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줍잖게 깝치다가는 싸구려 칠레산 홍어를 처먹게 될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 아들들이 '조'단위로 해쳐먹은 사건을 말한다
ㄴ 정확히는 조 단위 비리로 확인된 사건은 아니다. 김대중의 세 아들인 김홍일·김홍업·김홍걸이 서로 다른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당시 언론과 정치권에서 홍삼트리오라는 조롱을 들은 것을 묶어 부르는 표현이다. 특히 2002년에는 차남 김홍업과 3남 김홍걸이 잇달아 구속·기소되면서 김대중 정부 말기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 논란으로 번졌다. 장남 김홍일의 나라종금 관련 알선수재 사건은 이후 별도로 재판이 진행돼 2006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깨끗할거라고 광고하며 집권하던 민주정부마저 이지경이 나자 사람들의 분노가 상당히 컸음
적당히 솜방망이 처벌하고 대충 넘어가서 애들은 지금도 떵떵거리고 잘 산다
정치한다고 나온다는 애도 있고
왜 홍삼비리냐하면 김대중 애들 3명이 죄다 해쳐먹다 걸렸는데
얘네 이름이 '홍'자 돌림임(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다른 말로 홍삼트리오라고도 한다.
이 일 터지고 새천년민주당은 지지율이 급락하여 한나라당에게 정권이 넘어갈뻔 했다. 정몽준이 뻘짓한 덕에 노무현이 기적의 역전 드라마를 찍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숨 돌리긴 했지만.
그런데 이지랄을하고도 2005년 사면받고 바로 나와서 한놈은 얼굴에 철판떼기를 둘렀는지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서 당선됨
ㄴ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차남 김홍업이다. 김홍업은 2003년 대법원에서 알선수재·조세포탈 등으로 징역 2년,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이 확정됐고[1] 2005년 6월 30일 형기의 상당 부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2] 이후 같은 해 8·15 특별사면 대상에도 포함됐다.[3]
ㄴ 정확히는 전남 무안·신안 선거구. 2007년 4월 25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2만4053표, 49.7%를 얻어 당선됐다.[4]
부패짓거리 하다 죗값도 제대로 안치르고 나왔는데 그걸 이번엔 국회의원까지 뽑아줘서 의원방패까지 안겨주는거보면
섬노예와 무안단물 사이비종교로 유명하던 저동네의 미개력에
헬조선 불지옥의 온도가 막 샘솟는듯하다.
ㄴ 당시에도 이 공천과 당선을 두고 지역주의·DJ 후광을 등에 업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꽤 거셌다. 실제 선거 직전 현지 취재에서도 비리 전력을 문제삼는 주민 반응과 "그래도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반응이 함께 나왔다.[5] 다만 선거구 주민 전체를 범죄나 다른 지역 사건과 묶어 싸잡아 설명하는 건 사실관계와는 별개 문제다.
현재까지도 타지역 사람들 취업미끼로 사기쳐서 유인하거나 잡아다가 섬에 가둬놓고 농장노예 염전노예 섬노예 부려먹다가 죽이는 짓거리 반복하면서 그게 또 외부에 알려져봐야 쉴드치고 전라도 지역 담당하는 광주의 우덜판사는 법 씹고 면죄부 주며 쉬쉬하는 미개짓거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미 저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음 ㅇㅇ
ㄴ 이 문단은 홍삼비리와 직접 관련 없는 별도 사건들을 지역 단위로 한꺼번에 묶은 내용이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실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을 김홍업 당선이나 홍삼비리의 원인·결과처럼 연결할 근거는 없다.
그런데 김홍걸 더불어터진당에서 제명당했다.
ㄴ 이건 2020년 당시에는 맞는 말이다. 김홍걸은 2020년 4·15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뒤 재산신고 누락 문제가 터져 같은 해 9월 18일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됐다.[6] 다만 이후 2023년 7월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으므로 현재까지 제명 상태인 것은 아니다.[7]
정확히 뭐가 터졌나
이른바 홍삼비리 또는 홍삼트리오는 정식 사건명이 아니다. 김대중의 세 아들 이름이 모두 `김홍○`이었던 데서 나온 당시 정치권·언론·인터넷의 별명으로, 세 사람의 사건도 각각 다르다. 특히 2002년 한 해에 차남 김홍업과 3남 김홍걸이 잇따라 구속되면서 "대통령 아들 비리"가 김대중 정부 말기의 최대 악재 가운데 하나가 됐다.
장남 김홍일
김홍일은 동교동계 정치인으로 이미 국회의원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원문의 표현처럼 2002년에 동생들과 동시에 잡혀간 것은 아니고,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해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등의 대가로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나중에 기소됐다.
