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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思翊 1889.3.4. - 1946.9.26.
소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의 군인.
조선인 출신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일본군 중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태평양 전쟁 이후 필리핀 마닐라 전범재판에서 B급 전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보통 친일파로 분류된다. 실제로 일본군 장성까지 했고, 광복군 합류 권유도 거절했으며, 마지막까지 일본군 제복을 벗지 않았다. 이 정도면 친일 경력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홍사익은 그냥 "일본놈이 되고 싶었던 매국노"라고 쓰면 설명이 좀 안 맞는다.
이 사람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으며, 아들에게도 어디 가서든 조선 사람이라고 말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인도 동등한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 인간은 단순한 일뽕이라기보다는 일본 제국이라는 미친 서버 안에서 조선인 캐릭터로 끝까지 플레이한 군인에 가깝다.
문제는 그 서버가 일본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출신
경기도 안성 출신. 본관은 남양 홍씨.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원래는 과거를 통해 출세하려 했지만, 시대가 이미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 말기로 넘어가는 개판 오분 전이었다.
과거제도는 사라지고, 나라 군대는 일본 손에 해체되고, 조선 왕조는 겉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이때 홍사익은 군인의 길을 택했다.
문제는 조선군 장교가 되려고 군인이 되었는데, 조선군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진로 선택했더니 회사가 폐업한 수준이다.
일본 유학
홍사익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했다.
당시 영친왕이 일본으로 유학 가는 과정에서 조선인 군사 유학생들이 같이 선발되었고, 홍사익도 그 흐름에 들어갔다. 이 시기 동기나 주변 인물 중에는 훗날 광복군 쪽으로 가는 지청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홍사익의 갈림길이 시작된다.
어떤 조선인 장교들은 일본에서 배운 뒤 독립운동이나 광복군 쪽으로 빠졌다. 홍사익은 끝까지 일본군에 남았다.
이게 홍사익 평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일본군 엘리트
홍사익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이후 일본 육군대학까지 나왔다.
일본 육군대학은 일본군 장교 사회에서도 엘리트 코스였다. 조선인으로 이 코스를 밟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왕공족 같은 특수 신분을 제외하면 홍사익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에 가깝다.
즉 홍사익은 그냥 운 좋게 승진한 사람이 아니다. 공부도 잘했고, 군사 실무도 했고, 일본군 조직 안에서 살아남을 실력도 있었다.
이게 또 묘하다.
조선인이 일본군에서 중장까지 올라갔다는 건, 당시 조선인들에게 "우리도 저 자리까지 갈 수 있나?" 하는 이상한 자부심을 줄 수 있었다. 동시에 민족주의자 입장에서는 "그 재능으로 왜 일본군을 하냐"라는 빡침도 생긴다.
사람이 너무 못났으면 욕하기 편하다. 근데 유능한데 방향이 저쪽이면 더 피곤하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홍사익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일본군 중장이었는데도 일본식 성씨로 바꾸지 않았고, 조선식 이름을 유지했다. 물론 일제가 그 정도 고위 인물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지 않은 것은 "봐라, 창씨개명 강제 아니다"라는 선전용일 수도 있다.
그래도 홍사익 본인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그는 조선인임을 숨기지 말라고 했다. 아들에게도 외국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조선 사람 홍국선입니다"라고 말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건 이규완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독립은 아니지만,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은 버리지 않는다. 제국 안에 들어갔지만, 조선인은 조선인으로 남아야 한다. 일본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본 제국 안의 조선인으로 권리를 얻어야 한다.
이게 홍사익식 현실론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일본 제국이 그런 예쁜 다민족 평등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실은 내지인, 외지인, 반도인 딱지 붙이고 차별 굴리는 제국이었다.
홍사익은 그 안에서 조선인의 자리를 만들려 했지만, 판 자체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조선인을 챙겼다는 이야기
홍사익은 일본군 안에서 조선인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화북 지역에 있을 때 일본 관헌이나 일본 거류민들이 조선인을 함부로 "반도인"이라고 깔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건 홍사익을 무작정 까기 어려운 이유다.
