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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모음

김대두 (17명) 1975
강창구 (6명) 1983~1987
이춘재 (15명) 1986~1994
김선자 (5명) 1986~1988
심영구 (8명) 1989
지춘길 (6명) 1990
지존파 (5명) 1993~1994
온보현 (2명) 1994

정두영 (9명) 1999~2000
김해선 (3명) 2000
엄인숙 (3명) 2002~2005
김경훈/허재필 (6명) 2002
유영철 (20명) 2003~2004
정남규 (13명) 2004~2006
정성현 (3명) 2004~2007
강호순 (10명) 2005~2008

강호순
姜浩順
생년월일1969년 10월 10일
출생지충청남도 서천군
신장170cm, 71kg, O형
직업스포츠 마사지사 (검거 당시)

개요

살인마. 유영철과 쌍벽을 이룬다. 처음 방송 나왔을 때 강호순 강호순 거리길래 강호동 여동생인줄 알았다.

ㄴ 나도

여자이름일것 같은데 자지새끼란게 존나게 함정

쓰레기이자 괴물 중 존나 패악스런, 좆뮈충들 말마따나 이 새끼는 사람새끼가 아님

근데 얘도 키 180cm , 체중 90kg 체급의 파워후는 못 갈구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만 갈구네 ㅋㅋㅋㅋ

ㄴ 실제 신체정보는 위 프로필에 적힌 것처럼 당시 보도 기준 170cm, 71kg 정도로 알려졌다. 범행 대상은 주로 혼자 있던 여성들이었으며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여성을 자기 차에 태우거나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 접근하는 식으로 범행했다.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연쇄살인 피해자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8명이고, 여기에 2005년 장모와 네 번째 부인을 방화로 살해한 사건까지 유죄가 인정돼 총 10명 살해로 사형이 확정됐다.[1]

검거 당시에는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의 범인으로 전국을 뒤집어놓은 놈이다. 화성시, 수원시, 안산시, 군포시 등 경기 서남부에서 여성들이 잇따라 사라졌는데 한동안 사건끼리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다가 2008년 12월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결국 강호순이 잡혔다.

생애

개농장을 했는데 주로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웠다.

하지만 이새끼 성격 알잖아. 결국 감금만 시키고 먹이를 전혀 주지 않아 다 굶어죽었다.

시베리안 허스키 존나 비싼개인데 그걸 이리 허무하게 떼몰살시킨 새끼다.

ㄴ 개 사육장을 운영했던 것 자체는 당시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로 확인된다. 안산 반월저수지 주변 등에서 개를 사육했고 이후 수원 당수동 축사로 옮겼다는 주변 주민들의 증언도 보도됐다.[2] 다만 허스키들에게 먹이를 전혀 안 줘서 전부 굶겨 죽였다는 부분은 당시 주요 수사 보도에서 확인되는 내용은 아니라서 인터넷에서 퍼진 일화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개농장 사업 말아쳐먹고 개를 학살했으니 이번에는 사람도 학살해보자며 진짜로 사람을 학살하고 다녔다.

훔친 찦차로 납치 후 살해했는데 범행을 은닉하기 위해 찦차를 폭파시켜버렸다.

ㄴ 이 부분은 사실관계가 좀 다르다. 강호순은 주로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2008년 12월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에서도 피해자를 차에 태워 납치했고, 경찰이 차량에 남은 혈흔 등 증거를 추적하면서 검거로 이어졌다. 강호순은 범행 뒤 자신의 무쏘 차량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려 했는데 차량 전체가 완전히 타지 않아 경찰이 내부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머리카락 등을 확보했다. 이게 연쇄살인의 실체를 까는 데 결정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됐다.

시발 나였으면 ㅈㄴ게 열심히 사업했었겠다.

희한한 사실은 여타 강력범죄자들과 달리 어릴때 학대받은 흔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도 그가 연쇄살인범이 될 이유가 없다고 말한바 있다.

