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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김삿갓
Kim Byeong-yeon
金炳淵
생년월일1807년 (출생)
1863년 (사망)
국적조선
출생지조선 한성부 장동
별명김립(金笠), 난고(蘭皐), 김삿갓
직업시인, 방랑객
추가 정보
경력조선 후기 방랑시인

조선의 에미넴

아가리 파이터와 디시인들의 선조

영월 김삿갓

조선시대 키보드 배틀의 창시자

패드립 한 번 잘못 쳤다가 인생 자체가 유배생활이 된 전설의 키배러

21세기에 태어났으면 디시에서 고정닉 파고 활동하다가 고소장을 산더미처럼 받았을 인물

하지만 막상 고소장 열어보면 전부 한시라 판사도 한참 읽어봐야 욕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이다.

김삿갓(金笠)은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을 가리키는 별명이다. 호는 난고(蘭皐), 자는 성심(性深)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전국을 떠돌며 한시를 지었으며, 특히 신분과 권위를 앞세우는 양반과 훈장, 인색한 사람들을 풍자한 해학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자로는 멀쩡한 시를 써놓고 한국어로 읽으면 욕설이 되도록 만드는 등 언어유희에도 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찰지게 패드립 쳐놓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아 엄마한테 신나게 패드립 친거 자랑하다가 엄마가 그거 셀프 패드립이야 하니까 현자타임 와서 가출한 희대의 키배러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큰 삿갓을 쓴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키배실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그 어떤 정신승리의 달인들도 이분의 문장 몇줄로 개박살난다.

실제 그의 촌철살인 같은 글귀로 전국 곳곳에서 정의구현과 참교육을 한다.

디시인과 비교하는데 김삿갓은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걸 알고 벼슬을 버린 채 권력층들과 키배질을 벌였던 방랑시인이다. 스스로 병신이라고 좋아하는 디씨인은 급식충선에 올려놔야 된다.

쉰 살이 넘는 나이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심의 한을 글로 써내 김립시집이 나온다. 김삿갓은 전국에 시를 남기고 다녔다.

다만 『김립시집』은 김삿갓이 생전에 직접 편찬한 시집이 아니라, 사후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시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1939년 이응수가 편찬한 『김립시집』이 대표적인 자료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신동에 과거시험 씹어먹는 천재였으나 불운한 운명에 방랑 생활을 한다.

실제로 김삿갓은 당대의 정식 과거에서 높은 관직을 얻은 인물이 아니었다. 과거에 급제했다가 가문의 비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널리 알려진 설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실제로는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던 인물로 설명된다.[1]

생애

어린 시절과 가문의 몰락

김삿갓은 1807년 한성부 장동에서 태어났다.

본래 안동 김씨 집안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조선 후기의 유력한 양반 가문이었다.

그러나 1811년 홍경래의 난이 발생하면서 집안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당시 평안도 선천부사였는데, 반란군에 항복하고 협조한 죄로 처형되었다.

이로 인해 김삿갓의 집안은 폐족이 되어 관직 진출과 사회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김삿갓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여러 지역을 떠돌아야 했으며, 이후 강원도 영월에 정착해 생활하였다.

한마디로 원래 잘나가던 양반 집안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나라 뒤집어엎으려는 반란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후손들의 인생까지 꼬인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패드립을 친 전설

김삿갓을 대표하는 일화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비판하는 글을 지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전승에 따르면 김삿갓은 한 백일장에 참가하였다.

당시 제시된 글제는 홍경래의 난에서 충성을 다한 가산군수 정시를 칭찬하고, 반란군에 항복한 김익순의 죄를 비판하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김익순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온갖 문장력을 동원하여 신나게 비판하였다.

그 결과 글의 완성도를 인정받아 장원으로 뽑혔다고 한다.

이겼다! 드디어 내가 장원이다!

신나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자랑했는데, 어머니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그 김익순이 네 할아버지다.

