 사기 위해 돈을 마련하느라 상당히 애를 썼다고 전해지며, 이후 오랫동안 소장했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있다.

《농장》은 미로가 현실의 사물을 단순화하기 직전 단계의 작품이라 특히 중요하다. 나중에 점과 선으로 변해버릴 미로의 시각세계가 원래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퀸의 카니발》

1924~1925년 제작된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화면 안에 작은 생명체와 사물들이 빽빽하게 떠다니며, 실제 공간과 중력은 거의 의미가 없다. 할리퀸은 유럽 전통극에서 등장하는 광대 캐릭터지만 화면에서 바로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미로는 당시 배고픔 때문에 사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환각을 경험했다고 말했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림 전체가 굉장히 활기차면서도 묘하게 불안하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미로는 현실적 재현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상징과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탈루냐 풍경》

1924년 제작된 작품으로 《사냥꾼》이라는 부제로도 알려져 있다. 카탈루냐 풍경과 사냥꾼을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호화했다.

사냥꾼의 몸은 몇 개의 선과 삼각형, 수염과 파이프 같은 요소로 표현되며 주변에는 동물과 나무, 바다와 깃발 등이 추상적인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실제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대신 기억과 상징을 이용해 다시 조립했다.

미로의 카탈루냐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별자리》 연작

1940~1941년 제작한 23점의 연작이다. 미로가 프랑스와 스페인을 오가며 전쟁을 피해 생활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작은 종이 위에 별·여성·새·눈과 각종 생명체가 매우 촘촘하게 얽혀 있다. 배경에는 미묘한 색이 퍼져 있고 그 위를 검은 선과 원색 기호가 가득 채운다.

전쟁이라는 현실과 반대로 화면은 우주적이고 몽환적이다. 그래서 미로가 현실의 폭력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완전히 다른 정신적 공간으로 도피하면서 저항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여성과 새》

미로가 평생 반복한 대표 주제이며 같은 제목이나 유사한 제목의 회화·조각이 여러 점 존재한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여성과 새》 조각은 높이 약 22m에 달하는 거대한 공공미술 작품으로 1983년 완성됐다.

붉은색·노란색·파란색 타일로 뒤덮인 길쭉한 조각으로, 여성의 신체와 새를 결합한 형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처음 보면 작품 제목을 듣기 전까지 여성이나 새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미로의 대표적인 공공작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페인 내전과 정치

미로는 직접적인 정치선전화를 많이 그린 작가는 아니지만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는 그의 작품과 삶에 큰 영향을 줬다. 미로는 카탈루냐 출신으로 공화파에 동조했고,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 뒤 프랑스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공화국관을 위해 대형 벽화 《수확하는 사람》을 제작했다. 같은 전시관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전시됐다. 미로의 벽화는 낫을 든 카탈루냐 농민을 그린 작품으로 공화파 저항을 상징했지만 전시가 끝난 뒤 사라져 현재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시기 미로는 우표 형식의 포스터 《스페인을 도우라》도 제작했다. 주먹을 치켜든 농민을 강렬한 색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공화파 지원을 위한 모금과 선전에 활용됐다.

프랑코 정권이 내전에서 승리한 뒤 미로는 조심스럽게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이후 마요르카를 중심으로 비교적 은둔생활을 하며 작업했다. 카탈루냐 문화가 억압받던 시기에도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을 유지했고, 독재정권에 적극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카탈루냐 문화의 상징적인 예술가로도 평가받았다.

조각과 도예

미로는 회화만 한 작가가 아니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조각과 도예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도예가 조제프 요렌스 아르티가스와 오랫동안 협업했고, 흙과 유약을 이용해 미로 특유의 기호와 색채를 입힌 작품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대표적인 대형작품이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벽화 《태양의 벽》《달의 벽》이다.

