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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잼파파 하고 싶은 거 다 해~!

탄소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만큼 다시 흡수하거나 제거해서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개념이다.

영어로는 보통 carbon neutrality 또는 net zero라고 한다. 말만 들으면 인류가 드디어 지구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기업 홍보팀, 관료 보고서, ESG 컨설턴트, 탄소배출권 장사꾼들이 다 같이 빨대 꽂은 거대한 녹색 무대장치가 되었다.

한마디로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시대의 면죄부다. 중세에는 돈 내고 면죄부 사면 죄가 줄어든다고 했고, 현대에는 돈 내고 탄소상쇄권 사면 배출이 줄어든다고 한다. 인류는 발전한 게 아니라 엑셀 파일을 배웠을 뿐이다.

개요

탄소중립의 원리는 단순하다.

  • 배출을 줄인다.
  • 그래도 남는 배출은 흡수하거나 제거한다.
  • 그래서 순배출을 0으로 만든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하다. 문제는 현실에서 첫 번째 줄인 배출을 줄인다가 제일 어렵고 돈도 많이 드니까, 다들 두 번째 줄인 흡수하거나 제거한다에 몰려든다는 것이다.

즉 공장 굴리고, 비행기 띄우고, 석유 태우고, 플라스틱 만들고, 고기 처먹고, 물류 돌리고, 데이터센터 전기 빨아먹은 다음에 어디 산골짜기에 나무 몇 그루 심고 "저희는 탄소중립 기업입니다" 이러는 식이다.

이쯤 되면 환경정책이 아니라 지구 상대로 하는 영수증 조작이다.

용어부터 수상하다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깨끗하다.

중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있다. 뭔가 공정하고, 균형 잡히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배출을 없앤다는 말이 아니라, 배출한 만큼 어디선가 까겠다는 말이다.

즉 "나는 안 때린다"가 아니라 "때리긴 하는데 나중에 마사지권 끊어줌"에 가깝다.

여기서부터 사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탄소중립이라고 하면 탄소를 안 배출하는 줄 안다. 하지만 많은 탄소중립 주장은 탄소를 계속 배출하되, 다른 곳에서 줄였다고 계산하는 방식이다. net이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더러운 걸 덮어준다.

총액은 더러운데 순액은 깨끗하다는 주장. 회계팀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부정은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탄소중립을 까는 것은 기후변화가 구라라는 뜻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현실이고, 온실가스 감축은 필요하다. 문제는 탄소중립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진짜 감축이 아니라 감축하는 척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기후위기가 진짜니까 탄소중립 장사가 더 역겨운 것이다.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탄소중립 장사꾼들은 소화기를 파는 척하면서 "저희 회사는 불타는 건물을 상쇄하기 위해 숲 사진을 구매했습니다" 같은 소리를 한다.

불난 집 앞에서 ESG 리포트 흔드는 꼴이다.

상쇄권

탄소중립의 최고 빌런은 탄소상쇄권이다.

원리는 이렇다. 내가 여기서 탄소를 배출했다. 그런데 저기 어디선가 나무를 심거나, 숲을 보호하거나, 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원해서 탄소를 줄였다고 친다. 그러면 내 배출은 상쇄된다는 것이다.

말은 된다. 문제는 "말만"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떤 숲은 원래도 안 베일 숲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호했으니 탄소 감축입니다" 하고 팔린다. 어떤 나무는 심었지만 몇 년 뒤 죽는다. 어떤 사업은 다른 지역에서 벌목을 더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어떤 크레딧은 계산 기준 자체가 뻥튀기다. 이쯤 되면 탄소를 줄이는 게 아니라 탄소 줄였다는 이야기를 파는 것이다.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다. 탄소 배출을 넣으면 인증서가 나온다.

나무심기 코스프레

탄소중립 홍보물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미지는 숲이다.

기업 광고를 보면 임직원들이 조끼 입고 삽 들고 묘목 심는다. 뒤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중립 실천" 같은 문구가 붙는다. 사진은 예쁘다. 문제는 그 회사가 평소에 뭘 하는지 보면 대개 웃음이 안 나온다.

나무 심는 건 좋다. 근데 나무 심었다고 석탄발전, 석유화학, 항공, 패스트패션, 과잉소비가 갑자기 깨끗해지는 건 아니다.

특히 나무는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오늘 배출한 탄소는 오늘 대기에 올라간다. 그런데 묘목이 그 탄소를 흡수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 사이에 산불 나거나 병충해 나거나 개발로 밀리면? 응, 상쇄 사망.

탄소중립 홍보에서 나무는 거의 마스코트다. 실제로는 나무가 탄소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홍보팀의 죄책감을 흡수하고 있다.

탄소포집

탄소중립 떡밥에서 빠지지 않는 게 탄소포집이다.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잡아서 땅속에 묻거나 다른 데 쓰겠다는 기술이다. 듣기에는 SF 같고 멋지다. 문제는 이 기술이 만능 치트키처럼 팔린다는 점이다.