2006년 9월 28일 대법원은 김홍일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5000만원을 확정했다.[8]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서 당시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직도 상실했다.
2007년 2월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됐다.[9]
김홍일은 이후 파킨슨병 등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2019년 사망했다.
차남 김홍업
홍삼비리에서 제일 크게 터진 사람.
김홍업은 당시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여러 기업의 청탁과 관련해 측근을 통해 거액을 받은 혐의와 증여세 포탈 등으로 2002년 구속기소됐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기업체들의 각종 이권청탁과 관련된 돈을 측근들과 함께 받은 사실 등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2003년 5월 징역 2년,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을 확정했다.[1]
당시 재판부도 "대통령 아들이라는 특수신분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취지로 상당히 세게 깠다.
김홍업은 재판과 건강문제로 형집행정지를 거친 뒤 다시 수감됐고 총 1년 6개월가량 복역하다 2005년 6월 가석방됐다.[2] 같은 해 8월 특별사면까지 받았다.
그리고 2년도 안 지난 2007년 민주당이 김홍업을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전략공천했다.[10]
결과는 49.7% 득표로 당선.
비리로 실형까지 살았던 전직 대통령 아들을 다시 공천한 민주당도 욕먹었고, 그걸 당선시킨 선거 결과도 전국적으로 말이 많았다.
다만 오래 가진 못했다. 이듬해인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무안·신안에 다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3남 김홍걸
김홍걸은 2002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됐다.
최규선은 김대중 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사업가로,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김홍걸과의 친분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터졌다. 최규선의 전 비서와 관련자들의 폭로를 계기로 사건이 커졌고 김홍걸은 미국에서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11]
1심에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청탁 등의 대가로 기업들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6000만원을 선고받았다.[12]
즉 김홍업은 실형, 김홍걸은 집행유예였고 둘을 그냥 똑같이 "감옥 살다 사면됐다"라고 하면 약간 다르다.
김홍걸 역시 2005년 8·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3]
'조 단위로 해먹었다'는 말
원문 첫 문장에 있는 아들들이 조 단위로 해먹었다는 내용은 과장이다.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김홍일은 1억5000만원 알선수재, 김홍업은 기업체 청탁 관련 수십억원대 금품 및 조세포탈 문제, 김홍걸 역시 최규선 게이트에서 수십억원대 금품 의혹과 일부 유죄가 인정된 사건이었다.
당시 김홍걸 사건의 1심 보도에서는 검찰이 타이거풀스와 성전건설 등에서 청탁과 함께 36억9000만원 상당의 돈과 주식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보도했다.[13]
김홍업 사건 역시 검찰은 기업체에서 이권청탁 명목으로 약 25억원을 받고 대기업 정치자금 등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지만 대법원에서 인정된 범죄수익과 추징금은 이보다 좁아졌다.[1]
따라서 세 사람의 각종 의혹·정치자금·청탁금을 전부 어떻게 더해도 조 단위 비리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비리 자체가 작은 사건이었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당시 대통령의 친아들 둘이 같은 해에 잇따라 구속되고 장남까지 별도 사건으로 결국 유죄가 확정됐으니 정치적 파괴력은 금액 이상이었다.
김대중 정부에 미친 영향
2001~2002년 김대중 정부 후반에는 이미
- 이용호 게이트
- 진승현 게이트
- 최규선 게이트
- 대통령 아들 비리
- 각종 권력형 로비 의혹
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거기에 김홍업과 김홍걸까지 구속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김대중은 2002년 6월 두 아들의 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거의 동시에 사법처리되는 광경이 나왔으니 민주당 입장에서도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원문처럼
홍삼비리 때문에 한나라당에게 거의 정권을 빼앗길 뻔했는데 정몽준이 뻘짓해서 노무현이 이겼다
하나로 2002년 대선을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대선에는 후보단일화, 행정수도 이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병풍 논란과 그 후폭풍, 세대별 투표성향 등 수많은 변수가 얽혀 있었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의 각종 권력형 비리와 대통령 아들 문제 때문에 여당 후보였던 노무현이 현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2005년 사면 논란
김홍업과 김홍걸은 2005년 8월 노무현 정부의 광복 60주년 특별사면에 포함됐다.
법무부는 당시 일반 형사범, 선거사범, 정치인 등을 포함해 총 422만여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사면을 실시했다.[3]
김홍업은 특별사면 직전인 6월 이미 가석방된 상태였다. 김홍걸은 집행유예 상태였다.
