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대동맥인 만큼 확장된 구간이 많아서 차선 좁은 다른 고속도로에서 달리다가 수도권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오면 갑자기 길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차가 안 막힐 때 이야기다.
| 파일:AH1.svg 파일:Expressway No.1.svg | |
| 경부고속도로 京釜高速道路 Gyeongbu Expressway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 아시아 하이웨이 | |
| 도로 정보 | |
| 노선 번호 | 고속국도 제1호선 아시아 하이웨이 제1호선 |
| 기점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
| 종점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
| 착공 | 1968년 2월 1일 |
| 전 구간 개통 | 1970년 7월 7일 |
| 총연장 | 약 415km[1] |
| 관리 | 한국도로공사 |
| 기점 연결로 | 구서지하차도 |
| 종점 연결로 | 경부간선도로 |
| 포장 | 아스팔트, 콘크리트 |
| 차로수 | 구간에 따라 왕복 4~12차로 |


개요
갓한민국의 수도와 최대 항구를 잇는 갓-속도로. 공식 명칭은 고속국도 제1호선 경부선이며 부산 금정구에서 서울 서초구까지 이어진다.[2]
대한민국 고속도로의 상징 같은 존재이자 번호부터 1번이다. 아시아 하이웨이 AH1의 일부이기도 하다.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전 구간이 개통됐다. 개통 당시 길이는 428km였으며 불과 2년 5개월 동안 연인원 약 892만 명, 장비 약 165만 대, 공사비 429억 원을 투입해 완성했다.[3]
지금은 노선 개량과 직선화, 서울 시내 구간의 고속국도 지정 해제 등으로 공식 연장이 약 415km 수준으로 줄었다.[1]
한국 현대사에서 산업화의 상징으로 취급되는 동시에, 건설 과정의 졸속 시공과 노동자 희생, 수도권·경부축 집중을 둘러싼 논쟁까지 붙어 있는 도로다. 그래서 이 문서도 도로 문서인지 현대사 키배 문서인지 가끔 헷갈린다.
건설을 둘러싼 논쟁
경부고속도로를 이야기하면 반드시 나오는 떡밥이 야당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다.
김영삼과 김대중 등 당시 야당 인사들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고속도로 지을 돈으로 쌀이나 사먹자 같은 한 줄짜리 이야기로 전부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당시 반대 논리는 사업비가 국가 재정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충분한 경제성 조사와 계획 없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 철도나 다른 지역의 교통망을 먼저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점, 경부축에 개발이 지나치게 집중될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당시 학계에서도 수도권과 대도시 집중을 우려하는 의견이 있었다.[4]
ㄴ 사실 당시만 해도 자가용 보급률이 지금과 비교하면 북괴 수준으로 미미했기 때문에 당장 승용차 타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저걸 누가 쓰냐?라는 생각이 들 법했다.
ㄴㄴ 당장 자가용이 몇 대 있느냐만 가지고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것은 반쪽짜리 이야기다. 도로는 개인 승용차뿐 아니라 화물 운송, 버스, 지역 간 이동, 산업단지와 항만의 연결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서울~부산 이동에 약 16시간이 걸렸지만 개통 후 5시간 35분 수준으로 단축됐고, 화물수송 구조가 철도 중심에서 도로 중심으로 크게 이동했다.[4]
ㄴ 조선 포장도로 떡밥은 한물 간지 오래다. 전근대 동아시아 도로 대부분이 현대식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던 것도 아니었고, 핵심은 도로망 자체와 지속적인 유지관리였다. 조선의 도로 문제를 현대식 포장도로가 없었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다.
여기에 당시 한국은 돈도 기술도 존나 부족했다.
경부고속도로 예상 공사비는 국가 예산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정부 내부에서도 사업비와 건설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지금 보면 서울하고 부산 잇는 고속도로 하나 짓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했냐 싶지만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몇백 달러 수준이었던 나라였다.
그래서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그냥 도로 하나 까는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을 걸고 도박하는 사업에 가까웠다.