물론 필요한 분야는 있다. 시멘트, 철강, 화학처럼 당장 배출을 없애기 어려운 산업에서는 탄소포집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화석연료 계속 태우고 싶어하는 놈들이 이걸 방패로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중에 잡으면 되니까 지금은 계속 태우자."

이건 다이어트한다면서 오늘 치킨 3마리 먹고 "미래의 내가 런닝머신 뛸 예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미래의 나를 믿는 새끼들은 대체로 현재의 치킨을 이기지 못한다.

탄소포집은 도구일 수는 있지만 면죄부가 되면 안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너무 자주 면죄부로 팔린다.

ESG 장사

탄소중립은 ESG와 붙으면서 더 기괴해졌다.

기업들은 탄소중립 선언을 한다. 2030년, 2040년,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하겠다고 한다. 듣기에는 웅장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지금 당장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우리 회사가 잘할 예정이라는 선언이다.

미래의 CEO가 알아서 하겠지. 미래의 기술이 해결하겠지. 미래의 탄소가격이 맞춰주겠지. 미래의 소비자가 더 비싸게 사주겠지.

이쯤 되면 탄소중립은 정책이 아니라 희망회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개꿀이다. 지금은 홍보효과를 얻고, 책임은 미래로 넘긴다. 주가는 오늘 움직이고, 기후목표는 2050년에 온다. 담당 임원은 그때쯤 은퇴했거나 골프 치고 있을 것이다.

정부도 다르지 않다

정부도 탄소중립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말은 크고, 책임은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이라고 하면 뭔가 역사적 결단처럼 들린다. 그런데 2050년이면 지금 발표하는 정치인 대부분은 책임질 위치에 없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완벽한 상품이다.

오늘은 선언한다. 내일은 위원회 만든다. 모레는 로드맵 만든다. 그 다음에는 정권 바뀐다. 그리고 또 새 위원회 만든다.

대한민국도 2050 탄소중립을 내세우고 2030년 감축목표를 잡았다. 그런데 현실은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싼 전기 중독, 송전망 부족, 재생에너지 입지 갈등, 원전 논쟁, 산업계 로비가 다 얽혀 있다. 목표는 하늘에 있고, 전력망은 땅에 있다.

정책 문서에서는 탄소가 줄어든다. 현장에서는 민원과 송전선과 공장 전기요금이 기다린다.

한국에서

한국에서 탄소중립은 특히 어려운 주제다.

한국은 제조업 국가다.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배터리 같은 산업으로 먹고산다. 이런 산업들은 전기와 열을 미친 듯이 먹는다. 그러니까 탄소중립 하려면 그냥 캠페인 몇 개로 되는 게 아니라 산업구조, 전력시장, 에너지 가격, 송전망, 지역정치까지 다 건드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이런 걸 차분히 할 리가 있나.

정권 바뀌면 원전 비중 바뀌고, 재생에너지 속도 바뀌고, 전기요금은 표 떨어질까 봐 못 올리고, 기업들은 "경쟁력 죽는다" 하고, 시민들은 "전기요금 왜 오르냐" 하고, 지방은 "송전탑 우리 동네 안 됨" 한다.

다들 탄소중립은 찬성한다. 단, 내 전기요금은 그대로. 내 동네 송전탑은 안 됨. 내 회사 규제도 안 됨. 내 소비생활도 그대로.

이게 무슨 중립이냐. 그냥 전국민이 탄소 앞에서 각자도생하는 것이다.

탄소회계

탄소중립의 핵심은 결국 회계다.

얼마를 배출했는지, 어디까지 우리 책임인지, 공급망 배출은 어떻게 볼지, 해외 공장에서 만든 건 누구 배출인지, 제품 사용 중 배출은 누구 책임인지, 상쇄권은 얼마나 인정할지, 흡수원은 얼마나 믿을지 계산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기업들은 직접 배출은 줄였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외주를 줬거나, 해외 생산으로 밀었거나, 공급망 바깥으로 빼놨을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은 제조업을 해외로 넘기고 소비는 계속하면서 "우리 배출 줄었습니다" 할 수 있다.

즉 굴뚝을 없앤 게 아니라 굴뚝을 남의 나라로 보낸 것이다.

이걸 두고 선진국들이 깨끗해졌다고 박수치면 좀 웃기다. 옷은 방글라데시에서 만들고, 전자제품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만들고, 배터리 원료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캐오면서, 소비국은 자기 영토 배출만 보고 도덕군자 행세를 한다.

탄소중립? 아니, 탄소외주다.

RE100과 탄소중립

RE100도 탄소중립과 같이 묶여 자주 나온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쓰겠다는 방향 자체는 이해된다. 문제는 실제 전력망은 하나인데, 기업들이 인증서 사고 계약서 맞추면서 "우리는 재생에너지 씁니다"라고 말할 때 생기는 괴리다.

