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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틀 존나 많으니 열지마라 씨발련들아!

원순아 감옥가자ㅋㅋㅋ
지옥으로 도망치면 죄가 없어질 줄 알았지? 국정원에서 노래나 만들면서 여생 보내라
대한민국 형법 제308조에 의거, 죽은 사람에 대한 디스를 할 때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만 사용하여 공격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디시위키에서는 고인의 생전 업적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무고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인드립을 제외하고는 디스를 허용합니다.
다만 너무 막 치다가 고인의 유가족 혹은 위키 이용자들과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너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성범죄 싸지르고 자살한 새끼입니다.
이딴 놈에게 명복 빌지 마라 좀
씨발년아!
이 틀이 달린 문서의 대상은 씨발년입니다.
이 틀을 보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한 마디만 외치십시오.
씨발년아!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건가요?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이 인물은 국민의힘의 비밀 당원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국민의힘당원들이 이분을 찬양하고 계십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국민의 힘으로 적폐청산당할 것입니다.
덕분에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자리는 국힘이 가져갔다 ㅋㅋㅋㅋ 심지어 두껍던 여성 민주당 지지층을 순식간에 반토막낸 다크나이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주의! 이 글은 자ㅡ랑스러운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이런 것들과 살아가는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이 문서를 읽을 때마다 중력이 느껴집니다. 하아~ 언조비카이!
흔드르라 씨발년아!! 흔드르라!!
이 문서에서 다루는 씨발년은 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의 이 문서는 왼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자극적인 내용과 특정 성향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디시위키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페미들의 여혐몰이가 아닌 진짜 여성혐오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현실에서는 부모 이외의 여자와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축대남들과 주트콩들이 반페미라는 핑계로 진짜 여혐을 하는 경우를 다룹니다.
물론 메퇘지 페미들은 여자 이전에 인간도 아니니 페미혐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 실례합니다만, 지금 불타고 계십니다. 🔥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 또는 이 문서의 작성자는 괜히 혼자 불타고 있습니다.
박원순이 살아있다!
여러분 성범죄자 박원순이 살아있습니다!!!
서울시청 지하에서 여비서 만지고 있어요!!!!
박원순이 살아있다!
여러분 박원순이 살아있습니다!!!
국정원 지하에서 노래 만들고 있어요!!!!
씨발년아!!!!!!
이명박의 승리!
이 문서는 이명박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서울특별시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오세이돈의 승리!
캐삭빵하고 10년만에 오세훈이 시장직으로 돌아왔습니다.
레임덕온 문재앙의 띵복을 액션빔
박주선의 승리!
이 문서는 박주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서울시장 낙선 이후 광주로 도망간 자의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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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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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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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김용래
제22대
제23대
박세직
제2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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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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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제27대
이원종
제28대
우명규
제29대
최병렬
제30대
권한대행
강덕기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권한대행
권영규
제35대
제36대
제37대
권한대행
서정협
제38대
제39대
제40대 · 현직
남페미의 민낯
충남 섹소
안희정력왕
'노'의 의지
뇌물찬
황제회식
오우거돈
안녕하시긔
MC발년
알페스
김종凸
자~랑스러운 출신 지자체장
대전시장 충남도지사 부산시장 서울시장 경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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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박원순
朴元淳
Park Won-soon
생년월일1955년 2월 11일 (실제 출생일로 알려짐)
1956년 3월 26일 (호적상)
2020년 7월 9일 (사망 추정, 10일 발견)
국적대한민국
출생지경상남도 창녕군
별명씨발갑, 씨발아저씨, MC발년
박원숭
골뱅이성애자
본관밀양 박씨
추가 정보
학력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제적
단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직업변호사, 시민운동가, 정치인
경력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
병역방위병 복무
사망지서울특별시 북악산 일대
사법시험제22회 사법시험 합격(1980년)
소속 정당
재임기간2011년 10월 27일 ~ 2020년 7월 9일
주요 활동인권변호사, 시민사회운동, 서울시정
풍자 경력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
자살
국정원 지하실 래퍼[2]
풍자 국적지옥 hell chosen
풍자 데뷔2020년 7월 9일(2020-07-09) (65세)
풍자 병역육방(육개월 방위)
풍자 이념극좌, 친북, 종북
우덜리즘
친중, 중뽕, 친일씹덕
여비서주의
풍자 이름박원숭
猿(えのき)芝(しば) 元(げん)淳(じゅん)(Enokishiba "Sibal" Genjun)
朴元淳 (Piáo Yuánchún)
Park "the Teacher Uncle Fuck" Monkey
풍자 인간 관계MC무현의 피처링 담당 래퍼
DJ대중과 함께하는 일본문화 SEX 선구자
MC재앙[1]
풍자 정치성향명목상: 진보, 반일
실질: 국민의힘 비밀당원
풍자 좌우명원숭이도 나무에 목매달 때가 있다
풍자 직업前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2011~2020)
現 섹스 강사,MC
풍자 출생1955년 2월 11일
1956년 3월 26일(호적상)
중국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풍자 취미여비서 냄새맡기
풍자 학력낙성대학교 영장류 조련학과
창원대학교 섹스과 학사