영동축을 먼저 지어야 했다는 주장
당시에는 강원도 무연탄 수송과 국토 균형개발 등을 이유로 영동축 등의 교통망을 먼저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했다.
ㄴ 근데 영동 쪽으로 도로망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당시 강원도에서 무연탄이 많이 생산되고 있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뜬금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다만 대량의 석탄 운송은 철도가 훨씬 효율적이고, 당시 경부축에는 서울·대전·대구·부산이라는 대도시와 기존 경부선 철도축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부산항을 통한 수출을 고려하면 정부가 경부축을 우선한 데에는 충분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오늘날 결과만 놓고 보면 경부축이 한국 최대의 인구·산업축으로 성장했으므로 경부고속도로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결과가 성공했으니 당시 모든 비판은 병신이었다고 하는 것도 결과론이다.
김대중과 1번
2001년 고속도로 노선번호 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기존 번호들이 대거 변경됐다. 현재 고속도로 번호는 대체로 남북축은 홀수, 동서축은 짝수를 사용하지만 경부고속도로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1번을 그대로 유지했다.
경부고속도로가 대각선으로 한반도를 관통하는 노선이라 현재의 단순한 남북·동서 번호 규칙으로 넣기도 애매하다.
현행 도로표지 지침에서도 경부선은 고속국도 제1호선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원거리 안내지명도 부산·대구·대전·서울로 지정되어 있다.[5]
조국 현대화의 1등 공신답게 영원한 1번.
역사
경부고속도로 이전부터 서울과 부산은 경부선 철도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196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철도의 여객·화물 수송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새로운 육상교통망의 필요성이 커졌다.
박정희는 1964년 서독 방문 당시 아우토반을 보고 고속도로 건설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정부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68년 2월 1일 서울~수원 구간의 기공식을 시작으로 공사가 시작됐고, 같은 해 12월 서울~수원 구간이 먼저 개통됐다. 1969년에는 오산~천안, 천안~대전, 대구~부산 등이 순차적으로 개통됐으며 가장 어려웠던 대전~대구 구간이 1970년 7월 7일 완성되면서 전 구간이 이어졌다.[4]
- 1968년 2월 1일 : 착공
- 1968년 12월 21일 : 서울~수원 구간 개통
- 1969년 9월 29일 : 오산~천안 구간 개통
- 1969년 12월 10일 : 천안~대전 구간 개통
- 1969년 12월 29일 : 대구~부산 구간 개통
- 1970년 7월 7일 : 대전~대구 구간 개통, 전 구간 완성[4]
한국 경제 성장 특유의 빨리빨리는 이때부터 이미 풀악셀이었다.
2년 5개월 만에 428km짜리 고속도로를 뚫었으니 속도 하나는 미친 수준이었지만 그 대가도 컸다. 공사 과정에서 7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금강휴게소 인근에는 이들을 기리는 순직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4]
특히 대전~대구 구간은 산악지대를 통과하면서 터널과 교량, 대규모 발파공사가 필요했던 최대 난공사 구간이었다.
당시 부족한 기술과 장비, 살인적인 공기 때문에 개통 초기 도로 품질에도 문제가 있었다. 개통 후 지속적인 보수와 선형개량, 확장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모습과 사실상 다른 도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뜯어고쳐졌다.
원래는 대부분 왕복 4차로였지만 차량 증가가 미쳐돌아가면서 수도권을 시작으로 6차로, 8차로, 10차로, 12차로까지 계속 확장됐다.
1992년 양재~수원 구간 왕복 8차로 확장을 시작으로 1998년 청원~회덕, 2003년 동대구~구미, 2006년 동대구~영천과 구미~영동 등 여러 구간이 확장됐다.[4]
경제적 영향
경부고속도로의 가장 큰 변화는 서울과 부산 사이 이동시간을 박살내버린 것이다.
