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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23일 (토) 23:38 판 (새 문서: {{정치}} {{경제}} {{독재}} {{헬잘알}} {{진지병 걸린 노잼문서}} '''개발독재'''는 독재정권이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국가 주도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밀어붙이는 체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주의는 나중에 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는 논리다. 이 말 자체는 꽤 그럴듯하다. 진짜로 못사는 나라에서는 자유, 인권, 선거 이전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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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관련 문서입니다

선거는 장식이고, 반대파는 오류 메시지이며, 국민은 국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갈려나가는 그 세계를 다룹니다.
개발독재, 군사정권, 장기집권, 권위주의 체제 관련 문서에 사용합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압니다.
한국의 힘든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인물이나 외국인입니다.
진지병 걸린 노잼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드립보다 설명이 많고, 웃기기보다는 이해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재미는 좀 없을 수 있으나, 대충 넘기면 나중에 더 헷갈립니다.

개발독재는 독재정권이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국가 주도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밀어붙이는 체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주의는 나중에 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는 논리다.

이 말 자체는 꽤 그럴듯하다. 진짜로 못사는 나라에서는 자유, 인권, 선거 이전에 밥, 도로, 전기, 학교, 병원이 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독재자들이 이 논리를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다.

경제개발 한다고 언론 막고, 야당 패고, 노동자 갈아넣고, 선거 조작하고, 반대파 잡아가도 전부 “국가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포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개발독재는 성공하면 한강의 기적, 실패하면 그냥 독재자 자기합리화 DLC다.

개요

개발독재는 주로 후발 산업국가에서 나타난다.

이미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시민사회, 자본, 제도, 산업 기반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 하지만 가난한 후발국은 돈도 없고, 기술도 없고, 인프라도 없고, 관료제도 약하고, 국내 자본가도 부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말한다.

“시장에 맡기면 답이 없다. 내가 직접 한다.”

그래서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은행을 통제하고, 기업을 키우고, 노동자를 통제하고, 수출을 밀고, 교육을 확대하고, 도로와 항만을 깐다.

여기까지는 좋다.

근데 동시에 정치적 반대도 통제한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국론분열 하면 나라 망한다.” “민주주의는 배부른 다음에 하자.” “빨갱이들이 경제발전을 방해한다.”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개발독재 맛이 진해진다.

특징

개발독재의 특징은 대충 이렇다.

  • 강한 지도자
  • 강한 관료제
  • 국가 주도 산업정책
  • 수출 중심 경제성장
  • 노동 통제
  •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 교육 확대
  • 인프라 건설
  • 언론 통제
  • 야당 탄압
  • 반공 또는 국가안보 명분
  • 민주주의 후순위
  • 경제성장 성과로 정권 정당화

즉 경제는 미래를 향해 달리는데, 정치는 과거 군홧발을 신고 있는 상태다.

공장은 늘어나고, 고속도로는 깔리고, 수출액은 올라가는데, 신문은 검열당하고, 노동자는 두들겨 맞고, 야당 정치인은 끌려간다.

나라가 앞으로 가는 건 맞는데, 사람은 옆에서 갈려나간다.

왜 생기나

개발독재가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후발국 입장에서는 시간이 없다.

선진국은 이미 기술, 자본, 시장을 다 먹고 있다. 가난한 나라는 농업 중심이고, 산업 기반이 약하고, 외화도 부족하다. 그냥 시장에 맡기면 영원히 원자재나 팔고 살 가능성이 높다.

이때 강한 국가는 “우리가 뒤처졌으니 강제로 따라잡자”고 한다.

이 논리가 바로 개발독재의 출발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국가가 산업화를 이끈 사례는 많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은 국가 주도 개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문제는 경제개발을 한다고 해서 꼭 독재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개발독재 옹호자들은 자꾸 “독재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강한 국가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가 더 정확할 수 있다.

독재와 국가역량은 다르다.