현자타임

그날 이후 김삿갓은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삿갓을 쓰고 방랑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 이야기는 후대에 널리 알려진 김삿갓 설화다. 실제 김삿갓의 가문이 홍경래의 난으로 몰락한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되지만, 백일장 장원과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의 구체적인 경위까지 모두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2]

결국 키배에서는 완승했는데 현실에서는 패배한 셈이다.

방랑 생활

김삿갓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시를 지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지방 관아의 관리들과 교류하면서 가문의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방랑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당시 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생활상을 시로 표현하게 되었다.

특히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인색하거나 위선적인 사람들을 풍자하는 작품들이 유명하다.

삿갓 하나 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를 지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힙합 가수나 프리스타일 래퍼에 비유되기도 한다.

다만 그의 작품이 전부 욕설과 풍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방랑자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문의 몰락에 관한 슬픔을 표현한 진지한 시들도 남아 있다.

사망

1863년 전라도 동복현, 오늘날의 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나이는 57세였다.

이후 아들 김익균이 유해를 수습해 강원도 영월 지역에 안장하였다.

현재 영월군 김삿갓면에는 김삿갓의 묘역과 문학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일화

어느 날 김삿갓이 춘천 소양강변에서 나룻배를 탔다.

노 젓는 이가 아리따운 처녀 뱃사공이 아닌가?

작업의 달인 김삿갓이 작업에 들어간다.

"여보 마누라. 노 좀 잘 저으소."

처녀 뱃사공이 펄쩍 뛰며, "어째서 내가 댁의 마누라요!?"

김삿갓은 태연히 말한다.

"내가 당신 배에 올라탔으니 내 마누라지"

강을 건너 배를 내린다. 이때 처녀뱃사공이 하는 말.

"내 아들아. 잘 가거라."

눈이 휘둥그레진 김삿갓. "아니, 내가 어찌 그대의 아들인고?"

처녀뱃사공 曰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 아닌감!"

김삿갓은 시원하게 껄껄 웃는다.

"헉! 맞는 말일세 그려! 하하하! 어머님!! 만수무강 하소서. 하하하!"

남의 배에 올라탔다고 마누라 드립 쳤다가 뱃속에서 나왔다고 아들이 되어버렸다.

조선시대 키배에서도 선빵 쳤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다.

다만 이 이야기는 김삿갓에 관해 전해지는 민간 설화로, 실제 발생한 사건이라고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일화 2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다.

김삿갓이 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개고기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가 나는 곳은 시냇가였는데,

그곳에는 여러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시 한 수씩을 지어 서로 나누어 읽고는 시평을 늘어놓으며 보신탕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김삿갓이 슬며시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너머로 선비들이 지은 시를 훑어보았더니

어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술이나 한잔 얻어먹으려고 그들 틈에 끼어 앉아 술잔이 건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술잔은 넘어오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시를 가지고 저희들끼리 웃고 떠들기만 했다.

은근히 부아가 난 김삿갓은 "구상유취(拘喪儒聚)로구나."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뒤쫓아온 하인에 붙잡혀온 김삿갓 "내가 뭘 잘못 말했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무얼 잘못했느냐고? 어른들을 보고 입에서 젖내가 나다니 그런 불경한 말이 어디 또 있단 말이냐?

"그건 큰 오해십니다. 내가 말한 구상유취는 입에 젖내가 나는 구상유취(口尙乳臭)가 아니라 개 초상에 선비가 모였다는 구상유취(拘喪儒聚)였습니다."

선비들은 그만 무릎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사과하고 술을 권했다.

구상유취라고 욕해놓고 한자만 바꿔서 빠져나가는 조선시대 말장난의 달인.

상대방이 따지면 "내가 언제 욕했음? 한자도 모르면서 왜 시비임?"이라고 반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완전범죄에 가까운 화법이다.

