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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게이트 또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2015년 4월 경남기업 회장이자 전 국회의원이었던 성완종이 사망 직전 정권 핵심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그의 소지품에서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광역자치단체장·국회의원 등 8명의 이름과 일부 금액이 적힌 메모가 발견되면서 벌어진 대한민국의 정치자금 의혹 사건이다.[1]

사건의 발단은 원래 정치자금 수사가 아니었다. 검찰은 2015년 이명박 정부 시기 해외자원개발 사업과 관련된 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 경남기업을 수사했고, 성완종에 대해 회사 재무상태를 부풀려 정부융자금·금융기관 대출을 받아내고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2] 그러나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4월 9일 성완종은 출석하지 않고 자택을 나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3]

그런데 성완종이 사망하기 전 《경향신문》 기자와 약 50분간 전화통화를 하며 자신이 여러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졌고, 다음 날 그의 소지품에서 이름과 액수가 적힌 작은 메모까지 발견됐다.[4]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를 캐겠다고 성완종을 수사했는데 성완종이 마지막 순간에 그럼 내가 돈 줬다는 사람들도 한번 까보자는 식의 폭로를 남기면서 카메라가 검찰 피의자에서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 쪽으로 180도 돌아가버린 것이다.

메모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당시 여권 핵심 인사들이었다.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 당시 현직 비서실장이던 이병기,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으로 해석된 `부산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이었다.[1]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대선·당내 경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단순한 개인 뇌물 의혹을 넘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및 2012년 대통령 선거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 아니냐는 의혹으로까지 커졌다.[5]

다만 매우 중요한 점이 있다. 메모에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과 실제 금품수수가 법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메모에 이름이 오른 8명은 의혹을 부인했고, 검찰이 최종적으로 기소한 사람도 홍준표와 이완구 두 명뿐이었다. 이 두 사람마저 1심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6] 따라서 이 사건을 성완종이 적어놓은 8명이 전부 돈 받은 것으로 밝혀진 사건이라고 쓰면 사실관계가 틀린다.

배경

성완종

성완종은 건설업체 경남기업 회장을 지낸 기업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폭넓은 정치·사회 인맥을 구축했으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 당선돼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7]

기업인 시절부터 충청포럼과 서산장학재단 등을 운영하며 정치권 인사들과 광범위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쉽게 말하면 건설회사 사장 하나가 어느 날 정치인 몇 명 이름을 써놓은 정도가 아니라 본인부터 국회의원까지 해본 정·재계 마당발이었다. 그래서 메모 한 장이 나오자 정치권 전체가 바로 뒤집어졌다.

자원외교 비리 수사

2015년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부실·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고 경남기업은 초기 주요 수사대상 가운데 하나가 됐다.[8]

검찰은 성완종이 2006~2013년 경남기업의 재무상태를 조작해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융자금과 금융권 대출 800억여 원을 받고 관계회사 거래 등을 이용해 약 250억 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2015년 4월 6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2]

성완종은 수사를 받으며 자신이 정치적인 표적이 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지만 검찰은 기업비리 수사라는 입장이었다.

2015년 4월 9일

성완종은 4월 9일 오전 예정됐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지 않았다.

가족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색에 나섰고 이날 오후 서울 북한산 인근에서 성완종이 숨진 채 발견됐다.[3]

이날 새벽 성완종은 《경향신문》 기자와 장시간 전화인터뷰를 하며 여러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4]

이 인터뷰와 메모가 공개되면서 원래 경남기업 회계비리를 조사하던 사건은 사실상 별도의 대형 정치자금 사건으로 갈라졌다.

성완종 리스트

메모

성완종의 소지품에서는 수첩보다 작은 종이에 정치인 이름과 금액 등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1]

확인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메모 내용 당시 인물 적힌 금액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10만 달러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 7억 원
홍문종 새누리당 국회의원 2억 원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3억 원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1억 원
부산시장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으로 해석 2억 원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금액 없음
이완구 국무총리 금액 없음

[1]

김기춘 이름 옆에는 `2006.9.26` 등의 날짜와 독일 방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록도 함께 적혀 있었다.[4]

메모에는 이완구와 이병기의 이름 옆에는 액수가 적혀 있지 않았다.

