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 |
| 본명 | 이재영(李在永) |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별명 | 이재앙, 불재영, 패동렬 |
| 학력 | 방배초등학교 - 선린중학교 -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 - 영남대학교 |
Lee "Disaster" Jae-Yeong
남자 야구선수
前 SK 와이번스의 투수.
2014 시즌이 끝나고 FA 시장에 나갔다가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 최종계약은 1+1년에 총액 4억5천만원
한때 평자 0점을 찍었다가. 콱전에서 고효준이 분식하면서 첫 실점을 했다.
팀이 지고 있을 때 잘 막다가 접전 상황에 올라오면 귀신같이 쳐맞는다.
2015년 11월 29일부로 보류선수에서 제외되면서 사실상 방출되었다.
개요
이재영(李在永, 1979년 6월 13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로,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했던 우완 투수이다. 2002년 두산 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여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5년까지 KBO 리그에서 통산 475경기에 등판해 38승 31패, 23세이브, 61홀드,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선수생활 대부분을 중간계투로 보냈으며, 전성기에는 빠른 직구를 앞세워 팀의 불펜을 책임졌던 투수 가운데 하나였다.[1]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방배초등학교와 선린중학교,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를 졸업했다. 2002년 두산에 입단한 이후 2004년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유망한 불펜 투수로 평가받았으며, 특히 2004년에는 60경기에서 9승 7패, 3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선수 경력의 공백과 구위 저하 등을 겪었고, 2008년 LG로 트레이드된 뒤 2010년에는 SK로 다시 이적했다.
SK 시절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날도 있었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실점하거나 주자를 남겨놓고 교체되는 등 기복 있는 투구로 비판받기도 했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는 '이재앙', '불재영', '패동렬' 등의 별명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별명은 선수의 이름과 부진한 투구 내용을 연결한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 특유의 풍자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선수생활 말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재영의 전체 경력이 형편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두산 시절에는 상당한 구위를 가진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LG에서도 한 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부진을 겪었음에도 14년 동안 프로선수 자격을 유지하고 475경기에 출장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경쟁력을 갖추었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4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행사했다가 새로운 구단을 찾지 못하고 원소속팀 SK와 다시 계약한 사건은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당시 이재영은 다른 구단의 제안을 받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으며, 2015년 1월 1일 SK와 1+1년 최대 총액 4억 5,000만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기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2015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KBO 리그에서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2]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이재영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방배초등학교와 선린중학교,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는 아니었으나, 대학에 진학한 이후 투수로서의 기량이 성장하면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빠른 직구와 상당한 구위를 갖춘 우완 투수로 발전하면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로 진출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서울 지역의 구단들이 연고지역 출신 선수를 우선적으로 지명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했으며, 두산은 대학에서 기량이 성장한 이재영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초특급 유망주와는 다르게 대학에서 실력을 끌어올려 프로에 진출한 선수라는 점이 특징이다.
두산 베어스
2002년
2002년 이재영은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부터 67경기에 등판하여 97⅓이닝을 소화했고, 4승 6패, 2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했다. 특히 탈삼진 112개를 기록하면서 상당한 구위를 보여주었는데, 신인 투수가 불펜에서 많은 경기에 출장하면서 100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성적이었다.
당시 이재영은 빠른 직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를 힘으로 상대하는 유형의 투수였다. 선발투수보다는 중간계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러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두산의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경기 중반에 등판하여 상대 타선을 막거나 상황에 따라 여러 이닝을 책임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용되었다.
다만 신인 시절부터 많은 경기에 등판했다는 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체적인 부담을 우려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중간계투는 등판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경기 상황에 따라 갑작스럽게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수의 구위와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이재영 역시 데뷔 직후부터 상당한 수의 경기를 소화하면서 불펜 투수로서의 경험을 빠르게 쌓았다.
2003년
2003년에도 이재영은 두산의 주요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정규시즌 52경기에 등판하여 116이닝을 소화했고, 6승 2패, 5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3.65를 기록했다. 특히 116이닝이라는 기록은 당시 중간계투 투수로서는 상당한 투구량에 해당하며, 단순히 한두 타자만 상대하는 전문 불펜 투수라기보다 여러 이닝을 책임지는 전천후 투수의 성격이 강했다.