일본군 장성이라는 권력으로 조선인을 억압한 게 아니라, 적어도 일부 상황에서는 조선인들이 모욕당하지 않도록 만든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걸로 전범 책임이나 일본군 복무 경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홍사익을 "조선인을 버린 사람"으로만 쓰면 틀린다. 그는 조선을 독립시키려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조선인이 일본 제국 안에서 완전히 짓밟히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역사에서 제일 귀찮은 인간 유형이다.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니다. 회색인데 그냥 회색도 아니고, 먹물 탄 회색이다.
광복군으로 가지 않았다
홍사익에게는 광복군 쪽으로 오라는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지청천, 이범석 등과 연결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아들 역시 필리핀 부임 전 광복군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홍사익은 거절했다.
그는 일본군 제복을 입은 이상 그 제복에 충성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실드가 어려워진다.
물론 군인으로서 한 번 입은 제복과 조직에 충성한다는 감각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옛날 군인들은 이런 걸 거의 종교처럼 여겼다.
그런데 그 제복이 일본 제국 군복이었다.
즉 개인 윤리로는 충직한 군인이었을 수 있다. 민족 윤리로는 일본군에 남은 사람이다.
둘 다 맞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홍사익과 지청천
홍사익을 볼 때 지청천과 비교하면 명암이 확 드러난다.
둘 다 일본 군사 교육을 받았다. 둘 다 조선인 엘리트 장교였다. 둘 다 일본군 내부를 알았다.
그런데 지청천은 일본군을 탈출해 독립군과 광복군의 길로 갔다. 홍사익은 일본군에 남아 중장까지 올라갔다.
이 비교는 홍사익에게 매우 불리하다.
"그 시대엔 선택지가 없었다"라고 말하기엔, 바로 옆에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지청천처럼 살 수는 없다. 독립운동은 쉬운 길이 아니고, 성공 보장도 없고, 가족과 목숨을 다 걸어야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길을 갔다. 홍사익은 가지 않았다.
이게 홍사익 평가의 가장 큰 그림자다.
홍사익과 이규완
이규완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이규완은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인의 권익과 생존을 고민한 친일 관료였다. 홍사익은 일본군 안에서 조선인 정체성을 지키려 한 친일 군인이었다.
둘 다 독립운동가는 아니다. 둘 다 일본 제국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둘 다 조선인을 완전히 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둘 다 평가가 복잡하다.
민족주의 기준으로 보면 친일파다. 개인 인성 기준으로 보면 함부로 욕하기 어렵다. 시대적 현실 기준으로 보면 비극적 현실론자다.
정답은? 없다.
그냥 찝찝함을 견디면서 봐야 한다.
홍사익과 박중양
박중양과는 많이 다르다.
박중양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냉소가 강했고, 일본식 동화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인물이다. 글도 남기고, 말도 세고, 조선 혐오 냄새가 짙다.
홍사익은 다르다.
홍사익은 일본 제국에 충성했지만, 조선인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인임을 당당히 밝히라고 했다.
그러니까 박중양이 "조선은 답 없으니 일본화나 해라" 쪽이라면, 홍사익은 "나는 조선인이지만 일본 제국 군인이다" 쪽에 가깝다.
이 말 자체가 모순 덩어리다.
근데 식민지 시대가 원래 모순 덩어리였다. 그 모순을 몸으로 산 사람이 홍사익이다.
필리핀과 포로수용소
태평양 전쟁 말기 홍사익은 필리핀 방면에서 포로수용소 관련 책임을 맡았다.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연합군 포로들에 대한 학대, 굶주림, 의료시설 부족, 구타, 강제노동, 살해 등 각종 문제가 제기되었고, 홍사익은 포로수용소 책임자로서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다.
여기서 홍사익 개인이 직접 때리고 죽였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전쟁범죄에서 지휘관은 "나는 몰랐다"로 빠져나가기 어렵다. 부하가 저지른 짓이라도 지휘체계 안에 있으면 책임이 따라온다. 그게 지휘관이라는 자리다.