“

武汉加油!中国加油!
우한 짜~요! 중궈 짜~요!

”


“

이 원숭이 바위 쪽으로 가자

”


“

안녕하시긔?

”
 
— 지옥으로 온 박원순에게, 염라대왕이

안녕하시긔? 원또 박원순이라 하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인권 변호사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정계에 들어선 이후에는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박원순(朴元淳, 1955~2020)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대부터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시민사회단체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으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였다.

그러나 2020년 7월 전직 비서로부터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직후 사망하였다.

경찰의 형사수사는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그가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을 성희롱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인권위 판단은 이후 법원의 심사를 거쳐 2025년 6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지되었다.[3][4]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 쌓아온 경력, 서울시장으로서의 행정 성과, 그리고 사망 이후 국가기관과 법원이 인정한 성희롱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인물이다.

별명으로는 박원숭(이), 씨발년아라는 말과 짤로도 유명하다.

김영삼 때까지는 그렇게 정부를 까내리다가 핵대중 뇌물현 정부에서는 조용해지고는 다시 이명박부터 개지랄을 떨어 그 시절때부터 자기 성향을 대놓고 드러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시민단체 만들어서 낙선운동 같은 지랄 떨다가 선거개입으로 인해 대법원 위법 판결 나기도.

다만 박원순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모든 정치적 비판을 중단했다는 설명은 확인이 필요하다. 참여연대는 정권에 따라 정책별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제시했으며, 시민운동의 주요 쟁점도 시기에 따라 달랐다.

또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에 관한 선거법 판결과 박원순 개인의 형사책임은 구분해야 한다. 특정 단체의 운동 방식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었다는 사실이 그 단체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는 아니다.

2008년 광우뻥 선동을 주도해 명바이 병장님을 조지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녔으며 천안함이 침몰하자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이라는 망언을 내놓았다.

이러한 평가는 당시 박원순의 정부 비판과 광우병 논쟁, 천안함 사건에 관한 정치적 발언에 대한 원문의 해석이다. 그가 실제로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해당 주장이 어떤 조사결과와 충돌하는지는 당시의 발언 원문과 공식 조사자료를 대조해야 한다.

이런 개짓거리로 자기 이름값 올리던 와중 2011년 오세훈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자기 시장직을 걸고 캐삭빵을 벌였다 패배하자 남자답게 진짜로 서울시장직을 내놓아버려 서울시장이 비어버렸다.

이로 인해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보수쪽 후보 나베를 상대로 승리하여 서울시장직을 낼름 처먹었다. 이때 안철수가 간만보다 원숭이 니 해라 하고 돌아갔는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리고 임기동안 버스 천장에다가 논만들기, 옥탑방 쑈,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만들기등의 생쑈를 저지르는걸 서울시민들이 보고서도 보수쪽에서 대항마랍시고 내놓은 인물들이 정몽준, 도지삽니다 같은 이상한 애들이어서 재선, 3선에 성공한다.

당연히 시장직 하는동안 이명박 박근혜는 사사건건 개지랄떨다가 문크가 집권하자 대정부 씨발련아 강경은 사라지고 자유한국당이나 계속 패댔다. 물론 당시 자한당은 개병신이라 뭐 자기 지지율이나 더 올랐겠지.

그러나 3번째 임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여비서의 미투 고발 소식이 들려오자 노무현식 운지를 떠올린 그는 다음 날인 7월 9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북악산으로 걸어 들어간 뒤 다음 날인 7월 10일 0시 1분에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문서를 참고.

