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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굶던 거지로 태어나서 삼성과 함께하는 양대 기업집단인 롯데왕국을 자기손으로 이룬 초능력자.
태어날 때 환경은 못 가졌지만, 환경을 뺀 개인능력은 다 갖췄다. 건강, 부지런함, 똑똑함, 다중언어능력, 사업감각, 훤칠한 외모 까지.
신격호는 롯데 창업주로 일본 이름은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인데 꼴데가 사실상 쪽국 기업이니 신격호라고 부르지 말고 시게미쓰 다케오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재일교포 중 정체성이 강한 사람들처럼 일본 영주권까지는 땄을 뿐, 내내 한국 국적이었다. 일본 마누라(둘째 마누라)한테도 '나 한국인임ㅇㅇ' 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런데 젊을 때 신격호가 워낙 잘생겨서 ㅇㅋ.
또한 완벽한 일본어와 표준한국어(서울말), 교포 티가 없는 완벽한 울산 토박이 사투리의 3개 국어를 했다.
그의 아들들은 일본어는 좀 하지만 한국어가 살짝 딸린 걸 보면, 신격호의 엄청난 언어능력은 절반만 유전된 것 같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국내거주를 늘리기 전 50여년의 일본 등 해외 생활 와중에도 다른 재일교포 재미교포 재영교포 등 해외교포들과는 달리 한국 국적을 한차례도 포기하지 않고 있고, 한국에 소득세와 재산세를 수십년이상 납부해 왔다는 점이 최근 국적논란 와중에 밝혀졌다.
이 점은 국내서 살고 돈 벌면서 세율이 낮은 해외국적으로 있으면서 외국에 돈 내는 대다수 검은머리외국인(연예인과 그 자녀들, 구두 뒷굽 뻰찌로 잡아뜯고 빚이 몇억입네 가난하네 하며 서민팔이하며 구라가 일상인 여야 정치인들, 기타 국내전용 재벌과 중소기업 오너들)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검은머리 외국인들이나 대다수 생활편의를 위해 체류국에 귀화하는 해외교포들과는 달리 고집이 보이고 조금 더 나아보이는 점이다.
이런 점도 한국국적 포기한것 아니냐는 소리가 한참동안 돌 정도로 홍보 제대로 못하던 로떼 직원들과 신씨 오너 일가는 제품제작이 아닌 홍보적 측면에선 생각이 없는게 분명하다. 와세다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일단 겉으로는 90대의 나이에 0.05프로의 지분으로 손가락으로 '너 나가'를 실행해오며 황제경영을 반세기동안 해 왔다.
그런데 최근 수사 과정에서 지배구조 등 털리다보니 롯데그룹의 지분을 법인으로 보유한 비장상 지주사(사실상)들이 여러 회사로 나뉘어있고 지분은 복잡하지만 결국 최종단계로 올라가면 신격호 일가의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다만 해명하지는 않고 법정 등 법적인 싸움 외에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로떼판 아침드라마 2015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 역을 맡고있다.
개요
신격호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이다. 한자로는 辛格浩, 일본명은 시게미쓰 다케오이다.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고,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세운 뒤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 왕국을 만들었다.
한국 재벌 창업주 중에서도 특이한 인물이다. 이병철은 원래 부잣집 출신이고, 정주영은 맨손 신화 쪽 이미지가 강한데, 신격호는 아예 일본에서 먼저 성공한 뒤 한국에 역진출한 케이스다. 그래서 롯데는 한국 재벌이면서도 일본 색깔이 강하고, 일본 기업이면서도 한국 창업주가 만든 이상한 포지션을 갖게 되었다.
한마디로 신격호는 개인 능력만 놓고 보면 괴물급 사업가였고, 기업 이미지 관리와 후계 구도만 놓고 보면 말년에 완전히 드라마를 찍은 사람이다.
소싯적
거지로 태어났는데 그의 몸뚱아리 자체가 장점이 많게 태어났다
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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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사진을 보면 옷걸이도 좋고 부모가족친척 형제들 중에서도 특히 훤칠하게 잘 생겼다. 얼굴에서 고생한 티는 많이 보였지만.