다만 전년도와 비교하면 평균자책점이 상승했고 볼넷도 증가했다. 2003년에는 78개의 볼넷을 허용했는데, 116이닝 동안 이러한 수의 볼넷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제구력에서 문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빠른 직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원하는 위치에 공을 넣지 못하면 볼넷과 불리한 볼카운트가 증가하고, 결국 상대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이재영의 선수 경력에서도 반복되었다. 좋은 구위로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경기와 볼넷 및 장타를 허용하면서 무너지는 경기가 동시에 나타났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2004년
이재영의 전성기.
2004년 이재영은 60경기에 등판하여 94이닝을 소화했고, 9승 7패, 3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가장 뛰어난 시즌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14홀드는 당시 두산의 불펜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7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구위도 유지했고, 평균자책점 역시 프로 입단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당시 두산은 이재영과 이재우 등을 중심으로 불펜을 구성했으며, 이재영은 경기 중반과 후반에 중요한 상황을 책임지는 투수로 활약했다. 빠른 직구와 공격적인 투구를 바탕으로 상대 타자들을 상대했으며, 팀이 승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회를 받았다.
특히 이 시기의 이재영을 기억하는 두산팬들에게는 SK 시절의 '이재앙'이라는 별명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선수생활 말년에는 접전 상황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투수로 기억되지만, 2004년에는 실제로 9승과 14홀드를 기록한 정상급 불펜 자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전성기였던 2004년 이후에는 선수생활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 병역 문제와 선수 경력의 공백, 복귀 이후의 부진 등이 겹치면서 이재영은 당시 보여주었던 기량을 장기간 유지하지 못했다.
병역 문제와 공백
이재영은 2004년 프로야구 선수들의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당시에는 여러 프로야구 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으며, 선수들의 소속 구단과 KBO 리그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재영 역시 이 사건과 관련된 문제를 겪은 뒤 선수생활에 공백이 발생했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KBO 정규시즌 1군 출장 기록이 없다. 이후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08년 복귀했지만 과거와 같은 구위를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병역 문제와 군 복무 공백이 선수의 경기 감각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3]
물론 선수생활의 공백 이후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부진이 병역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투수의 경기력은 신체 상태와 부상, 훈련 환경, 제구력, 경기 경험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전성기 직후 장기간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후 선수 경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2005~2008년과 LG 이적
2005년 이재영은 16경기에 출전하여 22⅓이닝을 소화했고, 1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4.03을 기록했다. 2004년과 비교하면 출전 경기와 투구 이닝이 크게 감소했으며, 이후 2006년과 2007년에는 1군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008년에는 두산으로 복귀했지만 초기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당시 1군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두산은 다른 포지션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이재영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게 되었다.
2008년 6월 3일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두산에서는 이재영과 김용의가 LG로 이적했고, LG에서는 이성열과 최승환이 두산으로 이동했다. 당시 LG는 불펜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으며, 두산은 포수와 외야수 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4]
결과적으로 이재영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몸담았던 두산을 떠나 같은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구단을 옮겼지만 홈구장은 그대로였으므로 경기장에 대한 적응보다 새로운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 적응하는 문제가 중요했다.
LG 트윈스
2008년
이재영은 LG로 이적한 뒤 선발투수와 중간계투를 오가며 기회를 받았다. 당시 LG는 마운드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우완 투수인 이재영이 전력을 보강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재영은 복귀 초기부터 구위와 제구력이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선발 등판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2008시즌 전체 기록은 48경기 68⅓이닝, 1승 4패, 1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6.19에 그쳤다. 두산 시절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아쉬운 성적이었으며, 특히 경기당 허용하는 실점이 증가하면서 중요한 상황에 투입하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했다.
다만 시즌 중반에는 빠른 직구를 앞세워 좋은 투구를 보여주는 경기도 있었다. 2008년 7월에는 LG의 연패를 끊는 승리를 기록하면서 구위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당시 언론에서도 이재영이 과거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하지 못했고, 이후 LG에서도 여러 보직을 오가며 투구를 이어가게 되었다.
