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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아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성삼문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대표 인물이다.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 본관은 창녕 성씨다. 세종대왕 시절 집현전에서 일했고,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죽었다.

쉽게 말하면 조선 선비 충성심 풀강화 SSR 카드다. 권력자 앞에서 대가리 박고 사는 대신, "응 너 왕위 찬탈범"을 온몸으로 박아버린 인간이다.

세조 입장에서는 진짜 개빡쳤을 것이다. 죽이면 충신 되고, 살려두면 계속 자기 정통성에 침 뱉는 놈이다. 이런 인간은 권력자가 제일 싫어한다. 돈도 안 먹히고, 벼슬도 안 먹히고, 협박도 안 먹힌다. 그냥 답이 없다.

개요

성삼문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함께 사육신으로 불린다.

사육신은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 즉 세조에게 반대하여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여섯 신하들이다.

조선 역사에서 세조는 능력은 있었지만 왕위에 오른 과정이 진짜 더러웠다. 조카 왕 자리 뺏고, 반대파 조지고, 왕실 피바다 만들고, 그 다음에 "내가 왕이다" 한 놈이다. 정치력은 인정해도 도덕성은 계유정난 때 같이 칼 맞아 뒤진 수준이다.

성삼문은 그런 세조를 끝까지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세조가 용상에 앉아 있어도 성삼문 눈에는 그냥 조카 왕자리 빼앗은 숙부였다.

이게 바로 성삼문의 무서운 점이다. 현실 권력은 세조가 잡았는데, 명분 서버에서는 성삼문이 관리자 권한을 쥐고 있었다.

집현전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였다.

집현전은 세종대왕 시절 조선 최고의 엘리트 연구소였다. 지금으로 치면 왕실 직속 싱크탱크 + 국가정책연구원 + 국어학연구소 + 역사편찬위원회 + 고급 공무원 양성소를 한데 섞은 곳이다.

여기에 들어갔다는 건 그냥 글 좀 읽는 선비 수준이 아니라, 조선 상위권 지식인 서버에 접속했다는 뜻이다. 당시 집현전은 머리 좋은 놈들 데려다가 세종이 국정 운영에 갈아넣던 고급 인력풀이다.

성삼문은 여기서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냥 충성심만 높은 정신승리형 선비가 아니라,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쓰고 실무도 되는 인간이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스펙도 좋은데 신념까지 강한 놈이다. 이런 놈이 적이 되면 진짜 피곤하다. 무식한 놈은 무시하면 되는데, 똑똑한 놈이 목숨 걸고 개기면 권력자 입장에서는 위장이 뒤틀린다.

훈민정음

성삼문은 훈민정음과도 관련이 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훈민정음은 기본적으로 세종대왕이 친히 만든 문자다. 집현전 학자들이 처음부터 모여서 회의하고 다수결로 만든 게 아니다. 세종이 몰래 존나 대단한 걸 만들어놓고, 이후 집현전 학자들이 해례와 정리, 연구, 보급 쪽에 관여한 것으로 보는 게 더 안전하다.

성삼문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집현전 학자 중 하나로 언급된다. 특히 신숙주 등과 함께 음운 연구와 관련해 활동했다.

즉 성삼문은 "한글 공동창업자"라고 막 박아버리면 좀 애매하고, "훈민정음 정리와 연구에 관여한 세종대 집현전 엘리트"라고 하면 깔끔하다.

그래도 대단한 건 맞다. 한쪽에서는 세종의 문자사업에 참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조에게 개기다가 죽었다. 커리어가 너무 극단적이다. 조선판 천재 공무원인데 엔딩이 정치 스릴러다.

단종

단종문종의 아들이자 조선 제6대 왕이다.

문제는 너무 어렸다. 어린 왕이면 신하들과 친족들이 잘 보필해야 하는데, 현실은 숙부들이 왕좌 냄새 맡고 눈깔이 돌아갔다.