신격호는 젊은 시절 외모가 꽤 괜찮았다는 말이 많다. 단순히 "돈 많으니까 잘생겨 보였다"가 아니라 실제 사진을 보면 키도 크고 인상도 뚜렷한 편이다.
사업 감각, 체력, 언어능력, 외모까지 갖췄으니 그냥 초반 스탯 배분이 이상하게 잘 된 캐릭터다. 문제는 출생 환경이 너무 구렸다는 것. 게임으로 치면 능력치는 높은데 시작 마을이 폐허였다.
답도 없는 땅거지로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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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최하층민 하류층 이었으며, 흙수저란 말도 해당이 안되는게 신격호는 10대 초중반의 어려서부터 경상도권에서 돼지우리, 양농장 털깎기 알바를 하며 연명했을만큼 수저로 치면 완전 무수저였다. 정말 답도 없이 가난했다.
신격호는 울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와 노동이 가까운 삶이었다. 훗날 재벌 창업주가 된 뒤에는 이 가난한 출발점이 자수성가 신화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다만 이런 자수성가 이야기는 늘 양면적이다. 진짜로 대단한 것도 맞지만, 대기업이 된 뒤 직원들한테까지 "나도 고생했으니 너희도 버텨라" 식으로 굴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창업자의 고생담은 기업 홍보에는 좋지만, 직원 복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장점이 많은 신격호 자기자신
| 주의! 이 인물은(는) 존나 똑똑하면서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천재적인 두뇌와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을 상대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
다행히 그는 매우 부지런했으며, 머리도 좋고(완벽한 서울말과 울산사투리, 일본어를 각각 구분지어 했던 한본어 마스터였다. 나중에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김대중 같은 대통령들을 만날 때 대통령들이 청와대의 행사에서 완벽한 표준어말투로 조심히 말 하는 신격호를 보고 신기하거나 감탄해 했다고 한다. 자기들은 경상도나 전라도 출신지의 사투리 하나만 쓰고 서울말 표준어를 제대로 따로 쓰지 못 하는데, 신격호는 청와대나 롯데본사, 성북동 저택 등 서울에선 서울말투로 말하고, 고향인 울산에 가선 울산사투리로 떠들고, 일본에 가선 일본어로 대화했으므로. 말년에는 나이들어서 어휘가 많이 줄었다지만, 자기가 필요한 사업적 언어, 문서, 대화는 한본어 모두 가능했으므로 대단한 능력자가 맞다.)
그 부지런한 성격과 좋은 머리를 받쳐 줄 체력과 초강력 건강까지 나면서부터 모두 가졌다.
이렇게 한일 통틀어 가장 가난하게 태어난 신격호는 자신의 몸으로 세계4위 재벌까지 찍어 보는 신화를 쓰게 된다.
신격호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실행력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많고, 부지런한 사람도 많고, 운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신격호는 일본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사업을 만들고, 그걸 한국까지 끌고 와서 대기업 집단으로 키웠다.
특히 언어 능력은 확실히 강점이었다. 일본에서 사업하려면 일본어를 완벽하게 해야 했고, 한국 정·재계와 상대하려면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해야 했다. 여기에 고향 사람들과는 울산 사투리로 소통했다. 그냥 언어 스위치가 여러 개 달린 인간이었다.
성장 줄거리
울산 둔기리서 가난하게 태어나 살다가 1944년에 일본에 건너가서 그때부터 사업을 했다.
