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하십시오.
주의. 이 문서는 꼴통새끼에 대해 다룹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남의 의견은 다 무시하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노답 꼴통입니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로 정의다! 빼애액!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로 정의다! 빼애액!
주의! 우매한 대중 씹새끼들이 존나 빨아줍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우매한 대중이 존나 빨아줍니다. 대가리가 좆같이 딸리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어렵다고 느끼면 바로 내던지는 너 같은 하등 생물들이 이딴 애미 없는 걸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서 지식을 쌓고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의 선동에서 벗어나십시오.
무지몽매한 대중 씹새끼! 앰창인생 개씨발새끼들!
무지몽매가 뭔 뜻인지도 모르는 너 말이야, 너.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무지몽매한 대중 씹새끼! 앰창인생 개씨발새끼들!
무지몽매가 뭔 뜻인지도 모르는 너 말이야, 너.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ㄴ구미시에서 이새끼 존나 빨아준다.
| 길재(吉再) | |
| 이명 | 자 재보(再父), 호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 충절(忠節) |
| 출생 | 1353년 경상도 선주 해평현 |
| 본관 | 해평 길씨 |
| 사망 | 1419년 |
| 경력 | 문하주서(우왕시기) |
| 국적 | 고려, 조선 |
| 가족 | 아버지 지금주사(知錦州事) 길원진(吉元進), 어머니 추증 판도판서 김희적의 딸 |
고려말 조선초의 성리학자. 본래 한국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것은 안향이었지만 우리가 성리학하면 어렴풋이 떠올리는 변화를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보수주의 끝판왕 틀딱 내로남불 꼰대는 이씨발롬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10살이 된 1363년 냉산(冷山)[1]에 있는 도리사에서 처음 글을 배웠고, 1370년 상산사록 박분에게서 논어, 맹자를 배우며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애비를 뵈려고 개경에 이르러 이색, 정몽주, 권근등 여러 유학자들 밑에 지내며 유교탈레반이 되었다.
길재-김숙자-김종직으로 학통이 이어지는데 이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성리학 탈레반이었으니 원흉은 이놈이 맞다.
일단 세종대왕의 여말삼은에 대한 평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정몽주는 완벽, 이 색은 학문은 잘하는데 다른 건 영...이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길재에 대한 평가는 절개 빼고 그저 그렇다고 평가한 갓세종의 안목으로 볼때 그냥 꼴통새끼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가 길러낸 제자들과 그 후손들에 의해 조선 중기부터 성리학 탈레반 국가로 변하면서 좆망하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복수를 성공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이래서 사상범은 조져야.
길씨인데 조상인 사람이 알고보니 이따구였더니 눈에서 피가 나온다. 하지만 시발 이게 현실이니 어쩔수없다. 좆같긴 하지만 앞으로 조상자랑은 하지말아야겠다 시발탱
- ↑ 現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