정확히는 2020년 7월 8일 전직 비서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박원순은 7월 9일 실종된 뒤 7월 10일 오전 0시 1분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따라서 사망이 확인된 시점과 실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5]

이로 인해 사상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자 유력 차기 대권주자는 사상 최초로 성범죄로 피소당한 서울시장이자 사상 최초로 임기 도중 자살한 서울시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만 성범죄로 피소되었다는 사실과 형사재판에서 성범죄 유죄가 확정되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박원순의 형사사건은 사망으로 종결되었으며 형사 유죄판결은 내려지지 않았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인정과 해당 결정의 적법성을 확인한 행정소송 판결은 별도로 존재한다.

그리고 본인의 성추행 후 운지로 인해 서울시장이 비어버렸는데 이로 인해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의 전임 시장 오세훈이 도쿄박을 쳐바르고 서울시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런 것일까. 세훈이는 사상최초 4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참고로 이 새끼도 재앙 그 자체에다가 짱깨몽+친일 혼종으로 유명하신 지금의 헬조선머튽인 후미 아키토라처럼 친일 기질이 은근 있다. 재앙이랑 원숭이가 왜 친일 기질이 있는지는 친일파 문서를 참조해라.

서울에 서식했던 영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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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고 뭐고 전부... 어 시발 당신들 누구야?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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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메갈리아다!! 요즘 대세이긴 한가 봐. 엥?? 거기?? 완전 개년 사이트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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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적폐!
이 틀이 달린 문서의 대상은 적폐입니다.
이 틀을 보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청산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원숭이 우리에 살고 있는 원숭이의 왕이시다.

원숭이 답게 일본인인척 하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근데 암행어사 놀이하는데 카메라는 왜 필요할까? ㅋㅋㅋㅋㅋ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나가는 행인들이 다 쳐다보고 있다.

서울시청에 서식하는 포유류로 서민 코스프레를 즐기며 어딘가를 본받아 댓글 알바를 돌....

잠시만요, 이거 오햅.. 읍읍!!
작성자가 깨시민들에게 우덜식 적폐청산을 당했습니다.

서울시에 대한민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혐오 사이트 폐쇄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임과동시에 메퇘지들 광고를 서울메트로에 실음으로서 스스로 보빨러임을 증명하였다. 지지자들은 내가 그동안 씹노답 보빨러를 지지해왔구나 하며 허탈해하는중

최근 명왕을 배신했다가 그들의 군단의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최근 서울대와 정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고 몰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정말 대가리가 원숭이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면서 1인시위자를 위한 그늘막을 설치했지만 자기 아들 벙역비리에 대해 시위한 사람을 고소하셨다.

2mb와 합체하면 ㅇ명ㅂ원ㅅ이 된다...

잠시만요, 이거 오햅.. 읍읍!!
작성자가 깨시민들에게 우덜식 적폐청산을 당했습니다.

그 끔칙한 슬로건을 만들었고, 월드컵대교 공사를 씹창내버린 분이다. 2010년에 착공해서 2015년에 개통예정이었는데 예산을 대폭 축소해서 2021년에 계통예정이고 나머지 예산은 여성전용이나 슈즈트리에 쏟아부은걸로 추정, 그리고 미세먼지 줄이겠다고 공짜 지하철 이틀 때리면서 수 백억 날려먹는데 성공할 정도로 손이 큰 원숭...

잠시만요, 이거 오햅.. 읍읍!!
작성자가 깨시민들에게 우덜식 적폐청산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재임기간동안 사건사고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그들 덕분에 최초로 3선으로 당선됬다.[6] 서울황제는 보궐이든 정식이든 최대 3선까지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무사히 임기를 마치면, 2022년 6월을 끝으로 퇴임하며 연임으로 4선출마할 수 없...

잠시만요, 이거 오햅.. 읍읍!!
작성자가 깨시민들에게 우덜식 적폐청산을 당했습니다.

아니 시발 대체 몇 명이 끌려간거냐 ㅋㅋㅋ

ㄴ 이제 안 끌려가도 된다.

택배가 반송되었습니다.

일생

이 문서는 너무 위백스럽습니다.
이 문서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칼같이 레퍼런스를 지키고 자기들이 전문적이라 생각하는 위백충들이 다녀갔거나 위백화가 된 문서입니다.
문서 내용이 하도 엄격 진지 근엄해서 노잼이니 가능한 꿀잼 문서로 바꿔주시기 바랍니다.[출처 필요]

박원숭은 1955년 2월 11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출생했다. 박원숭은 중딩 시절 개씹명문이였던 경기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양말도 안 벗고 공부했다고 한다. 존나 더럽다. 그래도 원숭이가 공부재능은 있었는지 경기고에도 붙고 서울대 법대까지 들어갔다. 근데 선 넘는 데모질을 해서 제적되었다. 당시 여대생들과 미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깜빵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원숭이랑 여자랑 미팅을 한다고?