ㄴ 흔히 연쇄살인범 하면 가정폭력, 극심한 빈곤, 학대 같은 성장환경이 자동으로 붙는데 강호순은 적어도 공개적으로 알려진 성장사에서는 그런 전형적인 서사가 뚜렷하지 않았다. 고향 주민과 학교 관계자들도 겉으로는 평범하거나 착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다만 일부 주민은 어릴 때부터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거친 행동을 했다는 증언도 했다.[3] 그러니까 학대를 안 받았으니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살인마가 됐다 정도로 단순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결혼과 보험금

강호순의 인생사를 보면 결혼을 여러 번 했다. 네 번째 부인과는 수년간 동거하다가 2005년 10월 25일 혼인신고를 했는데 불과 5일 뒤인 10월 30일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장모 집에서 불이 났다.

화재 당시 안방에 있던 28세 부인과 60세 장모가 숨졌고 건넌방에 있던 강호순과 아들은 살아나왔다. 처음에는 단순 화재로 처리됐지만 나중에 강호순이 연쇄살인범으로 잡히면서 이 사건도 다시 뒤집어보게 됐다.[4]

문제는 돈이었다. 강호순은 부인 명의로 보험 4건을 가입해놓은 상태였고 화재가 발생하기 5일 전에 혼인신고까지 했다. 부인과 장모가 사망한 뒤 강호순이 받은 보험금은 4억8000만원이었다.[5]

그런데 이게 강호순 주변에서 일어난 첫 화재도 아니었다. 1998년에는 그가 운전하던 덤프트럭에 불이 나 1613만원의 보험금을 받았고, 1999년에는 다른 트럭에 불이 나 2800만원을 받았다. 2000년에는 강호순이 운영하던 순대가게에 불이 났는데 이 화재는 경찰 수사에서 방화로 확인됐지만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강호순은 여기서도 보험금 3657만원을 받았다. 이 밖에도 거주하던 농촌주택과 개 사육장 주변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강호순 주변에서 확인된 화재가 6건이나 됐다.[2]

연쇄살인 수사가 시작된 뒤 검찰은 2005년 장모 집 화재를 재수사했다. 당시 현장사진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자료, 화재진압 소방관과 경찰관의 진술, 주변 주민들의 증언 등을 다시 분석했고 인화성 물질을 이용한 방화로 판단했다. 특히 화재 직후 경찰이 촬영한 사진에는 있던 플라스틱 용기 추정 잔해가 며칠 뒤 국과수 현장감식 때는 사라져 있었고, 강호순의 화재 직후 행동과 진술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됐다.[5]

강호순은 끝까지 이 방화살인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1심과 항소심 모두 정황증거를 종합해 강호순이 보험금을 목적으로 장모 집에 불을 질러 부인과 장모를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본격적인 연쇄살인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강호순은 주로 혼자 있는 여성에게 접근해 차에 태운 뒤 외진 곳으로 이동했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노래방 도우미였고 일부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당시 경찰 분석에 따르면 확인된 피해자 가운데 3명은 노래방 도우미였고 4명은 버스정류장에서 접근한 여성이었다.[6]

범행할 때는 양복을 입거나 말끔하게 차려입어 피해자에게 경계심을 덜 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주변 사람들도 검거 전 강호순을 잘생기고 말끔한 사람, 착실한 사람 등으로 기억했다. 마지막 범행 직후에도 생활정보지를 통해 알게 된 독신자 모임에 양복을 차려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참가하기도 했다.[7]

범행 수법은 대체로 피해자를 차에 태워 외진 곳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하거나 성관계를 하고 스타킹 등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다음 시신을 야산이나 논밭 등에 암매장하는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사건이 강호순의 범행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2006년부터 경기 서남부에서 여성들이 계속 실종됐지만 범행 장소와 피해자의 연령, 직업 등이 제각각이라 경찰이 하나의 연쇄살인으로 묶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2008년 12월 19일 군포시에서 대학생 A씨가 실종됐다. 버스정류장 주변 CCTV와 통신기록 등을 추적한 경찰은 강호순을 용의자로 특정했고 2009년 1월 24일 체포했다.