2009년
2009년에는 47경기에 등판하여 56⅔이닝을 소화했고, 5승 3패, 1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특히 11세이브는 이재영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으로, 당시 LG에서 경기 후반의 중요한 상황을 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8년의 평균자책점 6.19와 비교하면 상당히 개선된 성적이었으며, 선발보다는 불펜에서 활용될 때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빠른 직구를 바탕으로 상대 타자를 상대하는 방식은 그대로였지만, 상황에 따라 마무리투수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LG의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11세이브를 기록했다고 해서 리그를 대표하는 안정적인 마무리투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9년에도 29개의 볼넷을 허용했고, 경기마다 투구 내용의 차이가 발생하는 등 제구력과 안정감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2010년과 SK 이적
2010년에는 LG에서의 입지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당시 LG는 선수단을 개편하고 투수진을 보강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SK 역시 부상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두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시즌 중 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2010년 7월 28일 LG와 SK는 4대3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LG에서는 이재영을 비롯해 최동수, 권용관, 안치용이 SK로 이적했고, SK에서는 윤상균, 박현준, 김선규가 LG로 이동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KBO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선수 이동이었으며, 두 구단 모두 부족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한 결과였다.[5]
이재영은 이를 통해 프로선수 생활에서 세 번째 구단인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당시 SK는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강력한 수비와 투수진을 중심으로 상위권에 있던 구단이었으며, 이재영에게도 불펜의 한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2010시즌 전체 기록은 8경기 10⅔이닝, 평균자책점 6.75에 그쳤다. 볼넷 10개를 허용하는 등 제구력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중요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기용되기에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SK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이재영 개인의 기여도는 제한적이었다.
SK 와이번스
2011년
2011년 이재영은 21경기에 등판하여 29이닝을 소화했고, 2승 무패, 2홀드,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경기 수와 투구 이닝이 많지는 않았지만 평균자책점만 놓고 보면 2004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시즌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29이닝 동안 8개의 볼넷을 허용하면서 이전 시즌과 비교해 제구력이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닝 자체가 많지 않았으므로 이를 전성기 수준의 완벽한 부활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웠다. 여전히 팀의 확고한 필승조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기용되는 불펜 자원에 가까웠으며, 이후에도 투구 내용의 기복이 반복되었다.
2012년
2012년에는 48경기에서 65이닝을 소화하면서 6승 3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했다. SK 이적 이후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시즌 가운데 하나였으며, 특히 10홀드는 이재영이 다시 불펜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당시 SK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던 구단이었으며, 불펜 투수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이재영은 여러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팀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상황에 따라 긴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다만 65이닝 동안 35개의 볼넷을 허용하는 등 제구력에서는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가 존재했다.
이 시기의 이재영은 완전히 못하는 투수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매 경기 믿고 맡길 수 있는 필승조라고 보기도 어려운 선수였다. 좋은 날에는 상대 타선을 깔끔하게 막아내지만 좋지 않은 날에는 볼넷과 안타를 연달아 허용하는 등 기복이 컸으며, 이러한 모습이 팬덤에서 여러 별명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되었다.
2013년
2013년에는 44경기에 등판하여 43⅔이닝을 소화했고, 2승 4패, 3홀드, 평균자책점 5.56을 기록했다. 이전 시즌과 비교해 평균자책점이 상승했고 불펜에서의 안정감도 떨어졌다.
특히 선수생활이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구위와 체력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사용하던 투수는 나이가 들면서 구속과 공의 위력이 떨어질 경우 다른 구종과 제구력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재영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SK 팬들 사이에서는 이재영이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잘 막다가 정작 승부처에서는 실점한다는 불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실제 경기별 성적을 모두 분석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순간의 실점이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불펜 투수들이 자주 겪는 문제이기도 했다.
2014년
2014년 이재영은 38경기에 등판하여 48이닝을 소화했고, 1승 무패, 4홀드, 평균자책점 6.19를 기록했다. 특히 48이닝 동안 28개의 볼넷과 7개의 홈런을 허용하면서 안정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행사했을 때 새로운 구단이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존재했다.
이재영은 2014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했고, 원소속팀 SK와의 우선협상 기간에 다른 구단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FA 시장에서 새로운 구단의 계약 제안을 받지 못하면서 미계약 상태가 이어졌다. 결국 원소속팀과의 우선협상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원하는 계약을 확보하지 못했고, 새로운 해가 밝아올 때까지 팀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재영은 당시 나주환과 함께 'FA 미아'라는 표현으로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FA 자격을 얻었지만 다른 구단에서 영입 의사를 보이지 않아 시장에 남아 있는 선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장가치가 기대보다 낮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상황이다.
2015년 FA 계약
새해 첫날에야 계약한 FA.
