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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잼파파 하고 싶은 거 다 해~!

탄소배출권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를 일정량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쉽게 말하면 공식 오염 쿠폰이다. 국가가 "너희 올해 이만큼까지만 똥 싸라"고 총량을 정하고, 기업들은 자기 배출량만큼 쿠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 쿠폰이 남으면 팔고, 부족하면 산다. 그래서 시장이 생긴다.

듣기만 하면 아주 합리적인 시장경제식 환경정책 같다. 문제는 인간이 시장을 만들면 반드시 장사꾼, 로비스트, 회계사, 컨설턴트, 인증기관, 정치인이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탄소를 줄이자고 만든 제도가 어느 순간 탄소를 사고파는 카지노가 된다.

한마디로 탄소배출권은 기후위기 시대의 현대판 면죄부다. 중세에는 죄를 지어도 돈 내면 천국 간다고 했고, 현대에는 탄소를 배출해도 돈 내면 ESG 보고서가 초록색이 된다.

개요

탄소배출권은 보통 배출권거래제에서 쓰인다.

정부가 전체 배출총량, 즉 cap을 정한다. 그리고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나눠주거나 경매로 판다. 기업은 자기 공장, 발전소, 사업장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만큼 배출권을 제출해야 한다. 배출권이 모자라면 시장에서 사야 하고, 남으면 팔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 탄소 배출에 가격을 붙인다.
  • 배출을 줄인 기업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
  • 배출을 못 줄인 기업은 돈을 내게 한다.
  • 전체 배출총량은 점점 줄인다.

이론상으로는 멋지다. 오염에 가격을 붙여서 시장이 알아서 감축하게 만든다는 발상이다. 환경문제를 도덕 캠페인이 아니라 비용 문제로 바꾼다. 기업이 선해서 탄소를 줄이는 게 아니라, 안 줄이면 돈이 깨지니까 줄이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꽤 똑똑하다.

문제는 현실이 이론처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무상할당, 로비, 가격폭락, 가격폭등, 상쇄권, 회계장난, 국제경쟁력 핑계, 산업계 징징, 정부 눈치보기, 컨설팅 장사까지 다 들어온다. 그러면 탄소배출권은 환경정책인지 금융상품인지 분간이 안 가기 시작한다.

이름부터 수상하다

배출권이라는 말부터 웃기다.

권리라니. 탄소를 배출하는 것도 권리로 포장된다. 인간은 진짜 대단하다. 공기를 더럽히는 행위조차 증권처럼 만들어 사고판다.

옛날에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 나면 그냥 오염이었다. 이제는 연기에도 ISIN 코드 붙일 기세다.

물론 현실적으로 산업을 하루아침에 멈출 수는 없다. 철강, 시멘트, 반도체, 석유화학, 발전소가 당장 사라질 수는 없다. 그래서 배출권이라는 중간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이해된다.

하지만 단어가 너무 깔끔하다. "탄소배출권"이라고 하면 뭔가 제도적이고 합법적이고 점잖아 보인다. 실제로는 "너 이만큼까지는 오염해도 됨" 쿠폰이다.

오염 쿠폰이라고 부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그래서 절대 그렇게 안 부른다. 이름짓기는 정치다.

배출권거래제

배출권거래제는 영어로 Emission Trading System, 줄여서 ETS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건 EU ETS다. 유럽연합이 2005년에 시작한 제도인데, 발전소와 산업시설 같은 주요 배출원을 대상으로 배출권을 거래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유럽식 탄소 장터다.

한국에도 K-ETS가 있다. 2015년에 시작된 한국 배출권거래제다. 한국은 제조업 국가라서 이 제도가 꽤 중요하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 발전 같은 업종들이 줄줄이 엮인다.

문제는 한국에서 이런 제도가 제대로 세게 굴러가면 산업계가 바로 "기업 죽는다", "수출 죽는다", "일자리 죽는다"를 외친다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 약하게 굴러가면 환경단체가 "이게 거래제냐 기업 복지냐" 하고 깐다.

결국 정부는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간다. 기업한테는 "걱정 마세요, 너무 세게 안 할게요" 하고, 국제사회에는 "저희 탄소가격제 하고 있습니다" 한다.

이게 한국 행정의 전통 예술이다. 양쪽에 다른 표정을 짓는다.

무상할당

탄소배출권 제도의 핵심 병맛 포인트가 무상할당이다.

원래 탄소배출권은 경매로 팔아서 기업들이 탄소 배출 비용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게 깔끔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공짜로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산업경쟁력 보호, 탄소누출 방지, 제도 안착 같은 명분이 붙는다.

