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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사망일2020년 1월 31일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지경상남도 밀양시
직업기업인
경력태광실업 창업주·회장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추가 정보
사망지서울특별시 삼성서울병원
출생일1945년 11월

박연차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신발 제조업체 태광실업을 창업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나이키의 신발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로 성장한 태광실업을 이끌며 특히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고 한·베트남 경제 교류에도 깊게 관여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졌으며, 2008년 말 시작된 조세포탈·뇌물공여 수사가 정치권과 관계로 확대되면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중심 인물이 됐다.

생애

1945년 11월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교육을 오래 받지는 못했으며, 1966년 베트남 전쟁 파병군으로 자원입대해 44개월간 현지에서 복무했다.[1] 훗날 박연차와 태광실업 측은 이 시기의 베트남 경험이 해외 사업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1971년 부산에서 신발 관련 업체인 정일산업을 창업했다. 초기에는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신발 협력업체였으나 점차 완제품 제조업체로 성장했고, 1980년 회사를 경남 김해로 옮기면서 회사명을 태광실업으로 바꿨다.

기업 활동

박연차가 이끈 태광실업의 성장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나이키와의 거래였다. 1987년 나이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운동화 주문생산 업체로 성장했고, 해외 생산기지를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1990년에는 인도네시아 현지 업체와 기술용역 계약을 맺었고 1994년에는 베트남에 태광비나실업을 설립했다.[2]

2006년에는 농협 자회사였던 정밀화학 업체 휴켐스를 인수하면서 신발 이외의 산업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력, 화학, 소재, 건축자재, 레저 등으로 사업을 넓혔으며 2019년 기준 태광실업그룹은 15개 법인, 매출 약 3조 8,000억 원, 임직원 약 10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3]

태광실업은 박연차 사후인 2022년 그룹명을 TKG로 변경했으며, 기존 태광실업은 TKG태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름이 비슷한 태광산업 및 태광그룹과는 별개의 기업이다.

베트남

박연차의 기업 활동에서 베트남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그는 1994년 국내 신발업체 가운데 이른 시기에 베트남 생산기지를 세우고 태광비나실업을 설립했다. 태광비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생산하면서 대규모 현지 고용을 창출했고, 2009년과 2010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수 외국투자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4]

박연차는 2000년 주한 베트남 명예영사로 위촉됐고 이후 명예총영사도 맡았다. 부산과 호찌민을 잇는 직항노선 개설에도 관여했으며, 2003년에는 한·베트남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베트남 정부의 친선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현지 학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사업과 교육시설 지원도 진행했다.

1999년에는 정산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태광실업그룹은 장학사업을 비롯해 재난기금, 사회복지, 의료, 문화, 스포츠 사업 등을 지원했다. 그룹 측 집계에 따르면 2020년까지 관련 지원 규모가 누적 600억 원을 넘었다.[5]

박연차 게이트

수사 시작

2008년 서울지방국세청이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 뒤 박연차를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태광실업을 압수수색했고, 박연차는 12월 구속됐다. 당초 세종증권 주식 차명거래와 세금 포탈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수사는 박연차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진술과 정황이 나오면서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대됐다.

박연차는 세종증권 및 휴켐스 주식 거래와 홍콩 법인을 이용해 약 286억 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태광실업이 농협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인수하는 과정 등에서 편의를 얻기 위해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과 여러 전직 고위 공직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6]

수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과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로 확대됐다. 검찰은 2009년 6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연차를 포함해 모두 21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7]

노무현 관련 수사

박연차 게이트가 특히 큰 정치적 사건이 된 이유는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연차가 2007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관저에 전달한 100만 달러와 2008년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 이후 추가로 확인한 40만 달러 등 총 640만 달러의 성격을 수사했다.