정확히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아니라 당시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다. 이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구속되었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적되었다. 석방 이후에는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78년엔 법원사무관고시에 합격해 정선군 등기소장으로 지내고, 80년엔 사시에 붙었다. 문재앙과 동기이다. 대구지검에서 검사로도 일했지만 적성에 안 맞아 1년만에 때려치고 나왔다고 한다. 그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최초로 성희롱이 범죄[7]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자칭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 후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시민단체를 만들어 떼돈을 벌어모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희롱 관련 사건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이다. 박원순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 측 변호인으로 활동하였다. 다만 이 사건은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다룬 사건이므로 '성희롱이 형사범죄라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했다'는 표현은 법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또한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및 희망제작소는 각각 설립 목적과 조직 형태가 다르다. 이들 단체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박원순 개인이 불법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11년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 오세훈이 시장직 캐삭빵을 해버려서 치뤄지는 보궐선거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단 평을 듣는다. 본래 찰스가 지지율 1위였으나, 찰스가 박원숭에게 양보하며 55%란 득표율로 압승했다. 그 후 재선도 하고 저 오세훈도 못한 3선까지 했으나 2020년 7월 9일 북악산에서 운지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의 실제 득표율은 약 53.40%였다. 그는 당시 무소속 후보였으며,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다.

사실 서울시정 중 존나 삽질해댔다. 서류탑 쌓아놓고 옥탑방 기어들어가고 구두 뜯어대고 문짝 뜯어서 일하는 온갖 쇼질만 해대면서 만들어놓는거는 슈즈트리에 아파트 재건축 죄다 취소시켜버렸다. 퀘퀘묵은 잠실주공5단지에 한때 빨간색 배경에 검은 글씨로 거짓말쟁이 박원순 등의 현수막이 걸린 적도 있었다. 버스 위에서 식물을 키우겠다고 하질 않나 탄산음료 판매를 중지시키겠다고 하질 않나 낙하산 인사는 드럽게 많이 꽂아넣었다. 이런 애를 3번 뽑아준 설라디언들도 레전드고 그 믿음을 성범죄로 산산조각 내버린 원숭이도 레전드다

데뷔 이후 본인의 성범죄가 드러나면서 서울시장을 오세훈이 다시 먹게 해준 1등공신이 되었다. 그 오세훈은 사상 최초 4선 서울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미안하다 고맙다ㅋㅋㅋㅋ

참고로 박씨 문중에서는 금지어 취급이 되었다. 즉 밀양박씨 족보에서 파였다. 돌아오지마라 지옥에서 살아라!

다만 박원순이 실제로 밀양 박씨 족보에서 공식적으로 제명되었다는 사실은 관련 문중의 공적인 기록으로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문중 내 일부 인사들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과 족보에서 제명되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유언

“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

이 유언장은 2020년 7월 1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당시 서울시 비서실장이었던 고한석이 유족의 동의를 받아 공개하였다.

당시 공개된 자필 유언장은 서울시장 공관에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최초 현장 브리핑에서 사망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하였다.[8]

유언장에는 구체적인 사망 이유나 성희롱 고소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유언의 내용을 근거로 특정한 혐의에 대한 인정이나 부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변호인 원숭이Ver.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원숭이 변호사 웅앵웅 문서 참고.

어록

이 문서나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현재 병신들이 말도 안 되는 개지랄을 떨고 있습니다.
정상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문서를 정리하여 주십시오.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쓰레기 같습니다.
이 쓰레기는 쓰레기보다 더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문서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병신입니다.
그냥 개좆병신 그 자체입니다.
주의! 이 문서는 변태 새끼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존나 변태 새끼입니다.
이 문서는 나 자신과의 승부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자기 자신과의 승부를 즐기는 인물에 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

섹스를 알려주겠다

”
“

킁킁. 냄새를 맡고 싶다.

”
“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

”
“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
“

성희롱은 범죄이다.

”
“

나는 페미니스트

”
“

안녕하시긔? 원또 박원순이라 하오~

”

위의 어록에는 박원순의 공개 발언과 피해자 측이 제기한 성적 언동,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풍자 문구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문장을 박원순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실제로 발언한 내용이라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성희롱 사건과 관련된 발언은 피해자 측의 주장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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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전까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였다.