당연히
전직 대통령 아들 비리범을 같은 민주진영 정부가 사면해주는 게 맞냐
는 논란이 일었다.
특히 김홍업은 사면 뒤 불과 2년 만에 민주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사면 논란이 다시 소환됐다.
김홍걸의 정치 입문과 또 다른 논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3남 김홍걸까지 정치인이 됐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출마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런데 총선 재산신고와 이후 국회 재산신고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배우자 명의 부동산 등을 빠뜨려 재산을 축소 신고했다는 문제가 터졌다. 총선 당시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분양권 등이 누락된 사실도 드러났다.[14]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9월 18일 김홍걸을 제명했다.[6]
검찰도 김홍걸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했다. 2021년 2월 법원은 재산신고 누락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15]
공직선거법상 벌금 100만원 이상이어야 의원직을 잃기 때문에 국회의원직은 유지했다.
원문 마지막의
그런데 김홍걸 더불어터진당에서 제명당했다
에서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이후 또 반전이 있었다.
2023년 민주당이 김홍걸의 복당을 추진했다. 대북 소금지원 사업 보조금 유용 의혹 때문에 한 차례 결정을 미뤘지만, 당 자체 조사에서 김홍걸이 보조금 유용에 관련됐다고 볼 정황과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2023년 7월 7일 복당을 최종 의결했다.[7]
따라서 김홍걸은 제명 약 3년 만에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갔다.
21대 국회의원 임기는 2024년 5월 종료됐고 이후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다.
홍삼트리오 이후
세 형제의 이후 행적도 제각각이다.
김홍일은 나라종금 사건 유죄 확정으로 2006년 의원직을 잃었고 2007년 특별사면·복권됐다. 이후 파킨슨병 등으로 투병하다 2019년 사망했다.
김홍업은 2005년 가석방·특별사면 뒤 2007년 무안·신안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으나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면서 국회를 떠났다.
김홍걸은 오히려 가장 늦게 정치권에 들어와 2020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고, 재산축소 신고 문제로 민주당에서 제명됐다가 2023년 복당했다.
그러니까 원문 작성 당시
정치한다고 나온다는 애도 있고
라고 써놓은 것은 나중에 세 명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발을 걸친 셈이 됐다. 장남 김홍일은 원래 정치인이었고, 차남 김홍업은 국회의원까지 했으며, 3남 김홍걸도 결국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정리
이름이 비슷해서 세 사건이 자주 한 덩어리로 기억되지만 대략 이렇게 구분하면 된다.
| 인물 | 주요 사건 | 확정된 주요 처벌 | 이후 |
|---|---|---|---|
| 김홍일 | 나라종금 알선수재 |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5000만원 |
2006년 의원직 상실 2007년 사면·복권 2019년 사망 |
| 김홍업 | 기업체 이권청탁 알선수재·조세포탈 등 | 징역 2년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 |
2005년 가석방·사면 2007년 무안·신안 국회의원 당선 |
| 김홍걸 | 최규선 게이트 |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6000만원 |
2005년 사면 2020년 국회의원 당선 |
| 김홍걸 | 2020 총선 재산축소 신고 | 벌금 80만원 | 민주당 제명 후 2023년 복당 |
결국 홍삼비리라는 하나의 사건이 따로 존재했다기보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각각 비리에 연루돼 유죄판결까지 받으면서 생긴 정치적 멸칭에 가깝다.
각주
- ↑ 1.0 1.1 1.2 서울신문, 김홍업씨 징역2년 원심 확정
- ↑ 2.0 2.1 매일신문, 김홍업·김운용씨 30일 가석방
- ↑ 3.0 3.1 3.2 법무부, 광복60주년 경축 특별사면
- ↑ 동아일보, 4·25 재보선 결과
- ↑ 동아일보, 무안·신안 재보선 현지 분위기
- ↑ 6.0 6.1 연합뉴스, 민주당 김홍걸 제명
- ↑ 7.0 7.1 연합뉴스, 민주당 김홍걸 복당 의결
- ↑ 동아일보, 김홍일 의원 의원직 상실
- ↑ 연합뉴스, 주요 특별사면·복권 일지
- ↑ 동아일보, 김홍업 무안·신안 보선 출마선언
- ↑ 연합뉴스, 김홍걸씨 극비귀국
- ↑ 동아일보, 김홍걸씨 집행유예 3년
- ↑ 동아일보, 김홍걸씨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 ↑ 연합뉴스, 김홍걸 분양권 누락 재산신고
- ↑ 연합뉴스, 김홍걸 재산 축소신고 1심 벌금 8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