사람 이름 몇 개랑 숫자 몇 개 적힌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이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날리고 검찰 특별수사팀까지 만들어버렸다. 정치권에서 메모를 함부로 남기면 안 되는 이유의 극단적인 사례가 됐다.

전화인터뷰

성완종은 사망 직전 전화인터뷰에서 메모보다 훨씬 구체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김기춘에게 2006년 10만 달러, 허태열에게 2007년 7억 원, 홍준표에게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1억 원, 홍문종에게 2012년 대선과 관련해 2억 원, 이완구에게 2013년 재보궐선거 당시 3천만 원을 줬다는 취지로 말했다.[9]

반면 유정복·서병수·이병기와 관련해서는 공개된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금품제공 경위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수사단서가 다른 인물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10]

당사자 반응

리스트에 거론된 8명은 모두 금품수수 의혹을 부인했다.[11]

일부 인물은 성완종과의 친분 자체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고, 일부는 만난 사실은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완종의 일정기록과 인터뷰 내용, 정치인들의 과거 접촉관계 등이 언론을 통해 계속 공개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별수사팀

문무일 특별수사팀

대검찰청은 2015년 4월 12일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4]

팀장은 당시 대전지검장이던 문무일이 맡았다. 문무일은 이후 2017년 검찰총장이 된다.

공식 명칭은 `경남기업 의혹 관련 특별수사팀`이었지만 사실상 성완종 리스트 전담수사팀이었다.

검찰이 성완종을 수사하다가 성완종이 사망하자 며칠 뒤에는 성완종이 지목한 정치인들을 수사하는 팀을 따로 만들었다. 수사 방향이 존나 빠르게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간 셈이다.

수사 규모

특별수사팀은 약 82일간 수사를 진행했다.[5]

수사과정에서 관련자 약 140명을 수백 차례 조사하고 수십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경남기업의 회계자료·일정표·비서진 기록·휴대전화·디지털 자료 등을 분석했다.[12]

성완종 본인이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줬다는 사람을 법정이나 조사실에 불러 다시 물을 수 없었다는 것이 수사의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성완종의 생전 인터뷰, 메모, 일정표, 수행원·비서진의 진술과 자금흐름 같은 간접증거를 이용해 과거 일을 재구성해야 했다.

경남기업의 증거인멸

수사과정에서는 경남기업 관계자들이 회사자료를 없애거나 숨긴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성완종의 측근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수행비서 등을 증거인멸 혐의로 체포·구속했다.[4]

이 때문에 애초부터 남아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던 사건의 증거 확보가 더 어려워졌다.

이완구

3천만 원 의혹

성완종은 인터뷰에서 2013년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이완구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현금 3천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9]

이완구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메모에는 이완구 이름만 있고 금액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전화인터뷰에서 3천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가 등장했다.

현직 국무총리였다

문제는 사건 당시 이완구가 그냥 국회의원이 아니라 현직 국무총리였다는 것이다.

그는 2015년 2월 17일 총리에 취임했고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두 달도 안 돼 금품수수 리스트에 자기 이름이 등장했다.

부정부패 잡겠다고 칼 들고 나왔는데 칼집에서 자기 이름 적힌 메모가 나온 꼴이라 정치적 타격이 특히 컸다.

말 바꾸기 논란

이완구는 성완종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몇 차례 만났는지 등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기존 발언과 다른 사실관계가 보도되면서 `말 바꾸기` 논란까지 겹쳤다.

야당은 총리직 사퇴를 요구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자진사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13]

사퇴

이완구는 4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13]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4월 27일 사표가 수리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14]

공식적인 재임기간은 70일이었다.

2015년 2월에 총리 돼서 4월에 나갔다. 총리실에서 책상 배치 적응할 만하니 짐 싸게 된 수준이었다.

