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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신고는 국번없이 127마약사범신고는 국번없이 127
Smoke weed everydaySmoke weed everyday

미국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이자 20세기판 H. H. 홈스.

조상은 폴란드 및 덴마크계다.

후술하겠지만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노우드 파크 타운십에서 소년과 청년 남성 33명을 살해했다. 평소에 광대 분장을 하고 어린이 병원과 지역 행사에서 봉사를 해왔기에 언론에서 "광대 살인마"(Killer Clown)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만 흔히 영화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광대 옷을 입고 사람을 죽였던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범행 가운데 포고 더 클라운으로 분장한 채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광대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피해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였다는 증거는 없다. 광대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유지하던 멀쩡한 사업가·봉사자 이미지의 일부분이었고, 체포 후 언론이 광대 사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면서 "살인광대" 이미지가 굳어진 것에 가깝다.

애새끼 시절

1942년 3월 17일 미국 시카고에서 자동차 정비공인 아버지 존 스탠리 게이시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심장이 약하고 몸이 뚱뚱해 대부분의 운동을 하지 못했고,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이런 게이시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 학대했다.

그는 지 애비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노력을 해봐도 그를 얕잡은 애비는 마마보이, 형편없는 계집애라고 끊임없이 모욕했다. 애비 새끼가 문제가 많았는데, 알려진 바로는 게이시의 기억은 벨트로 얻어맞았다던가, 빗자루로 뚝배기를 얻어 맞은것 뿐이라고한다.

다만 훗날 사업이 잘 풀리던 1966년에는 아버지가 아이오와까지 찾아와 과거 자신이 게이시를 학대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아들을 인정했다고 한다. 게이시는 평생 아버지의 인정을 상당히 갈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부모가 막장이니 자식도 그 꼬라지가 된듯하다. 물론 개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모두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후 게이시가 저지른 짓의 면죄부가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사업가 시절

재능은 있었는지,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스웨스턴 비즈니스 컬리지에 진학해 경영 관련 과정을 마쳤다. 그 후 신발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취업. 얼마 안가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관리직으로 승진 뒤, 마를린 마이어스라는 동료 직원과 약혼까지했다.

결혼 이후 게이시의 장인은 아이오와주 워털루에 있는 3개의 KFC 레스토랑을 구매한 뒤 그는 그곳으로 이사해 1966년부터 장인의 레스토랑 경영을 시작했고, 연 15,000달러와 더불어 식당의 수익금도 받았을 정도로 제법 인생이 펴졌다. 당시 돈으로 연봉 15,000달러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와 아내는 2명의 자녀를 가졌고 애비는 아이오와로 찾아와 자신이 했던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정중히 사과하면서 게이시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는 지역 청년회의소에 참여해 사람들에게 치킨을 나눠줬고 대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청년 회의소의 부회장이 되었다.

1차 범행 후 수감

그러나 워털루 청년회의소 일대에는 마약, 포르노, 매춘과 스와핑 등에 얽힌 막장 문화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게이시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그는 여러차례 어린 소년들만을 상대로 성적인 접근을 시도했고, 만약 거부한다면 농담, 도덕적 시험 따위였다고 둘러대곤 했다.

그러다가 1968년 15세 소년 도널드 부히스(Donald Voorhees)를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이시는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다른 청년에게 돈을 주고 부히스를 폭행하게 시키는 병신짓까지 벌였는데, 오히려 이 일이 경찰에 신고되면서 상황이 더 좆됐다.

결국 1968년 12월 3일 소도미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당시 부인은 이혼을 신청했으며 법원은 부인의 손을 들어줬고 부인은 게이시의 재산과 두 자녀의 양육권을 가져갔다. 이후 게이시는 첫 부인과 자녀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나모사 주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모범수로 살고 있었는데, 몇 달만에 교도소 주방의 책임자까지 올라갔다. 또 수감자 청년회의소 지부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18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50명에 불과했던 회원을 650명까지 늘려버린다.

노동 보수를 늘리고 수감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종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교도소의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미니 골프장을 만드는 일도 감독했다. 이 일들 덕분에 1970년에는 교도소 청년회의소에서 공로상까지 받았다.

1969년 크리스마스에 지 애비가 간경화로 돌아가시고, 이 소식을 들은 그 놈은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장례를 위한 특별외출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었고, 투옥으로부터 겨우 18개월 뒤인 1970년 6월 18일 가석방됐다.

10년형 받고 18개월 살고 나온 셈이다.