특히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과 여성인권 사건 등에서 변호인으로 참여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감시, 소액주주운동, 기부문화의 확대 및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경력은 박원순이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명망을 얻는 기반이 되었다.

인권변호사

박원순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1982년 검사로 임용되었으나 약 1년 만에 사직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변호사 시절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여러 사건의 변론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으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이 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던 인권과 시민의 권리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성희롱에 관한 민사소송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변론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후의 평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뒤 국가인권위원회가 부하직원에 대한 성희롱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인권변호사 경력과 말년의 행적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은 한국의 성희롱 관련 법리와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1993년 서울대학교의 여성 조교가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원순은 피해자 측 변호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 사건은 성희롱이 단순히 개인 사이의 불쾌한 행동이 아니라 직장 내 권력관계와 노동환경,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다만 민사상 불법행위로서의 성희롱과 형법상 성범죄는 법적인 요건과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이 사건을 단순히 성희롱이 최초로 형사범죄로 인정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참여연대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국회, 대기업 등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활동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특히 소액주주운동과 부패방지운동, 낙천·낙선운동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정부와 기업의 책임성을 높이고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시민단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어느 범위까지 할 수 있는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쟁이 존재하였다.

박원순은 이러한 시민운동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으며, 이후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였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박원순은 2000년 아름다운재단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아름다운재단은 기부문화를 확대하고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단체다.

이후 2002년에는 아름다운가게의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아름다운가게는 중고물품을 기부받아 판매하고 그 수익을 공익적인 목적에 활용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자원의 재사용과 기부문화를 결합한 사회적 사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의 사회적 기여와 실제 재정운영의 투명성은 각각 별도로 검토해야 하는 문제다.

또한 특정 단체의 재정 규모가 크다는 사실만으로 설립자가 개인적인 부를 축적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희망제작소

2006년 박원순은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였다.

희망제작소는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연구하는 단체다.

특히 지방자치와 시민참여, 사회혁신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시민참여형 행정과 도시재생, 복지정책 등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민참여를 강조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모든 시민들의 의견이 동등하게 반영되었는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2020년 사망할 때까지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당시 서울시 역사상 최초의 3선 시장 경력이었다.

그는 시민운동가 출신이라는 특징을 바탕으로 시민참여와 복지정책, 도시재생 및 생활환경 개선 등을 중요한 시정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반면 주택공급과 재건축·재개발 정책, 대규모 도시사업의 추진 방식 및 행정적 효율성 등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1년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사퇴하였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박원순은 무소속 시민사회 후보로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안철수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하면서 선거구도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박원순은 야권 단일후보로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와 경쟁하였다.

선거 결과 박원순은 약 53.40%를 득표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같은 해 10월 27일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였다.

2014년 재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박원순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는 새누리당의 정몽준이었다.

박원순은 약 56.12%의 득표율로 승리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는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이 전국적인 정당 경쟁 속에서도 상당한 선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018년 3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박원순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로는 자유한국당의 김문수와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등이 있었다.

박원순은 약 52.79%의 득표율로 승리하였다.

그 결과 서울특별시장으로서는 최초로 3선에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임기를 완료하지 못하고 2020년 7월 사망하였다.

선거 결과

선거 소속 주요 상대 후보 득표율 결과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소속 나경원 약 53.40% 당선
2014년 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정몽준 약 56.12% 당선
2018년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안철수 약 52.79% 당선

서울시정의 주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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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서울시정을 평가할 때에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개별적인 행사와 실제로 장기간 추진된 정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약 8년 8개월 동안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면서 복지와 주거, 도시재생, 교통, 환경 및 시민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남았지만, 다른 사업들은 예산과 행정 효율성, 주민들의 이해관계 등을 둘러싸고 비판을 받았다.

무상급식

박원순이 시장으로 당선된 배경에는 무상급식 정책에 관한 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그는 서울시장 취임 이후 친환경 무상급식의 확대를 추진하였다.

이 정책은 학생들의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학교급식을 제공하여 보편적인 교육복지를 확대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지, 한정된 예산을 저소득층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논쟁이 존재하였다.

무상급식은 단순히 학교급식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에 관한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서울로 7017

박원순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 가운데 하나는 서울로 7017이다.

서울로 7017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자를 위한 공원으로 재구성한 사업이다.

2017년 5월 개장하였다.