2015년 1월 1일 SK 와이번스는 이재영과 나주환의 FA 계약을 발표했다. 이재영은 1+1년 최대 총액 4억 5,0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2015년 연봉 1억 5,000만 원과 인센티브 5,000만 원을 지급받고 일정한 조건을 충족할 경우 2016년에 연봉 2억 원과 인센티브 5,000만 원을 받는 구조였다.[6]
이 계약은 일반적인 장기 FA 계약과 비교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조건이었다. 특히 두 번째 해의 계약이 첫 번째 해의 성적 및 옵션 달성 여부에 영향을 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재영은 2015년에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재영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구단으로부터 제안을 받지 못한 뒤 원소속팀과 계약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SK 역시 30대 중반의 불펜 투수에게 장기간의 보장을 제공하기에는 부담이 있었으며, 이러한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조건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1년 최대 4억 5,000만 원이라는 발표 금액은 두 시즌의 모든 조건이 충족될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에 해당한다. 따라서 실제로 2년 동안 4억 5,000만 원을 모두 지급받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 특히 이재영은 첫 시즌이 끝난 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계약의 세부 조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15년
2015년 이재영은 26경기에서 31이닝을 소화했고, 1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4.65를 기록했다. 2014년의 평균자책점 6.19와 비교하면 기록이 개선되었지만 출전 경기와 투구 이닝은 감소했으며,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자리 잡는 데에는 실패했다.
원문에서는 시즌 중 한동안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가 고효준의 분식회계로 첫 실점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분식회계는 실제 회계 범죄가 아니라 앞선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를 다음 투수가 실점하게 만드는 상황을 가리키는 야구팬들의 은어다. 투수의 평균자책점은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부과된 주자의 득점 여부에 따라 계산되므로, 앞선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가 다음 투수의 등판 이후 홈을 밟더라도 실점 책임은 앞선 투수에게 부과될 수 있다.
따라서 이재영이 주자를 남겨놓고 교체된 이후 다른 투수가 그 주자를 불러들였다면 이재영의 자책점이 증가할 수 있다. 다만 원문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경기와 당시 기록의 경위는 별도의 경기 기록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으므로, 해당 장면을 팬덤의 회고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방출과 선수생활 종료
이 팀은 곧 좆망합니다.
2015년 11월 30일 KBO는 각 구단의 2016시즌 보류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이때 SK 와이번스는 이재영을 비롯해 이상열, 엄정욱, 이창욱, 이한진 등 여러 선수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는 다음 시즌의 정식 선수계약을 계속 유지하지 않겠다는 구단의 결정으로, 사실상 방출을 의미했다.[7]
원문에서는 2015년 11월 29일을 방출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KBO가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짜는 11월 30일이다. 따라서 공식적인 보류선수 명단 발표일을 기준으로 하면 2015년 11월 30일에 방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이재영은 2015년 1월 1일 SK와 FA 계약을 체결한 뒤 불과 11개월 만에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계약 당시에는 성적에 따라 2016년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결국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계약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후 이재영은 KBO 리그의 정규시즌 1군 경기에서 더 이상 등판하지 않았으며, 2015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경력이 종료되었다. 2002년 두산에서 데뷔하여 LG와 SK를 거친 뒤 통산 475경기에 출전한 선수생활이 끝난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
빠른 직구
이재영은 전성기 시절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특히 두산에서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시속 140km대 후반에 이르는 직구를 던지는 투수로 알려져 있었으며, 강한 구위를 이용해 상대 타자를 힘으로 상대하는 유형이었다.
2002년 데뷔 첫해 97⅓이닝 동안 11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당시 구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2004년에는 94이닝 동안 7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제구력과 구위를 결합한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생활이 진행되면서 전성기와 같은 직구의 위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08년 군 복무 이후 복귀했을 때에는 이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적 이후에도 구위와 제구력이 일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제구력 문제
이재영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제구력의 기복이었다. 전성기에는 빠른 직구로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었지만, 볼넷이 증가하거나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면 실점 위험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2003년에는 116이닝 동안 78개의 볼넷을 허용했고, 2010년에는 10⅔이닝 동안 10개의 볼넷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히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만으로 안정적인 불펜 투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펜 투수는 경기 후반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볼넷 하나가 경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볼넷을 허용하면 다음 타자에게 더 큰 부담을 안기게 되고, 이후 적시타가 발생하면 팀의 승리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접전 상황에서의 불안정성
이재영은 팬덤에서 팀이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을 때에는 좋은 투구를 보여주지만, 접전 상황이나 승리 가능성이 높은 경기에서는 실점을 허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이재앙', '불재영', '패동렬'과 같은 별명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SK 시절에는 중요한 순간의 실점이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다만 실제로 어떤 투수가 접전 상황에서 더 나쁜 성적을 기록하는지 확인하려면 등판 당시 점수 차이와 주자 상황, 상대 타자 및 경기 결과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몇 차례의 실점만으로 접전 상황에서 반드시 약한 투수였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특히 불펜 투수는 잘 막은 경기보다 역전을 허용한 경기가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10경기에서 잘 던져도 단 한 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맞으면 팬들은 그 한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이재영 역시 이러한 팬덤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별명
이재앙
이재앙은 이재영의 이름과 재앙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별명이다. 특히 중요한 상황에서 등판한 뒤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거나 실점하는 장면이 나타날 때 사용되었다. 원래 이름에 부정적인 단어를 결합하는 방식은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타나는 별명 생성 방식 가운데 하나로, 팀의 경기 결과에 불만을 가진 팬들이 선수의 부진을 풍자할 때 사용한다.
