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드 메스트르 François-Xavier de Maistre | |||||||
| 생년월일 | 1763년 11월 8일 | ||||||
|---|---|---|---|---|---|---|---|
| 사망일 | 1852년 6월 12일 | ||||||
| 국적 | 사르데냐 왕국 → 러시아 제국 | ||||||
| 출생지 | 사르데냐 왕국 사보이 샹베리 | ||||||
| 직업 | 군인, 작가, 화가 | ||||||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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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자비에 드 메스트르(François-Xavier de Maistre, 1763년 11월 8일 ~ 1852년 6월 12일)는 사르데냐 왕국 사보이 출신의 군인, 작가, 화가이다.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으며 훗날 러시아 제국군 장군으로 복무했다. 프랑스 혁명의 대표적인 반혁명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열 살 아래 동생이기도 하다.[1]
대표작은 1790년 결투를 벌였다가 42일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쓴 《내 방 여행기》(Voyage autour de ma chambre)이다. 자기 방 안을 마치 미지의 대륙처럼 여행하는 내용으로, 당시 유행하던 여행문학을 패러디하면서 인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좁은 방 안에서도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다는 발상을 보여준다.[2]
코로나19로 전 세계 사람들이 집에 처박혀 있던 2020년에는 이 200년도 더 된 책이 격리생활의 원조 여행기 같은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형 조제프가 왕권, 교황, 혁명, 처형, 신의 섭리 같은 걸 존나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자비에는 방에 갇혀서 침대 → 의자 → 그림 →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여행기 한 권을 썼다.
형제인데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개요
프랑스어 작가이기 때문에 흔히 프랑스 문학사에 포함되지만 태어났을 당시 샹베리는 프랑스가 아니라 사보이 공국을 포함한 사르데냐 왕국의 영토였다.
사보이가 프랑스에 최종적으로 편입된 것은 자비에가 죽은 뒤인 1860년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는 사보이 출신 사르데냐 왕국 신민으로 태어나 러시아 제국에서 대부분의 후반생을 보낸 프랑스어 작가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생애
출생
1763년 11월 8일 사보이의 중심도시 샹베리에서 태어났다.[3]
아버지 프랑수아자비에 메스트르는 사보이 원로원의 고위 법관이었고 집안은 법조계와 관료사회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비에는 여러 형제 가운데 비교적 막내 쪽에 속했다.
가장 유명한 형이 자신보다 열 살 많은 조제프 드 메스트르였다.
조제프는 훗날
- 정치철학자
- 법관
- 외교관
- 반혁명 사상가
가 됐고 자비에는
- 군인
- 화가
- 소설가
가 됐다.
둘 다 결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군 입대
자비에는 아직 18세가 되기 전인 1781년 사르데냐 왕국의 해병 보병연대인 `La Marina`에 입대했다.[4]
이후
- 샹베리
- 피네롤로
- 페네스트렐레
- 토리노
등지에서 군생활을 했다.
1784년에는 사관후보생이 됐고 이후 장교로 진급했다.
글 쓰는 방구석 작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본업은 꽤 오랫동안 직업군인이었다.
열기구 탑승
1784년 자비에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열기구를 직접 타기도 했다.
몽골피에 형제의 유인 열기구 비행이 성공한 것이 1783년이었으니 진짜 거의 나오자마자 탄 수준.
1784년 5월 6일 수학자 겸 기술자 루이 브룅이 만든 열기구에 올라 샹베리에서 비행했다.[5]
사보이 지역에서 이뤄진 최초기의 자유비행 실험 가운데 하나였다.
아버지는 위험하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자비에는 그래서 군복을 입은 채 천막 아래 숨어 있다가 열기구에 올라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ㄴ 18세기판 부모 몰래 놀이기구 탐.
열기구는 샹베리의 뷔송롱 지역에서 떠올라 약 4km를 비행한 뒤 샬레레조 주변에 착륙했다.[6]
자비에는 이 실험에 관한 글도 남겼다.
본격적인 문학작품을 쓰기 전부터 여행에 미쳐 있던 것 같지만 몇 년 뒤 그의 가장 유명한 여행은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여행이 된다.