사업수완은 있었는지 일본 노인으로부터 돈을 빌려다 솥뚜껑 공장을 차리고 키웠으나 미군의 폭격을 맞고 빚만 남고 쫄딱 망했다. 돈을 빌려준 노인은 신격호를 위로해주면서 빌려준 돈을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서 비누 같은 것을 만드는 유지 공장을 차렸고 이건 상당히 잘됐다고 한다. 그렇게 대박치자 신격호는 자기가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빌린 돈을 다 갚고 솥뚜껑 공장을 차리게 해준 일본 노인에게는 집을 한 채 공짜로 줬다. 그리고 껌공장을 차렸고 그게 꼴데의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성공 정도가 아니라 껌은 대박을 쳤다. (당시 인기가 너무 좋아서 처음 팔아달라고 할 땐 무시하던 상인들이 바로 얼마 지나지않아 나중엔 신격호의 공장 앞에서 새벽부터 물량 먼저 받아가겠다고 줄을 설 정도로 없어서 못팔았다고 한다)
저연령이나 관심 없는 사람들 중에는 워낙 조용한 회사라 중소기업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업분야도 많고(형제분할 전 이것 저것 다 하던 현대그룹이나 imf 이후 망하기 전 넘버2시절 대우그룹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회사는 대다수 기업과 달리 부채비율도 없다시피하고 전 그룹이 한명에게 그대로 이어받을경우 삼성제국을 만들어버린 삼성그룹 외엔 자금력이나 뭐나 꿀릴것 없을 정도로 실재산이 엄청 알짜인 현금부자다. 상장하고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알짜 회사나 보유자산도 많고 빚도없다. 이렇기 때문에 아들 둘이 서로 자기가 다 받겠다고 저렇게 체면이고 정이고 혈연이고 뭐고 눈 딱 감고 죽자살자 싸우는 것. 말 그대로 이정도로 붙은 이상 지면 나가리고 이기면 왕이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 등지에 걸쳐 엄청나게 큰 회사다. 얼마나 탄탄하냐면 imf때도 직원을 안자르고 하던대로 그대로 갔다. 인수합병할 때 회사채 발행할 때 일부 회사들은 정부보증인 공기업이나 일부 국채보다 낮은 사실상 없다시피한 이자로 자금을 조달했다. 빚더미 부실 지자체 등은 비교할 것도 없을 지경.
개인으로서 보면 밥 굶던 좆그지로 태어나서 자수성가로 현금흐름이나 자금동원력 등은 원탑인 삼성급이라고 불리는 롯데왕국을 만든 존나 능력자에 똑똑하고 유능한 인물이다. (삼성은 이병철 자체도 원래 만석꾼 집안이라고 해서 경북에서 상인 계열 가문으로 돈이 많았다. 즉 원래부자인데 이병철이 한번 키우고 이건희가 존나게 키운 게 지금의 삼성제국. 그런데 신격호는 자기 1대에서 그 몇대에 걸친 확장레벨을 따라잡았다.)
해외 거주 중이나 국내외 사업 중에도 고향인 울산 둔기리에는 2013년까지 매년 직접 와서 잔치행사를 열어왔었는데, 오랜 해외 생활로 인한 향수병 때문도 있어보이지만 둔기리가 깡촌이라서 신격호가 어린(그러니까 일제 식민지 시기)예전엔 마을에 정말 말그대로 산에서 채소 따와서 허기 채우고 연명하며 밥 굶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 마을 자체가 워낙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챙겨왔는듯.
돈이 저렇게 썩어나게 많은데 대다수의 회장님들 처럼 (신격호 리즈때 재산 20분의1도 안되는 회장들도 전용기 타고 다니는경우가 많다) 전용기는 커녕 재산에 비해선 검소하게 비행기 1등석 정도만 이용하며, 나이 60 70 넘어서도 새벽에 몰래 공장 순회를 다니며 근태체크를 하거나 마스크 쓰고 청소원 분장해서 치우면서 사내 분위기나 매장 고객들의 평가등을 몰래 염탐하는 등 유능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존나 건강한 인물이다.