개통 전 약 16시간 걸리던 서울~부산 이동시간은 약 5시간 35분으로 줄었고 경부축이 사실상 하루 생활권이 되었다.[4]
도로를 따라 산업단지와 도시가 성장했고 화물차를 이용한 수송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잇는 축은 이후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산업·인구축으로 자리잡았다.[3]
그래서 경부고속도로 때문에 경제가 성장했다와 경제가 성장할 곳이었기 때문에 경부고속도로가 성공했다는 닭과 달걀 싸움이 지금도 계속된다.
현실적으로는 둘 다 맞다. 기존 경부축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로의 경제성이 높았고, 그 도로가 다시 경부축의 집중을 가속시켰다.
부산항 떡밥
경부고속도로 건설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부산항과 수도권·내륙 산업지역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부산이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한 역사는 경부고속도로보다 훨씬 오래됐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규모 항만시설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에도 주요 수출입항 역할을 했다.
따라서 1974년이 되어서야 부산항이 물류항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경부고속도로를 지을 때 부산항은 의미가 없었다는 식의 설명은 과장이다. 1970년대 부산항 개발사업은 기존 항구를 대규모 컨테이너·산업항으로 확대하는 과정이었다.
냉전기 한국의 주요 교역 상대가 일본과 미국 등 태평양권 국가였다는 점에서도 부산 방향 물류망의 중요성은 컸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개발 사업에 정치적·지역적 고려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경부고속도로 전체를 대구경북 챙기려고 만든 길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도로가 연결한 서울, 수도권, 대전, 부산과 당시 국내 산업·무역구조를 통째로 무시하는 이야기다.
정치적 목적 논란
공기가 지나치게 짧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보여주려 했던 정치적 목적이 거론되기도 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경부고속도로를 산업화의 대표 성과로 적극 홍보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는 사실과 도로 자체의 경제적 필요성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정치인이 내가 이거 만들었다고 선전했다고 해서 그 시설이 자동으로 쓸모없는 시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설이 성공했다고 정치적 계산까지 없었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현대사 떡밥은 늘 이런 식이다.
소개
ㄴ서울-대전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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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옥천-영동 구간
서울, 수도권 남부, 천안, 청주권, 대전, 김천, 구미, 대구, 경산, 경주, 울산권, 양산, 부산이라는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와 산업지역을 줄줄이 연결한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울산광역시 도심을 직접 통과하지 않고 울주군 언양 일대를 지나며 울산고속도로가 울산 시가지로 갈라져 나간다.
명절 때, 심지어 일반 주말에도 막힌다. 가장 악명 높은 구간은 서울~천안·대전권이다. 수도권 통근 교통량과 장거리 교통량이 한 도로에 섞여버리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특히 명절 때는 이용하지 마라.
인생의 다이나믹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똥 마려울 때 판교~수원 사이에 들어가보자.
경부고속도로와 본인의 괄약근 중 무엇이 먼저 뚫리는지 알 수 있다.
대전~대구
대전~대구 구간은 산악지대를 지나는 데다가 원래 선형이 상당히 구불구불했다.
특히 옥천군과 영동군 일대는 산과 금강을 따라가는 구간이 많다. 현재는 여러 차례 선형개량이 이루어져 개통 당시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원문의 육영수의 고향 옥천을 지나게 만들려고 일부러 도로를 꺾었다거나 박정희 고향 구미를 지나게 하려고 일부러 꺾었다는 설명은 명확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주장에 가깝다.
경부고속도로는 기존 경부축의 주요 도시와 산업지역을 연결하면서 당시 건설기술과 지형을 고려해 노선이 결정됐다. 지금 지도에 자를 대고 대전~대구 최단직선을 그은 뒤 왜 여기로 안 갔냐고 하는 것은 1960년대 토목기술과 비용 문제를 씹고 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경부고속도로는 산악지대를 더 직접 관통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에 비하면 터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지금의 기술이면 산을 뚫고 다리를 걸어서 훨씬 직선적으로 지을 수 있지만 당시 한국에게는 그런 돈도 기술도 없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옥천·영동 일대의 구불구불한 선형은 오랫동안 경부고속도로의 대표적인 사고 취약구간이었고 이후 개량이 계속됐다.