독재자가 있다고 국가가 유능해지는 게 아니다. 그랬으면 북한은 벌써 초은하제국 됐어야 한다.

성공 조건

개발독재가 그나마 성공하려면 조건이 존나 까다롭다.

첫째, 관료제가 유능해야 한다. 둘째, 부패를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한다. 셋째, 지도자가 사리사욕만 챙기면 안 된다. 넷째, 교육과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다섯째, 기업을 키우되 성과를 요구해야 한다. 여섯째, 국제시장에 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일곱째, 미국이나 일본 같은 외부 시장과 기술 접근이 필요하다. 여덟째, 국민들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 조건 중 몇 개만 빠져도 개발독재는 그냥 독재가 된다.

많은 독재국가들이 “우리도 박정희처럼 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은 박정희가 아니라 그냥 동네 군벌 A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독재는 쉽다. 개발은 어렵다. 개발독재는 더 어렵다.

한국의 개발독재

한국에서 개발독재 하면 거의 자동으로 박정희가 나온다.

박정희 정권은 1960~70년대 산업화, 수출주도 성장, 중화학공업, 경부고속도로, 새마을운동 등을 밀어붙였다. 이 시기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한국은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했다.

이건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이 지금 먹고사는 기반 중 상당수는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공장, 도로, 항만, 수출기업, 중화학공업, 국가 관료제, 산업정책. 전부 이때 강하게 깔렸다.

근데 동시에 박정희 정권은 독재였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했고,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를 만들었고, 언론과 야당과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중앙정보부가 무섭던 시대였다. 대통령 욕 잘못하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끌려갔다.

그러니까 한국의 개발독재 평가는 늘 둘로 갈린다.

  • 경제성장 시킨 건 맞다.
  • 근데 민주주의를 박살낸 것도 맞다.

둘 중 하나만 말하면 반쪽짜리다.

박정희 평가가 끝나지 않는 이유

박정희 논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자유의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좋게 보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한국이 지금처럼 됐겠냐?”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경제성장했다고 사람 잡아간 게 정당화되냐?”

둘 다 일정 부분 맞다.

진짜 골치 아픈 건,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도 현실이고, 독재와 인권침해도 현실이라는 점이다.

역사는 디시 댓글창처럼 한 줄로 끝나지 않는다. “박정희 신”도 아니고, “박정희 악마”도 아니다. 그냥 한국 근대화의 가장 크고 찝찝한 덩어리다.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개발독재의 상징 같은 물건이다.

좋게 보면 농촌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동원해 지역 개발을 추진한 운동이다. 나쁘게 보면 박정희 정권의 관제 동원운동이다.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구호는 나쁘지 않다. 초가집 개량하고, 마을길 닦고, 농촌 소득 올리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근데 문제는 이게 자유로운 시민운동이 아니라 국가가 위에서 내려보낸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우리 마을 발전시키자”와 “야 전부 나와서 삽 들어” 사이의 경계가 애매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개발독재의 장단점이 한 번에 들어 있다.

성과도 있었다. 동원도 있었다. 농촌도 바뀌었다. 정권 홍보도 있었다.

뭐 하나만 말하면 거짓말이다.

대만

대만도 개발독재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국민당 정권은 중국 대륙에서 밀려난 뒤 대만에서 권위주의 통치를 했다. 계엄령이 길게 이어졌고,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토지개혁, 교육 확대, 수출산업 육성, 중소기업 성장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뤘다.

대만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권위주의 개발국가에서 민주화로 넘어간 사례다.

즉 개발독재가 영원히 독재로 남지 않고, 일정 시점에서 민주화로 전환되면 그나마 해피엔딩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중에 민주화됐으니 괜찮다”가 아니다. 역사는 국가 단위로 보면 발전일 수 있지만, 개인 단위로 보면 인생 파괴다.

