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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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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1544~1584) 빌럼 반 오라녜라고도 하는 네덜란드의 국부니뮤이자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본명은 빌럼 판 오라녜나사우, 영어권에서는 William the Silent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침묵공 빌럼, 오라녜공 빌럼 등으로도 불리는데 별명만 보면 말 한마디 안 하고 음침하게 앉아있던 인간 같지만 실제 의미는 말을 안 한다기보다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인간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반스페인 독립투사였던 것도 아니다. 원래는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5세의 궁정에서 제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젊은 나이에 엄청난 영지와 재산을 가진 유럽 최상급 귀족이 되어 홀란트·제일란트·위트레흐트의 스타트허우더까지 맡았다. 처음부터 스페인 때려잡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체제 안에서 존나 잘나가던 기득권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펠리페 2세가 네덜란드에서 가톨릭 중심의 종교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개신교 탄압을 계속 강화하면서부터였다. 빌럼 본인은 종교적으로 상당히 현실적인 편이었고 네덜란드 각 지역의 종교적 자율성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왕이 "내 말대로 다 해" 하는 식으로 나올수록 점점 사이가 틀어졌다.

1566년에는 네덜란드 각지에서 개신교도들이 성상과 성당 내부를 박살내는 성상파괴운동이 벌어졌는데 빌럼도 이걸 마냥 좋아한 것은 아니어서 자기 관할지역에서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그렇다고 스페인식으로 신교도들을 죄다 잡아죽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으니 양쪽에서 보면 존나 애매한 인간이었고, 결국 이 애매함이 나중에는 스페인 왕과 완전히 갈라서는 쪽으로 굳어진다.

본래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총독으로 네덜란드의 미-개한 반달리즘 성상파괴운동을 진압하기도 했지만 이전부터 스페인의 극심한 개신교 탄압에 반감을 품고있던터라 펠리페 2세의 무조건적인 복종 서약에 거부했다가 모든 영지를 몰수당했다가 독일로 망명한다.

그러다가 1568년 알바 공작이 브뤼셀에 입성해 공포정치를 시작하며 반란분자 수천명을 주님곁으로 보내버리자 네덜란드 전역에 반스페인 감정이 치솟기 시작한다. 이를 본 빌럼은 자기가 군사를 일으키기만 하면 온 네덜란드인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서막을 올린다.

1567년 알바 공작이 대군을 끌고 네덜란드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알바는 반란과 이단을 때려잡겠답시고 특별재판소를 설치했는데 처형이 워낙 많이 나와서 후대에는 피의 법정이라는 살벌한 별명까지 붙었다. 에흐몬트 백작과 호른 백작 같은 최고위 귀족까지 목이 날아갔고, 빌럼은 "저기 남아있으면 나도 다음 차례겠다" 싶어서 독일 영지로 빠져나간 뒤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준비한다.

1568년 빌럼은 독일에서 용병을 모아 네덜란드로 쳐들어갔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는 않았다. 돈은 존나 많이 드는데 도시들이 예상만큼 들고일어나지도 않았고 용병들은 월급 안 주면 집에 가겠다고 지랄했으며, 스페인군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정예군이라 초기 원정은 크게 재미를 못 봤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국부라고 해서 처음부터 스페인군을 무쌍 찍으며 밀어낸 것은 아니고 초반에는 실패와 빚이 더 많이 쌓였다.

그러던 중 큰 전환점이 된 것이 바다의 거지들이라고 불린 제고이센이었다. 이들은 망명 귀족, 개신교도, 해적 비슷한 인간들이 뒤섞인 해상세력으로 스페인 선박과 해안지역을 계속 괴롭혔는데, 1572년 브릴레를 기습점령하면서 판이 확 뒤집혔다. 처음에는 그냥 항구 하나 먹은 것에 가까웠지만 이 사건을 보고 홀란트와 제일란트의 여러 도시가 연달아 반란에 가담했고, 그전까지 독일에서 "제발 좀 일어나라 씨발" 하던 빌럼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국내 기반이 생겼다.

여기서부터 빌럼은 단순히 외국에서 용병 끌고 오는 망명귀족이 아니라 반란지역의 정치적 지도자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독립전쟁 역시 몇 차례 원정으로 끝날 반란에서 장기전으로 변해버렸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항구 하나 놓쳤더니 나중에 나라 하나가 증발하는 스노우볼이 굴러간 셈이다.

