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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새천년 NHK 사건은 2000년 5월 17일 5.18 민주화운동 20주년 전야제 직후,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386세대 정치인들과 운동권 인사들이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의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에서 여성 종업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폭로되어 큰 논란이 된 사건이다.

특히 같은 날 낮에는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5.18 정신과 민주화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밤에는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셨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도 386의 두 얼굴 / 운동권의 위선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2000년에 있었던 소위 민주화 운동 세대 좆팔육 꼰머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사건.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술자리에는 김민석, 김태홍, 정범구, 송영길, 장성민, 김성호, 이종걸 등 당시 의원 및 당선자들과 이상수 의원, 우상호, 시인 박노해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1]

사건이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5.18 전야제 사회자였던 임수경이 인터넷에 직접 올린 장문의 글이었다.

배경

2000년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였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1960년대 출생, 1980년대 학번, 1980년대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묶어 386세대라고 불렀다.

이들은 기존 정치인보다 젊고, 민주화운동 경험이 있으며, 구태정치를 바꿀 새로운 정치세력이라는 이미지로 상당한 기대를 받았다.

특히 새천년민주당에서는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 장성민, 김성호 등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언론에서도 386 정치인이라는 말을 존나게 밀어줬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지 고작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이 사건이 터졌다.

하필 날짜도 그냥 아무 날이 아니라 5.18 전야제인 5월 17일이었다.

이날 참석자 상당수는 낮에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밤에 새천년 NHK로 갔다.

사건

2000년 5.18 전야제가 끝나고 새천년민주당 국개들과 박노해 시인 등 그 외 따까리들이 새천년 NHK라는 단란주점에서 뒤풀이를 했다.

단란주점 이름 하나 의미심장했다. 새천년 민주당원들이 꼭 오라고 지은 이름 같지 않나?

ㄴ 당연히 새천년민주당이 만든 술집은 아니다.

당시 상호가 우연히 새천년 NHK였던 것이다.

언론보도에서는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의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로 확인된다.

당시 참석자들의 해명에 따르면 전야제 이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술자리를 갖게 됐다고 한다.

당초 숙소에서는 밤 10시 30분부터 정치개혁-386세대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할 예정이었다.

근데 정작 전야제 종반인 밤 10시 40분쯤 술집에 들어가 자정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토론은 사실상 약식으로 끝났다.[1]

그날 술자리는 당시 광주 북구청장 출신인 김태홍 당선자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그 단란주점 아가씨들 물이 매우 좋은 모양인지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할 분들께서 욕정을 참지 못하고 아가씨들을 부르고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당시 임수경의 폭로글에 따르면 송영길은 여성 종업원과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박노해는 여성 종업원과 춤을 추고 있었으며, 김민석은 양쪽에 여성 종업원을 앉혀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 세부 묘사는 기본적으로 임수경이 당시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술자리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사건 직후 공동 해명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 사실은 인정했으나, 인터넷에 퍼진 일부 묘사는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그래도 5.18 전야제 당일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가진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임수경 등장

그러다가 새천년 NHK로 오라니 우리 의원들이 NHK랑 인터뷰하나? 하던 임수경이 들어왔다.

실제로 임수경 원문에도 장소를 듣고 처음에는 새천년민주당 사람들이 일본 NHK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적혀 있다.

임수경은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지만 5.18 전야제 사회를 맡기 위해 잠시 귀국해 있었다.

낮에는 망월동에서 당시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눴고, 밤에는 정범구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받고 술집에 갔다.

임수경은 본인이 해당 술자리의 성격을 모르고 선배들에게 인사만 하고 가려고 방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간 직후 술에 취해 있던 우상호가 임수경의 목덜미를 잡고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라는 취지의 욕설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다른 방으로 이동한 뒤에도 우상호가 계속 욕설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임수경 역시 화가 나 욕설로 대응했다.

당시 임수경이 공개한 글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단순히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은 아니었다.

임수경은 원래 우상호를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상호 쪽에서는 임수경이 귀국한 뒤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과 임수경이 5.18 행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다는 불만 등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돼 있다.

술값

임수경 원문에서 은근히 유명한 부분.

임수경은 술집을 나가기 전 계산서를 확인했다.

원문에 따르면

  • 양주 2병
  • 음료수
  • 안주 서너 가지

등으로 22만 7천 원이 나왔다.

양주 1병과 안주 1접시는 서비스였다고 한다.

임수경은 서비스도 계산하겠다면서 술집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고, 당시 정범구가 이미 계산한 돈을 돌려주라고 요구했다.

다만 자신에게 현금이나 카드가 없어 전야제 사회를 함께 본 송선태의 카드로 20만원을 결제했다고 적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당시 20만원도 결코 작은 술값은 아니다.