말은 된다. 처음부터 기업들한테 배출권 전부 돈 내고 사라고 하면 산업계가 발작할 수 있다. 특히 해외 경쟁기업은 규제 안 받는데 국내 기업만 비용을 부담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공짜로 나눠주기 시작하면 제도가 이상해진다.

기업은 오염 쿠폰을 공짜로 받고, 남으면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 이게 뭐냐. 환경정책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기업에게 나눠주는 탄소상품권이 된다.

물론 무상할당이 완전히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탄소가격 신호가 약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배출 줄여야겠다"가 아니라 "정부가 다음에도 좀 챙겨주겠지"가 된다.

탄소를 줄이려고 만든 제도가 탄소 많이 배출하던 기업에게 공짜 쿠폰을 주는 장면. 이것이 현실정책의 매운맛이다.

탄소누출

기업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카드가 탄소누출이다.

탄소누출은 규제가 강한 나라에서 공장이 규제가 약한 나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탄소비용을 너무 세게 매기면, 기업이 생산을 동남아나 중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면 한국 배출량은 줄어들지만 지구 전체 배출량은 안 줄거나 오히려 늘 수 있다.

이건 실제로 중요한 문제다. 철강, 시멘트, 화학 같은 산업은 국제경쟁이 세고 배출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너무 좋은 방패라는 것이다.

규제 세게 하자고 하면 "탄소누출!" 배출권 경매 늘리자고 하면 "탄소누출!" 전기요금 현실화하자고 하면 "탄소누출!" 공장 효율 개선하자고 하면 "돈 없음!"

물론 탄소누출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하지만 탄소누출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면 그냥 굴뚝 보호정책이다.

기업들은 늘 말한다. "우리도 기후위기에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번역하면 대체로 이거다. "지금은 하기 싫고, 나중에도 가능하면 하기 싫습니다."

상쇄권과의 차이

탄소배출권과 탄소상쇄권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탄소배출권은 보통 정부가 정한 배출총량 안에서 발행되는 쿠폰이다. 배출권거래제 안에서 기업들이 제출해야 하는 권리다.

반면 탄소상쇄권은 어디선가 탄소를 줄였거나 흡수했다는 프로젝트를 근거로 발행되는 크레딧이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었다, 숲을 보호했다, 재생에너지 사업을 했다, 메탄을 줄였다 같은 식이다.

둘 다 냄새가 난다. 하지만 냄새의 종류가 다르다.

배출권은 "정해진 한도 안에서 오염할 권리"에 가깝고, 상쇄권은 "딴 데서 좋은 일 했으니 여기서 오염해도 됨"에 가깝다.

상쇄권이 특히 그린워싱에 악용되기 쉽다. 원래도 안 베일 숲을 보호했다고 주장하거나, 실제 감축량을 뻥튀기하거나, 나무 심었는데 나중에 죽거나, 다른 지역으로 벌목이 이동하는 문제가 생긴다.

배출권도 문제 많지만, 상쇄권은 진짜 마법의 종이쪼가리가 될 때가 많다. 탄소를 줄인 게 아니라 탄소 줄였다는 이야기를 사고파는 시장이 되기 쉽다.

가격

탄소배출권의 가격은 중요하다.

가격이 너무 낮으면 기업이 배출을 줄일 이유가 없다. 그냥 배출권 사는 게 더 싸다. 그러면 제도는 껍데기가 된다. 반대로 가격이 너무 높으면 산업계가 난리치고 물가와 전기요금 문제도 생긴다.

그래서 탄소가격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환경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외부비용을 내부화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말한다. "경쟁력이 박살납니다."

정치인은 생각한다. "표 떨어지면 안 되는데."

국민은 말한다. "전기요금 왜 오름?"

결국 탄소가격은 항상 애매해진다. 기후위기를 막기에는 낮고, 기업이 징징대기에는 충분히 높은 가격. 모두가 불만인데 지구도 별로 만족하지 않는 절묘한 지점이다.

시장논리의 함정

탄소배출권은 시장논리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제도다.

시장논리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잘 설계하면 꽤 효과적일 수 있다. 기업마다 감축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싼 곳에서 먼저 줄이고 비싼 곳은 배출권을 사게 하면 전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게 교과서적 설명이다.

문제는 시장은 도덕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탄소를 줄이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가격차에 관심이 있다. 시장참여자는 지구를 구하려고 거래하는 게 아니라 돈 벌려고 거래한다. 금융기관은 유동성 공급한다고 들어오지만 결국 상품이 있으면 투기한다. 컨설턴트는 감축전략을 팔고, 인증기관은 검증을 팔고, 브로커는 거래를 판다.

