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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로 인구는 약 767만명이고 1824년에 수도로 결정되었다.

정확히는 리야드(الرياض, ar-Riyāḍ)는 사우디아라비아 중앙부 네지드 고원에 있는 수도이자 최대 도시다. 1824년 제2차 사우디 국가가 세워질 때 수도가 되었으며,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성립한 뒤에도 수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

이름인 리야드는 아랍어로 '정원들'이라는 뜻이다. 지금 사진만 보면 사막 한가운데 콘크리트와 고층빌딩을 쑤셔박은 도시라 대체 어디가 정원이냐 싶지만, 원래 와디 주변의 오아시스와 녹지가 있던 곳에서 나온 이름이다.

참고로 상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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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이 있지만 메카메디나처럼 이슬람교의 성지는 아니다. 사우디의 정치적 수도라는 점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나라의 중심지일 뿐, 성지 순례 목적지로서의 위상은 메카·메디나와 차원이 다르다.

역사

고대때는 낙타타면서 장사하는 유목민들밖에 없었고, 중세때는 여러 왕조들이 지금의 사우디 영토를 지배하는데 역대 왕조들은 메카나 메디나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이곳의 주민들은 자유롭게 살았다.

이 부분은 좀 과장됐다. 리야드 일대가 메카메디나처럼 이슬람 세계의 초대형 중심지는 아니었던 것은 맞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유목민만 돌아다니던 곳도 아니었다. 현재 리야드 일대에는 고대부터 정착지가 존재했으며 이슬람 초기에는 하즈르 알야마마라는 도시가 지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다만 아라비아반도 내륙의 네지드 지역은 홍해 연안의 히자즈나 페르시아만 연안 도시들에 비해 국제무역과 제국의 직접 통제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면 부족과 지역 유력자들이 사실상 알아서 통치하는 일이 흔했다.

18세기들어 통일된 아랍 왕국을 가져야된다는 아랍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사우디가문은 1744년 디리야라는 지역을 수도로 삼고 디리야 토호국을 선포했으나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한다.

여기서 아랍 민족주의라는 설명은 시대가 좀 안 맞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적 아랍 민족주의는 주로 19세기 말~20세기에 성장했다.

1744년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이슬람 종교개혁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손을 잡으면서 디리야를 중심으로 제1차 사우디 국가가 성장한 것이 시작이다. 즉 이 시기의 핵심은 통일 아랍 민족국가를 만들자라기보다는 사우드 가문의 정치세력 확대와 와하브 운동의 종교적 결합에 가까웠다.

이 국가는 네지드에서 시작해 아라비아반도의 상당 부분까지 세력을 넓혔고 결국 메카와 메디나까지 점령했다. 성지를 빼앗긴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파샤 세력을 동원해 진압했고, 1818년 수도 디리야가 함락되면서 제1차 사우디 국가는 멸망했다.

그렇지만 사우디 왕가는 통일된 왕조를 가지려는 꿈을 버리지 않고 1824년 네지드 토호국을 선포하고 리야드를 수도로 삼았다. 이 왕국역시 친 오스만 성향이었던 하일 토후국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1824년 투르키 빈 압둘라가 오스만 측 세력을 몰아내고 제2차 사우디 국가를 재건하면서 수도를 파괴된 디리야 대신 리야드로 옮겼다. 이때부터 리야드가 사우드 왕가의 정치적 중심지로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1]

제2차 사우디 국가는 1824년부터 1891년까지 약 69년 동안 존속했다.[1] 다만 내부에서는 사우드 가문 형제들끼리 왕위다툼을 벌이며 국력이 약해졌고, 북부 하일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라시드 왕조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결국 1891년 제2차 사우디 국가는 무너지고 사우드 가문은 쿠웨이트로 도망갔다.[1]

2번의 실패가 있었으나 사우디 왕조는 독립국가를 건립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1902년에 하일 토후국이 통치하고있었던 리야드를 빼앗고 리야드 토호국을 세우면서 세번째 독립국가를 건립한다. 이후 1차 세계대전때 편을 잘 서서 1921년 하일 토호국을 합병하고 주변지역을 합병하여 현대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190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리야드에 기습적으로 들어가 알 마스막 요새를 장악하면서 사우드 왕가의 부활이 시작됐다.