대구~언양
대구~영천~경주~언양 구간도 원래 선형이 상당히 오래돼 곡선과 경사가 많았다.
이후 대규모 확장 및 선형개량이 이루어져 과거의 왕복 4차로 꼬불꼬불 도로와 비교하면 많이 개선됐다.
상주영천고속도로 등 대체 노선까지 생기면서 경부고속도로만 죽어라 타야 했던 과거와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수도권 구간
경부고속도로에서 차가 가장 미쳐 돌아가는 곳.
천안부터 슬슬 수도권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안성, 오산, 동탄, 기흥, 수원, 용인, 분당·판교를 거쳐 서울로 들어간다.
도로 폭 자체도 넓어서 판교~서울톨게이트 일대에는 왕복 12차로에 달하는 구간도 있다.
그런데 넓히면 뭐하냐.
차가 그만큼 더 들어온다.
도로를 넓히자 자동차들이 어? 자리 생겼네? 하고 다시 들어와 채우는 유도수요의 실사판을 볼 수 있다.
동탄 지하화
예전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원래 대전 이북에는 터널이 없었지만 동탄구간 시가지연결을 위해 고속도로를 지하터널로 넣어버렸다. 상행선은 이미 공사가 완료되었고 하행선은 23년 연말에 완공된다.
현재는 이미 옛날 이야기다.
동탄신도시를 관통하던 경부고속도로를 직선화하면서 일부 구간을 지하화했고, 동탄~기흥동탄IC 구간은 2024년 3월 28일 양방향 개통됐다.[6]
국내 최초로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도로 본선을 지하화한 사례이며 지상 공간에는 공원과 도로 등을 조성해 동탄신도시의 동서 단절을 줄이는 사업이다.[6]
예전에는 동탄 가운데를 고속도로가 거대한 성벽처럼 갈라놓았는데 이제 자동차는 지하로 보내고 지상은 도시공간으로 돌려주는 셈이다.
이거 비슷한 걸 양재~한남 구간에서도 하자는 떡밥이 계속 나오지만 거기는 동탄보다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 이미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초과포화 도로에 공사를 해야 하니 삽 한번 잘못 뜨면 강남 교통이 그대로 지옥문을 연다.
볼 만한 거
전제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센트럴이나 고속터미널 쪽으로 올라갈 때.
본격적으로 도시가 빽빽해지는 것은 천안 이후이며 동탄부터는 수도권 특유의 아파트 숲이 시작된다.
촌놈들은 서울 갈 때 오른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안성까진 자다가 그쯤 되면 일어나서 창밖을 보면 킹울과 갓기도의 경치에 오줌을 지릴 것이다.
ㄴ 초딩 한정.
ㄴ 서울TG 전까지는 난개발과 아파트밖에 안 보인다는 반론도 있다.
기흥과 죽전을 지나면 분당의 고층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판교에 진입하면 판교테크노밸리의 기업 건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과거에는 아프리카TV 본사도 이 주변 경관의 단골 소재였다.
서울톨게이트는 이름과 달리 성남시에 있다.
처음 올라온 사람은 톨게이트에 대문짝만하게 SEOUL이라고 써있으니 이미 서울 들어온 줄 아는데 아직 경기도다.
서울이 넓어진 게 아니라 간판이 먼저 마중 나온 거다.
판교를 지나 금토동과 달래내고개를 넘으면 실제 서울특별시 서초구로 들어온다. 이후 양재 일대부터 교통량이 미쳐돌아가기 시작한다.
양재IC가 현재 법적인 경부고속도로 종점이며 그 북쪽 서초~반포~한남 구간은 일반적으로 경부고속도로라고 부르지만 도로법상으로는 서울특별시가 관리하는 경부간선도로다.