대신 성장기에 본인 뿐 아니라 자식들하고 직원들에게도 급여나 보너스 복리후생 등은 짰다고 한다. 롯데가 영위하고 있는 분야가 전 세계 공통적으로 저임금인 유통업인 걸 감안하면 어찌보면 당연한거다. 다만 그렇다고해서 타 대기업에 비해서 짜다는거지 유사업종에 좆중소기업이나 개인회사 보다는 물론 급여는 당연히 낫다. 건강해서 오래살기도 한다. 벌써 94세 ㄷㄷ 다만 이방원과 권력을 두고 전쟁한 이성계처럼 자기 아들과의 싸움에선 이성계의 왕자의 난 에서 이름만 바꿔쓰면 차이점도 없을 것 처럼 돌아가며 지는 모습이라, 자기 회사에서 아들과의 전쟁 지고 자기편 수족(부하)들 다 짤리고 허수아비 식물인간같은 실권없는 생활 한 이성계처럼 말년에 못볼 꼴 보고있다.
결국 2017년 6월 24일부로 새 이사진에서 배제되며 롯데그룹을 창립한지 70여년 만에 경영에서 물러나게 됐다. 명예회장직을 던져주긴 했지만 자기 앞가림 못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내쫒긴 불명예 퇴진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 롯데 창업
신격호의 사업 출발점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 전쟁과 패전, 물자 부족, 미군 주둔이라는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그는 먹거리 사업 기회를 봤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군을 통해 껌 문화가 퍼졌고, 신격호는 이 틈을 잡아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1948년 롯데가 세워졌고, 껌 사업이 크게 성공했다. 롯데껌은 일본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고, 이후 초콜릿, 캔디, 과자 등으로 넓어졌다.
여기서 신격호의 감각이 나온다. 기술 하나로만 성공한 게 아니라, 패키지, 브랜드명, 대중 취향, 유통을 같이 본 것이다. 단순히 껌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껌"을 만든 셈이다.
물론 롯데 이름과 껌 제품들이 서양 브랜드를 따라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근데 전후 일본 기업들 중에서 안 베낀 놈 찾기가 더 힘들다. 당시 산업화는 대체로 모방에서 시작해서 자기식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롯데도 그 흐름 위에 있었다.
한국 롯데 진출
신격호는 일본에서 성공한 뒤 한국에 진출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에 투자할 길이 열렸고,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것이 한국 롯데의 시작이다.
이후 롯데는 식품을 시작으로 음료, 호텔, 백화점, 유통, 화학, 건설, 외식, 금융까지 확장했다. 롯데칠성음료, 롯데삼강,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리아, 롯데케미컬 같은 계열사들이 이 과정에서 생겼거나 롯데 계열로 편입되었다.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점이 롯데 국적 논란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시작했지만 돈은 한국에서 더 크게 벌고, 창업자는 한국 국적이지만 가족과 지배구조는 일본과 얽혀 있었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이라고 욕먹고, 일본에서는 한국계라고 보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롯데의 국적 논란은 그냥 감정 문제가 아니라 신격호의 인생 경로 자체에서 나온 구조적 문제다.
롯데월드타워 집착
신격호의 숙원사업으로 유명한 것이 롯데월드타워다.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겠다는 꿈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서울공항 활주로 문제, 특혜 논란, 안전 논란 등 별별 문제가 붙었지만 결국 롯데월드타워는 완성되었다.
롯데 입장에서는 그룹의 상징이고, 신격호 개인에게는 평생의 꿈 같은 건물이었다. 자기 손으로 세운 왕국의 탑을 현실에 박아넣은 셈이다.
근데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롯데다웠다는 점이다. 공항 문제, 특혜 논란, 안전 논란까지 붙으면서 "아 역시 롯데"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롯데월드타워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욕을 먹어도 높이는 높다. 건물은 올라갔고, 논란도 같이 올라갔다.
경영 스타일
신격호의 경영 스타일은 강한 오너 중심 경영이었다.
그는 숫자와 현장을 직접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고령이 되어서도 업무 보고를 받고, 매장을 살피고, 계열사 경영에 관여했다.