폭로

단단히 빡친 임수경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인실좆을 당했다.

2000년 5월 24일 임수경은 당시 386세대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5월17일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사건이 처음 언론에 크게 보도된 과정은 약간 복잡하다.

임수경 글 외에도 익명의 관계자가 비슷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네티즌이 386-그 두 얼굴의 위선을 알린다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언론 등에 기고하면서 사건이 본격적으로 퍼졌다.[1]

당시에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던 시절인데 게시판 글 하나로 정치권이 뒤집어졌다.

참석자

당시 언론에서 확인된 주요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인물 당시 신분 비고
김민석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임수경 원문에서 여성 종업원 두 명 사이에 앉아 있었다고 언급
송영길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임수경 원문에서 여성 종업원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언급
김태홍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술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보도됨
정범구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임수경에게 술자리로 오라고 연락
장성민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참석
김성호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참석
이종걸 제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참석
이상수 국회의원 참석
우상호 새천년민주당 지구당위원장 임수경에게 폭언을 한 당사자로 지목
박노해 시인·운동가 임수경 원문에서 여성 종업원과 춤을 췄다고 언급

당시 연합뉴스는 이들을 포함해 10여 명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1]

문용린 교육부장관 술자리

이 사건을 정리할 때 자주 섞이는 부분이 있다.

당시 문용린 교육부장관과 노성만 전남대 총장 등 교육계 인사들도 같은 새천년 NHK 업소에서 술을 마신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문용린까지 386 정치인들과 같은 방에서 여성 종업원을 끼고 놀았던 것처럼 섞여서 서술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당시 보도를 보면 별도의 술자리였다.

문용린, 노성만, 한상진, 오수성, 박종율, 천득염 등 교육계 인사들은 같은 업소의 다른 자리에서 학술대회 뒤풀이 명목으로 술을 마셨다.[2]

교육부는 이들이 오후 9시 4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양주 1병과 맥주 10병을 마셨으며 여성 종업원은 동석하지 않았고 노래나 춤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니까

같은 날 같은 업소에서 술 마신 건 맞음

김민석·송영길·우상호 등과 같은 방에서 같이 놀았음 → 확인되지 않음

이다.

그래도 5.18 전야제 당일 교육부장관과 교육계 지도자들이 유흥업소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알려지면서 같이 욕을 먹었다.

당사자들의 해명과 사과

사건이 터지자 참석자들은 공동 해명서를 냈다.

이들은 전야제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참석자 한 명이 간단히 맥주를 마시자고 해 술자리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노래방 기기로 노래와 합창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에 퍼진 내용에는 일부 과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술자리 자체에 대해서는 경위가 어떻든 5.18 전야제날 술자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깊이 반성한다는 취지로 사과했다.[1]

특히 우상호는 임수경에게 욕설한 문제 때문에 더 직접적인 비판을 받았다.

임수경 원문에 따르면 사건 며칠 뒤 우상호가 직접 전화해 사과하려 했으나 임수경이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라고 받아치고 전화를 끊었다.

2021년 우상호의 재사과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사건은 그대로 역사 속으로 묻히는 듯했는데 21년 뒤 다시 튀어나왔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우상호가 출마하자 이언주가 이 사건을 끌어올렸다.

우상호는 2021년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고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3]

또 당시 국민에게 사죄했고 당사자들에게도 여러 번 사과했다고 말했다.

본인은 이 사건을 몸에 박힌 화살촉 같은 기억이라고 표현하면서 이후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2021년 시점까지도 우상호 본인이 술자리 참석과 자신의 잘못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2022년 재소환

2022년에는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이 우상호를 비판하면서 이 사건을 다시 언급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논란이 되던 중 우상호가 관련 발언을 하자 한동훈이 그분이야말로 5.18에 NHK 룸살롱에서 여성에게 쌍욕한 것으로 알려진 분 아니냐는 취지로 반격했다.

25년이 다 되어가는 사건이 정치권에서 계속 소환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386세대 정치인의 도덕성과 위선 문제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워낙 강렬하게 남았다.

이후 당사자들

로 끝났으면 훈훈한 결말이었지만

결국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우상호와 임수경은 같은 당에서 서로 국회의원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었지만, 임수경은 입조심에 실패하여 퇴출당했다. 이것이 헬조선이다!

ㄴ 이 부분은 연도와 경위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임수경은 사건 당시 국회의원이 아니었다.

이후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1번으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같은 해 탈북자 관련 폭언 논란이 터져 공개사과까지 했고 이후 정치적 이미지가 크게 나빠진 것은 맞다.

