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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선
Yang Hak-seon
생년월일1992년 12월 6일
국적대한민국
직업전 체조 선수
활동기간2000년대 초반 ~ 2025년
소속부산시체육회
추가 정보
경력2012 런던 올림픽 도마 금메달
2011·2013 세계선수권 도마 금메달
종목기계체조 도마

개요

양학선은 대한민국의 전 기계체조 선수로, 주종목은 도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도마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체조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지금부터 양학(양민학살)을 선보이겠다.

여홍철의 뒤를 잇는 체조계의 양학러.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양학선이라는 기술로 옆동네 친구들을 압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체조 금메달을 얻게 된다.

선수 경력

양학선은 2011년 세계선수권 도마 금메달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도마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도 다시 우승하며 세계선수권 도마 2연패를 기록했다.

ㄴ 런던 올림픽 한 번 반짝하고 끝난 선수가 아니라, 그 전후 세계선수권까지 씹어먹던 진짜 도마 최강자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양학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최고난도 기술인 양학선과 쓰카하라 트리플을 사용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학선' 기술은 기존 여홍철의 '여2' 기술에서 반 바퀴를 더 비틀어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기술이다.[1]

이후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2014년 세계선수권 이후 오른쪽 햄스트링 통증이 이어졌고, 2016년에는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으면서 리우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2]

물론 부상 때문에 전성기가 짧았지만 화려하고 대단한 피크 실력을 뽐냈다는 점에서는 축구의 호나우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스타성의 원인도 그거고.

ㄴ 다만 아예 선수 생활이 짧았던 것은 아니다. 리우 불참 이후에도 재활해서 복귀했고, 2019년 국제대회에서 2주 연속 우승하기도 했다.[3]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예선에서 자신의 기술 '양1' 착지 때 넘어지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4]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2025년 9월 27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끝으로 24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은퇴식 직후 열린 도마 결선에도 출전해 동메달을 따면서 마지막 경기까지 메달을 챙겼다.[5]

ㄴ 금메달로 시작해서 마지막 경기도 메달 따고 끝냈다. 깔끔하다.

양학선 기술

양학선은 양학선 본인이 개발한 도마 기술이다.

도마를 정면으로 짚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세 바퀴를 비틀어 착지하는 기술로, 여홍철의 '여2'에서 반 바퀴를 더 돌리는 형태다.

쉽게 말하면 남들은 여2도 어렵다고 낑낑대는데 이 양반은 거기서 반 바퀴를 더 돌았다.

이 기술이 국제체조연맹에 공식 등록되면서 기술명 자체가 선수 이름을 따서 Yang Hak-seon이 되었다.

그런데 여홍철이나 양학선이 대접을 받았던 건 다름아니라 자신들의 기술 덕분이다. 각 종목에서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존 벽을 깨고 올라간다는 점이 안전빵만 하는 선수들보다 보기에도 좋고 + 올림픽의 정신에도 맞고 + 인간의 발전 본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도마 같은 자기 종목에서 전문 스포츠인이나 대중에게까지 널리 대접 받은 것이다.

ㄴ 실제로 양학선은 은퇴 인터뷰에서도 후배들에게 자기 신체 특성을 파악하고 자기만의 기술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끝까지 기술덕후였다.[6]

이야깃거리

양학선을 닮은 양학선

사진으로는 신체 비율이 좋아서 되게 우락부락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체격이 작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 밥집에서 양학선을 보고 "저 사람 양학선 비슷하게 생겼다"고 수근거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양학선을 닮은 사람'은 진짜 서울에 올라온 양학선이었다.

방송 인터뷰나 주변 이야기를 볼 때 본인 입장에서는 "나 맞는데 왜 나를 보고 나를 닮았다고 하는 거지?" 싶었을 듯 ㅋ

가정 형편

런던 올림픽 당시 양학선의 부모가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학선은 국가대표 훈련수당을 부모에게 보내고, 금메달을 따서 부모에게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7]

금메달 따고 진짜 전국민이 이 집부터 걱정했다.

은퇴 이후

2025년 은퇴 당시에는 아직 구체적인 지도자 진로를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선수 생활은 끝났어도 앞으로 한국 체조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며, 후배 선수들에게 자신만의 감각과 기술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니까 이제 양학은 안 하지만 양학하는 법은 가르쳐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