좋게 보면 창업자의 집념과 책임감이다. 나쁘게 보면 모든 걸 자기 손아귀에 두려는 황제경영이다. 롯데가 오랫동안 신격호 개인의 의사에 크게 좌우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롯데의 지배구조는 복잡했고, 신격호의 말 한마디가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다. 말년 경영권 분쟁 때 이 문제가 폭발했다.
창업자가 너무 오래 실권을 쥐고 있으면 후계 구도는 필연적으로 꼬인다. 신격호는 사업은 잘 키웠지만, 후계 정리는 제대로 못 했다. 이게 말년 비극의 핵심이다.
아내
- 첫째 마누라(초대 중전) 故 노순화 : 장녀 신영자를 낳고 죽었다.
- 둘째 마누라(2대 중전) 신 하츠코(신초자) (시게미쓰 하츠코; 본명 타케모리 하츠코) : 장남 시게미쓰 히로유키(한국명 신동주. 현 한국국적), 차남 시게미쓰 아키오(한국명 신동빈. 현 한국국적)를 낳았다.
성씨가 시게미쓰인 것 때문에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오른 다리를 잃은 A급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라는 설이 돌았지만, 신격호가 하츠코와 결혼 이전에도 시게미쓰라는 성씨를 창씨개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창씨 개명 당시 신씨가 고갑자에서 따온 시게미쓰라는 성씨를 사용했다고 엄연히 기록에 남아 있음), 시게미쓰 마모루의 유족 역시 자신들과는 신격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혀, 신격호가 전범 가문의 비호로 자랐다는 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비호를 받았다면 처음 사업을 할 때 제품을 상인들에게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츠코 여사의 본성은 타케모리인데,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결혼하면 남편 성으로 아내의 성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라, 혼인하면서부턴 한국에선 신초자, 신 하츠코(보통 성+존칭 으로 사모님들을 부르므로 보통 신 여사), 일본에선 시게미쓰 하츠코 이름을 쓴다. 독특한 점 이라면,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게 심하던 시기였는데, 남편이 한국인(조선인)인 것을 알고도 결혼했다고 한다. 신격호가 청년-중년 때 외모관리를 않는데도 훤칠하게 생겼고 지금 기준으로도 꽤 잘 생겼던 점이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준 이중언어구사자로 보인다. 롯데 왕자의 난 때 보면 어려운 말이 아니면 통상적인 한국어는 듣고 이해하며 간단한 한국어 표현은 할 줄 아는 모습을 잠깐 보였다. 스토킹하는 기자한테 했던 것이지만.
한국에서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도 않았고, 재일교포도 아닌 완전 일본인 출신임에도 울산 둔기리 잔치나 가족제사에는 남편과 가족들을 따라와서 같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신하츠코 입장에서는 남편과의 접점을 빼면 아예 연고가 없는 곳들이다. 이 점이 충실한 내조로 보였던 점 때문에 한일관계가 나쁘던 시절조차 한국인들이나 언론 기자들이 일본여성이나 일본여성의 내조력에 대해 칭찬하고 호감을 보이는데 영향을 주어 왔다. '한국왕자와 결혼했으니 나는 이제 한국인이다. 국민국가가 되어도 한국국민이다.'며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애들 교육을 하며 생활을 한 이방자 여사와 함께 일본주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다.
- 셋째 마누라(희빈) 서미경 : 신격호의 승은을 입어 차녀 신유미를 낳았다.
신격호의 가족관계는 롯데그룹 경영권 문제와 그대로 연결된다.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었다.
장녀 신영자, 장남 신동주, 차남 신동빈, 차녀 신유미가 각각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말년에는 이것이 경영권 분쟁과 각종 법적 문제로 이어졌다.
재벌가에서 가족은 가족이면서 동시에 지분 관계자다. 밥상머리에서 끝날 일이 주주총회와 법정으로 간다. 롯데 왕자의 난이 괜히 드라마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자식
- 장녀 신영자 - 탑성제국의 황제인 건희제랑 동갑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 장남 신동주(시게미쓰 히로유키) -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했다.
- 차남 신동빈(시게미쓰 아키오) -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했다. 아들 신유열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했다.