서울시는 노후한 고가도로를 보행공간과 도시재생의 기반으로 활용하고, 서울역 주변 지역을 연결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교통체계의 변경과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시설의 유지관리 비용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보행자 중심의 도시공간을 확대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실제 이용률 및 경제적 효과에 관한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서울로 7017을 단순히 성공한 공원사업이나 실패한 전시행정 가운데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는 박원순 재임기간에 확대된 대표적인 교통정책이다.

2015년 정식 운영을 시작한 따릉이는 시민들이 대여소를 통해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다.

이 정책은 단거리 이동과 대중교통 연계, 친환경 교통수단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후 서울시의 대표적인 공공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만 서비스의 운영비와 적자, 자전거 관리 및 이용자 안전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과제로 남았다.

아이서울유

박원순 재임기간인 2015년 서울시는 새로운 도시브랜드인 I·SEOUL·U를 발표하였다.

이는 기존의 'Hi Seoul'을 대체하는 도시브랜드였다.

그러나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영어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반면 서울시는 시민참여를 통해 도시브랜드를 선정하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양한 관계와 가능성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서울시의 도시브랜드는 다시 변경되었다.

도시브랜드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려면 단순히 표현이 자연스러운지뿐 아니라 브랜드의 인지도와 실제 홍보 효과, 유지관리 비용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 정책

박원순의 서울시정에서 특히 논쟁이 컸던 분야는 부동산과 도시정비 정책이었다.

그는 기존의 전면철거식 재개발보다 도시재생과 주거환경 개선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기존 주민의 이주와 지역 공동체의 해체를 줄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건축과 재개발의 속도가 늦어지고 주택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특히 강남권의 일부 재건축 단지와 서울시 사이에서는 건축계획과 층수 제한, 인허가 등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다.

반면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을 박원순의 정책만으로 모두 설명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서울의 부동산시장은 중앙정부의 금융·세제정책과 인구구조, 금리 및 전국적인 주택수요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원순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할 때에는 서울시의 인허가 및 도시계획 권한과 중앙정부의 정책을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옥탑방 생활

2018년 박원순은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옥탑방에서 약 한 달 동안 생활하였다.

이는 서울의 지역 간 격차와 강북 지역의 생활환경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개선방안을 찾겠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행동은 현장에서 주민들의 생활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간의 임시 거주가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 정치인의 홍보활동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한 비판도 존재하였다.

따라서 옥탑방 생활은 정책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홍보 효과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행보로 볼 수 있다.

여성정책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여성의 안전과 성평등을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서울시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와 여성안심택배함 등 여성의 안전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성평등 관련 조직과 제도의 확대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실제로 여성의 안전과 사회적 권리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는 각각의 사업 결과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

특히 박원순 본인에게 제기된 성희롱 사건은 그가 추진했던 여성정책의 의미와 별개로 공직자의 권력관계 및 조직문화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성희롱 사건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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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생애와 역사적 평가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

그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소송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여성의 안전과 성평등에 관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2020년에는 자신의 전직 비서로부터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당하였다.

그는 수사 도중 사망하였으며,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 그의 성희롱에 관한 판단이 이루어졌다.

2020년 7월 8일 고소

2020년 7월 8일 박원순의 전직 비서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피해자는 박원순으로부터 여러 차례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성적 언동을 경험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메신저 등을 통해 부적절한 내용을 전달받았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당시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다음 날 박원순의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서 형사수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2020년 7월 9일 실종

2020년 7월 9일 박원순은 예정되어 있던 서울시장 업무 일정을 모두 취소하였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44분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시장공관을 나섰다.

이후 와룡공원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확인되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17분쯤 딸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하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북악산 일대에서 수색을 진행하였다.

2020년 7월 10일 시신 발견

경찰과 소방당국은 2020년 7월 10일 오전 0시 1분쯤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박원순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당시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그의 사망은 극단적인 선택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사망 시각이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7월 9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기록과 7월 10일 발견된 사실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형사수사의 종결

박원순이 사망하면서 경찰은 성추행 혐의에 관한 수사를 더 이상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공소권 없음은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형사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없으므로 재판을 통해 유죄나 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게 된다.

따라서 박원순이 형사재판에서 성범죄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주장과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주장 모두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성희롱에 관한 별도의 국가기관 조사와 법원의 판단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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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의 성희롱 의혹에 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인권위는 박원순이 피해자에게 업무와 관련하여 행한 성적 언동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규정하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박원순이 사망하여 형사재판이 진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별도의 공적인 조사 결과였다.[3]

인권위가 인정한 내용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와 참고인의 진술, 메신저 기록 등 여러 자료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박원순이 업무와 관련하여 피해자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언동을 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늦은 시간에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는 등의 행동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다만 인권위가 피해자 측의 모든 주장을 빠짐없이 사실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인권위가 인정한 성희롱 행위의 범위와 피해자가 고소장에서 제기한 모든 혐의의 범위는 구분하여 서술해야 한다.