그러나 이재영이 모든 경기에서 형편없는 투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두산 시절에는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며, SK에서도 여러 시즌 동안 불펜 투수로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이재앙이라는 별명은 선수 경력 전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기보다 특정한 경기에서 발생한 실점과 부진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반영된 표현이다.
불재영
불재영은 불을 지른다는 의미의 야구 은어와 이재영의 이름을 결합한 별명이다. 야구에서 불펜 투수가 주자를 남겨놓거나 대량 실점을 허용하면서 팀의 리드를 날려버리는 상황을 흔히 불을 지른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장면과 연결하여 만들어진 별명이다.
특히 구위는 나쁘지 않지만 제구력과 경기 운영에서 기복이 있는 불펜 투수는 중요한 순간에 실점했을 때 비판을 받기 쉽다. 이재영도 이러한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팬들 사이에서 불재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패동렬
패동렬은 선동열의 이름과 패배를 결합한 별명으로, 선동열처럼 뛰어난 투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로 중요한 상황에서 패배를 불러온다는 의미의 풍자다. 선동열은 KBO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진한 투수에게 반어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이재영과 선동열의 실제 선수 경력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선동열은 KBO 역사상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반면, 이재영은 여러 구단에서 불펜을 담당했던 투수였다. 따라서 패동렬이라는 별명 역시 실제 성적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팬덤의 드립에 가깝다.
FA 미아 사건
이재영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2014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서 새로운 구단을 찾지 못했던 일이다. 당시 이재영은 30대 중반의 나이였으며, 2014년 정규시즌에서 평균자책점 6.19를 기록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남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FA 자격을 행사했지만 새로운 구단의 영입 제안을 받지 못했고, 결국 원소속팀 SK와 다시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KBO의 FA 제도에서는 선수가 새로운 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보상금이나 보상선수 등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구조는 특히 전성기를 지난 베테랑 선수의 이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다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하려면 실제 연봉과 계약금뿐만 아니라 FA 보상에 따르는 추가적인 비용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재영은 2015년 1월 1일 SK와 1+1년 최대 총액 4억 5,0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계약 상태에서 벗어났다. 당시 같은 구단의 나주환 역시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한 뒤 SK와 계약했으며, 두 선수의 계약은 2015년 FA 시장의 마지막 미계약 선수 문제가 해결된 사례로 주목받았다.
다만 이재영의 계약은 두 번째 시즌이 첫 시즌의 성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완전히 안정적인 2년 보장계약이라기보다는 첫 시즌에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는 조건부 계약의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이재영은 2015년 26경기에 등판한 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새해 첫날 가까스로 FA 계약을 체결했지만 같은 해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시즌의 선수계약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말 때문에 이재영의 FA 계약은 베테랑 선수의 시장가치와 장기계약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언급될 수 있다.
