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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릴성, 김정릴, 김정른 개돼지씹새끼!!! 김정른 래미래비 처뒤진 개씨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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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중경제론(大衆經濟論)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신민당 등 당시 야권에서 발전한 경제정책론으로, 특히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 김대중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에 맞서는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유명해졌다.

1971년 7대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었던 김대중이 주장한 경제 개념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가 주도로 자본을 집중하여 대기업과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성장 전략을 밀어붙였다면 대중경제론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중소기업·농업·국내시장과 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을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일단 대기업 몇 놈부터 존나 키우고 나중에 나라 전체를 끌어올리자는 쪽과 처음부터 경제 주체들을 좀 더 고르게 키우자는 쪽이 1971년 대선에서 정면충돌한 셈이다.[1]

기원

사실상 박현채라는 미치광이가 만든 희대의 불쏘시개 민족경제론을 베낀 것이다. 내용은 당연하지만 똑같이 똥멍청하다. 박정희가 내세운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주도경제를 배격하고 '농업과 내수용 중소기업으로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김대중이 어느 날 박현채민족경제론을 발견하고 그대로 복붙해서 만든 이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경제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1960년대 중반 야당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1966년 민중당의 '대중자본주의', 1967년 신민당의 경제정책 등을 거쳐 발전하고 있었다. 김대중 역시 이 시기부터 대중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2]

여기에 1960년대 말부터 박현채를 비롯한 진보계열 경제학자들이 김대중의 정책 형성에 참여하면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야당의 기존 대중경제 구상이 강하게 결합했다. 실제 연구에서도 1971년의 대중경제론을 민족경제론의 현실 정치적 변용으로 평가하며, 박현채가 김대중의 정책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3]

1971년에는 김대중의 경제정책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대중경제 100문 100답》이 나오면서 하나의 경제정책론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내용

대중경제론의 핵심은 당시 박정희 정부의 개발 방식에 대한 비판이었다.

당시 한국은 부족한 자본을 정부가 통제하면서 특정 산업과 기업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중경제론에서는 이 과정에서 재벌과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고 농민·노동자·중소기업 등이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 억제, 중소기업 육성, 농업 지원과 농가소득 향상, 농공 간 균형발전, 지역격차 완화, 노동자의 경영 참여, 종업원 지주제, 성장 과실의 분배 등을 강조했다.[4]

또한 외국 자본과 수출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에도 비판적이었으며 국내 산업과 국내시장을 강화해 보다 자립적인 국민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농사나 짓고 외국과 무역하지 말자는 단순한 농본주의와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다만 박정희 정부의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에 비해 내수시장, 농업, 중소기업과 경제적 자립을 훨씬 강하게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식 개발경제와의 대결

1971년 대선은 경제정책 면에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선거였다. 양측의 경제발전 방향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박정희 측은 수출 확대와 국가주도 개발, 대기업 및 전략산업 육성을 통한 고도성장을 추진했고 김대중 측은 이에 맞서 중소기업과 농업의 육성, 경제력 집중 억제, 분배와 참여를 강조했다.

당시 논쟁을 정리하면 대략 수출지향 대 수입대체, 불균형발전 대 균형발전, 대기업 중심 대 중소기업 중심이라는 대립구도가 형성됐다.[5]

산지가 70%를 차지하는 코딱지만한 땅덩이에 여름은 아프리카요 겨울은 시베리아라 농사는 꼴랑 1모작 밖에 못하고 보유자원은 일본이 캐다만 석탄 밖에 없는 인구 3천만따리 좆밥 씹거지국가가 농업과 내수용 중소기업으로 자급자좆?ㅋㅋㅋㅋㅋ 엥? 이거 완전 북한아니냐?

존나 웃기는건 당시 헬조선의 자칭 진보 고학력층이 동네 개새끼도 무시하고 넘어갈 이 씹소리를 진지하게 빨았다는거다. 모두가 만들어가는 헬조선 ㅍㅌㅊ?

만약에 이것을 실행했으면 헬조선은 베트남 필리핀 라오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북한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랑스러운 자립민족국가가 될 수 있었을텐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개새끼들이 미국 응딩이 뒤에 숨어서 경제와 산업을 너무 발전시켜놓는 바람에 그 기회를 아깝게 놓쳐버렸다.

다만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 가지 주의할 부분이 있다. 1971년 시점에는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다. 흔히 말하는 중화학공업화 선언은 1973년 이후의 일이므로 1971년 대중경제론을 처음부터 '중화학공업화 반대론'으로만 설명하면 시간 순서가 조금 꼬인다.

당시의 직접적인 논쟁 대상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외자도입·수출주도·대기업 중심의 개발전략이었으며, 이후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면서 두 경제관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더 선명해졌다.

이후

이후 인동초 김대중 선생께서는 자립민족국가 달성의 명예를 혼자 누릴 수 없어 대중경제론을 쓰레기통에 쳐박으시고 신자유주의의 앞잡이가 되셨다.

실제로 김대중의 경제관은 이후 상당히 변했다.

1970년대의 대중경제론은 1980년대에 들어 대중참여경제론으로 변화했고, 이 과정에서 초기 대중경제론보다 시장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1990년대에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진행되어 1997년 대통령 선거와 집권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핵심 경제철학으로 제시했다.[6]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 집권기의 경제정책은 1971년 대중경제론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장 개혁, 외국인 투자 확대,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주의적 정책들이 대거 실시되었다.

그렇다고 김대중의 경제사상이 완전히 180도 뒤집혔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에 대한 경계, 사회적 약자의 경제 참여, 복지 확대와 시장경제의 민주적 통제 같은 문제의식은 형태를 바꿔 계속 남아 있었다. 학계에서도 대중경제론 → 대중참여경제론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서로 완전히 별개의 사상이라기보다 김대중 경제사상의 장기적인 변화 과정으로 연구한다.[7]

평가

지금 와서 보면 대중경제론의 모든 정책을 하나로 묶어 실행했으면 한국이 망했다 또는 박정희식 개발보다 우월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역사에서는 대중경제론이 국가 경제정책으로 전면 시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반사실적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당시 박정희식 성장정책이 이후 한국의 수출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성장에 중요한 기반을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재벌 중심 경제력 집중, 노동 억압, 지역 및 계층 간 격차 등의 부작용도 함께 남겼다. 대중경제론은 바로 이런 개발독재형 성장모델의 문제점을 1960~70년대부터 정치권 차원에서 제기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1971년 한국에서 이미 대기업이랑 수출부터 존나 키우자 VS 중소기업·내수·분배도 같이 챙기자라는 논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형태만 바뀌었지 한국 경제에서 이 논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