- 차녀 신유미
신동주와 신동빈
신격호의 두 아들 신동주와 신동빈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주역이다.
신동주는 일본 롯데 쪽에서 활동했고, 신동빈은 한국 롯데 쪽에서 활동했다. 겉으로만 보면 한일 롯데를 나눠 맡는 구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지배권을 둘러싼 충돌이 벌어졌다.
2015년 경영권 분쟁이 폭발하면서 롯데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대중에게 까발려졌다. 일본 롯데홀딩스, 광윤사, 호텔롯데, 한국 계열사 지분관계 같은 이름들이 뉴스에 등장했고, 사람들은 "이게 대체 한국 회사야 일본 회사야?"라는 의문을 다시 갖게 되었다.
신격호는 이 분쟁 속에서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한때는 손가락 하나로 임원을 날리던 창업주였지만, 말년에는 두 아들의 싸움 속에서 판단능력 논란까지 겹치며 점점 실권을 잃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신격호 말년의 가장 큰 사건이다.
신격호가 고령이 되면서 후계 구도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은 롯데그룹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었고, 이 과정에서 신격호의 의사와 판단능력이 계속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롯데 이미지를 크게 망가뜨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냥 과자 회사, 백화점 회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일본 롯데홀딩스니 광윤사니 하는 복잡한 구조가 튀어나왔다.
또 신격호 일가가 한국어를 얼마나 하느냐, 한국 롯데의 주인은 누구냐,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느냐 같은 논란도 같이 터졌다.
한마디로 롯데 왕자의 난은 그냥 재벌집 가족싸움이 아니라, 롯데라는 기업의 정체성 문제를 전국민에게 공개한 사건이었다.
노망
ㄴ 동빈이 누구야? 애비가 누구야?
자기 둘째 아들 이름도 모른다. 할배 맛갔다...(사실 치매 방지 약을 먹고있다는 소문도 있다. 나이가 나이다보니. 창업 1세대로서 삼성만 봐도 이미 1세대 이병철에서 2세대 이건희도 모자라 이건희도 쓰러지고 3대 이재용으로 가려고 하고있는게 현 시점이다. 그런데 신격호는 이병철 세대에 하고 있을 때 같이 재벌들끼리 때론 협력 때론 견제 하면서 쿵짝쿵짝 하던 사람이다. 참고로 19년 전에 85세로 죽은 정주영보다 겨우 6살 어리다.)
검찰로 소환되면서 노망이 거의 확정되었다. 조사 다 받은 뒤에 집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자기 수행원에게 "어디로 가는거임??" 하면서 지팡이로 겐지 궁씀 ㄷㄷㄷ 두 아들이 날뛰는 이유가 없던게 아니다.
이 부분은 말년의 건강 문제와 경영권 분쟁이 겹치면서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 신격호는 90대 중반까지도 그룹의 상징이었지만, 이미 창업자가 정상적으로 모든 판단을 주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재벌 창업주들이 흔히 겪는 문제가 여기서 나온다. 너무 오래 권력을 쥐고 있다가 후계 체제를 제때 정리하지 못하면, 본인이 약해지는 순간 주변에서 전쟁이 난다.
신격호의 말년은 이 점에서 이성계 드립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다. 자기가 세운 왕국에서 아들들 싸움을 보다가 밀려난 창업주가 된 것이다.
휠체어
원래 방송이나 뉴스에 나올 때는 휠체어 타고 다니는데 방송 같은데 안 나오면 지 발로 걸어다님. 노망도 연기일듯;;
목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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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리아에서 음료수 시켜서 먹고 가는 걸 봄 지 회사니까 잘 장사하는지 확인한 듯
ㄴ 그렇게따지면 세븐일레븐 가서 삼김에 라면 쳐먹은것도 말이 되겠네 ㅅㅂ
신격호는 실제로 현장을 챙기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었다. 공장, 매장, 호텔, 백화점 등을 직접 둘러보며 확인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현장 경영은 창업자 세대에게는 강점이었다. 책상에서 보고서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다만 규모가 커진 대기업에서는 이런 방식이 한계도 있다. 창업자 한 사람이 모든 걸 직접 챙길 수 없고, 결국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 롯데는 신격호 개인의 감각으로 큰 회사였지만, 그만큼 시스템보다 오너의 영향력이 강했던 기업이기도 했다.