물론 이것 역시 후대에 전하는 설화이므로 실제 김삿갓이 해당 선비들과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일화 3

한 농가에서 양반 세도가가 선산의 묏자리를 자기네 딸의 묏자리로 써서 죽을 맛이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김삿갓은 "사대부의 따님을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눕혔으니 할아버지 몫으로 하오리까 아버지 몫으로 하오리까." 라는 시를 써서 양반에게 갖다주도록 하였다.

이 편지를 읽은 양반 세도가는 바로 딸의 묏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남의 집 선산을 빼앗은 양반한테 족보를 이용한 패드립을 날려서 쫓아낸 일화다.

그냥 묏자리 돌려달라고 했으면 무시했을 양반이 자기 집안의 체면을 건드리자 바로 행동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다만 당시의 실제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기보다 김삿갓의 언변을 강조한 설화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화 4

한 서당에서 재워줄 것을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훈장한테 이런 욕을 시전하였다.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 보니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에는 모두 귀한 물건들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학생은 전부 열명도 채 안되고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훈장은 와서 만나주지도 않네

한자로 읽으면 욕인데, 뜻풀이하면 그냥 안부 전하고 물러가는 뜻이라 훈장만 훈들훈들.

이와 비슷하게 어느 잘난체하는 양반한테 문안인사하러 가선 "엄동설한이 내조지(來早至)하였습니다. 개존물(皆尊物)께서는 그간 무고하신지 일찍 내불알(來不謁)하여 죄송천만입니다."(엄동설한이 일찍 찾아 왔는데, 일찍이 여러 어른들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돌려 깐 적도 있다.

서당내조지 해설

이 작품은 흔히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으로 불리며, 김삿갓의 풍자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한문을 글자 뜻에 따라 해석하면 서당의 모습을 묘사한 시이지만, 한자음을 한국어로 읽으면 욕설처럼 들린다.

한문 음독 한문 뜻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더니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에는 모두 귀한 사람들이 있고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학생은 열 명도 되지 않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네

글로 읽으면 문학이고, 입으로 읽으면 욕설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의 내용을 따지는 순간 상대방이 스스로 욕설의 의미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삿갓이 실제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대표적인 작품이며, 다양한 문헌과 후대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다만 원문의 일부 글자는 전승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하여 '乃'와 '來' 등 서로 다른 표기가 나타나기도 한다.[3]

일화 5: 숫자로 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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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한시 가운데 이십수하(二十樹下)라는 시가 있다.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四十村中五十食 (사십촌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기유칠십사)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숫자가 잔뜩 들어가 있는 이상한 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자의 숫자를 한국어 고유어 발음으로 바꾸어 읽는 언어유희가 숨어 있다.

  • 二十(20): 스물, 스무
  • 三十(30): 서른, 서러운 또는 설익은
  • 四十(40): 마흔, 망할
  • 五十(50): 쉰
  • 七十(70): 일흔, 이런

대략적인 내용은 어느 마을에서 박대를 당하고 상한 밥을 얻어먹은 나그네가 그 인색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숫자만 적었는데 문장 전체가 욕이 되는 조선시대의 암호문이다.

당시에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그냥 숫자 놀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한자를 아는 사람은 그 안에 숨겨진 말장난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김삿갓은 한자를 이용해서 한국어 발음을 숨기는 방식의 풍자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김병연의 한시를 연구한 자료에서도 언급되는 대표적인 언어유희 작품이다.[4]

문학적 특징

김삿갓은 단순히 욕을 잘하던 사람이 아니라 당대의 한문학과 한국어의 특성을 활용하여 독특한 시를 남긴 인물이다.

풍자와 해학

김삿갓 시의 특징은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언어유희와 비유를 이용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이다.

특히 양반의 권위와 위선, 인색한 사람들의 행동 등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이러한 작품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기능도 하였다.

한자와 한국어의 결합

김삿갓의 시에는 한자의 뜻과 한국어 발음을 동시에 이용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서당내조지와 이십수하 같은 작품이 있다.