결투
1790년 토리노에서 동료 장교와 결투를 벌였다.
당시 결투는 명예문화를 가진 귀족과 장교들 사이에서 흔했지만 군법상 허가되지 않은 사적 결투는 처벌 대상이었다.
자비에도 걸렸다. 처벌은 42일 동안 자기 숙소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구금이었다.[7]
보통 사람이면 씨발 심심하다하고 42일을 보냈겠지만 자비에는 이걸 여행으로 바꿨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내 방 여행기》다.
내 방 여행기
Voyage autour de ma chambre.
직역하면 《나의 방을 둘러싼 여행》 또는 《내 방 주위 여행》 정도이며 한국에서는 보통 《내 방 여행기》, 《방 안을 여행하는 법》, 《내 방을 여행하는 법》 등 여러 제목으로 번역된다.
1790년 가택연금 당시 집필했으며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도움으로 1790년대 중반 익명 출판됐다.
1795년 로잔에서 나온 초판에는 1794년 토리노에서 출판된 것처럼 표시된 판본도 있어 자료에 따라 출판연도가 1794년 또는 1795년으로 적히기도 한다.[8]
42일 여행
책의 기본 개그는 존나 단순하다.
자비에는 자기 방 안에서 42일 동안 생활하면서 방의 여러 곳을 실제 여행지처럼 묘사한다.
- 침대
- 의자
- 책상
- 그림
- 거울
- 벽
- 창문
같은 것들이 전부 여행 코스가 된다.
방 크기는 몇 걸음이면 끝나지만 작가는 일부러 거창한 여행가처럼 행동한다.
| “ | 나는 42일 동안 내 방을 여행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 ” |
— 《내 방 여행기》
|
프랑스 국립도서관 역시 이 작품을 젊은 장교가 토리노에서 감금된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인간을 여행하게 하는 힘을 다룬 작품으로 소개한다.[9]
42개 장
가택연금이 42일이었기 때문에 작품도 42개의 짧은 장으로 구성됐다.
어떤 장은 여행문학을 흉내내고 어떤 장은
- 사랑
- 기억
- 그림
- 철학
- 행복
- 인간의 성격
같은 주제로 갑자기 새버린다.
목적지보다 생각이 계속 옆길로 새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여행문학 패러디
18세기 유럽에서는 새로운 나라와 풍경을 소개하는 여행기가 인기 장르였다.
자비에는 그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와
방에서 사용했다.
대단한 대륙횡단을 떠나는 것처럼 침대에서 의자로 이동하고 새로운 풍경을 발견한 것처럼 그림 한 장을 설명한다.
여행에
- 돈 필요 없음
- 말 필요 없음
- 마차 필요 없음
- 국경 통과 필요 없음
- 비자 필요 없음
그냥 방만 있으면 된다.
가성비 여행 끝판왕.
로런스 스턴
문체 면에서는 영국 작가 로런스 스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감상여행》과 《트리스트럼 샌디》처럼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화자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과 닮아 있다.[10]
그래서 《내 방 여행기》는 단순한 짧은 유머소설이면서 동시에 근대적인 자의식 문학의 초기 사례로도 평가된다.
몸과 영혼
《내 방 여행기》에는 화자가 자신의 존재를
영혼
과
짐승
으로 나누는 독특한 장난이 나온다.
여기서 짐승은 육체를 뜻한다.
화자는 자기는 어떤 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몸은 멋대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거나, 정신은 여행 중인데 육체는 침대에 누워 있는 식으로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마치 서로 다른 두 인물처럼 묘사한다.
존나 철학적인 척하면서 결국
머리는 공부해야 된다고 하는데 몸은 침대에 누워 있음
같은 이야기다.
200년 지나도 인간은 똑같다.
코로나19와 재발견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으로 각국에서 봉쇄와 자가격리가 시행되자 《내 방 여행기》가 다시 관심을 받았다.
1790년에 42일간 방에 갇힌 사람이
밖에 못 나가면 방 안을 여행하면 되지
라는 책을 썼으니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프랑스 국립도서관도 코로나19 봉쇄 이후 이 작품이 새롭게 인기를 얻었다고 소개했다.[11]
2020년에 《격리생활 이야기》 같은 부제를 붙인 새 판본들도 출판됐다.