기소

검찰은 이완구가 2013년 선거사무소에서 성완종으로부터 3천만 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2015년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15]

1심 유죄

2016년 1월 29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완구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천만 원을 선고했다.[16]

1심은 성완종의 생전 인터뷰에 증거능력이 있고 비서진의 일정·진술 등과도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2심 무죄

그러나 2016년 9월 27일 서울고법은 판단을 뒤집고 이완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17]

항소심은 성완종이 당시 경남기업 수사와 관련해 이완구에게 강한 분노와 원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완구 관련 인터뷰 진술이 형사소송법상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핵심 인터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17]

즉 1심은 죽기 직전 한 말이니 믿을 수 있다 쪽에 무게를 뒀고 2심은 죽기 직전 말했다고 무조건 객관적인 건 아니다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무죄 확정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유지해 무죄를 확정했다.[18]

법적으로 이완구의 3천만 원 수수 혐의는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무죄가 확정되기 전에 이미 총리직에서는 물러난 지 2년 반 이상 지난 뒤였다.

홍준표

1억 원 의혹

성완종의 메모에는 홍준표 1억이라고 적혀 있었다.[1]

성완종은 전화인터뷰에서 2011년 홍준표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자신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통해 1억 원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9]

홍준표는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했다.

윤승모

홍준표 사건은 다른 리스트 인물과 달리 실제 금품을 전달했다는 사람으로 윤승모가 지목돼 있다는 점에서 수사단서가 상대적으로 구체적이었다.

검찰은 윤승모의 진술과 성완종의 인터뷰·메모 등을 토대로 홍준표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19]

1심 유죄

2016년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은 홍준표가 1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다.[20]

다만 당시 현직 경남도지사라는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1심은 성완종과 윤승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 무죄

2017년 2월 16일 서울고법은 1심을 뒤집고 홍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1]

항소심은 실제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허위진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완종이 홍준표에게 돈을 줬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 자체와 실제로 윤승모가 1억 원을 전달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였다.

대법원 무죄 확정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은 항소심의 무죄판결을 확정했다.[22]

결국 홍준표 역시 형사법적으로 금품수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

나머지 6명

2015년 7월 검찰은 리스트에 포함된 김기춘·허태열·이병기·홍문종·유정복·서병수 등 6명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다.[15]

일부 의혹은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고, 일부는 성완종의 주장 이외에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물증이나 구체적인 전달경로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23]

인물 메모 검찰 최종처분
김기춘 10만 달러 불기소
허태열 7억 원 불기소
홍문종 2억 원 불기소
유정복 3억 원 불기소
서병수 `부산시장 2억`으로 해석 불기소
이병기 금액 없음 불기소

[15][23]

따라서 이 여섯 명에게 금품수수 범죄가 법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다.

반대로 불기소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성완종 메모 내용 전체가 법원에서 허위라고 판정됐다고 말하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다. 상당수 의혹은 기소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실관계가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최종 결과

리스트 8명의 형사절차 결과를 전부 모으면 다음과 같다.

인물 검찰 1심 2심 최종 결과
홍준표 기소 유죄 무죄 대법원 무죄 확정
이완구 기소 유죄 무죄 대법원 무죄 확정
김기춘 불기소 - - 불기소
허태열 불기소 - - 불기소
홍문종 불기소 - - 불기소
유정복 불기소 - - 불기소
서병수 불기소 - - 불기소
이병기 불기소 - - 불기소

결론: 리스트에 이름 적힌 8명 중 최종적으로 이 사건 때문에 형사처벌이 확정된 사람은 0명이다.

그런데 과정만 보면 현직 국무총리가 사퇴했고, 두 명은 검찰에 기소돼 1심에서 실제 유죄판결까지 받았으며, 2년 넘게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한 장짜리 메모가 만들어낸 정치적 폭발력과 최종 형사판결 사이의 간격이 존나 큰 사건이다.

왜 재판 결과가 뒤집혔나

성완종이 법정에 없었다

이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을 줬다고 주장한 성완종이 이미 사망했다는 점이었다.

피고인 변호인 입장에서는 성완종을 법정으로 불러 언제, 어디서, 왜, 어떤 돈을 줬습니까라고 반대신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완종의 인터뷰와 메모를 형사재판 증거로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핵심쟁점이 됐다.

전문법칙

형사재판에서는 법정 밖에서 이루어진 다른 사람의 진술을 그대로 증거로 사용하는 데 엄격한 제한이 있다.

진술자가 사망해 법정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 진술이 특히 신뢰할 만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인정돼야 한다.