서울시의 조직문화

인권위는 박원순 개인의 성희롱 행위뿐 아니라 서울시 비서실의 조직문화도 문제로 지적하였다.

특히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의 업무 관행과 피해자 보호제도의 한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위공직자의 권력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성희롱 문제를 개인 사이의 행동만이 아니라 조직의 권력관계와 제도적인 보호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박원순의 사망 이후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신상에 관한 추측, 고소 동기에 관한 의혹 등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피해자가 제기한 주장을 부정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가운데에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상당수 존재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시에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하였다.

이는 사건에 관한 정치적 논쟁과 별개로 피해자의 개인정보와 인격권,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5년 대법원 판결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2020년에 제기된 성희롱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추가된 후속 결과.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박원순의 성희롱을 인정하자, 유족은 인권위의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인권위의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2022년 1심

2022년 11월 15일 서울행정법원은 박원순의 배우자 강난희가 제기한 인권위 권고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원은 박원순이 피해자에게 성적 언동을 하였고 이러한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인권위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메신저 기록과 참고인의 진술, 피해자의 상담기록 등 여러 자료가 검토되었다.

2025년 2심

2025년 2월 13일 서울고등법원 역시 유족 측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박원순의 성희롱 행위가 인정되는 이상, 인권위가 피해구제와 재발방지를 위해 권고한 결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1심에서 인정된 인권위 결정의 적법성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되었다.

2025년 대법원 확정

2025년 6월 5일 대법원 특별2부는 유족이 제기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였다.

이에 따라 인권위의 성희롱 인정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하급심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인권위가 2021년 박원순의 성희롱을 인정한 결정이 유족의 행정소송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다는 의미다.[4]

형사 유죄판결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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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성희롱을 인정한 인권위 결정의 적법성을 확정했다는 사실과 박원순에게 형사상 성범죄 유죄판결이 내려졌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박원순의 형사사건은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별도의 직권조사에서 성희롱을 인정하였다.

이후 법원은 인권위의 결정이 적법했는지를 심사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인권위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따라서 법적인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 2020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되었다.
  •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형사사건은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다.
  •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의 성희롱 행위를 인정하였다.
  • 2022년 1심과 2025년 항소심에서 인권위의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 2025년 6월 대법원에서 유족의 상고가 기각되어 관련 행정소송이 확정되었다.

이는 박원순의 성희롱 문제가 아무런 공적인 판단 없이 단순한 의혹으로만 남아 있다는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망 이후의 정치적 영향

박원순의 사망은 서울시정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당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면서 정치적인 갈등과 책임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울특별시장 장례

박원순의 장례는 2020년 7월 서울특별시장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장례절차였으며, 서울시청 앞에는 시민들을 위한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 성희롱 고소 사건이 제기된 상태였다는 점에서 공적인 장례를 진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였다.

반면 오랜 기간 시민사회와 지방행정에서 활동했던 서울특별시장에 대한 공적인 예우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고위공직자의 공적 활동에 대한 평가와 개인적인 잘못에 관한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졌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21년 4월 7일 박원순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직을 채우기 위한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박영선을 후보로 내세웠고, 국민의힘은 오세훈을 후보로 내세웠다.

선거 결과 오세훈은 57.50%를 득표하였으며, 박영선은 39.18%를 득표하였다.

오세훈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모두 승리하였다.[9]

이로써 오세훈은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시장직에서 사퇴한 지 약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하였다.

박원순이 2011년 오세훈의 사퇴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었고, 오세훈은 2021년 박원순의 사망으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복귀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정치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민주당의 정치적 책임

더불어민주당은 박원순 사망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후보를 공천하지 않도록 한 기존 당헌과 관련된 논쟁이 발생하였다.

민주당은 이후 당헌을 개정하고 후보를 공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정당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고 유권자들에게 선택받는 것 역시 민주적인 정치과정이라는 주장이 존재하였다.

이 논쟁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법과 정당의 선거참여 권리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오세훈의 복귀

오세훈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제38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서울시장으로서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따라서 박원순의 사망은 서울시의 정치적 주도권이 다시 국민의힘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21년 선거 결과를 박원순 사건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부동산 정책과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 코로나19 대응, 중앙정치의 갈등 등 다양한 문제가 함께 작용하였다.