그러니까 한남대교까지 전부 경부고속도로라고 부르는 사람이 틀렸다고 하기도 뭐하고 맞다고 하기도 묘하다. 역사적으로는 경부고속도로였고 일상적으로도 그렇게 부르지만 법적 고속국도는 양재에서 끝난다.
한남대교 앞까지 올라가면 강물이 크ㅡ린한 한강의 위엄과 함께 서울 도심으로 이어진다.
버스전용차로
부산에서 출발하다가 대전 이후 서울 쪽으로 가다 보면 가장 왼쪽 차선에 파란 줄이 그어진 구간이 있는데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다.
경부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은 교통량이 워낙 많아 버스에 우선권을 주기 위한 전용차로제가 운영되고 있다.
고속버스 타고 오른쪽에 멈춰있는 승용차들을 구경하면서 슝 지나가면 개꿀이다.
다만 명절처럼 도로 전체가 멸망한 날에는 버스전용차로도 같이 막힌다.
ㄴ 아주 가끔은 버스전용만 더 막히는 기적도 일어난다.
금강휴게소
수도권 말고 지방 구간에서 볼거리 하나 꼽으라면 금강휴게소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옥천 구간의 금강 바로 옆에 지어진 휴게소로 경치가 매우 좋다.
보통 고속도로 휴게소가 화장실 가고 핫바 먹고 다시 출발하는 곳이라면 여기는 아예 금강 자체를 구경하러 들르는 사람도 있다.
근처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사망한 77명의 노동자를 추모하는 순직자 위령탑도 있다.[4]
경부고속도로의 관광지와 흑역사가 같은 동네에 붙어 있는 셈이다.
경유지
대표적인 주요 경유지는 다음과 같다.
부산광역시 → 양산시 → 울산광역시 울주군 → 경주시 → 영천시 → 경산시 → 대구광역시 → 칠곡군 → 구미시 → 김천시 → 영동군 → 옥천군 → 대전광역시 → 청주시 → 천안시 → 안성시 → 오산시 → 화성시 → 용인시 → 성남시 → 서울특별시
한국도로공사 기준 주요 분기점은 양산JC, 언양JC, 동대구JC, 도동JC, 금호JC, 김천JC, 비룡JC, 회덕JC, 청주JC, 남이JC, 천안JC, 안성JC, 동탄JC, 신갈JC, 판교JC 등이다.[2]
주요 나들목과 분기점은 다음과 같다.
| 번호 | 이름 | 지역 | 연결 도로·비고 |
|---|---|---|---|
| 1 | 구서IC | 부산 금정구 | 부산 시가지 연결 |
| 2 | 노포JC | 부산 금정구 |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
| 3 | 양산JC | 경남 양산시 | 중앙고속도로지선 |
| 4 | 양산IC | 경남 양산시 | |
| 5 | 통도사IC | 울산 울주군 | |
| 6 | 서울산IC | 울산 울주군 | |
| 7 | 언양JC | 울산 울주군 | 울산고속도로 |
| 8 | 활천IC | 울산 울주군 | |
| 9 | 경주IC | 경북 경주시 | |
| 10 | 건천IC | 경북 경주시 | |
| 10-1 | 영천JC | 경북 영천시 | 상주영천고속도로 |
| 11 | 영천IC | 경북 영천시 | |
| 12 | 경산IC | 경북 경산시 | |
| 13 | 동대구JC | 대구 동구 | 중앙고속도로 |
| 14 | 도동JC | 대구 동구 | 익산포항고속도로 |
| 16 | 북대구IC | 대구 북구 | |
| 17 | 금호JC | 대구 북구 |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
| 18 | 칠곡물류IC | 경북 칠곡군 | |
| 19 | 왜관IC | 경북 칠곡군 | |
| 20 | 남구미IC | 경북 구미시 | |
| 21 | 구미IC | 경북 구미시 | |
| 22 | 김천JC | 경북 김천시 | 중부내륙고속도로 |
| 22-1 | 동김천IC | 경북 김천시 | |
| 23 | 김천IC | 경북 김천시 | |
| 24 | 추풍령IC | 경북 김천시 | |
| 25 | 황간IC | 충북 영동군 | |
| 26 | 영동IC | 충북 영동군 | |
| 27 | 금강IC | 충북 옥천군 | 금강휴게소 |
| 28 | 옥천IC | 충북 옥천군 | |
| 29 | 비룡JC | 대전 동구 | 통영대전고속도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
| 30 | 대전IC | 대전 대덕구 | |
| 31 | 회덕JC | 대전 대덕구 | 당진영덕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지선 |
| 32 | 신탄진IC | 대전 대덕구 | |
| 33 | 남청주IC | 충북 청주시 | |
| 34 | 청주JC | 충북 청주시 | 당진영덕고속도로 |
| 35 | 남이JC | 충북 청주시 | 중부고속도로 |
| 36 | 청주IC | 충북 청주시 | |
| 36-2 | 옥산JC | 충북 청주시 | 옥산오창고속도로 |
| 37 | 목천IC | 충남 천안시 | |
| 38 | 천안JC | 충남 천안시 | 논산천안고속도로, 아산천안고속도로 |