이완구 사건에서 1심은 이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인정하지 않았고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단을 유지했다.[18]

홍준표 사건

홍준표 사건은 성완종의 말뿐 아니라 돈을 직접 전달했다는 윤승모의 진술이 있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윤승모 진술의 일관성과 객관적인 정황 등을 검토해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22]

형사재판에서는 아마 받았겠지가 아니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돼야 하므로 최종적으로 무죄가 됐다.

무죄의 의미

대법원의 무죄 확정은 홍준표와 이완구에게 제기된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사실이 형사재판에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법원이 성완종의 모든 발언이 허위였다고 판결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반대로 성완종이 죽기 전에 한 말이니까 무조건 사실이라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성완종 주장: 존재함 / 검찰 기소: 두 명 / 1심: 두 명 유죄 / 최종판결: 두 명 모두 무죄 정도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 파장

박근혜 정부 직격탄

리스트에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세 명이 동시에 등장했다.

허태열·김기춘·이병기가 모두 이름을 올렸고 이완구 총리까지 포함됐다.

청와대 최고위 참모 라인이 한 메모에 줄줄이 들어가면서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과 정치자금 문제가 동시에 논란이 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존나 곤란한 것이 당시 정권이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정권 핵심인사들이 금품수수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점이었다.

이완구의 몰락

가장 직접적인 정치적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완구였다.

취임 당시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향후 대권주자 후보로 거론됐지만 리스트 공개 17일 뒤 총리직에서 물러났다.[14]

2017년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정치적 전성기를 회복하기에는 이미 사건의 충격이 너무 컸다.

법원 판결은 2년 뒤에 나오는데 총리 사표는 2주 만에 써야 하는 것이 정치의 무서운 점이다.

4·29 재보궐선거

사건 직후인 2015년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렸다.

성완종 리스트가 여당을 강타한 대형 악재였음에도 당시 새누리당은 네 곳 가운데 세 곳에서 승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한 곳도 이기지 못했다.[24]

따라서 성완종 사건이 박근혜 정부에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줬지만 바로 이어진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선거참패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특별사면 논란

성완종은 과거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었고 리스트 수사과정에서 이 과정에 대한 로비 의혹까지 추가로 제기됐다.

검찰은 2007년 특별사면과 관련해 성완종 측이 노건평 주변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정황 등을 조사했다.[25]

검찰은 일부 로비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공소시효 문제 등으로 노건평을 기소하지 않았다.[25]

수사가 박근혜 정부 인사들의 정치자금 문제에서 과거 참여정부의 특별사면 문제로 확장되자 당시 야권에서는 리스트 수사를 희석하기 위한 `물타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26]

그러나 이것 역시 별도의 형사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수사에 대한 평가

검찰의 입장

특별수사팀은 성완종이 사망한 상황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복원해 수사했고, 홍준표와 이완구에 대해서는 기소할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5]

검찰은 리스트 자체를 곧바로 유죄증거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수사의 단서로 보고 일정·자금흐름·측근 진술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27]

비판

반면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리스트 8명 가운데 두 명만 기소하고 대선자금 의혹 등 핵심쟁점을 충분히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5]

특히 김기춘·허태열 등 일부 의혹은 오래된 사건이라 공소시효 문제가 있었고, 유정복·서병수·이병기는 인터뷰에서도 구체적인 경위가 나오지 않아 수사가 깊게 진행되기 어려웠다.

결국 메모는 존나 폭발적이었는데 증거는 메모만큼 폭발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두 기소도 무죄

검찰이 유일하게 재판까지 끌고 간 홍준표와 이완구마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받았다.

이 때문에 사건 종료 뒤에는 검찰이 애초에 무리하게 기소한 것 아니냐는 평가와, 핵심 공여자가 사망한 특수한 상황 때문에 실제 진실이 무엇이든 형사입증이 구조적으로 어려웠다는 평가가 함께 나왔다.

둘 중 하나를 확정적인 역사적 결론으로 박는 것은 어렵다.

언론

경향신문의 마지막 인터뷰

사건을 폭발시킨 핵심은 《경향신문》의 성완종 마지막 전화인터뷰였다.

성완종은 사망 직전 기자에게 먼저 연락해 약 50분 동안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다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4]

경향신문은 처음에는 내용 일부를 기사화했고 이후 전체 녹음내용을 공개했다.