ㄴ 1790년에 쓴 책이 230년 뒤 재난대응 추천도서가 됨.
프랑스 혁명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사보이를 침공해 점령했다.
자비에의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혁명을 강하게 비판하며 망명했고 자비에 역시 프랑스 혁명정부 아래에서 복무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둘 모두 정치적으로 사보이아 왕가에 충성했다.
다만 형 조제프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반혁명 정치철학자 가운데 하나가 됐다면 자비에는 정치철학보다 군인·문학가·화가로 살아갔다.
같은 사건을 겪었는데 결과물이
형: 《프랑스에 관한 고찰》
동생: 《내 방 여행기》
혹은 대상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오스타
사르데냐 왕국이 프랑스에 밀려나면서 자비에도 여러 지역을 옮겨다녔다.
1790년대 후반에는 아오스타 지역에 머물렀다.
이 경험은 이후 《아오스타 시의 나병환자》(Le Lépreux de la cité d'Aoste)의 배경이 됐다.
아오스타 시의 나병환자
Le Lépreux de la cité d'Aoste.
아오스타에서 만난 나병환자를 소재로 한 짧은 작품이다.
전쟁 중 아오스타를 지나던 한 장교가 정원에 들어갔다가 격리돼 살아가는 나병환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전개된다.[12]
《내 방 여행기》의 장난스럽고 가벼운 분위기와 달리
- 고독
- 질병
- 죽음
- 인간애
- 종교
를 다룬 상당히 진지한 작품이다.
방에 갇힌 자기 자신을 개그 소재로 썼던 사람이 이번에는 평생 격리된 사람을 만나고 완전히 다른 글을 쓴 셈이다.
러시아군
1799년 자비에는 러시아군에 들어갔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지휘하는 군대를 이탈리아와 스위스 지역에 투입하고 있었다.
자비에는 1799년 10월 러시아군에 대위 계급으로 입대해 러시아 장군들과 함께 이동했고 연말에는 수보로프의 참모진에 배속됐다.[13]
일부 오래된 전기에서는 그가 수보로프의 이탈리아·스위스 전역 전투에 직접 참가했다고 쓰기도 하지만, 그의 실제 러시아군 입대 시점은 주요 전투 이후였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수보로프 밑에서 러시아군에 복무했다
는 것은 맞지만 모든 유명 전투에 직접 참가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화가
자비에는 문학가이면서 꽤 실력 있는 화가이기도 했다.
특히
- 초상화
- 미니어처
- 풍경화
를 그렸다.
수보로프가 실각한 뒤 러시아에서 안정적인 군 경력을 이어가기 어려워졌을 때에는 그림을 그려 돈을 벌기도 했다.[14]
러시아 귀족들의 초상을 그렸으며 장군 표트르 바그라티온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초상 작업도 했다.
문학은 취미로 시작했고 군대가 본업이었는데 본업이 꼬이면 그림으로 먹고살았다.
재주가 존나 많다.
자화상
자비에는 자신의 자화상도 남겼다.
1825년경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측면 자화상이 현재 전해진다.
《내 방 여행기》에서도 그림과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냥 미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화가였기 때문이다.
형과 러시아에서 재회
1803년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사르데냐 왕국의 러시아 주재 외교대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부임했다.
이때 자비에 역시 러시아에 있었다.
형의 외교적 인맥이 자비에의 경력에도 도움을 줬고 180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성 도서관 및 박물관 관련 직책을 맡았다.[15]
BnF 인물자료에서도 그가 18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성 박물관의 도서관 책임자로 임명됐다고 기록한다.
결국 샹베리에서 같이 자란 형제가 나란히 러시아 수도까지 와서
형: 사르데냐 외교관
동생: 러시아 군인·관료
로 살았다.
캅카스 전쟁
자비에는 이후 다시 러시아 제국군 현역으로 복귀해 캅카스 지역 작전에 참가했다.