이 사건은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사의 시작점 같은 취급을 받는다. 리야드 탈환 이후 압둘아지즈는 네지드 일대를 차례로 정복했고 1921년에는 최대 경쟁자였던 하일의 라시드 왕조까지 멸망시켰다.

다만 1차 세계대전 때 편을 잘 섰다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과정이 좀 복잡하다. 압둘아지즈는 영국과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오스만 제국에 맞서 아랍 반란을 일으킨 후세인 빈 알리의 하심 가문과는 별개의 세력이었다.

이후 1924~1925년에는 하심 왕가가 지배하던 헤자즈를 점령해 메카메디나까지 손에 넣었고, 1932년 네지드와 헤자즈를 합쳐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수도는 계속 리야드였다.

두 번 나라 날려먹고 세 번째에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먹어버렸다.

존버의 사우드 가문.

사우디 왕가와 리야드

리야드는 그냥 행정수도 하나가 아니라 사우드 왕가의 본진이다.

제1차 사우디 국가의 수도는 바로 옆 디리야였지만, 1818년 디리야가 박살난 뒤 1824년 제2차 사우디 국가가 리야드를 수도로 선택했다.[1]

1902년 압둘아지즈가 리야드를 탈환한 뒤에도 이곳을 거점으로 사우디 통일전쟁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우디 왕가 입장에서는 거의 성지급 역사성을 가진 도시다.

현재 왕궁과 정부부처, 외국 대사관, 주요 국영기관들이 대부분 리야드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사우디는 종교적으로는 메카·메디나, 정치적으로는 리야드라고 보면 대충 맞는다.

현대

2차대전이후 석유빨로 급성장하면서 수도인 이곳역시 도시화가 되었으며 돈빨로 숲을 조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태생적으로 사막 지역이라 분위기는 일반적인 사막 분위기다.

사우디가 석유수출로 돈을 쓸어담기 시작하면서 리야드도 진짜 미친 속도로 커졌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성벽 안에 들어가던 작은 내륙도시였는데 지금은 고속도로와 고층빌딩, 거대한 쇼핑몰, 왕궁, 금융지구가 끝없이 펼쳐지는 대도시가 됐다.

특히 리야드는 도시가 옆으로 존나 넓게 퍼져있다. 땅값 비싸서 위로 쌓아올리는 홍콩이나 서울 같은 곳과 달리 사막에 빈 땅이 워낙 많아서 넓은 도로를 뚫고 저층 주택가를 계속 확장하는 미국식 스프롤에 가까운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지도상으로 보면 도시 크기가 정신나갔다.

차 없으면 좆된다.

최근에는 사우디 정부가 비전 2030을 추진하면서 리야드를 중동의 금융·관광·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려고 돈을 더욱 미친듯이 붓고 있다.

그린 리야드

돈빨로 숲을 조성한다는 원문의 표현이 농담 같지만 진짜 국가사업이다.

2019년 사우디 정부는 Green Riyadh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리야드 전역에 75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도시 녹지 면적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2]

계획에는 동네공원 3,330곳, 대형공원 43곳, 학교 6,000곳, 모스크 9,000곳, 도로 약 16,400km 등에 나무를 심는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2]

사막 한가운데 나무 750만 그루를 심겠다고 하니

물은 어디서 남?

이라는 매우 정상적인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관개에는 주로 처리된 재이용수를 사용할 계획이며 하루 최대 100만㎥ 규모의 관개용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 기반시설 중 하나다.[2]

또 아무 나무나 데려다 꽂는 게 아니라 리야드의 고온·건조 환경에 맞는 토착 및 적응 수종 72종을 선정해 사용하고 있다.[2]

계획대로 된다면 도시 평균기온을 약 1.5~2℃ 낮추고, 녹지 확대와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노리고 있다.[2]

사막에 나무 심는데 물도 석유처럼 퍼붓는 정신나간 사업처럼 보이지만 최소한 물은 하수 재처리해서 쓰려고 한다.