1958년 완성된 이 벽화는 수천 장의 세라믹 타일을 사용해 제작됐다. 미로는 회화를 단순히 액자 안에 가두기보다 건축과 공공공간으로 확장하려 했고, 도예는 이런 목적에 매우 잘 맞는 재료였다.

조각작품에서는 일상적인 물건을 조합하는 방식도 자주 사용했다. 의자, 숟가락, 돌, 농기구 같은 사물을 결합한 뒤 청동으로 주조해 전혀 다른 생명체처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림 속에서 보던 기괴한 인물과 새가 현실공간으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미로는 “캔버스 좁다” 싶더니 도자기에 그리고, 그래도 부족하니까 벽 전체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예 20m짜리 조각까지 세워버렸다.

마요르카와 작업실

미로는 말년의 대부분을 마요르카에서 보냈다. 아내 필라르 훈코사가 마요르카 출신이었고, 1950년대 중반 팔마데마요르카에 정착하면서 오랫동안 꿈꾸던 대형 작업실을 마련했다.

작업실은 건축가 조제프 류이스 세르트가 설계했으며 1956년 완성됐다. 미로는 이전까지 공간이 부족해 작업을 한꺼번에 펼쳐놓기 어려웠지만 이곳에서는 수많은 캔버스를 동시에 세워놓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작품은 규모가 더욱 커지고 형태는 오히려 더 단순해졌다. 넓은 캔버스에 검은 붓질 몇 번과 점, 색면만 사용하는 작품도 등장했다. 젊을 때 《농장》에서는 나뭇잎 하나까지 그리던 사람이 말년에는 캔버스에 검은 선 하나 그어놓고 끝내는 수준까지 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이 퇴보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형태를 최대한 압축한 결과에 가깝다. 미로에게 단순화는 대충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계속 지우는 과정이었다.

미로 미술관

1975년 바르셀로나 몬주익에 호안 미로 재단(Fundació Joan Miró)이 문을 열었다. 미로 자신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실험적인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설립에 직접 참여했다.

건물은 친구였던 건축가 조제프 류이스 세르트가 설계했으며, 흰색 건물과 중정·옥상·자연광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됐다. 미로의 회화와 조각, 드로잉, 직물작품 등 수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술관이 유명 화가가 죽은 뒤 작품을 모아 만드는 것과 달리 이곳은 미로가 살아 있을 때부터 본인의 의도에 따라 설립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요르카에도 미로가 사용했던 작업실과 주택을 보존한 필라르 이 호안 미로 재단이 있다.

덕분에 미로 좋아하는 사람이 스페인 여행을 가면

바르셀로나에서도 미로

마요르카에서도 미로

를 할 수 있다.

말년과 죽음

1960~1970년대 미로는 이미 국제적인 거장이었다. 미국과 유럽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대형 공공미술과 조각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했다.

그럼에도 말년까지 실험적인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캔버스를 불태우거나 칼로 찢는 불탄 캔버스 연작을 제작했고,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계속 흔들었다. 작품이 비싼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을 싫어했던 젊은 시절의 반항적인 태도를 80대까지 어느 정도 유지한 셈이다.

1983년 12월 25일 마요르카 팔마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였다.

시신은 고향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같은 시대의 달리가 1989년, 피카소가 1973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미로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세대 가운데 상당히 장수한 편이었다. 덕분에 1920년대 초현실주의부터 1970~1980년대 현대미술까지 거의 한 세기를 직접 경험했다.

영향

미로는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뿐 아니라 이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그래픽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공공미술에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화면 전체에 기호와 선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방식은 잭슨 폴록을 비롯한 미국 현대미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된다.

미로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현대 디자인과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단순한 색과 형태만으로 이미지가 강하게 남기 때문에 포스터·책 표지·패션·광고·캐릭터 디자인에서 수없이 참고됐다. 파랑·빨강·노랑과 검은 선을 사용하는 조합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미로풍으로 인식될 정도다.