메모만 있었다면 `이름 옆에 숫자가 있는데 이게 뭔 숫자인지 모르겠다` 수준에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인터뷰에서 액수·시기·전달방식 등이 추가되면서 사건이 본격적인 정치자금 스캔들로 발전했다.

리스트라는 이름

언론은 메모가 공개된 직후부터 이를 성완종 리스트라고 불렀다.

그러나 해당 종이는 정식 장부나 회계기록이 아니라 성완종 본인이 적은 작은 메모였고, 검찰 역시 수사결과 발표에서 리스트 자체가 유력한 증거는 아니며 수사의 단서라고 설명했다.

`리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무슨 정치자금 엑셀파일이라도 발견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원본은 정말 작은 종이쪼가리였다.

게이트라는 이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사건을 성완종 게이트라고도 불렀다.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대형 정치스캔들 뒤에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게이트`를 붙이는 전통적인 작명법이다.

뭔 사건만 터지면 이름 뒤에 게이트 붙이는 한국 정치언론의 습관답게 이 사건도 예외가 없었다.

여담

메모와 유서를 혼동하기 쉽다

성완종은 사망 전 가족에게 남긴 유서를 따로 작성했다.

정치인들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는 그 유서 본문이 아니라 사망 당시 소지하고 있던 별도의 메모였다.[3][1]

따라서 유서에 정치인 8명 이름을 썼다고 표현하면 엄밀히는 부정확하다.

부산시장

메모에는 `서병수`라고 쓰여 있지 않고 부산시장 2억이라고 적혀 있었다.[1]

당시 부산시장이 서병수였기 때문에 검찰과 언론은 서병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사건을 다뤘다.

원문 그대로 쓰고 싶다면 `부산시장`이라고 적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완구 금액은 메모에 없다

`이완구 3천만원`이라고 흔히 정리되지만 메모에서 이완구 이름 옆에는 금액이 없었다.[1]

3천만 원이라는 숫자는 사망 전 전화인터뷰에서 성완종이 주장한 내용이다.[9]

이런 차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재판에서는 어떤 내용을 어느 자료에서 말했느냐가 증거능력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존나 중요하다.

1심만 보면 둘 다 유죄였다

이 사건이 기억 속에서 더 혼란스러운 이유다.

이완구는 2016년 1월, 홍준표는 같은 해 9월 1심에서 각각 유죄판결을 받았다.[16][20]

그래서 당시 기사만 찾아보면 `성완종 리스트 사실로 확인` 같은 분위기의 기사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둘 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됐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옛날 뉴스만 한 장 캡처해서 가져오면 정반대 결론을 만들 수 있는 사건이다.

최종적으로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리스트 8명 가운데 6명은 불기소됐고 기소된 2명도 대법원에서 무죄였다.[15][6]

따라서 리스트 자체와 관련된 금품수수 혐의로 형사처벌이 확정된 정치인은 없다.

정치적 파괴력: 국무총리 사퇴시킴 / 형사처벌 확정자: 0명

이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이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당시 대전지검장이던 문무일이었다.

문무일은 2년 뒤인 2017년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자신이 수사팀장으로 기소했던 홍준표·이완구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가 확정됐다.[6]

수사팀장 입장에서는 꽤 묘한 엔딩이다.

성완종 본래 사건은 묻혔다

사건의 출발점은 경남기업과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였지만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국민의 관심은 정치자금 의혹으로 거의 완전히 이동했다.

성완종이 사망하면서 본인에 대한 형사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28]

원래 수사받던 사람은 재판에 가지 못했고, 마지막에 이름을 남긴 정치인들이 대신 몇 년 동안 재판을 받는 기묘한 사건구조가 됐다.