| 39 | 천안IC | 충남 천안시 | |
| 39-1 | 북천안IC | 충남 천안시 | |
| 40 | 안성IC | 경기 안성시 | |
| 41 | 안성JC | 경기 안성시 | 평택제천고속도로 |
| 42 | 오산IC | 경기 오산시 | |
| 42-1 | 동탄JC | 경기 화성시 |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평택파주고속도로 |
| 43A | 기흥동탄IC | 경기 화성시·용인시 | |
| 43B | 기흥IC | 경기 용인시 | |
| 44 | 수원신갈IC | 경기 용인시 | |
| 45 | 신갈JC | 경기 용인시 | 영동고속도로 |
| TG | 서울TG | 경기 성남시 | |
| 47 | 판교IC | 경기 성남시 | |
| 48 | 판교JC | 경기 성남시 |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
| 48B | 대왕판교IC | 경기 성남시 | |
| 48-1 | 금토JC | 경기 성남시 | 용인서울고속도로 |
| 49 | 양재IC | 서울 서초구 | 경부고속도로 종점 |
나들목 번호가 좀 거지 같은데 일부는 번호가 비어있고 어디는 -1, -2까지 붙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2001년 번호 개편 당시 장래 나들목을 고려해 번호를 미리 비워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계획이 취소되거나 새로운 나들목과 분기점이 끼어들면서 번호가 꼬였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이
14 다음에 왜 16이냐? 15 어디 감?
하게 된다.
15는 집 나갔다.
박정희와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에서 박정희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업 추진 자체가 박정희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이었고 박정희 개인도 건설 과정에 강하게 관여했다. 경부고속도로는 이후 박정희 시대 산업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이 됐다.
반대로 이 때문에 정치성향에 따라 평가가 존나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박정희가 야당 반대 다 씹고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먹여살린 도로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제성 검토도 제대로 안 하고 노동자 갈아넣어 만든 독재정권의 전시행정이라고 한다.
현실은 늘 그렇듯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준비와 안전 문제에 대한 비판에는 근거가 있고 실제로 77명이 공사 중 목숨을 잃었다.[4] 동시에 고속도로가 이후 한국의 물류와 산업화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3]
공과 과가 같이 있는 사업이다.
둘 중 하나만 골라서 나머지를 없는 일처럼 만들면 그 순간부터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팬픽이 된다.
준공 50주년 기념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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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아 추풍령휴게소에 50주년 기념비가 설치되면서 정치권과 인터넷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기존 준공기념탑에는 박정희가 남긴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반면 새로 설치된 50주년 기념비에는 박정희의 이름이나 공적을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 없고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던 김현미의 이름이 들어가면서 일부 보수 성향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박정희의 과를 까려면 공도 인정해야지. 경부고속도로 추진에서 박정희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기념비에 현직 장관 이름을 넣었다고 곧바로 박정희의 공적 자체가 역사에서 삭제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정치판에 그런 차분한 설명이 먹힐 리가 없다.