전투 중 부상을 입기도 했으며 이후 승진을 거듭해 장군 계급까지 올랐다.[16]
즉 이 사람의 경력은 방 안 여행기 쓴 귀족 도련님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군생활 존나 오래 했고 전쟁도 했다.
결혼
18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귀족 여성 소피 자그랴시스카야와 결혼했다.
소피는 러시아 궁정과 연결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자비에는 이후 사실상 러시아에 정착했다.
사르데냐 출신이지만 인생 후반부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살았으며 러시아 사회와 문화에도 깊게 들어갔다.
카프카스의 포로들
Les Prisonniers du Caucase.
한국어로는 《캅카스의 포로들》 정도.
러시아군 복무 중 경험한 캅카스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825년경 다른 후기 작품들과 함께 발표됐다.
자비에는 실제로 캅카스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단순한 상상 속 이국취미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은 지역과 군사경험을 작품에 이용했다.
당시 유럽과 러시아 문학에서 캅카스는
- 전쟁
- 이국적 자연
- 산악민족
- 포로
- 제국의 변경
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알렉산드르 푸시킨, 미하일 레르몬토프, 레프 톨스토이 등 러시아 작가들의 캅카스 문학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젊은 시베리아 여성
La Jeune Sibérienne.
1825년 발표된 작품.
러시아 제국 시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시베리아로 유배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한 젊은 여성이 직접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서 황제에게 사면을 요청하는 내용이다.[17]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수록된 작품 서문에서도 아버지의 사면을 구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여행한 젊은 여성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설명한다.
《내 방 여행기》에서는 방에서 안 나가고 여행하더니 여기서는 시베리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존나 멀리 간다.
내 방 야간 원정
Expédition nocturne autour de ma chambre.
《내 방 여행기》의 후속작.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 방을 둘러싼 야간 원정》 정도다.
첫 작품의 설정을 다시 이용해 밤의 방과 창문 주변을 여행한다.
초기 구상은 오래됐지만 작품은 훨씬 뒤에 완성됐고 1820년대에 출판됐다.[18]
전작이 방 안 세계일주였다면 이번에는 야간 관광이다.
이쯤 되면 부동산 하나로 콘텐츠를 존나 뽑는다.
문학
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남긴 작품 수 자체는 많지 않다.
1839년판 전집에 수록된 대표작도
- 《내 방 여행기》
- 《내 방 야간 원정》
- 《아오스타 시의 나병환자》
- 《캅카스의 포로들》
- 《젊은 시베리아 여성》
정도다.[19]
평생 전업작가였던 것도 아니다.
군인이었고 화가였으며 관료생활도 했다.
그런데 《내 방 여행기》 한 권이 워낙 독특해서 200년 넘게 이름이 남았다.
문체
자비에의 글은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와 비교하면 놀랄 정도로 부드럽다.
조제프:
- 신
- 왕
- 교황
- 혁명
- 전쟁
- 사형집행인
- 피
- 희생
자비에:
- 강아지
- 그림
- 침대
- 의자
- 연애
- 상상
- 산책
물론 자비에도 진지한 종교적·도덕적 이야기를 쓰기는 했지만 문학적 기질은 상당히 달랐다.
《내 방 여행기》는 특히
- 자기풍자
- 독자에게 직접 말 걸기
- 갑자기 화제 바꾸기
- 철학적인 척하다 개그 치기
- 일상적인 사물을 거창하게 묘사하기
가 특징이다.
현대 인터넷 글 같은 느낌도 묘하게 난다.
낭만주의
자비에의 작품은 18세기 감상주의와 19세기 낭만주의 사이에 위치한다.
사보이 박물관은 그를 낭만주의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한다.[20]
거대한 역사나 사회체제보다
- 개인의 감정
- 기억
- 상상
- 고독
- 자연
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후대 낭만주의와 연결된다.
다만 특유의 냉소와 유머는 18세기 문학의 색채도 강하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와의 관계
둘은 열 살 차이가 나는 형제였다.
조제프는 자비에의 형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후견인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자비에의 《내 방 여행기》 출판에도 조제프가 관여했다.