싱가포르

싱가포르도 자주 언급된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부패 적고 잘사는 도시국가로 만든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정치적 자유와 언론 자유가 제한적이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싱가포르는 개발독재라기보다는 권위주의적 개발국가에 가깝지만,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독재라도 일 잘하면 된다” 논리에서 자주 소환된다.

문제는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항구, 금융, 무역, 영어, 화교 네트워크, 작은 영토, 전략적 위치가 다 있었다. 이걸 아무 나라나 따라할 수 없다.

동네 구멍가게가 애플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하자”고 하는 느낌이다. 방향 참고는 가능하지만 조건이 너무 다르다.

르완다

요즘 개발독재 논의에서 자주 나오는 나라가 르완다다.

르완다는 1994년 집단학살 이후 나라가 완전히 박살났고, 폴 카가메 체제 아래에서 치안 안정, 행정력 강화, 경제성장, 도시 정비, 보건·교육 개선 등을 추진했다.

실제로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치안이 좋고, 행정이 강하며, 성장률도 높은 나라로 평가받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르완다 경제는 2024년에 8.9% 성장했다.

근데 정치적으로는 매우 빡세다.

카가메와 RPF는 장기집권 중이고, 반대파와 언론에 대한 억압 논란이 크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르완다의 감시, 협박, 구금, 고문, 반대파 탄압 문제를 계속 지적한다.

즉 르완다는 현대판 개발독재 실험장 같은 나라다.

좋게 보면 집단학살 이후 국가 재건 성공사례. 나쁘게 보면 깨끗한 거리와 높은 성장률 뒤에 정치적 침묵이 깔린 나라.

한국인이 보면 묘하게 익숙하다. 전쟁과 학살의 폐허, 강한 국가, 개발계획, 새마을운동식 공동체 동원, 민주주의 후순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맛이다.

중국

중국도 개발독재 논의에서 빠질 수 없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에서 개혁개방 이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 수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세계의 공장이 되었으며, 이제는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한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어 있고, 언론과 인터넷은 통제되며, 반체제 인사와 소수민족 문제도 심각하다.

중국식 모델은 개발독재의 최종보스 비슷하다.

경제성장 규모는 미쳤다. 근데 통제 규모도 미쳤다. 시장경제를 쓰는데 공산당이 위에 앉아 있다. 자본주의 엔진에 레닌주의 핸들을 꽂은 괴상한 차량이다.

문제는 이 모델이 너무 강력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중국 봐라, 민주주의 없어도 성장 가능하다”고 한다.

근데 중국은 인구, 시장, 역사, 국가 규모가 너무 특수하다. 따라하려다 그냥 빚만 쌓이고 감시국가만 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개발독재라는 착각

사람들은 성공한 사례만 본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 르완다 같은 사례를 보면서 “독재가 성장에 좋을 수도 있네?”라고 생각한다.

근데 실패한 개발독재는 훨씬 많다.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동남아시아에는 수많은 독재자가 있었다. 그들도 다 발전을 말했고, 국가를 말했고, 안보를 말했고, 민족을 말했다. 결과는 부패, 빈곤, 내전, 부채, 족벌정치, 자원 약탈인 경우가 많았다.

독재자가 경제성장을 약속한다고 진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카지노에서 딴 사람 사진만 보고 들어가면 망한다. 개발독재도 비슷하다. 성공사례만 보면 그럴듯한데, 실패사례까지 보면 그냥 위험한 도박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개발독재 논쟁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다.

개발독재 옹호자들은 말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사치다. 먼저 경제부터 키워야 한다.”

반대자들은 말한다.

“독재는 부패와 권력남용을 낳고, 결국 경제도 망친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민주주의가 항상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선거만 한다고 공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재도 경제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30년 집권한다고 반도체가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국가역량, 제도, 교육, 시장 접근, 국제환경, 사회적 신뢰, 부패 통제, 정책 일관성이다.

민주주의냐 독재냐만으로 경제성장을 설명하려 하면 너무 단순하다.