2024년에는 와디 하니파의 지류인 구드와나 환경복원 사업을 완료하면서 1만 5천 그루 이상의 나무와 관목을 심은 공원이 개장하기도 했다.[3]

도시 풍경

리야드 하면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가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있는 킹덤 센터다.

밤에 보면 병따개처럼 생겼다.

그 외에도 알 파이살리야 센터, 킹 압둘라 금융지구 등 고층빌딩 지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도 끝없는 저층건물과 황갈색 사막 풍경이 나타난다.

즉 인터넷에서 보는 리야드 사진은

초호화 빌딩 + 야자수 + 대형도로

인데 카메라를 반대쪽으로 돌리면

모래

다.

이게 리야드의 정체성이다.

기후

틀:더움

존나 덥다.

쾨펜 기후 구분으로는 전형적인 사막기후에 속하며 여름에는 낮 최고기온이 40℃를 가볍게 넘어간다.

바다에서도 멀리 떨어진 내륙 고원이라 제다 같은 홍해 연안 도시보다 습도는 낮지만 그 대신 햇빛이 직빵이다.

습식 사우나냐 건식 사우나냐의 차이지 둘 다 덥다.

겨울에는 의외로 기온이 상당히 떨어지며 밤에는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는 날도 있다. 사막은 무조건 365일 뜨거울 거라고 생각하고 반팔만 챙겨갔다가는 겨울밤에 후회할 수 있다.

비는 매우 적지만 한 번 집중호우가 내리면 평소 물이 없는 와디와 도로에 갑자기 물이 몰리면서 침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막 도시에서 홍수 나는 기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교통

도시가 존나 넓고 자동차 중심으로 성장해서 오랫동안 대중교통이 매우 빈약했다.

덕분에 리야드에서 살아남으려면

차 사라

가 거의 정답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계속 늘고 교통체증까지 씹창나면서 사우디 정부도 결국 대중교통을 대규모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리야드 메트로가 있으며 여러 개 노선으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도시철도망이 구축됐다.

석유국에서 지하철을 깐다.

기름이 남아돌아도 차가 너무 많으면 결국 지하철을 만들게 된다는 도시계획의 승리다.

디리야

리야드 서북쪽에는 사우디 왕조의 진짜 고향인 디리야가 있다.

1744년 제1차 사우디 국가의 수도였으며 사우드 가문과 와하브 운동이 결합해 세력을 키운 장소다.

1818년 오스만-이집트군에게 박살나면서 수도 기능을 잃었고 이후 리야드가 그 자리를 가져갔다.

현재 디리야의 앗투라이프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우디 정부가 관광지로 존나게 개발하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디리야 = 사우드 왕가의 고향

리야드 = 사우드 왕가의 부활 이후 본진

정도로 보면 된다.

여담

  • 도시 이름 리야드는 아랍어로 정원들이라는 뜻이다.
  • 1824년부터 사우디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1]
  • 1891년 제2차 사우디 국가가 멸망하면서 한동안 라시드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 190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리야드를 탈환한 사건이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사의 출발점으로 취급된다.
  • 메카, 메디나와 달리 이슬람교의 성지는 아니다.
  • 해안도시가 아니라 사우디 한복판 내륙에 있다.
  • 그럼에도 석유머니와 수도빨로 사우디 최대의 대도시가 됐다.
  • Green Riyadh 프로젝트는 75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2]
  • 사막에 숲을 만들고 지하철을 깔고 초고층 금융지구를 만드는 것을 보면 석유머니의 물리력을 체감할 수 있다.
  • 그런데 밖에 나가면 여전히 존나 덥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