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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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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비례대표 병행 비례대표 미실시 양원제·의원내각제 지역구 직선 +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의원 병존

5대 1960년 · 민의원·참의원

※ 배경색은 각 선거의 선거제도상 특징을 간략히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제9·10대 국회는 지역구 의원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동시에 일부 의원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별도로 선출했다.

4단원 →V. 오늘날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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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개성시, 연백군, 장단군, 개풍군, 옹진군도 선거구로 있었다. 물론 황해도가 아니라 억지로 경기도에 편입한 상태로.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최초의 선거. 헌법의 제정을 위하여 특수하게 구성하는 국회인 만큼, 국회의원의 임기도 약 2년으로 짧았다.

무소속의 리즈 시절이라고 한다.

최초의 선거였던 만큼, 이 선거에 뛰어든 정당이 113개나 되었지만 당시에는 정당 정치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지주니뮤를 뽑아주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정당 인사보다는 자기 지역의 토호를 뽑아주는 것이 개념적이었다. 그러니까 지도의 색깔은 정치적 성향보다는 그 지역의 부자 양반이 어느 정당에 속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겠다. 한민당은 어째 호남 지주들로 주로 구성된 탓에 호남에 녹색이 많이 보인다. 과연 한민당에 호남 지주만 있었을지...

남북 협상파 한국 독립당이 거부하고 남로당이 깽판 친 선거. 하지만 가장 처음 치러지는 선거였기에 방해와 불참에도 선거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북제주군은 4.3 사건으로 인해서 선거 무효가 선언되었기 때문에 1년 뒤에 보궐 선거를 치렀다.

201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제정했다. 물론 공휴일은 아니다.

투표율은 95.5%이고, 정원은 200석에 비례대표는 없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제1당으로 55석을 획득했으며 1,662,294표(24.43%)를 받았다.

한국민주당은 제2당으로 29석을 획득했으며 828,195표(12.17%)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