이러한 작품은 한문이라는 전통적인 문학 형식을 이용하면서도 한국어 특유의 발음과 언어유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방랑자의 슬픔

김삿갓의 작품이 전부 욕설과 농담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문의 몰락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오랜 방랑 생활에서 겪은 외로움과 좌절감을 표현한 시들도 남아 있다.

특히 그의 시 세계는 초기의 비애와 고뇌를 표현한 작품에서 후기에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지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남에게 욕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던 시인인 것이다.

개드립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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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삿갓의 생애와 일화를 현대 인터넷 문화에 빗대어 만든 개드립이다. 실제 김삿갓이 남긴 발언이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패러디다.

  • 조선의 에미넴: 프리스타일 랩 대신 한시를 즉석에서 지어 상대방을 디스한다. 다만 마이크는 없고 붓이 있다.
  • 조선 최초의 디스전 전문 래퍼: 상대방이 욕을 했다고 따지면 한문 뜻풀이를 들고 와서 반박하는 무적의 논리 구조를 갖췄다.
  • 조선의 디시인사이드 고정닉: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비를 걸고 글을 남겼으니 활동 무대가 조선 팔도 전체인 셈이다.
  • 조선의 키보드 워리어: 키보드가 없던 시대라 붓으로 키배를 떴다. 문제는 손글씨인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조선의 힙합 배틀러: 누가 먼저 시를 지어보라고 하면 즉석에서 운율과 라임을 맞춰 상대방을 공격한다.
  • 조선의 패드립 피해자이자 가해자: 자기 할아버지를 신나게 비판하고 장원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조상이었다는 전설의 셀프 패드립 사건.
  • 조선의 현자타임 전문가: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게 승리한 순간이 가장 큰 정신적 충격으로 돌아왔다는 전승 때문에 붙일 만한 별명이다.
  • 조선의 노숙자 문학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숙식을 해결하면서도 글 한 줄만큼은 절대 대충 쓰지 않는다.
  • 조선의 무전여행 유튜버: 돈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남긴다. 다만 유튜브가 없어서 영상 대신 전설이 남았다.
  • 조선의 말빨 최강자: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무력을 쓰지 않는다. 한문 몇 줄이면 충분하다.
  • 조선의 한문 해커: 기존 언어체계에 한국어 욕설을 인코딩하여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 조선의 이스터 에그 제작자: 겉으로 보면 평범한 한시인데 한국어로 읽으면 숨겨진 욕설이 튀어나온다.
  • 조선의 악플러: 다만 악플 하나 쓰려면 최소한 한자를 알고 운율도 맞춰야 했으므로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았다.
  • 조선의 댓글 장인: 시비를 거는 사람마다 상황에 딱 맞는 시로 답글을 달아준다.
  • 조선의 고인물: 일반 선비들이 한문 뜻풀이에 집중할 때 혼자 한글 발음으로 제2의 공격을 가하는 이중 공격 기술을 갖췄다.
  • 조선의 언어유희 마스터: 글자 뜻, 발음, 비유까지 동원하는 다중 공격이라 무식한 놈은 욕먹은 줄도 모른다.
  • 조선의 정신승리 카운터: 상대방이 화를 내면 한문 뜻을 설명하며 자신은 욕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 조선의 논리왕: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논리로 반박하는 대신 시 하나를 던져 논쟁 자체를 끝낸다.
  • 조선의 지역비하 전문 풍자시인: 인색한 마을이나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않고 한시로 박제해버린다.
  • 조선의 전국구 키배러: 다른 사람은 동네 서당에서 말싸움할 때 이 양반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원정 키배를 벌인다.
  • 조선의 셀프디스 최강자: 남을 까다가 결국 자기 조상까지 까버렸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정점이다.
  • 조선의 방랑자: 숙박비 대신 시를 지어주고,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그 음식까지 소재로 삼아 시를 남긴다.
  • 조선의 팩트폭력 시인: 대놓고 욕을 하는 대신 상대방이 부끄러워할 만한 부분을 비꼬아 표현한다.
  • 조선의 그림자 복서: 정작 싸움을 걸어온 상대는 없는데 시를 한 편 짓고 나면 누군가가 패배해 있다.
  • 조선의 빌런 겸 영웅: 풍자를 당한 입장에서는 웬 미친 방랑객이고, 구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오락거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태어났다면?