이 때문에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도 미로와 비슷한 디자인은 이미 많이 본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용 제품이나 교육공간에서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미로식 형태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작 미로가 기존 미술을 파괴하려 했다는 사실과는 상당히 웃긴 대비를 이룬다.

부르주아 미술을 박살내고 싶었던 화가의 스타일이 나중에는 어린이 미술교실 벽지로 존나 많이 쓰이게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평가

미로는 흔히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되지만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초기에는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을 거쳐 조각·도예·공공미술까지 계속 영역을 바꿨다.

특히 미로는 완전한 추상화를 그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현실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지 않았다. 점과 선으로 된 화면 안에도 여성·새·별·달·눈 같은 대상이 숨어 있으며, 작품 제목 역시 구체적인 사물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이 점 찍은 그림” 과는 거리가 있다.

미로가 한 일은 현실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자신의 기호체계로 번역한 것에 가깝다.

달리가 초현실주의의 기괴한 꿈이고, 마그리트가 철학적인 수수께끼라면, 미로는 꿈을 문자처럼 압축한 시각언어에 가까운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여담

  • 풀네임은 Joan Miró i Ferrà다.
  •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호안 미로라는 표기가 널리 사용됐다.
  • 카탈루냐어에서 Joan은 스페인어 Juan과 대응되는 이름이다.
  • 1893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 카탈루냐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작품과 생애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 젊을 때 잠시 회사원으로 일했지만 건강문제와 적응 실패로 그만뒀다.
  • 가족의 몬트로이 농장에서 회복한 경험이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줬다.
  • 초기 작품은 후기 작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 파블로 피카소와 교류했다.
  • 앙드레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자들과 가까웠지만 그룹에 완전히 종속되지는 않았다.
  • 《농장》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구입해 오랫동안 소장했다.
  • 별·달·새·여성·눈 등이 작품에서 엄청나게 자주 등장한다.
  • 원색 가운데 특히 빨강·파랑·노랑을 많이 사용했다.
  • 검은 선도 매우 중요하다.
  • 작품이 단순해 보여 어린이 그림 같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실제 초기 드로잉과 작품을 보면 기본적인 묘사능력은 당연히 있었다.
  • 회화의 암살이라는 표현으로 기존 미술제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 캔버스를 실제로 불태우고 찢는 작업도 했다.
  •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를 지지했다.
  •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미로의 《수확하는 사람》이 전시됐다.
  • 《수확하는 사람》 원본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 도예가 조제프 요렌스 아르티가스와 장기간 협업했다.
  •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태양의 벽》과 《달의 벽》을 제작했다.
  • 바르셀로나에 22m 높이의 《여성과 새》 조각이 있다.
  • 바르셀로나 몬주익에 호안 미로 재단이 있다.
  • 마요르카에는 미로의 실제 작업실이 보존돼 있다.
  • 1983년 크리스마스에 사망했다.
  • 향년 90세로 당시 현대미술 거장 가운데 상당히 장수했다.
  • 현대 디자인에서 미로풍 이미지가 워낙 많이 복제돼 미로를 몰라도 스타일 자체는 익숙한 사람이 많다.
  • 흰 배경에 검은 선 몇 개, 빨간 원, 파란 점을 넣으면 사람들이 갑자기 “미로 같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
  • 단, 그렇게 따라 그린다고 미로 작품 가격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대표작

  • 《농장》 (1921~1922)
  • 《카탈루냐 풍경》 (1924)
  • 《할리퀸의 카니발》 (1924~1925)
  • 《개 짖는 달빛 아래 풍경》 (1926)
  • 《네덜란드의 실내》 연작 (1928)
  • 《수확하는 사람》 (1937, 소실)
  • 《별자리》 연작 (1940~1941)
  • 《태양의 벽》 (1957~1958)
  • 《달의 벽》 (1957~1958)
  • 《블루 I·II·III》 (1961)
  • 《여성과 새》 (1983)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