정치적으로도 두 사람은 프랑스 혁명 이후 사보이아 왕가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후대에 남은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다.
| 조제프 드 메스트르 | 자비에 드 메스트르 | |
|---|---|---|
| 출생 | 1753년 | 1763년 |
| 주요 직업 | 법관, 외교관, 정치철학자 | 군인, 작가, 화가 |
| 대표작 | 《프랑스에 관한 고찰》 | 《내 방 여행기》 |
| 주요 관심 | 혁명, 권위, 종교, 섭리 | 개인, 상상, 여행, 감정 |
| 러시아 | 사르데냐 왕국 외교대표 | 러시아 제국군 장교 |
| 이미지 | 반혁명 사상가 | 유머·감상주의 작가 |
1851년 자비에는 두 형제의 관계를 시계에 비유해
형과 나는 시계의 두 바늘과 같았다. 형은 큰 바늘이고 나는 작은 바늘이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시간을 가리켰다
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종교적인 기본 세계관에서는 서로 가까웠지만 표현방식과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꽤 잘 보여준다.
프랑스 작가인가?
약간 애매하다.
자비에는
-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 프랑스 문학사에서 다뤄지며
- 오늘날 출생지 샹베리는 프랑스 영토
이기 때문에 흔히 프랑스 작가로 소개된다.
하지만 자비에가 태어났을 당시 샹베리는 사르데냐 왕국 영토였으며 그는 프랑스 혁명군이 사보이를 병합하자 프랑스 신민으로 남는 대신 망명했다.
이후에는 사르데냐군과 러시아군에서 복무했다.
따라서 정치적 국적을 기준으로 하면 사보이 출신 사르데냐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프랑스어권 문학에 속하는 것과 프랑스 국적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
화가로서의 평가
작가로 워낙 유명해서 묻히지만 생전에는 그림 실력으로도 인정받았다.
특히 러시아에서 귀족과 군인들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풍경화 작업도 했다.
사보이 학술단체 자료에서도 그의 직업을 작가·화가·장군으로 나란히 기록한다.[21]
군 경력이 끊겼을 때 실제로 그림을 팔아 생활했으므로 그냥 귀족의 취미미술 정도로만 보기는 어렵다.
주요 작품
| 작품 | 발표 시기 | 내용 |
|---|---|---|
| 《내 방 여행기》 | 1790년대 중반 | 42일 가택연금 중 자신의 방을 여행 |
| 《아오스타 시의 나병환자》 | 1810년대 | 격리된 나병환자와 장교의 대화 |
| 《내 방 야간 원정》 | 1820년대 | 《내 방 여행기》의 후속작 |
| 《캅카스의 포로들》 | 1825년경 | 러시아·캅카스 경험을 반영한 이야기 |
| 《젊은 시베리아 여성》 | 1825년 | 아버지의 사면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 여성 |
말년
1820년 사보이 학술원인 아카데미 드 사부아의 회원이 됐다.[22]
1820년대에는 프랑스와 사보이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명성이 생각보다 상당히 커졌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젊었을 때 장난삼아 익명으로 내놓은 《내 방 여행기》의 작가가 이미 프랑스 문학계에서 유명인사가 돼 있었던 것.
이후에도 러시아에서 생활했다.
1852년 6월 1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향년 88세.
형 조제프보다 31년 더 살았다.
평가
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평생 많은 작품을 쓴 대문호는 아니다.
그의 문학적 명성 대부분은 사실상 《내 방 여행기》 한 작품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작품의 발상이 워낙 독창적이었다.
여행문학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던 멀리 이동한다는 조건 자체를 없애버리고 상상할 수 있다면 여행이다라고 뒤집었다.
그래서
- 여행문학 패러디
- 실내문학
- 자전적 산문
- 감상주의
- 낭만주의의 선구
- 메타픽션
등 여러 관점에서 계속 읽힌다.
무엇보다 책의 설정이 시대를 거의 안 탄다.
1790년: 결투해서 42일 방에 갇힘
2020년: 코로나 때문에 방에 갇힘
현대인: 주말이라 그냥 방에서 안 나감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ㄹㅇㅋㅋ”를 외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동명이인
현대 프랑스의 유명 하프 연주자 가운데 자비에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라는 사람이 또 있다.
