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선 후기에 외척이 되어 각 정부요직을 끼리끼리 해먹으며 왕을 바지사장으로 만들고 사실상 김씨왕조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안동김씨는 2번인 신 안동김씨다. 구안동의 경우는 김자점때문에 진작에 좆망했다.
신안동과 구안동은 동성동본이지만 시조부터 다른 완전 남남이라고 봐도 무관하며 실제로 서로간에 혼인도 법적으로 아무문제없이 진행된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둘 다 그냥 안동 김씨라고 불린다는 점이다. 족보상으로는 구 안동김씨가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신 안동김씨는 고려 건국기에 활약한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별개의 계통이다.[1][2]
김선평은 930년 고창 전투에서 권행, 장길과 함께 왕건을 도왔고, 고려가 승리한 뒤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되는 과정에도 등장한다.[3]
따라서 역사문서에서 그냥 "안동 김씨가 어쩌고"라고 써놓으면 어느 쪽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세도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대부분 신 안동김씨, 정확히는 장동김씨 쪽을 말한다.
집성촌이 거의 경상도 충청도쪽에 집중되어있는듯하다. 경주 김해김씨는 호남쪽에도 집성촌이 많지만 안동김씨는 호남쪽에 거의 없는듯.
19세기에는 세도 정치를 거리낌없이 하며 패악질을 벌였지만 20세기에는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좌진이다. 김좌진은 신 안동김씨 수북공파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의 11대손이며 청산리 전투에서 북로군정서를 지휘했다.[4]
구 안동김씨 쪽에서도 김구와 그의 아들 김인, 김신 등이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다. 조선시대에는 세도정치와 김자점이라는 거대한 흑역사가 있고 근현대에는 김구와 김좌진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가문의 인물 스펙트럼이 상당히 극단적이다.[5]
최근 철인왕후(드라마) 관련해서 풍양 조씨 종친회가 추한 모습을 보여주자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문인 안동 김씨가 재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진짜 풀발할 가문은 안동김씨 쪽인데 이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중.
舊 안동김씨
경순왕의 손자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집안으로 몽골의 좆본원정에서 셔틀역할을 한 김방경이 중시조이며 김자점이라는 개씨발새끼때문에 가문이 일찍 망해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ㄴ 물론 김자점 때문에 안동김씨 전체가 진짜 멸문당해서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김자점의 몰락 이후에도 여러 갈래 후손들이 계속 이어졌고, 훗날 김구도 이 구 안동김씨 계통이다. 백범의 선조가 김자점의 화를 피해 황해도 해주로 옮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6]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김방경 하나만 놓고 봐도 구 안동김씨가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집안이었다. 김방경은 삼별초 진압에 참여했고 이후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을 지휘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무신 가운데 하나로 상장군, 첨의중찬 등의 고위직까지 올라갔다.[7]
안동 일대의 김방경 후손들은 고려 후기 지배층의 한 축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구 안동김씨를 단순히 김자점 하나 나오고 끝난 가문으로 보면 시기가 너무 조선 후기에 치우친 설명이 된다.[8]
아웃풋
新 안동김씨(A.K.A 장동김씨)
조선말기에 각 정부요직을 모두 점령하고 왕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서 전주 이씨의 나라를 지들왕국으로 바꾼 씨발롬들의 집안은 이 안동김씨다. 이새끼들은 본관만 안동이지 조선후기때부터 서울 장동[10]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구 안동김씨와의 구분을 편하게 하려고 '장동 김씨'라고도 불린다.
장동은 오늘날의 종로구 청운동·효자동 일대와 인왕산 아래 지역을 가리키며, 이 집안의 대표적인 세거지 가운데 하나가 청풍계였다. 정선이 그린 《청풍계도》도 김창흡·김창집 등 장동김씨 가문의 세거지를 그린 작품이다.[11]
그래서 이 집안은 본관은 안동인데 정치적 기반과 생활권은 사실상 한양 한복판에 있던 전형적인 경화 벌열가였다. 조선 후기 장동김씨의 정치적 본거지가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일대였다는 설명도 남아 있다.[12]
그리고 위의 구 안동김씨와는 시조부터 다른데, 이쪽은 시조가 고려에 붙어 고창전투에서 머활약을 한 김선평이기 때문이다.