2016년에는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사실상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니까 새천년 NHK 사건 폭로 때문에 퇴출된 것은 아니다.

우상호

우상호는 사건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상태였다.

이후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고 여러 차례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내 주요직도 맡았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으나 박영선에게 패했다.

원문의

우상호는 현재 변태 원숭이의 뒤를 이어받고자 서울시장 선거에 뻔뻔하게 출마했다. 이 사건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행정에 대해 문외한인 새끼가 서울시장 하겠다고 경선에 나섰다가 엄청난 격차로 쳐발리고 찌그러졌다.

는 이 2021년 경선을 말한다.

다만 경선 패배를 새천년 NHK 사건 때문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사건은 경선 과정에서 다시 공격 소재로 사용됐지만 여러 정치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송영길

송영길은 당시 제16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상태였다.

이후 인천광역시장,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지냈다.

2021년 민주당 대표까지 올라가면서 새천년 NHK 사건 참석자 가운데 가장 높은 당직 중 하나에 오른 인물이 됐다.

2022년에는 본인이 다른 정치인의 유흥업소 의혹을 비판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소환되기도 했다.

2026년에는 다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김민석

김민석은 사건 당시 이미 제15·16대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정치적 부침이 상당히 심했지만 2020년대 들어 다시 민주당 핵심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2025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제49대 국무총리에 임명됐고 2026년 7월 1일까지 총리를 지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민주당 당권에 도전해 2026년 8월 17일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니까 새천년 NHK 사건 당시 술자리 한가운데 있던 30대 정치인이 26년 뒤 집권여당 대표까지 간 것이다.

박노해

박노해는 당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건 이후 술자리 참석 사실 때문에 운동권 내부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당정치보다는 사진, 시, 국제평화활동 등에 집중하며 정치권 전면에서는 멀어졌다.

386에서 86세대로

주의! 이 문서는으잉? 꼰대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이 문서는으잉? 카스트급 위계질서 조장하고으잉? 윗사람에겐 고개도 못 들면서으잉? 약자나 아랫사람한테는 훈장질하고으잉? 불합리에 항의하면으잉? 싸가지 없다 드립치는으잉? 개씨발새끼들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사건 당시에는 이들을 386세대라고 불렀다.

386은

  • 30대
  • 80년대 학번
  • 60년대생

이라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진짜 대부분 30대였으니 말이 됐다.

근데 시간이 지나 40대가 되면서 486, 50대가 되면서 586이라는 표현이 생겼다가 현재는 그냥 86세대 또는 86그룹이라고 많이 부른다.

새천년 NHK 사건은 이 세대 정치인에게 붙은 젊은 개혁세력 이미지가 처음 크게 박살난 사건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특히 민주화운동 경력을 정치적 정당성으로 내세운 사람들이 정작 5.18 전야제 당일 저런 술자리를 가졌다는 점 때문에 사건의 상징성이 더 커졌다.

임수경 원문 삭제 문제

참고로 임수경이 올린 원문은 마찬가지로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삭제처리가 되었지만 인터넷에 한번 올린 글은 영원히 남는다는 반증의 한 예가 되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글쓰고 인증하지 말자.

원글이 게시됐던 당시 사이트에서는 현재 정상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전문은 이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기사, 아카이브 등에 복제됐다.

원문 자체가 2000년 인터넷 정치문화 연구자료 수준으로 굴러다니고 있어서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워졌다.

평가

주의! 이 문서는 현재 놀란이 있거나 논란 중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현재 논란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수정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너무 편향적인 내용만 쓸 경우 이 문서가 놀라서 관리자들에게 그 자식을 죽창으로 찔러 달라고 할 것입니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정치인이 술을 마셨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라고 유흥주점에서 술 마시면 무조건 정치생명이 끝나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문제가 된 것은

5.18 민주화운동 20주년 전야제

라는 시간과 장소였다.

당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화운동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우고 있었고, 같은 날 낮에는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

그런데 밤에는 여성 종업원이 동석하는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상징적인 위선 논란이 된 것이다.

임수경 역시 원문에서 술집 자체를 문제 삼는다기보다 왜 하필 5월의 광주에서 그랬느냐는 점을 반복해서 비판했다.

여성비하 논란

또 하나의 핵심은 우상호가 임수경에게 했다는 폭언이다.

정치적 선후배 관계에서의 갈등이 있었다고 해도 여성 후배에게

이년

기집애

같은 욕설을 반복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여성비하와 권위주의 문제가 함께 제기됐다.

이 부분은 사건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 소환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 자체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 이후 치러지는 선거였기 때문에 야권에서는 우상호의 과거 언행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과장된 서술도 구분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오래 굴러다니다 보니 사건에 없는 내용까지 붙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문용린 교육부장관이 정치인들과 같은 방에서 여성 종업원을 끼고 놀았다는 식의 서술은 당시 보도와 다르다.