1973년생 프랑스 하피스트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이 문서의 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1763년생 작가.
구글에 영어로 검색하면 하프 든 아저씨가 같이 튀어나오므로 주의.
여담
- 1763년 샹베리 출생.
- 185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 향년 88세로 당시 기준 상당한 장수다.
-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열 살 아래 동생이다.
- 둘 다 사보이 출신이다.
- 둘 다 프랑스 혁명 이후 망명했다.
- 둘 다 결국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 형은 사르데냐 왕국 외교관, 동생은 러시아 제국군 장교였다.
- 아버지는 사보이의 고위 법관이었다.
- 17세에 군에 들어갔다.
- 1784년에는 열기구까지 탔다.
- 몽골피에 형제의 첫 유인비행 성공 다음 해였다.
- 아버지가 반대하자 몰래 탔다는 이야기가 있다.
- 1790년 결투를 벌였다가 42일 가택연금을 당했다.
- 그 42일 동안 《내 방 여행기》를 썼다.
- 가택연금 아니었으면 대표작이 안 나왔을 수도 있다.
- 불법결투 징계가 프랑스 문학 고전 하나를 만들어버렸다.
- 《내 방 여행기》도 42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 자기 방을 여행지라고 우기는 것이 책 전체의 기본 개그다.
- 침대와 책상 사이 몇 걸음을 존나 거창하게 묘사한다.
- 로런스 스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 《내 방 여행기》는 형 조제프가 출판을 도왔다.
- 원래 익명으로 나왔다.
- 초판 출판연도는 판본과 서지자료에 따라 1794년 또는 1795년으로 적힌다.
- 2020년 코로나19 봉쇄 때 다시 화제가 됐다.
- 갑자기 18세기 가택연금 여행기가 자가격리 필독서가 됐다.
- 후속작 《내 방 야간 원정》도 있다.
- 방 하나 가지고 프랜차이즈까지 만들었다.
- 군인뿐 아니라 화가로도 실제 돈을 벌었다.
- 러시아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 자화상도 남아 있다.
- 1799년 러시아군에 들어갔다.
-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휘하에서 복무했다.
- 이후 캅카스 지역 군사작전에도 참가했다.
- 러시아군 장군까지 진급했다.
- 18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성 도서관·박물관 관련 직책도 맡았다.
- 러시아 귀족 여성과 결혼해 사실상 러시아에 정착했다.
- 《캅카스의 포로들》과 《젊은 시베리아 여성》에는 러시아 생활의 영향이 강하다.
- 형 조제프의 대표작을 읽다가 바로 자비에 작품을 읽으면 같은 집에서 나온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 형은 사형집행인 얘기하고 동생은 의자 여행한다.
- 하지만 둘 다 정치적으로는 사보이아 왕가에 충성했고 프랑스 혁명에는 부정적이었다.
- 현대의 동명이인 프랑스 하피스트 자비에 드 메스트르와 헷갈리면 안 된다.
- 이쪽은 하프를 치기 약 200년 전에 죽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 ↑ Treccani - Xavier de Maistre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Voyage autour de ma chambre
- ↑ Éditions Fayard - Xavier de Maistre
- ↑ Treccani - Xavier de Maistre
- ↑ Treccani
- ↑ Ailes Anciennes de Haute-Savoie - Histoire aéronautique
- ↑ University of Louisville Libraries - Xavier de Maistre
- ↑ Treccani - François-Xavier de Maistre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 Treccani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Le Lépreux de la cité d'Aoste
- ↑ Treccani - Xavier de Maistre
- ↑ Catholic Encyclopedia - Xavier de Maistre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Xavier de Maistre
- ↑ Catholic Encyclopedia - Xavier de Maistre
-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La Jeune Sibérienne
- ↑ Treccani
- ↑ Catalogue collectif de France - Oeuvres complètes du comte Xavier de Maistre
- ↑ Musée Savoisien - Xavier de Maistre
- ↑ Comité des travaux historiques et scientifiques - Xavier de Maistre
- ↑ Académie des sciences, belles-lettres et arts de Savo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