세도정치의 마지막을 장식한 민씨척족[13]의 임펙트 때문에 세도정치기간이 무조건 무능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봉건제도 아닌 강력한 중앙집권 왕조정치였던 조선에서 왕과 왕족들과 수많은 문-무반 관료계층에 사학 등 지역 유지에 지식인 계층들[14]까지 죄다 침투 후 요직을 장악한 채 무력화하고 초기 세도정치를 이룬 안동김씨의 핵심부 인사들은 분명 유능했다. 그 유능함을 국가발전이나 백성들의 이익 등을 위해 헌신한 것이 아닌 가문을 이용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한 점이 문제지만. 유능했기때문에 세도정치를 갈아엎은 대원군[15]시기에 기존의 가문 위주의 선발에서 능력위주의 선발로 인재를 등용할 때 세도정치 권력이 갈리고서도 계속 중용된 인사들도 많았을 정도.
참고로 안동시 정치에서 안동 권씨랑 자강두천의 빅매치를 벌이는 안동김씨도 이 장동김씨다.
세도정치 이전
사실 이 집안이 김조순 하나 잘 만나서 갑자기 떡상한 졸부 집안은 아니다.
이미 17세기부터 김상헌 계열이 서인·노론의 핵심 명문가로 성장했고,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항은 노론의 영수급 인물이었으며 그 아들 김창집은 영의정까지 올라 노론 4대신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16][17]
김창집의 형제들인 김창협·김창흡 등도 학문과 문예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고, 이 집안과 교류하던 인물 중에는 정선 같은 사람도 있었다. 즉 세도정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조선의 정치·학문·문화계에 인맥을 깔아놓은 초대형 명문가였다.[18]
여기에 왕실 외척이라는 치트키까지 얻으면서 19세기에 완전체가 된 것이다.
다만 세도정치의 시작을 김조순 개인의 거대한 음모로 보는 것도 단순화된 해석이다. 김조순은 정조에게 신임받던 인물이었고, 본인 생전에는 당파적 세도를 노골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려 했다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그의 딸 순원왕후가 왕비가 되고 김조순을 중심으로 형성된 척족 네트워크가 계속 확대되면서, 후대의 김씨 일족이 왕실과 관직 인사를 사실상 장악하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19]
순조 친정 초기부터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김씨 인물들과 여러 유력 가문들이 정권의 중심으로 들어갔고, 이후 헌종·철종대로 가면서 왕실 혼인과 인사권을 통해 권력이 더 강하게 집중됐다.[20]
특히 철종대에는 김좌근 등 안동김씨 세력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고, 19세기의 왕위 계승 자체가 외척과 대왕대비의 정치적 선택에 크게 좌우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21]
왕실과의 혼인
장동김씨 세도정치의 핵심은 단순히 김씨들이 과거시험 존나 잘 봐서 관직을 독점했다는 게 아니라 왕실과 반복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었다는 데 있다.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는 순조의 왕비가 되었고, 김조근의 딸 효현왕후는 헌종의 왕비가 되었으며, 김문근의 딸 철인왕후는 철종의 왕비가 되었다.
이렇게 왕의 장인과 외가라는 위치를 연속해서 확보하면서 인사와 왕위 계승 과정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특히 헌종 사후 철종이 즉위하는 과정과 철종대 정국에서 안동김씨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22]
아웃풋
- 김좌진
- 김두한
- 김옥균
- 김구라
- MC그리
- 김옥숙
- 김삿갓
- 김광림
- 김조순
- 철인왕후
- 순원왕후
- 김을한
- 김복동
- 김옥숙
- 김현철
- 김민지
- 김상헌 - 병자호란 당시 대표적인 척화파. 이후 장동김씨 정치·학문적 계보의 핵심 조상이 된다.
- 김수항 - 김상헌의 손자. 노론의 영수급 인물.
- 김창집 - 영의정, 노론 4대신의 일원.[23]
- 김좌근 - 김조순의 아들. 철종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핵심인물.[24]
- 김병학 - 영의정을 지냈으며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에도 고위직에 남았던 인물.
- ↑ 「안동김씨 성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안동김씨 태장재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안동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좌진」,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 ↑ 「김구」,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 ↑ 「김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방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안동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지금의 서촌일대에 해당한다.
- ↑ 「정선 필 청풍계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서울특별시 종로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다수가 근본없이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잡종자에 무능력 부패 그 자체였고 이후 대다수가 왕과 국가도 버리고 친일파로 변경한 채 지금까지 잘먹고 잘 살고 있다.
- ↑ 대다수가 칼싸움질 하던 무사도 아니고 과학 연구하던 공돌이들도 아니고 말그대로 키배뜨는데만 레벨 올리고있던 말그대로 문돌이들
- ↑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었다.
- ↑ 「김수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창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정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조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신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김좌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19세기 왕위의 승계과정과 정통성」,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김창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좌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