그중 최종보스가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단종을 압박해 결국 왕위를 빼앗았다. 말은 선양인데 실상은 "도장 찍어라, 안 찍으면 어떻게 될지 알지?"에 가까웠다.

단종은 왕이었지만 힘이 없었고, 수양대군은 왕이 아니었지만 칼이 있었다.

조선 정치판에서 정통성보다 칼 든 삼촌이 더 강했던 순간이다.

성삼문에게 단종은 그냥 어린 왕이 아니었다. 정통 임금이었다. 그러니 세조를 섬긴다는 건 단순한 정권교체 수용이 아니라, 왕위 찬탈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성삼문은 그걸 못 했다. 아니, 안 했다.

세조

세조는 조선 제7대 왕이다.

능력은 있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왕권 강화하고, 제도 정비하고, 군사 쪽도 신경 쓰고, 국정 운영력 자체는 있었다.

근데 왕위에 오른 과정이 개판이었다.

조카 왕을 몰아내고, 반대파를 죽이고, 피로 길을 닦은 뒤 왕이 되었다. 이러면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역사책에서 냄새가 난다. 향수를 뿌려도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타입이다.

성삼문은 바로 그 냄새를 맡고 코를 막은 인간이다. 다른 신하들이 "전하 납시오" 하며 줄 설 때, 성삼문은 속으로 "응 찬탈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조 입장에서는 개빡칠 만하다. 자기가 왕이 됐는데, 조선 최고 엘리트 중 하나가 왕으로 인정 안 해준다. 왕좌에 앉았는데 정신적으로는 계속 심판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래서 권력자는 충신을 싫어한다. 아부꾼은 권력자를 편하게 만들고, 충신은 권력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단종 복위 운동

성삼문은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했다.

계획은 세조와 측근들을 제거하고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거사는 명나라 사신 환영 연회 때를 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부에서 김질이 밀고하면서 계획이 터졌다.

김질은 여기서 조선사 배신자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살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 근데 역사책은 그런 사정까지 예쁘게 포장해주지 않는다.

성삼문 일파는 잡혀갔다. 세조 정권 입장에서는 역모였다. 성삼문 입장에서는 충성이었다.

이게 역사의 잔인한 점이다. 권력이 이기면 반역이고, 후대가 보면 절의가 된다.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했다. 정치적으로는 처참한 실패였다. 하지만 이 실패 때문에 성삼문은 이름을 얻었다. 성공했으면 대신이 되었을지 몰라도, 실패했기 때문에 충신의 상징이 되었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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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아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성삼문은 붙잡힌 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조선시대 역모 사건은 그냥 잡아다가 조사하는 수준이 아니다. 사람을 갈아버린다. 연루자, 가족, 친구, 동료, 종, 친척까지 줄줄이 끌려간다. 역모죄는 개인 범죄가 아니라 가문 전체에 떨어지는 운석이다.

성삼문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여기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세조가 성삼문에게 자신의 신하가 아니었냐고 따지자, 성삼문이 세조 즉위 뒤 받은 녹봉은 먹지 않고 창고에 쌓아두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한다.

요지는 이거다.

"나는 네 밥 먹은 적 없다."

미친 간지다. 이건 그냥 말싸움이 아니다. 세조의 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폭탄발언이다.

세조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응 난 너 왕으로 인정한 적 없음" 해버린 것이다. 현실 권력으로는 세조가 이겼는데, 말빨과 명분으로는 성삼문이 면전에서 뺨을 후려친 셈이다.

처형

성삼문은 결국 처형되었다.

그의 아버지 성승도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되어 죽었다. 집안 전체가 세조 정권의 칼날을 맞았다. 조선의 역모 처벌은 진짜 무식하게 잔인했다. 본인이 개겼다고 본인만 죽는 게 아니라, 가족과 가문까지 같이 갈아버린다.

그래서 성삼문의 선택은 단순히 "나 하나 죽으면 됨"이 아니었다. 자기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걸 알고도 간 것이다. 이건 충성심이든, 신념이든, 광기든, 아무튼 보통 인간의 영역은 아니다.