그러다 보면 탄소배출권 시장은 기후정책이 아니라 파생상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물론 유동성도 필요하고 가격발견도 필요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탄소를 줄이는 것보다 탄소 가격을 맞히는 놈들이 더 신나 보이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기업 입장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배출권이 귀찮고 비싼 숙제다.

배출량을 측정해야 한다. 보고서를 내야 한다. 검증을 받아야 한다. 배출권을 사야 한다. 남는지 부족한지 계산해야 한다. 전략을 짜야 한다.

즉 굴뚝 하나에 회계팀, 법무팀, 환경팀, 재무팀, 컨설턴트가 달라붙는다. 탄소가 과학 문제에서 행정 문제로 진화한다.

그래서 대기업은 그나마 대응한다. 돈도 있고 사람도 있고 컨설턴트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중견·중소기업이다. 이쪽은 갑자기 탄소회계니 배출권이니 ESG니 고객사 요구니 다 쏟아지면 정신이 나간다.

친환경 전환은 좋은데, 현실에서는 대기업이 숙제장을 협력사에게 던지는 구조가 자주 나온다. "우리 공급망도 탄소 줄여주세요." 말은 예쁜데 번역하면 이거다. "비용은 너희가 좀 맞아라."

한국에서

한국은 탄소배출권 제도가 꽤 중요한 나라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같은 산업이 전기를 먹고 열을 먹고 원료를 태운다.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면 이 산업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에너지 가격을 정치적으로 눌러온 역사가 길다. 전기요금 올리면 난리 나고, 산업용 전기 건드리면 기업이 난리 나고, 탄소가격 세게 매기면 수출경쟁력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한국의 탄소배출권 제도는 항상 미묘하다. 국제사회에는 "우리도 배출권거래제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너무 아프지 않게 조절한다.

결국 제도가 존재하는 것과 제도가 세게 작동하는 것은 다르다.

간판은 있다. 칼날은 무디다. 그리고 모두가 그 무딘 칼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EU ETS

EU ETS는 탄소배출권 제도의 대표 사례다.

유럽은 이쪽에서 가장 먼저 큰 판을 깔았다. 발전, 산업, 항공 등 주요 부문에 배출권을 적용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배출총량을 줄여왔다. 제도가 오래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초반에는 배출권을 너무 많이 뿌려서 가격이 낮아지고 효과가 약해지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유럽은 꾸준히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즉 CBAM까지 들고 나오면서 수입품에도 탄소비용을 묻기 시작했다.

이러면 한국 같은 수출국은 골치 아파진다. 유럽이 자기들끼리만 탄소가격을 매기는 게 아니라, 밖에서 들어오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같은 제품에도 "너 이거 만들 때 탄소 얼마나 나왔냐?"고 묻는다.

옛날에는 관세가 국경의 무기였다. 이제는 탄소가 국경의 무기가 된다.

자발적 탄소시장

자발적 탄소시장은 더 수상하다.

정부 규제가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탄소크레딧을 사서 배출을 상쇄하는 시장이다. 항공권 살 때 "탄소상쇄 하시겠습니까?" 같은 선택지가 나오는 것도 이쪽 감성이다.

문제는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진짜 감축이 있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뻥튀기된 프로젝트도 있다. 원래 예정된 사업을 감축이라고 팔기도 하고, 효과가 불확실한 숲 보호를 과장하기도 한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잘 쓰면 추가 감축을 도울 수 있다. 못 쓰면 그린워싱 쿠폰몰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유혹적이다. 공장 고치는 건 비싸다. 공정 바꾸는 건 어렵다. 전력계약 바꾸는 건 복잡하다. 그런데 크레딧 사는 건 쉽다.

클릭 몇 번이면 탄소중립 기업이 된다. 인류는 정말 편리한 죄사함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린워싱

탄소배출권과 탄소크레딧은 그린워싱에 악용되기 쉽다.

기업이 실제 배출을 크게 줄이지 않고 배출권이나 상쇄권을 사서 "우리는 탄소중립입니다"라고 홍보할 수 있다. 소비자는 세부 회계기준을 모르니 그냥 친환경 기업인 줄 안다.

이게 제일 역겹다.

진짜 감축은 어렵다. 설비 바꿔야 하고, 공정 바꿔야 하고, 전기조달 바꿔야 하고, 공급망을 손봐야 한다. 돈도 들고 시간도 걸린다.