처음 강호순은 군포 여대생 살인 혐의도 부인했다. 경찰에게 증거가 있으면 가져오라는 식으로 버텼지만 차량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머리카락 등이 발견되고 이동경로까지 확인되면서 더 이상 빠져나가기 어려워졌다.

결국 군포 여대생 살해를 인정한 뒤 과거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실종된 여성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추가 범행들을 자백했다.

수사 결과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여성 8명을 살해한 것으로 기소됐고, 2005년 부인·장모 방화살인 2명까지 합쳐 재판에서 인정된 피해자는 총 10명이다.[1]

사이코패스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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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에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엄청나게 퍼졌다.

경기지방경찰청 범죄분석팀이 강호순을 두 차례 검사한 결과 PCL-R 점수가 각각 27점과 28점으로 나왔다. 당시 경찰이 적용하던 국내 기준에서는 사이코패스 범주에 해당하는 점수였다.[8]

프로파일러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죄책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피해자 유족과 관련한 질문을 받아도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범행동기를 묻자 자신의 성격이나 개인적인 문제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심지어 피해자가 자기 차량에 탄 것을 두고 자기가 억지로 태운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안 탔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태도까지 보였다고 당시 프로파일러들이 밝혔다.[8]

현장검증에서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경찰서에 돌아오면 농담을 하는 등 행동이 달라 프로파일러들이 강호순을 두고 "쇼의 명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자신의 범행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아들이 인세라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9]

신상공개 논란

강호순 사건은 한국의 흉악범 신상공개 제도가 자리잡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체포 직후에는 경찰이 강호순의 이름과 얼굴을 공식적으로 적극 공개하지 않았고 호송 과정에서도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이 가려졌다. 그러나 연쇄살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흉악범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논쟁이 크게 벌어졌다.

일부 언론사가 자체 판단으로 강호순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고 이후 다른 언론들도 뒤따랐다. 당시 경찰 역시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사실상 동의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 논란은 이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이어져 2010년부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흉악범 피의자의 얼굴·성명·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현재 한국에서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데 강호순 사건이 상당한 영향을 준 셈이다.

재판

검찰은 강호순에게 살인,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존속살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2009년 4월 8일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10명을 살해하고도 죄책감이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10]

2009년 4월 22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사형을 선고했다.[11]

강호순은 여성 8명을 연쇄살해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부인과 장모를 죽인 방화살인만큼은 부인했고 이 부분의 유죄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사형이 그대로 선고됐다.

여기서 강호순은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았다. 7일간의 상고기간이 끝나는 2009년 7월 30일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결국 2009년 7월 31일자로 사형이 확정됐다.[1]

따라서 가끔 강호순이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고 쓰는 자료가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게 아니다. 항소심 사형선고 뒤 강호순이 상고하지 않아서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체포후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그 어떤 실드나 개선, 구제도 불가능한, 쉽게 말해서 노답입니다.
만약 어디선가 이런 비슷한 것을 보신다면 조용히 피해 가시길 권합니다.
이를 무시하다 정신병이나 트라우마가 생기더라도 디시위키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새낀 전혀 반성을 안한다. 게다가 보는 사람마다 째려보고 살기등등한 비웃음을 짓는다.

오죽하니 체격이 루갈 번스타인과 똑같은 교도관이 이새끼를 끌고 와도 실실 쪼갠다.

도예에 취미를 들였는지 교도소 일과중 대부분은 도자기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그림도 잘 그려서 교도관들이 전시품에 내보내도 되겠다며 감탄할정도.

교도소의 크세르크세스라 한다. 다른 재소자들을 노예로 막부린다고.이런 새끼한테 기다니 같은 범죄자면서 자존심도 없노?

존나 개노답이다.

ㄴ 도예와 그림, 다른 재소자들을 부린다는 내용은 인터넷에서 오래 돌아다니는 강호순 수감생활 썰인데 신뢰할 만한 공개자료로 세부내용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현재도 사형수로 수감 중인 것은 확인된다.