홍사익이 억울한 부분이 있었을 수는 있다. 조선인이라 일본군 안에서도 차별을 받았고, 실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포로수용소 책임자였다는 사실도 사라지지 않는다.
군대에서 계급은 권한이자 책임이다. 중장 계급 달고 있다가 일이 터지면 "저도 사실 힘이 없었어요"는 완전한 방패가 되기 어렵다.
전범재판
홍사익은 마닐라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그가 조선인이라는 점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미군 입장에서는 그는 일본군 장성이었다. 조선인이냐 아니냐보다, 일본군 포로수용소 책임자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변호인 측은 홍사익이 일본군 내부에서 차별받은 조선인이었고 실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내세우려 했지만, 검사 쪽은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군 장성으로 보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전승국 법정에서 홍사익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군이었다.
그는 "나는 무죄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사형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서도 비극이 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다. 대한제국 군인이 되려 했다. 일본군 장성이 되었다. 일본 패망 뒤에는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군 전범으로 죽었다.
인생 경로가 진짜 개같이 꼬였다.
최후
홍사익은 1946년 9월 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최후에는 성경을 읽어달라고 했고, 비교적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건 홍사익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비겁하게 발버둥치거나, 갑자기 독립운동가 코스프레를 하거나, "사실 나는 일본에 협력한 게 아니라 민족을 위해 위장한 것이다" 같은 구질구질한 변명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걸어온 길의 끝을 받아들인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더 찝찝하다.
악당이면 추하게 죽어야 독자가 편하다. 근데 홍사익은 그렇게 죽지도 않았다.
가족의 고통
홍사익 사후 가족들도 고통을 겪었다.
해방된 조선에서 일본군 중장의 가족이라는 딱지는 무거웠다. 아들은 한국은행에서 밀려났고, 가족들은 친일파 가족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이것도 식민지 엘리트의 끝이다.
본인은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인의 지위를 높이겠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제국이 망하자 그 경력은 조선 사회에서 독이 되었다.
일본 제국은 망했고, 조선은 해방됐고, 홍사익은 일본군 전범으로 죽었다. 남은 가족은 친일파 가족으로 찍혔다.
역사의 손절은 매우 빠르다.
친일파인가 아닌가
친일파는 맞다.
일본군 중장까지 지낸 사람을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는 건 무리다. 광복군 합류 권유를 거절했고, 일본군 제복에 충성한다는 태도를 보였으며, 일본 제국 전쟁 체제 안에서 고위 장교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를 박중양이나 일반적인 매국형 친일파와 같은 칸에 넣고 끝내는 것도 부정확하다.
홍사익은 조선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조선인이 제국 안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봤다. 일부 상황에서는 조선인들이 무시당하지 않게 한 흔적도 있다.
그래서 홍사익은 친일파이면서도 조선인 정체성을 끝까지 들고 간 사람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식민지 시대는 원래 말이 안 된다.
평가
홍사익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매국노로만 쓰기에도 아깝다. 아깝다는 말이 미화는 아니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는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군 장성이 되었고, 일본군 장성으로 죽었다. 하지만 일본인이 되지는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자의식은 끝까지 유지했다.
이게 홍사익의 핵심이다.
그는 조선 독립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인이 존중받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과 포로수용소 책임이라는 지옥으로 이어졌다.
즉 홍사익은 인간적으로는 함부로 욕하기 어렵지만, 역사적으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람은 훌륭했을 수 있다. 군인은 충직했을 수 있다. 조선인이라는 자부심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일본 제국 군복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게 문제다.
한줄요약
조선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채 일본군 중장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그 제복 때문에 일본군 전범으로 죽은 식민지 시대 최상급 회색지대 인간.
디시식 요약
조선인이라고 숨기진 않았고, 창씨개명도 안 했고, 동족 무시당하는 것도 싫어했는데, 하필 인생 직업이 일본군 중장이라 최종 엔딩이 마닐라 교수대가 된 존나 복잡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