노동자 갈아넣기

개발독재의 어두운 면 중 하나는 노동자 갈아넣기다.

빠른 산업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조합 탄압. 산업재해. 도시 빈민. 농촌 이탈. 여공들의 희생. 탄광과 공장의 죽음.

국가는 수출액 그래프를 보여주지만, 그 그래프 밑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깔려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기적은 진짜 기적이지만, 그 기적은 누가 공짜로 준 게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갈아 넣었다.

개발독재를 평가할 때 이걸 빼면 안 된다.

재벌과 개발독재

한국식 개발독재에서는 재벌이 핵심이었다.

국가는 특정 기업에 자금, 외화, 특혜, 보호를 몰아줬고, 대신 수출과 투자 성과를 요구했다. 잘하면 더 지원하고, 못하면 압박했다.

이 방식은 빠른 성장에는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재벌 중심 경제구조가 나중에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경제력 집중. 정경유착. 문어발 확장. 노동 탄압. 중소기업 종속. 총수 일가 세습.

개발독재는 기업을 키우지만, 동시에 괴물도 키운다.

처음에는 국가가 재벌을 부린다. 나중에는 재벌이 국가를 흔든다. 육성 게임인 줄 알았는데 보스몹을 키운 것이다.

안보 명분

개발독재는 안보 명분을 매우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북한과 반공이 핵심 명분이었다. 대만은 중국 공산당과의 대립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의 생존 불안을 강조했다. 르완다는 집단학살 재발 방지를 명분으로 강한 통치를 유지한다.

안보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독재정권이 이걸 너무 잘 써먹는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주의 하면 적이 좋아한다.” “야당은 국가를 흔든다.” “언론 자유는 안보를 해친다.” “시민단체는 외세의 앞잡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개발독재에서 그냥 독재로 넘어가기 쉽다.

안보는 중요하다. 근데 안보가 모든 자유를 먹어치우는 순간, 국가는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국민 위에 올라탄다.

개발독재의 장점

개발독재의 장점은 있다.

  • 빠른 의사결정
  • 정책 일관성
  • 장기계획 추진
  • 인프라 집중 투자
  • 관료제 동원
  • 자본 집중
  • 단기 정치 인기보다 산업정책 우선
  • 국가적 목표 설정

민주주의에서는 선거마다 정책이 흔들릴 수 있고, 이해관계자들이 반대하면 사업이 지연된다. 개발독재는 그런 걸 힘으로 밀어붙인다.

고속도로를 깔고, 공단을 만들고, 수출산업을 키우고, 농촌을 동원하는 데에는 확실히 속도가 난다.

문제는 빠른 차가 항상 좋은 차는 아니라는 점이다.

브레이크 없는 트럭도 빠르다. 근데 사람 치고 절벽으로 떨어진다.

개발독재의 단점

단점은 더 크다.

  • 인권 탄압
  • 언론 통제
  • 야당 탄압
  • 노동권 억압
  • 고문과 감시
  • 정경유착
  • 부패 은폐
  • 권력 세습 위험
  • 지도자 우상화
  • 정책 실패 수정 어려움
  • 국민을 수단으로 보는 사고방식

민주주의의 장점은 시끄럽다는 데 있다.

시끄럽다는 건 누군가 반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할 수 있다는 건 정책 실패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독재는 조용하다. 근데 너무 조용하면 나라가 망하는 소리도 안 들린다.

개발독재가 위험한 이유

개발독재가 위험한 이유는 성공해도 위험하고 실패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그냥 독재다. 성공하면 독재자가 신이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은 말한다.

“그래도 먹고살게 해줬잖아.”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너무 강해지면 독재자의 모든 죄가 경제성장으로 세탁된다.

사람 잡아간 것도 성장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언론 막은 것도 성장 때문에 어쩔 수 없고, 노동자 탄압한 것도 성장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장기집권한 것도 성장 때문에 어쩔 수 있었다고 말하게 된다.