검찰은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포괄적 뇌물이라고 의심했으나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를 부인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부인 권양숙이 박연차 측에 부탁해 돈을 받아 개인적인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으며 자신은 당시 이를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500만 달러에 대해서도 조카사위가 받은 정상적인 투자금이며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8]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은 관련 수사를 종료했고, 6월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노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은 내사 종결했다. 검찰은 참고인들의 명예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수사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9] 따라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640만 달러 의혹은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판단된 사건이 아니며, 당시 검찰의 판단과 노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수사가 끝났다.

재판과 복역

박연차 본인의 조세포탈·뇌물공여 사건은 이후에도 재판이 계속됐다. 2009년 1심에서는 징역 3년 6개월과 벌금 300억 원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300억 원으로 감형됐다. 대법원이 일부 혐의를 다시 심리하라며 두 차례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재판이 길어졌고, 최종적으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291억 원이 선고됐다. 박연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10]

수사가 진행되던 2009년 5월에는 1980년부터 맡아온 태광실업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수감 중 건강 문제로 일시적인 형집행정지를 받기도 했으며, 2013년에는 가석방 대상에 올랐으나 법무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형기를 모두 채우고 2014년 2월 5일 출소했다.

출소 이후와 사망

출소한 박연차는 김해와 베트남 등을 오가면서 다시 기업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으며, 이후 베트남을 중심으로 발전·화학·신발 사업 확대를 계속 추진했다.

2019년 말까지도 경영 활동을 이어갔으나 폐암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병세가 악화돼 2020년 1월 31일 오후 사망했다.[11]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베트남 태광비나 공장에도 별도의 분향소가 마련됐으며 현지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 근로자 등이 조문했다.

박연차 사후 태광실업그룹은 외아들 박주환이 2대 회장을 맡았고, 2022년부터 그룹 명칭을 태광실업그룹에서 TKG로 변경했다.

여담

  • 박연차의 태광실업은 섬유·석유화학·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태광그룹 및 그 모기업 태광산업과 이름만 비슷할 뿐 관계가 없는 회사다.
  • 1988년 무역의 날 대통령 표창, 1997년 금탑산업훈장, 2003년 베트남 친선훈장 등을 받았다.
  • 사업가로서는 한국 신발업체의 해외 생산 확대와 베트남 진출을 이끈 인물로 언급되는 반면, 조세포탈과 뇌물공여로 실형이 확정됐고 그의 진술을 계기로 대규모 정·관계 수사가 벌어졌다는 이력도 함께 남았다.

각주

  1. ↑ 연합뉴스, 「맨손으로 '신발왕국' 건설한 기업인…박연차는 누구인가?」, 2020년 1월 31일.
  2. ↑ 연합뉴스, 「압수수색 받는 태광실업 어떤 회사?」, 2008년 11월 28일.
  3. ↑ 연합뉴스, 「맨손으로 '신발왕국' 건설한 기업인…박연차는 누구인가?」, 2020년 1월 31일.
  4. ↑ 연합뉴스, 「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베트남 분향소에도 1천여명 조문」, 2020년 2월 3일.
  5. ↑ 연합뉴스, 「맨손으로 '신발왕국' 건설한 기업인…박연차는 누구인가?」, 2020년 1월 31일.
  6. ↑ 연합뉴스, 「고법, 박연차 징역 2년6월 선고」, 2011년 12월 22일.
  7. ↑ 연합뉴스, 「검찰 盧 수사내용 비공개…"영구보존"」, 2009년 6월 12일.
  8. ↑ 연합뉴스, 「盧 "집사람이 빚갚으러 박연차 돈받아"」, 2009년 4월 7일.
  9. ↑ 연합뉴스, 「검찰 盧 수사내용 미공개…내사종결」, 2009년 6월 12일.
  10. ↑ 연합뉴스, 「박연차 출소…노건평 "정신차려 기업 잘했으면"」, 2014년 2월 4일.
  11. ↑ 연합뉴스, 「태광실업 창업주 박연차 회장 별세…"비공개 가족장 예정"」, 2020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