가짜 감축은 쉽다. 인증서 사고, 보고서 쓰고, 숲 사진 넣고, 홈페이지에 초록색 배너 달면 된다.

탄소배출권 자체가 나쁜 제도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들고 "우리 깨끗해요" 하는 기업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얼마나 직접 줄였는지, 얼마나 샀는지, 어떤 기준인지, 상쇄권 품질은 어떤지 다 까봐야 한다.

ESG 시대의 기본 자세는 불신이다. 믿으면 당한다.

서민에게 오는 청구서

탄소배출권 제도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가 배출권 비용을 부담하면 전기요금에 반영될 수 있다. 정유사나 산업계 비용이 늘면 제품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 결국 소비자도 영향을 받는다.

기후정책은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는 돈을 낸다.

문제는 이 비용이 공정하게 배분되느냐이다. 대기업은 무상할당 받고, 금융사는 탄소상품으로 돈 벌고, 정부는 친환경 정책이라고 홍보하고, 소비자는 전기요금과 물가로 맞는 구조가 되면 사람들이 빡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탄소가격제는 탄소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수익을 어디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저소득층 지원, 산업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투자, 지역 보상에 제대로 써야 한다. 안 그러면 환경정책이 아니라 생활비 증세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부정해서 화내는 게 아니다. 자기 지갑만 털리는 것 같으니까 화내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장사꾼

탄소배출권 시장이 커지면 반드시 장사꾼이 붙는다.

컨설팅 회사는 감축전략을 판다. 회계법인은 탄소회계를 판다. 로펌은 규제 대응을 판다. 금융사는 탄소상품을 판다. 브로커는 크레딧을 판다. 인증기관은 검증을 판다. 기업은 친환경 이미지를 판다. 정부는 정책성과를 판다.

정작 탄소가 얼마나 줄었는지는 나중 문제다.

물론 이런 인프라가 전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측정, 보고, 검증, 거래, 가격형성은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수단이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시장을 만든 건데, 시장을 굴리기 위해 탄소가 필요한 것처럼 변한다. 이쯤 되면 기후정책이 아니라 탄소 금융산업 육성책이다.

장점도 있긴 하다

그래도 탄소배출권을 무조건 폐기하자는 건 멍청하다.

잘 설계하면 효과가 있다. 총량을 확실히 줄이고, 배출권을 너무 많이 뿌리지 않고, 가격을 적절히 유지하고, 무상할당을 줄이고, 감축수익을 제대로 재투자하면 탄소배출권 제도는 꽤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탄소에 가격을 붙이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공기를 공짜 쓰레기통처럼 쓰던 시대를 끝내려면, 오염에 비용을 매기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제도가 현실정치와 기업로비를 통과하면서 물러진다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날카로운 칼인데, 국회와 산업계와 관료조직을 지나오면 버터나이프가 된다.

평가

탄소배출권은 좋은 아이디어와 더러운 현실이 결혼해서 낳은 제도다.

아이디어는 훌륭하다. 오염총량을 정하고, 줄인 기업에게 보상을 주고, 못 줄인 기업에게 비용을 물린다. 시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감축한다. 말만 들으면 진짜 그럴듯하다.

현실은 복잡하다. 배출권을 많이 뿌리면 가격이 떨어진다. 기업에게 공짜로 주면 감축 유인이 약해진다. 가격이 오르면 산업계가 난리친다. 상쇄권을 허용하면 품질 논란이 생긴다. 정부가 약하면 로비에 털린다. 기업은 감축보다 회계를 먼저 본다.

그래서 탄소배출권을 볼 때는 한 가지만 물으면 된다.

실제로 배출총량이 줄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나머지는 다 장식이다. 거래량이 늘었다, 시장이 성장했다, 가격이 안정됐다, 기업 참여가 활발하다, 이런 말은 전부 부차적이다.

탄소시장의 목표는 시장 성장률이 아니라 배출 감소다. 이걸 까먹는 순간 탄소배출권은 그냥 친환경 이름표 붙은 금융놀음이 된다.

결론

탄소배출권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순진하게 믿으면 안 된다. 이 제도는 탄소를 줄이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기업에게 합법적 오염권을 나눠주는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강한 총량규제, 적절한 가격, 엄격한 검증, 무상할당 축소, 상쇄권 제한, 수익의 공정한 재분배가 있으면 정책이다. 그게 없으면 그냥 굴뚝회사 쿠폰북이다.

탄소배출권은 기후위기 시대의 시험지다. 진짜 감축을 하면 합격이고, 종이만 사고팔면 낙제다.

문제는 인간들이 시험공부보다 족보거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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