현재

2026년 현재 강호순은 죽은 것도, 출소한 것도 아니다. 사형 확정자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형제도 자체는 법률상 남아 있지만 실제 집행은 수십 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2009년에 사형이 확정된 강호순도 17년째 미집행 사형수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2023년에는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의 사형집행시설을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 미집행 사형수 문제가 다시 뉴스에 나왔다. 이후 대구교도소에 있던 유영철과 정형구가 사형장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는데 서울구치소에는 이미 강호순과 정두영 등이 수감돼 있었다.[12]

당시 법무부는 유영철 등의 이감이 사형집행을 준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교정행정상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고 실제 사형집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3년 말 보도에서는 국내 미집행 사형수가 59명으로 집계됐고 강호순, 유영철, 정두영 등이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것으로 확인됐다.[13]

2024년 1월에도 서울구치소 수용자로 강호순의 이름이 다시 확인됐다. 새해 첫날 서울구치소 수용자들에게 유과가 특식으로 지급됐다는 기사에서 강호순과 유영철도 이곳에 수감 중이라고 보도됐다.[14]

2025년 1월 서울구치소 관련 보도에서도 강호순·유영철·정두영·정형구가 미집행 사형수로 수용돼 있다고 다시 확인됐다.[15]

따라서 2026년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가장 최근 상태는 서울구치소 수감 중인 미집행 사형수다.

여죄 의혹

강호순이 정말 10명만 살해했는지는 검거 당시부터 상당한 의문이 제기됐다.

경찰은 강호순이 전국 여러 지역에서 생활했고 여성에게 접근하는 데 익숙했으며 이미 확인된 사건 외에도 비슷한 실종사건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여죄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특히 2006년 강원도 원주와 정선에서 발생한 여성 실종사건, 같은 해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여대생 실종사건 등 전국의 미제 여성 실종사건 자료를 다시 검토했다.[16]

강호순의 집에서 압수한 컴퓨터도 분석했고 삭제된 데이터까지 복원하려고 대검찰청에 정밀분석을 의뢰했다.[17]

또 강호순 농장에서 발견된 도구와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의심했던 다른 실종사건 가운데 강호순의 범행이라고 법적으로 확정된 사건은 추가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공식적으로는 10명 살해가 맞으며 미제 실종사건까지 강호순의 범행으로 적어놓으면 안 된다.

범행의 특징

강호순 사건에서 특이했던 것은 범행 자체와 평상시 모습의 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주변에서는 말끔하게 생겼고 여자에게 말을 잘 걸며 사회생활도 그럭저럭 하는 사람으로 봤다. 피해자에게 접근할 때도 무작정 끌고 가는 것보다 차량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태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경찰 프로파일러들은 이런 피상적인 매력과 능숙한 거짓말, 죄책감 결여, 피해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태도를 강호순의 사이코패스 성향과 연결해 분석했다.

특히 피해자들을 살해한 뒤에도 일상생활로 바로 돌아갔다.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지 불과 12일 뒤 독신자 모임에 참가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 자리에서도 다른 여성에게 접근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7]

범행 대상도 특정한 한 연령대나 직업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기 서남부에서 벌어지던 여러 여성 실종사건을 경찰이 처음부터 동일범의 범행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유영철과 비교

유영철과 함께 200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으로 자주 언급된다.

둘 다 다수의 사람을 살해했고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사형이 확정된 뒤 실제 집행되지 않은 채 장기간 수감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범행 양상은 상당히 달랐다. 유영철은 부유층 노인과 여성 등을 대상으로 여러 방식의 살인을 저질렀고 시신 훼손까지 했지만 강호순은 주로 여성에게 접근해 차량에 태운 뒤 성범죄와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암매장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PCL-R 검사에서도 유영철은 통상 38점 전후로 알려져 있고 강호순은 27~28점이 나왔다. 물론 이 숫자가 살인마 전투력 측정기 같은 것은 아니고 성격특성을 평가하는 도구이므로 점수가 높다고 범죄가 더 잔혹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는 둘 다 서울구치소에 있다.

로또갤러리의김종훈이 부럽다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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