경영비리와 재판
신격호는 말년에 경영비리 수사와 재판도 겪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이후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신격호를 비롯한 총수 일가가 재판에 넘겨졌다. 신격호는 고령과 건강 문제로 법정 구속은 피했지만, 창업주의 말년 이미지에는 큰 흠집이 남았다.
이 사건은 롯데가 단순히 가족싸움만 한 것이 아니라, 재벌식 지배구조와 총수 일가 사익 추구 문제까지 안고 있었다는 인식을 키웠다.
신격호 개인만 놓고 보면 밑바닥에서 거대 기업을 만든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재벌 총수로서의 그림자도 분명했다. 한국 재벌 창업주들이 대체로 그렇다. 영웅담과 비리 의혹이 한 사람 안에 같이 들어 있다.
기업보국과 애국 이미지
신격호는 기업보국을 강조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성공한 뒤 한국에 투자했고, 한국 롯데를 키웠으며, 외환위기 때 외자 유치와 사재 출연 이야기도 자주 언급된다. 롯데 측에서는 신격호를 조국을 위해 투자한 기업인으로 포장한다.
반대로 비판자들은 롯데의 지배구조와 일본 논란, 한국 소비자 차별 논란, 직원 처우 문제를 들어 "기업보국은 무슨"이라고 깐다.
둘 다 볼 필요가 있다. 신격호가 한국에 투자해 롯데그룹을 키운 것은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고용과 산업 성장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롯데가 보여준 각종 논란과 비호감 이미지도 사실이다.
즉 신격호는 애국 기업인 하나로만 포장하기도 어렵고, 그냥 악덕 재벌로만 처리하기도 어렵다. 그 복잡함이 롯데라는 기업의 본질이다.
사망
| 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
2020년 1월 19일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노환으로 인해 타계하였다. 향년 98세. 이 사람의 사망으로 인해 불반도 1세대 재벌들의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났다.
98년을 살았지만 자이언츠의 우승을 2번밖에 보지 못했다...
ㄴ꼴데 우승하는거 하늘에서도 못볼듯
ㄴㄴ 그래도 본캐 (지바롯데) 우승은 3번 보고 타계했다, 걔네는 21세기 들어서 잽시 우승 2번 했지만 부캐(꼴데)는...
신격호의 사망은 한국 재벌 1세대의 퇴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같은 창업주 세대가 이미 역사 속으로 들어간 뒤, 신격호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전후 산업화 시대를 만든 재벌 1세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가 남긴 것은 거대한 롯데그룹, 복잡한 한일 정체성, 가족 경영의 후유증, 그리고 아직도 우승 못 하는 롯데 자이언츠다.
평가
신격호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좋게 보면 맨손으로 한일 양국에 걸친 거대 기업을 만든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껌 사업으로 성공했고, 이후 한국에 투자해 식품·유통·관광·화학 대기업을 만들었다. 개인 능력과 사업 감각만 보면 괴물이라고 해도 된다.
나쁘게 보면 구시대적 황제경영의 표본이다. 복잡한 지배구조, 불투명한 후계 구도, 총수 일가 중심 경영, 직원 처우 논란, 일본 국적 논란을 남겼다. 특히 말년의 경영권 분쟁은 그가 평생 쌓은 이미지를 크게 망가뜨렸다.
신격호는 성공한 창업주였지만, 성공한 퇴장자는 아니었다. 기업을 키우는 데는 천재적이었지만, 기업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데는 실패에 가까웠다.
이게 가장 큰 아이러니다. 자기 손으로 왕국을 만들었는데, 그 왕국의 계승 문제 때문에 말년에 왕좌에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