기념비 훼손 사건
지사니뮤ㅠㅠ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020년 7월에는 추풍령휴게소의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에 새겨진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 문구를 누군가 반복해서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은색 물감이나 실리콘 등을 사용해 '장관 김현미' 부분을 가렸고 한국도로공사가 다시 복구하는 일이 반복됐다.
원문에서는 이를 열사들의 항거와 투쟁이라고 표현했지만 당연히 공공시설물을 마음대로 훼손하는 것은 그냥 시설물 훼손이다.
정치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고 비석에 실리콘 바르는 게 애국이면 전국의 낙서쟁이들이 독립운동가가 된다.
평가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현대사에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동시에 존나 많이 받는 시설이다.
경부고속도로 하나 깔아서 한국이 선진국 됐다는 식의 설명은 당연히 과장이다. 한국 경제성장은 교육, 수출산업, 노동력, 해외자본, 기업 성장, 국제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합쳐진 결과다.
반대로 어차피 경제성장할 나라였는데 도로 하나 무슨 의미냐라고 하는 것도 개소리다.
현대 산업국가에서 물류망은 그냥 옵션이 아니다.
1970년대 이후 경부축을 중심으로 제조업과 도시가 성장했고 물류비와 지역 간 이동시간이 크게 줄었다. 정부도 경부고속도로가 화물수송의 신속·대량화와 도시·산업단지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3]
문제는 성공이 너무 커서 경부축 집중이라는 부작용까지 같이 커졌다는 점이다.
서울-대전-대구-부산 축은 미친듯이 성장했지만 그 밖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성장의 과실을 덜 받은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경부고속도로의 최대 장점과 최대 단점이 사실 같은 말이다.
경부축을 존나 키웠다.
여담
-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징성이 큰 고속도로라 다른 노선 번호가 대대적으로 바뀐 뒤에도 1번을 유지했다.[5]
- 개통 당시에는 총연장 428km였지만 현재는 약 415km다.[3][1]
- 1968년 착공해 불과 2년 5개월 만에 완공됐다.[3]
- 건설 과정에서 7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4]
- 개통 전 약 16시간이 걸렸던 서울~부산 이동시간을 약 5시간 35분으로 줄였다.[4]
- 원래 대부분 왕복 4차로였지만 현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대 왕복 12차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 2024년 동탄 구간의 직선화·지하화가 완료되면서 국내 최초의 도심 고속도로 지하화 사례가 됐다.[6]
-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고속도로 중 하나인데 동시에 가장 막히는 고속도로 중 하나다. 차선을 늘리면 차도 늘어나는 기적.
- 명절 뉴스에서 헬기 띄우고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서있는 화면 나오면 높은 확률로 얘다.
- 수도권 구간은 그냥 도로라기보다 거대한 주차장과 고속도로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 1970년 7월 7일 전 구간 개통을 기념해 매년 7월 7일을 도로의 날로 기념한다.[3]
- 한국도로공사 공식 노선안내에서도 지금까지 노선번호 1 경부선으로 가장 먼저 나온다.[2]
각주
- ↑ 1.0 1.1 1.2 국토교통부 도로현황 자료에서는 경부선의 연장을 415.3km로 집계했다. 개통 당시 서울~부산 전 구간은 428km였다.
- ↑ 2.0 2.1 2.2 한국도로공사 노선안내
- ↑ 3.0 3.1 3.2 3.3 3.4 3.5 3.6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 '도로의 날' 기념식 개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7.7.
- ↑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국토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40년」,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0.7.6.
- ↑ 5.0 5.1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지침
- ↑ 6.0 6.1 6.2 「직선·지하화 동탄~기흥동탄 나들목, 3월 28일 05시 개통」, 국토교통부, 2024.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