요즘 같으면 불리한 카톡 하나만 나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는데, 성삼문은 목숨이 날아가도 말을 안 바꿨다. 운영체제가 다르다. 현대 정치인은 윈도우 업데이트하다 멈춘 노트북이라면, 성삼문은 도스 시절부터 부팅되는 철벽 시스템이다.

시조

성삼문 하면 유명한 시조가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뜻은 대충 이렇다.

죽어서도 소나무가 되어 눈 덮인 세상 속에서 홀로 푸르게 남겠다는 말이다. 충절, 절개, 고집, 선비뽕이 한꺼번에 들어간 시조다.

조선 선비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는 감성이다. "나는 죽어도 안 꺾인다"를 이렇게 우아하게 말한다. 요즘식으로 하면 "너희가 다 변절해도 나는 로그아웃 안 함"이다.

성삼문은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 시조만 멋있는 게 아니라, 인생 엔딩도 저 가사 그대로 갔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더 빨아주는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놈은 많다. 성삼문은 말하고 진짜 죽었다. 이러면 까기가 어렵다.

신숙주와의 대비

성삼문 이야기에서 신숙주를 빼면 맛이 덜하다.

신숙주도 세종 때 집현전 출신의 천재 관료였다. 훈민정음 관련 작업에도 관여했고, 외교와 학문에도 능했다. 그런데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는 세조 편에 섰다.

그래서 후대 이미지가 갈렸다.

성삼문은 충신. 신숙주는 변절자.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신숙주도 단순한 간신이라고만 보기엔 복잡하다. 능력 있는 관료였고, 조선 국가 운영에 기여한 것도 많다. 하지만 조선 유교 윤리의 감성에서는 성삼문과 신숙주의 대비가 너무 선명했다.

한 명은 죽어서 절개를 지켰고, 한 명은 살아서 출세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가 쓴다고 하지만, 평판은 꼭 살아남은 자 편이 아니다.

성삼문은 죽었는데 멋있어졌고, 신숙주는 살았는데 숙주나물 드립의 영원한 피해자가 됐다.

한국 밥상에서까지 조리돌림당하는 신숙주를 보면, 평판 관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고작 반찬 이름 하나로 수백 년을 처맞는다. 역사적 브랜딩 실패의 레전드다.

사육신

사육신은 다음 여섯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었다.

사육신은 조선 후기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유교 국가에서 "임금에 대한 절개"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 세조에게 붙은 사람들은 아무리 성공해도 찝찝했고, 성삼문 같은 사람들은 죽었지만 교과서급 충신이 되었다.

물론 현대적으로 보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단종 복위가 성공했으면 조선이 정말 더 좋아졌을까?" "세조가 능력 있는 왕이긴 했는데, 현실정치상 세조 편이 더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가능한 질문이다. 역사는 명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성삼문은 효율이 아니라 정통성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그를 정치적 승자가 아니라 도덕적 상징으로 만들었다.

현실정치에서는 세조가 이겼고, 도덕 교과서에서는 성삼문이 이겼다.

매죽헌

성삼문의 호는 매죽헌이다.

매화와 대나무의 이미지가 들어간다. 둘 다 절개의 상징이다. 매화는 추위 속에서 피고, 대나무는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선비들이 좋아하던 상징이다.

성삼문의 인생을 생각하면 호가 너무 잘 어울린다. 그냥 멋으로 붙인 닉네임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매죽헌 콘셉트로 끝났다.

요즘으로 치면 닉네임을 "절대안굽힘"으로 해놓고 진짜 끝까지 안 굽힌 인간이다. 이 정도면 닉값 성공이다.

세조 입장에서 보면

세조 입장에서 성삼문은 진짜 개같은 존재였다.