전기는 섞인다. 콘센트에 꽂으면 이 전자가 태양광 출신인지 석탄 출신인지 이름표 달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인증서, 전력구매계약, 추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시장이 커지면 또 장사꾼이 달라붙는다. 진짜 재생에너지 확대가 아니라 서류상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생긴다. 서류는 녹색인데 전력망은 여전히 회색인 상황. 이게 바로 현대문명의 멋진 점이다. 현실을 못 바꾸면 인증서를 바꾼다.

소비자 탓하기

탄소중립 캠페인의 역겨운 부분 중 하나는 소비자 탓하기다.

빨대 쓰지 마세요. 텀블러 쓰세요. 전기 아끼세요. 대중교통 타세요. 고기 덜 드세요.

물론 개인 실천도 필요하다. 그런데 거대 산업, 발전소, 물류망, 도시구조, 기업 공급망, 국가 에너지정책은 그대로 두고 소비자한테 빨대 하나로 죄책감 주는 건 좀 역겹다.

탄소 배출은 시스템 문제다. 그런데 캠페인은 개인 양심 문제로 포장한다.

대기업이 전세계 공급망 굴리면서 배출하는 탄소는 "복잡한 산업 현실"이고, 일반인이 플라스틱 컵 쓰는 건 "지구를 아프게 하는 소비습관"이 된다. 이게 바로 홍보의 마법이다. 책임은 아래로 흐르고, 이익은 위로 올라간다.

개도국 입장

탄소중립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도 빡치는 개념이다.

선진국들은 석탄과 석유 태워서 산업화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여러분도 탄소 줄이세요" 한다. 물론 기후위기는 모두의 문제라 개도국도 그냥 막 배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 책임을 생각하면 선진국의 말투가 너무 뻔뻔할 때가 많다.

배부른 놈이 먼저 밥 다 먹고 나서, 늦게 온 사람한테 "탄수화물 줄이셔야죠" 하는 꼴이다.

그래서 기후재원, 기술이전, 공정한 전환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말은 번지르르하고 실제 돈은 잘 안 나온다. 국제회의장에서는 지구를 구하자고 하고, 예산회의장에서는 다들 지갑을 닫는다.

지구는 하나지만 청구서는 서로 미룬다. 이게 국제정치다.

탄소중립 산업

탄소중립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컨설팅 회사는 탄소감축 전략을 판다. 회계법인은 탄소회계를 판다. 인증기관은 인증서를 판다. 금융사는 녹색채권을 판다. 기업은 ESG 보고서를 판다. 정부는 로드맵을 판다. 정치인은 미래비전을 판다.

정작 탄소는 잘 안 줄어든다.

물론 이런 인프라가 전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측정하고, 보고하고, 검증하는 체계는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본말이 뒤집힌다는 것이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보고서를 쓰는 게 아니라, 보고서를 쓰기 위해 탄소중립을 하는 것처럼 된다.

현대 사회는 뭘 하든 문서가 먼저 살고 현실이 나중에 따라간다. 탄소중립도 예외가 아니다.

진짜 해법

탄소중립을 진짜로 하려면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 석탄발전을 줄여야 한다.
  • 재생에너지와 송전망을 늘려야 한다.
  • 원자력도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봐야 한다.
  • 산업공정을 바꿔야 한다.
  • 건물 효율을 올려야 한다.
  • 교통을 전기화해야 한다.
  • 전기요금과 탄소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
  • 공급망 배출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 상쇄권은 마지막 수단으로 제한해야 한다.
  • 진짜 줄이기 어려운 배출만 제거기술로 처리해야 한다.

한마디로 존나 어렵다.

그래서 다들 쉬운 길을 찾는다. 선언, 인증서, 캠페인, 나무심기, 상쇄권, 보고서. 진짜 탄소감축은 땀나고 돈 들고 표 떨어지고 민원 들어오는 일이다. 가짜 탄소중립은 사진 찍고 보고서 내고 박수 받는 일이다.

당연히 세상은 가짜 쪽으로 기운다.

평가

탄소중립은 필요한 목표다. 하지만 동시에 더럽게 오염된 단어다.

본래 의미대로라면 탄소중립은 인류가 화석연료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종 목표에 가깝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미루고, 소비자에게 죄책감을 팔고, 상쇄권으로 배출을 세탁하고, 미래 기술을 핑계로 현재 감축을 늦추는 데 너무 자주 쓰인다.

그래서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누가 말하는가? 무엇을 줄였는가? 언제 줄이는가? 직접 줄였는가, 샀는가? 공급망은 포함했는가? 상쇄권은 얼마나 쓰는가? 2050년 얘기만 하고 2030년은 비어 있지 않은가?

이 질문에 답 못 하면 그건 탄소중립이 아니라 탄소중립 코스프레다.

결론

탄소중립은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굴러가는 꼴을 보면 상당 부분은 기후위기 시대의 신종 면죄부 장사다. 탄소를 줄이는 것보다 탄소를 줄였다고 말하는 기술이 더 빨리 발전했다.

진짜 탄소중립은 굴뚝을 줄이는 것이다. 가짜 탄소중립은 굴뚝 사진 위에 초록색 필터를 씌우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인류는 필터질을 너무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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