통산 기록
이재영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KBO 정규시즌에서 통산 475경기에 등판했다. 투구 이닝은 682이닝이며, 38승 31패, 23세이브, 61홀드,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탈삼진은 550개로, 전성기 시절에는 빠른 직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상대했던 투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연도 | 구단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평균자책점 |
|---|---|---|---|---|---|---|---|---|
| 2002 | 두산 | 67 | 97⅓ | 4 | 6 | 2 | 7 | 2.96 |
| 2003 | 두산 | 52 | 116 | 6 | 2 | 5 | 10 | 3.65 |
| 2004 | 두산 | 60 | 94 | 9 | 7 | 3 | 14 | 2.59 |
| 2005 | 두산 | 16 | 22⅓ | 1 | 2 | 0 | 1 | 4.03 |
| 2008 | 두산·LG | 48 | 68⅓ | 1 | 4 | 1 | 8 | 6.19 |
| 2009 | LG | 47 | 56⅔ | 5 | 3 | 11 | 1 | 4.13 |
| 2010 | LG·SK | 8 | 10⅔ | 0 | 0 | 0 | 0 | 6.75 |
| 2011 | SK | 21 | 29 | 2 | 0 | 0 | 2 | 2.79 |
| 2012 | SK | 48 | 65 | 6 | 3 | 1 | 10 | 4.29 |
| 2013 | SK | 44 | 43⅔ | 2 | 4 | 0 | 3 | 5.56 |
| 2014 | SK | 38 | 48 | 1 | 0 | 0 | 4 | 6.19 |
| 2015 | SK | 26 | 31 | 1 | 0 | 0 | 1 | 4.65 |
| 통산 | 3개 구단 | 475 | 682 | 38 | 31 | 23 | 61 | 4.13 |
2006년과 2007년에는 KBO 정규시즌 1군 출장 기록이 없으며, 위의 기록은 KBO 공식 기록실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히 2008년과 2010년에는 시즌 도중 트레이드가 이루어졌으므로 소속 구단을 함께 표기했다. 평균자책점은 단순히 각 시즌 수치의 평균을 구한 것이 아니라 전체 투구 이닝과 자책점을 기준으로 산출한 통산 기록이다.
이재영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뛰어난 시즌은 2004년이었다. 당시에는 6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59, 9승, 14홀드를 기록하면서 두산의 주요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반면 2008년과 2014년에는 평균자책점이 6점대를 기록하면서 부진했으며, 이러한 기복은 선수에 대한 팬덤의 평가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만 통산 475경기라는 출전 기록은 이재영이 단순히 몇 차례 부진한 경기만 남긴 선수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주로 불펜 투수로 활동하면서 682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은 장기간 프로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했음을 의미한다.
평가
이재영은 전성기에는 빠른 직구를 앞세워 중요한 상황을 책임질 수 있었지만, 선수생활이 진행되면서 구위와 제구력의 기복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불펜 투수이다. 특히 2004년 두산 시절에는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며, 2009년 LG에서는 11세이브를 달성했고 2012년 SK에서는 10홀드를 기록하는 등 여러 시즌에서 일정한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산에서 보여주었던 전성기의 모습을 장기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4년 이후 선수생활에 공백이 발생했고, 2008년 복귀 이후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반복되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에는 평균자책점이 5점대와 6점대로 상승하면서 팬들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2015년에는 FA 계약을 체결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방출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또한 2014년 FA 시장에서 새로운 구단을 찾지 못하고 원소속팀과 조건부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는 사실은 베테랑 선수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전성기에는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활약하던 선수라도 나이와 최근 성적, 구단의 선수단 구성에 따라 시장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특히 FA 보상제도가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재영의 전체 경력을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의 부정적인 별명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두산 시절에는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었으며, 여러 구단에서 10년 이상 프로선수로 활동하면서 통산 475경기에 등판했다. 물론 다른 정상급 투수들과 비교하면 아쉬운 기록이지만, 38승과 23세이브, 61홀드라는 통산 성적은 일정한 수준의 기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이재영은 뛰어난 구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선수 경력 전체에 걸쳐 안정적인 투구를 유지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실점하는 장면이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으면서 부정적인 별명을 얻었고, 이러한 이미지가 선수 경력 전체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두산 시절에는 9승 14홀드를 기록하던 파이어볼러였는데 SK 말년에는 이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같은 투수가 어느 시기에는 필승조로 활약하고 다른 시기에는 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야구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프로선수는 과거에 아무리 잘했더라도 오늘 등판해서 실점하면 욕을 먹는 것이고, 반대로 어제까지 욕을 먹던 선수라도 오늘 중요한 상황을 막아내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관련 문서
각주
- ↑ KBO 공식 기록실, 이재영 선수 통산 기록
- ↑ 연합뉴스, 「'FA 미아' 나주환·이재영 원소속 SK와 계약」, 2015년 1월 1일
- ↑ 조선일보·OSEN, 「구위 되찾은 이재영, LG 계투진의 새 기둥」, 2008년 7월 12일
- ↑ 연합뉴스, 「프로야구 두산-LG, 2대2 트레이드」, 2008년 6월 3일
- ↑ 연합뉴스, 「LG-SK, 4대 3 트레이드 단행」, 2010년 7월 28일
- ↑ 연합뉴스, 「'FA 미아' 나주환·이재영 원소속 SK와 계약」, 2015년 1월 1일
- ↑ 연합뉴스, 「프로야구 삼성, '원정도박' 임창용 결국 방출」, 2015년 11월 30일, 구단별 보류선수 명단 제외 선수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