이러면 역사가 회계장부가 된다.

GDP 올랐으니 인권침해 비용 처리 완료. 이건 너무 잔인한 계산법이다.

민주화가 중요한 이유

개발독재가 그나마 좋게 평가받으려면 결국 민주화로 넘어가야 한다.

한국과 대만이 그나마 성공사례로 불리는 이유는 경제성장만 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민주화까지 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이 아직도 유신체제였으면? 아무리 삼성 있고 현대차 있어도 그냥 잘사는 독재국가다.

경제성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끝이 시민의 자유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성장은 국가의 덩치만 키운 것이다.

배부른 노예가 되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

개발독재 옹호론

개발독재 옹호론은 대충 이런 식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사치다.” “국민 수준이 낮으면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선진국도 처음부터 민주주의였던 건 아니다.” “박정희가 없었으면 한국은 지금도 가난했다.” “카가메가 없었으면 르완다는 다시 내전 났다.” “중국 봐라. 민주주의 없어도 성장한다.”

이 말들 중 일부는 현실을 찌른다.

진짜로 가난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취약할 수 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선거만 이용해 나라를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강한 국가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강한 국가가 필요한 것과 독재자가 필요한 것은 다르다.

국가는 강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은 견제받아야 한다. 이 두 개를 구분 못 하면 독재자에게 나라를 헌납하게 된다.

개발독재 비판론

비판론은 이렇게 말한다.

“독재는 발전의 조건이 아니라 위험요소다.” “경제성장은 국민 희생과 국제환경 덕분이지 독재자 은혜가 아니다.” “권력 견제가 없으면 부패와 폭주를 막을 수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배부른 다음에 받는 보너스가 아니다.” “개발독재는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자원으로 본다.”

이 비판도 강하다.

특히 개발독재는 국민을 너무 쉽게 도구화한다.

노동자는 수출 전사. 농민은 식량 생산자. 학생은 산업 인력. 여성은 저임금 노동력. 국민은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부품.

개발독재의 언어는 늘 웅장하지만, 그 안의 개인은 작아진다.

한국식 결론

한국의 경우 개발독재는 부정하기도, 찬양하기도 어렵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은 분명했다. 그 시대의 억압도 분명했다.

한국은 개발독재를 통해 산업화의 기반을 깔았고, 이후 민주화와 세계화를 거치며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중요한 건 한국이 개발독재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한국이 계속 유신체제였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었다. 경제는 커졌을지 몰라도, 문화와 시민사회와 창의성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K팝, 영화, 게임, IT, 스타트업, 시민운동, 언론, 인터넷 문화. 이런 건 군홧발 밑에서는 오래 못 큰다.

한국이 진짜 대단한 건 개발독재만 해서가 아니라, 그걸 결국 민주화로 넘어섰다는 데 있다.

르완다의 과제

르완다 같은 나라의 과제도 결국 비슷하다.

카가메 체제가 국가를 안정시키고 성장시킨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체제가 언제, 어떻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넘길 수 있느냐가 진짜 시험이다.

개발독재의 마지막 시험은 경제성장이 아니다.

권력자가 스스로 내려올 수 있느냐다.

이걸 못 하면 개발독재는 그냥 장기독재가 된다.

박정희도 결국 스스로 내려오지 않았다. 총 맞고 끝났다. 이게 개발독재의 무서운 결말이다.

한줄평

개발독재는 가난한 나라가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위험한 압축파일이다.

잘 풀리면 산업화, 교육 확대, 인프라 건설, 국가역량 강화가 나온다. 잘못 풀리면 고문, 부패, 장기집권, 우상화, 국민 갈아넣기가 나온다.

그리고 보통 둘 다 나온다.

디시식 요약

독재자가 “민주주의는 나중에 하고 일단 경제부터 키우자”고 국민 갈아넣는 체제. 성공하면 박정희·리콴유 소리 듣고, 실패하면 그냥 국민 패는 병신 독재자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