문용린 일행은 같은 업소에서 별도의 술자리를 가진 것은 맞지만, 교육부는 여성 종업원 동석과 노래를 부인했다.

또 참석자 전원이 임수경 원문에서 묘사된 행동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확실하게 확인되는 핵심 사실은

  • 2000년 5월 17일
  • 5.18 전야제 당일
  •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
  • 다수의 민주당 386 정치인 및 운동권 인사 참석
  • 술과 노래
  • 여성 종업원 동석
  • 임수경의 공개 폭로
  • 우상호의 욕설 논란
  • 참석자들의 공개 사과

정도다.

2026년 현재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서술합니다.
이 문단은 다음 대상의 근황을 설명합니다.
물론 그 근황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 보고 있는 내용보다 더 최신의 소식을 알고 계신다면 문서에 서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디시위키가 섭종하는 바람에 이 틀은 영원히 승리 출소 짤로 고정될 예정입니다.

사건 발생 후 26년이 지났지만 완전히 잊힌 사건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참가자들이 계속 정치권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튀어나온다.

2021년에는 우상호의 서울시장 출마로 다시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2022년에는 한동훈과 우상호 사이의 정치적 공방 과정에서 또 언급됐다.

2026년 현재 당시 참석자였던 김민석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며, 송영길 역시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2000년에만 잠깐 기사 나고 끝난 흑역사가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86세대의 도덕성과 위선 문제가 논쟁될 때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원문

아래는 당시 임수경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알려진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가지 일로 잠시 서울에 온지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많이 아팠고 - 거의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 많은 분들께 연락도 못드리고 한달을 보냈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도 안하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귀국을 한 가장 큰 이유는 5.18 전야제의 사회자로 행사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그날, 5월 17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5월 17일 아침, 저를 포함한 전야제 관계자들은 아침 9시에 망월동 묘역에 가서 참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서보니 오후 1시에 여야 386 당선자들이 참배를 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광주에 온 김에 저와 절친한 임종석씨와 만날수 있을까 해서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오는 중이라며 1시에 꼭 만나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미 참배를 한 상황이고 오후에는 전야제 리허설이 있어서 사실 망월동에 다시 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이 기회에 한번에 인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일부러 다시 망월동으로 가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당선자들 뿐만아니라 낙선한 분들도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저는 그 선배들을 보며 든든하고 흐뭇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광주에서 하루 머물 예정이라며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5.18 전야제 행사에 참가했구요.

다소 서언이 길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야제가 다 끝나갈 무렵 정범구 박사가 제가 있는 무대 앞으로 오셨습니다. 정박사님과는 기독교방송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 상당히 친한 관계입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시며 행사가 끝나면 꼭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전야제 사회를 보며 저녁밥도 쫄쫄이 굶어가며내내 서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장소에서 겨우 밥을 먹을 수있었지요. 그때 정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일행이 있으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대부분 낮에 망월동에서 만난 분들이었지요. 저는 여러사람들 모인 곳에 가기가 뭐해서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대여섯 차례의 전화를 계속 받고보니 그곳에 안가는 것이 참 결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으니 새천년이 어쩌구 NHK가 어쩌구 하시대요. 저는 새천년 민주당 사람들이 NHK 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새천년 NHK 라는 가라오케였습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가서 그분들이 계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찾을 것도 없이 적어도 7-8개의 룸이 있는 그 술집의 손님이 있는 방은 그 방이 유일했습니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부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얼핏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믿고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

이-놈의 기-집-애,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낄려고 그래? 미-친-년...

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 그 기-집-애, 이-상-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집-애 같으니라고...

한두번도 아니고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따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두 나이가 30이 넘었고 애기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라고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 잡배들의 오고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중간 중간 이-놈의 기-집-애, 저-놈의 기-집-애, 이-년, 저-년 소리는 계속 되었구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 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하더라구요.

저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우리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마실 팔자가 안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불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가지로 22만 7천원이 나왔고, .양주 한병과 안주 한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

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

난 이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

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

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을 갖고있지 않았습니다. 송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따라오더군요. 수경아, 이-놈의 기-집애야, 너 거기 안 설래?? 아,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단순히 술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글을 쓰고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구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 386의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

만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월 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왔다고 하던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에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

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왔다는,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

그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통의 전화도, 제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잇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상호와 아는척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

전데요.

수경아, 나 상호야.

누구시죠?

나 ;야, 우상호.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수경아, 미안하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 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말했습니다.

저는 잘 한걸까요, 잘못한걸까요...

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임수경 올림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