따라서 박원순 사건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유일한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 평가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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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 지방행정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 사회적 명망을 얻었으며,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말년에는 부하직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고, 그 행위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이후의 행정소송에서 인정되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를 평가할 때에는 시민운동가로서의 활동과 서울시장으로서의 행정 성과, 성희롱 사건에 관한 공적인 판단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인권변호사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원순은 민주화운동과 여성인권에 관한 사건을 변론한 인권변호사였다.

특히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변론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과 직장 내 권력관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후 박원순 본인의 성희롱 행위가 인권위와 법원에서 인정되면서 그의 과거 활동과 말년의 행동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모순은 그의 과거 변호활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과거에 인권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후의 성희롱에 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는 사실과 실제 개인의 모든 행동이 그 가치에 부합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위선이라는 평가는 타당한가?

박원순은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정책을 추진했던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그가 피해자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공개적으로 내세웠던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가 자신보다 권력이 약한 직원에게 부적절한 성적 언동을 했다는 점에서 권력관계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다만 위선이라는 평가는 도덕적인 가치판단이며, 구체적인 법적 사실관계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적 신념 전체가 진심이 아니었다거나 과거의 모든 인권활동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위장이었다고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운동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박원순은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및 희망제작소 등 시민사회단체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기부문화와 시민참여, 소액주주운동, 공익활동 등의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정치적 활동에 어느 정도 참여해야 하는지, 조직의 재정과 의사결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등에 관한 비판도 존재한다.

따라서 그가 참여한 시민사회 활동을 평가할 때에는 실제 사업의 내용과 결과, 조직운영 및 정치적 영향력을 각각 검토해야 한다.

서울시장으로서 성공했는가?

박원순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약 8년 8개월 동안 서울시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무상급식과 공공자전거, 도시재생 및 시민참여형 행정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 가운데 일부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공공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반면 재건축과 재개발, 도시정비 및 대규모 사업의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서울시정의 성패를 평가할 때에는 실제 정책의 효과와 예산, 주민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 및 장기적인 성과를 검토해야 한다.

특히 선거에서 세 차례 승리했다는 사실이 모든 정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일부 정책이 비판받았다는 이유로 모든 행정사업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성희롱 사건으로 모든 업적이 사라지는가?

박원순의 성희롱 행위가 인권위와 법원에서 인정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역사적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과거의 인권변호사 활동이나 서울시장으로서 추진한 정책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인물의 공적인 업적과 개인적인 잘못은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다만 공적인 업적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반대로 개인적인 잘못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실제로 이루어진 모든 정책적 성과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서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박원순의 경우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의 경력, 서울시정의 성과와 문제점, 성희롱에 관한 국가기관과 법원의 판단을 모두 기록하는 것이 역사적 평가에 필요한 출발점이다.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은 같은가?

박원순의 형사사건은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행위를 인정하였고, 유족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해당 판단이 적법하다고 최종 확정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형사책임과 행정적인 인권침해 판단, 도덕적 책임이 반드시 동일한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가 형사적으로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설명과 성희롱 행위가 공적으로 인정되었다는 설명은 동시에 성립한다.

피해자 보호와 정치적 논쟁

박원순 사건은 고위공직자의 권력관계와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정치적 책임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한 직후 박원순이 사망하면서 사건에 관한 정치적 추측과 논쟁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거나 신상을 추측하는 것은 별도의 인권침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피해자의 주장과 공적인 조사 결과를 구분해서 다루는 것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치인의 책임을 논쟁하는 것과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다.

정리

박원순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명망을 얻었다.

그는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시민사회단체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으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서울시장으로서는 무상급식과 도시재생, 공공자전거, 시민참여형 행정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부하직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이 제기된 직후 사망하였다.

형사사건은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지만,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그가 성희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인권위 판단은 이후 유족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유지되었으며, 2025년 6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박원순의 사망으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이 선거에서 전임 시장이었던 오세훈이 승리하여 서울시장으로 복귀하였다.

박원순의 생애는 인권을 위한 사회활동과 공직자로서의 행정 성과가 존재하더라도, 개인의 실제 행동에 관한 책임과 평가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줄요약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서울시장 3선에 성공했지만, 말년에 제기된 성희롱 사건과 사망 이후의 국가기관·법원 판단으로 역사적 평가가 크게 달라진 정치인.

같이 보기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