죽이자니 충신이 된다. 살리자니 계속 자기 왕권을 부정한다. 회유하자니 안 넘어온다. 협박하자니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이런 인간은 권력자가 다루기 가장 어렵다. 겁이 없는 인간이 아니라, 겁보다 명분을 더 크게 보는 인간이다.

권력은 사람을 겁주고, 먹이고, 달래고, 승진시키면서 굴러간다. 그런데 성삼문 같은 사람은 그 시스템 바깥에 있다. 그러면 권력은 결국 폭력밖에 쓸 게 없다.

세조는 성삼문을 죽였다. 하지만 성삼문의 존재는 세조의 정통성에 영원히 흠집을 냈다.

왕은 세조가 됐지만, 명분의 댓글창은 성삼문이 점령했다.

후대 평가

성삼문은 후대에 충신으로 추앙받았다.

당대에는 역모죄로 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육신은 복권되고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에게 성삼문은 거의 "선비라면 이렇게 죽어야 한다"는 교과서적 인물이었다.

물론 이게 너무 미화된 부분도 있다. 사람을 지나치게 충절 상징으로 만들면 실제 인간으로서의 복잡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성삼문의 경우에는 상징이 될 만한 행적이 너무 선명하다.

세종의 집현전 엘리트. 단종의 충신. 세조의 반대자. 단종복위운동의 주역.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사람.

이 정도면 조선 유교 세계관에서는 그냥 레전드 확정이다.

디시식 요약

  • 세종 때 집현전 엘리트였다.
  • 훈민정음 관련 작업에도 관여했다.
  • 단종을 정통 임금으로 봤다.
  • 수양대군이 조카 왕자리 털어먹자 인정 안 했다.
  • 단종 복위하려다 김질 밀고로 터졌다.
  • 잡혀가서 고문당했다.
  • 그래도 안 굽혔다.
  • 세조한테 "난 니 밥 먹은 적 없음"급으로 명분 싸다구를 날렸다.
  • 결국 죽었다.
  • 근데 죽고 나서 충신 레전드가 됐다.
  • 세조는 왕이 됐고, 성삼문은 교과서가 됐다.
  • 신숙주는 살았지만 반찬 드립으로 영원히 처맞는다.

평가

성삼문은 조선 선비 정신의 극단적인 상징이다.

좋게 말하면 절개의 화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현실정치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의 끝판왕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집 때문에 이름이 남았다.

역사는 꼭 똑똑하게 살아남은 사람만 기억하지 않는다. 가끔은 멍청할 정도로 안 꺾인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성삼문은 정치적으로는 졌다. 세조를 끌어내리지 못했고, 단종을 복위시키지도 못했다. 자기도 죽었고, 집안도 박살났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이겼다.

왜냐하면 세조가 아무리 왕 노릇을 잘했어도, 성삼문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세조의 왕위 찬탈은 계속 찝찝하게 남기 때문이다. 성삼문은 죽어서 세조의 정통성에 못을 박았다.

칼로는 졌는데, 명분으로는 이겼다. 조선 유교사회에서 이건 꽤 큰 승리다.

결론

성삼문은 그냥 충신이 아니다.

세종대왕 시대의 집현전 엘리트였고, 훈민정음 시대의 지식인이었고, 단종을 위해 죽은 사육신의 대표 인물이었다. 그는 세조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지는 길이었다. 살려면 세조에게 붙어야 했다. 출세하려면 입 닫고 새 왕을 섬기면 됐다. 그런데 성삼문은 그 쉬운 길을 안 갔다.

그래서 죽었다. 그리고 그래서 남았다.

한마디로 성삼문은 조선판 "절대 굴복 안 함"의 인간화다. 권력 앞에서 숙이는 대신 목을 내놨고, 그 목값으로 역사책에서 영구 VIP석을 받았다.

세조는 왕좌를 얻었고, 성삼문은 명분을 얻었다.

둘 중 뭐가 더 큰지는 각자 판단하면 된다. 근데 적어도 조선 선비 세계관에서는 성삼문이 압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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