현대에 태어났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드립도 가능하다.

일단 누가 개소리를 하면 참지 못하고 장문의 반박글을 작성한다.

상대방이 욕설을 문제 삼으면 자신이 쓴 문장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뜻에 맞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누가 들어도 욕이다.

ㄴ 운영자: 욕설로 7일 차단합니다.

ㄴ 김삿갓: 한문 원문을 해석해 보시오.

ㄴ 운영자: 이게 왜 욕임?

ㄴ 이용자들: 직접 읽어보셈.

ㄴ 운영자: 아 씨발.

결국 운영자까지 욕하게 만든 뒤 자신은 유유히 다른 게시판으로 떠나는 것이다.

전국을 떠돌아다닌 것도 커뮤니티에 비유하면 특정 게시판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갤러리 저 갤러리 돌아다니며 활동한 셈이다.

게다가 아무리 상대방을 조롱해도 글이 문학작품으로 남아 수백 년 후 사람들이 읽고 웃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악플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김삿갓이 현대의 래퍼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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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한시는 상당한 언어유희를 특징으로 하므로 현대의 랩과 비교하는 농담이 자주 가능하다.

특히 단어의 뜻과 발음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은 펀치라인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단순히 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과 상황을 파악해 운율과 문장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풍자시와 디스랩은 공통점이 있다.

물론 김삿갓의 작품은 한시라는 문학적 형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현대의 힙합 음악과 동일한 장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이 말로 싸우자고 했는데 한자로 라임까지 맞춰서 디스한다면 래퍼 입장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을 것이다.

기타

당시엔 삿갓 립 자를 써서 김립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본명은 김병연이다.

영월군엔 김삿갓면도 있다.

여기서 영주시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는데 매우 험하다.

자전거랑 차가 동시에 다니는데 길이 정비가 하나도 안돼있고 일방통행도 아닌데 도로가 1개뿐이다.

시간 걸리더라도 꼭 돌아가는걸 추천한다.

사고 안나고 넘어가는걸 성공하면 여우 동상이 널 반겨줄 것이다.

김삿갓면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 기존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김삿갓의 묘역과 난고김삿갓문학관 등이 이 지역에 위치한다.

이 일대에서는 김삿갓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화행사도 열린다.

김삿갓 문학관

난고김삿갓문학관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문학관이다.

김삿갓의 생애와 작품, 관련 자료 등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인근에는 김삿갓의 묘역과 주거지 관련 유적도 있다.

영월에서는 김삿갓을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인물로 기념하고 있으며, 김삿갓 문화제 등의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5]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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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서관이 자주 부르는 노래의 이름이다.

김삿갓 김삿갓 사까시라 하네~~

노래가 아주 신난다. 노래방에서 불러주자

컴퓨터 본체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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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김삿갓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방랑시인이자 풍자시인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문의 뜻과 한국어 발음을 함께 활용하는 언어유희를 통해 기존 한시의 형식에 새로운 표현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양반과 훈장 등 당시 권위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을 풍자하는 작품이 많이 전해진다.

그러나 김삿갓의 삶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욕을 하고 돌아다닌 재미있는 방랑객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집안의 몰락과 사회적인 제약 속에서 평생 방랑하였으며, 자신의 불우한 처지와 고독을 시로 표현하였다.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일화 가운데 일부는 후대에 창작되거나 각색된 것으로 보이므로, 역사적 인물 김병연과 민간 설화 속 김삿갓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남들에게는 웃음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은 그다지 웃을 일이 많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풍자와 해학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시인이 현대 인터넷 문화와 연결되어 언급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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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