주요 일지

날짜 내용
2015.03.18 검찰, 경남기업 압수수색
2015.04.06 검찰, 성완종에 사전구속영장 청구
2015.04.09 성완종 영장실질심사 불출석 후 사망
2015.04.10 경향신문 마지막 인터뷰 보도, 정치인 8명 메모 공개
2015.04.12 검찰 특별수사팀 구성
2015.04.20 이완구 국무총리 사의 표명
2015.04.27 이완구 총리 공식 퇴임
2015.07.02 검찰, 홍준표·이완구 기소 및 나머지 6명 불기소
2016.01.29 이완구 1심 유죄
2016.09.08 홍준표 1심 유죄
2016.09.27 이완구 항소심 무죄
2017.02.16 홍준표 항소심 무죄
2017.12.22 대법원, 홍준표·이완구 모두 무죄 확정

[4][15][16][20][17][21][6]

주요 용어

용어 설명
성완종 게이트 성완종의 정치권 금품제공 주장으로 발생한 2015년 정치 스캔들.
성완종 리스트 성완종 소지품에서 발견된 정치인 8명의 이름과 일부 금액이 적힌 메모.
경남기업 성완종이 회장을 지낸 건설회사.
특별수사팀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기 위해 검찰이 구성한 수사팀.
문무일 특별수사팀장. 이후 검찰총장 역임.
이완구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 유죄를 받았으나 최종 무죄가 확정된 당시 국무총리.
홍준표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 유죄를 받았으나 최종 무죄가 확정된 당시 경남도지사.

검색할 때

관련 자료를 찾을 때는 성완종 게이트, 성완종 리스트, 성완종 메모, 성완종 마지막 인터뷰, 성완종 리스트 8인, 성완종 이완구 3000만원, 성완종 홍준표 1억, 성완종 리스트 대법원 무죄, 성완종 특별수사팀, 문무일 성완종 리스트 등의 검색어를 함께 사용하면 좋다. 특히 2016년 1심 기사만 보면 홍준표·이완구가 유죄인 것으로 나오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두 사람 모두 무죄가 확정됐으므로 사건의 최종 결과를 찾을 때는 반드시 `대법원`, `2017년 12월 22일`을 같이 확인해야 한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1. ↑ 1.0 1.1 1.2 1.3 1.4 1.5 1.6 1.7 연합뉴스 - 검찰 '성완종 리스트' 확보
  2. ↑ 2.0 2.1 연합뉴스 - 자원외교 비리 성완종 영장
  3. ↑ 3.0 3.1 3.2 연합뉴스 - 성완종 전 회장 사망
  4. ↑ 4.0 4.1 4.2 4.3 4.4 4.5 4.6 연합뉴스 - 성완종 리스트 수사일지
  5. ↑ 5.0 5.1 5.2 5.3 연합뉴스 -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
  6. ↑ 6.0 6.1 6.2 6.3 연합뉴스 - 성완종 리스트 홍준표·이완구 무죄 확정
  7. ↑ 연합뉴스 - 성완종 전 회장 지역 인맥
  8. ↑ 연합뉴스 - 자원외교 비리 수사
  9. ↑ 9.0 9.1 9.2 9.3 뉴스핌 - 성완종 경향신문 인터뷰 전문
  10. ↑ 연합뉴스 - 녹취록에서 빠진 3인
  11. ↑ 뉴스핌 - 성완종 리스트 8인방 금품수수 부인
  12. ↑ 서울신문 -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
  13. ↑ 13.0 13.1 연합뉴스 - 이완구 총리 사의 표명
  14. ↑ 14.0 14.1 연합뉴스 - 이완구 총리 퇴임
  15. ↑ 15.0 15.1 15.2 15.3 15.4 연합뉴스 -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
  16. ↑ 16.0 16.1 16.2 경향신문 - 이완구 1심 유죄
  17. ↑ 17.0 17.1 17.2 연합뉴스 - 이완구 항소심 무죄
  18. ↑ 18.0 18.1 연합뉴스 - 이완구 무죄 확정
  19. ↑ 연합뉴스 - 홍준표 성완종 리스트 사건
  20. ↑ 20.0 20.1 20.2 연합뉴스 - 홍준표 1심 징역 1년6개월
  21. ↑ 21.0 21.1 동아일보 - 홍준표 항소심 무죄
  22. ↑ 22.0 22.1 연합뉴스 - 홍준표 무죄 확정
  23. ↑ 23.0 23.1 경향신문 - 성완종 리스트 6명 불기소
  24. ↑ 아주경제 - 4·29 재보선 결과
  25. ↑ 25.0 25.1 연합뉴스 - 성완종 특사 로비 수사
  26. ↑ 연합뉴스 -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 반응
  27. ↑ 경향신문 -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문답
  28. ↑ 연합뉴스 - 경남기업 수사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