생각대로 네덜란드 전역에 빌럼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성공하지만 초창기 전과는 좋지못하고 기대와 달리 독일 제후들의 지원도 없었다.

거기다 알바 공작의 계속된 해상 봉쇄에 네덜란드의 경제는 점점 씹창이 나고있었고 빌럼공이 할수있던 일은 바다의 거지단이라 불리던 제고이센으로 게릴라 짤짤이를 넣는수밖에 없었지만 네덜란드의 불만세력은 더욱더 늘어만갔고 특히 네덜란드의 중심지였던 홀란드의 불만이 더해져갔다.

마침내 1572년 제고이센 함대가 브릴레 항을 기습점령하자 홀란드와 제일란드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도시가 죽창봉기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1579년 빌럼에 반대한 남부 주들은 결국 스페인에 항복하는데, 이가 오늘날의 벨기에이고 북부 7개 주들은 위트례흐트 동맹을 맺게되는데 이가 오늘날의 네덜란드이다. 빌럼은 처음에는 아이고 멀쩡한 조국을 둘로 가르다니 안된당께하면서 반대하지만 후에 공식적으로 동맹을 인정하게 되고 1581년 위트례흐트 동맹은 정식으로 스페인에서의 독립을 선언한다.

1570년대 후반이 되자 반스페인 연합 내부에서도 종교와 정치 문제로 슬슬 균열이 생겼다. 특히 가톨릭 세력이 강했던 남부 지역은 급진적인 칼뱅파와의 갈등 때문에 다시 스페인과 타협하는 쪽으로 움직였고, 이에 맞서 북부 지방들은 1579년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어 스페인에 계속 저항하기로 한다.

이걸 그냥 "남부=벨기에, 북부=네덜란드 탄생"이라고 외우면 대충 시험문제는 풀 수 있지만 실제 과정은 훨씬 복잡했다. 당시 동맹의 경계가 현대 국경과 정확히 일치한 것도 아니고 이후에도 여러 도시의 소속이 바뀌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때 형성된 남북 분열이 훗날 스페인령 남부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갈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맞다.

빌럼 본인은 처음부터 나라를 반으로 갈라 북쪽만 먹자는 노선은 아니었고, 가톨릭과 개신교 지역을 최대한 한 연합 안에 묶어 스페인에 맞서려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종교갈등이 이미 너무 심해져 있었고 스페인군도 남부를 계속 탈환하면서 결국 북부 중심의 독립운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581년에는 북부 반란주들이 네덜란드 독립선언서라고도 불리는 《철회법》을 통해 펠리페 2세를 더 이상 자신들의 군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논리는 의외로 현대적인데 "왕이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으면 백성도 그 왕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식이었다. 왕권신수설 시대에 왕한테 해고통보를 날린 셈이다.

펠리페 2세는 당연히 빌럼을 용서하지 않았고 1580년에는 아예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결국 1584년 가톨릭 신자인 발타자르 제라르가 델프트의 프린센호프에서 권총으로 빌럼을 암살하면서 현상금 퀘스트를 클리어한다.

문제는 탈출에는 실패했다는 것. 제라르는 현장에서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붙잡혔고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끔찍한 고문과 공개처형을 당했다. 펠리페 2세에게 충성한다고 유럽에서 제일 유명한 반란지도자를 암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보상금 받으러 살아서 갈 수는 없었다.

빌럼은 살아생전에 네덜란드가 완전히 독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네덜란드 독립이 국제적으로 최종 인정되는 것은 무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때였으니 본인은 엔딩은커녕 중반부에서 죽은 셈인데,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독립운동의 정치적 중심을 만든 인물로 기억되면서 국부(Vader des Vaderlands)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현재 네덜란드 왕가인 오라녜나사우 왕조도 바로 이 인간에게서 정치적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고, 네덜란드 국가인 《Het Wilhelmus》도 빌럼을 화자로 삼는다.

그러나 빌럼은 살아생전에 완전한 독립을 보지 못하고 1584년 델프트에서 가톨릭교도 제라르의 저격에 맞아 사망한다. 그런데 이 암살범은 델프트를 떠나지못하고 붙잡혀 고문이란 고문은 다당하고 정육점 고기같은 신세가 되는 참교육을 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