출소 이후의 상황

출소 이후 지 애미의 도움으로 시카고로 돌아와 레스토랑 주방 요리사생활을 하는데, 지속적인 성범죄 행각으로 다시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1971년에도 한 10대 소년이 게이시가 자신을 집으로 끌고가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신고했지만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이 기각됐다.

1971년 그는 어머니와 함께 노우드 파크 타운십의 8213 웨스트 서머데일 애비뉴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고, 이 집은 훗날 미국 범죄사에서 손꼽히는 끔찍한 장소가 된다.

그는 두 딸을 가진 이혼녀 캐롤 호프와 재혼했는데 캐롤은 게이시 여동생의 친구였고 재혼 이후 게이시는 요리사를 그만 두고 "PDM 건설"이라는 건설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처음엔 간판 만들기, 콘크리트 붓기같은 비교적 간단한 일을 했었으나 큰 성장을 이뤄 인테리어, 리모델링, 건물 건축등의 복잡하고 어려운 일까지 확장하여 이윽고 PDM 건설은 상당한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했고 사장이었던 게이시는 큰 부를 손에 쥐었다.

직원 상당수가 10대와 젊은 남성들이었는데, 이게 훗날 범행 대상과도 연결됐다.

그러나 1975년 자신은 아내에게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 한 뒤, 어버이날에 부부가 성관계를 가졌을 때 그는 아내에게 이 이후로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던 바가 있었다.

이윽고 그의 아내는 게이시가 10대 소년들을 차고에 데려가는 것을 보았고 집 안에서 게이 포르노와 남성들의 지갑, 신분증 등도 발견했다. 사이는 더욱 나빠져서 결국 1976년 3월 2일 이혼했다.

이혼 한 뒤 시카고 지역사회와 정치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폴란드 제헌절 퍼레이드의 지도자까지 겸하면서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이 퍼레이드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지역 민주당 활동도 존나 열심히 해서 지역 정치인들과 접점이 많았다. 결국 1978년 5월에는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영부인인 로절린 카터와 행사장에서 악수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사진 속 게이시는 경호 당국의 신원확인을 통과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특별 핀까지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과 7개월 뒤 3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잡혔다.

당연히 사진은 이후 백악관과 경호당국 입장에서 존나게 민망한 사진이 되어버렸다.

지역 봉사협회에 가입한 이후 졸리 조커(Jolly Joker)라는 광대 클럽을 알아차렸는데, 이 클럽의 회원들은 병원에 있는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공연을 하고 기금 모금 행사 및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일을 했다.

1975년 말 게이시는 광대 클럽에 가입해 의상을 디자인하고 광대 메이크업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Pogo the Clown"과 "Patches the Clown"이라는 자신만의 퍼포먼스 캐릭터를 만들어서 각종 행사에 돌아다녔다.

일부 전문 광대들은 게이시의 광대 분장에서 입가 가장자리가 뾰족하게 그려진 점을 이상하게 봤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용 광대 메이크업은 아이들에게 위협적인 인상을 주지 않도록 입 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하는데, 포고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들어가 있었다.

게이시 자신은 여러 지역 파티, 민주당 행사, 아동 병원등에 포고와 패치의 광대분장을 하고 참석했으며 자신의 광대복을 입고 자선 행사에서 모금활동과 기부를 진행했다.

겉으로만 보면 성공한 자영업자 + 지역 정치활동가 + 자선봉사자 + 아동병원 광대였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새끼를 의심하기 어려웠던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2차 범행 후 체포

이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은 통수가 존나 쎄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은 너의 통수를 존나게 때려서 기분을 잡치게 만들거나 멘탈 아웃되게 한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제 멘탈은.. 끄어어얽!!

사실은 착한 놈인 척만 했었다.

그는 한창 사업이 번창하던 즈음 다시 범행을 시작했다.

현재 확인된 첫 살인은 1972년 1월의 티머시 맥코이(Timothy McCoy) 살해 사건으로 본다. 이후 범행 간격은 점차 짧아졌다.

피해자들은 회사의 직원부터 길거리에서 만난 청소년, 버스터미널 주변의 가출 청소년이나 여행자 등 다양했다. 일자리나 돈, 술 등을 미끼로 자신의 집에 데려온 뒤 수갑을 이용한 이른바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속여 피해자를 제압하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 뒤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고문한 뒤 대부분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일부 피해자는 질식으로 사망했고 티머시 맥코이처럼 흉기에 찔려 사망한 피해자도 있었다.

게이시는 체포 이후 자신의 범행 동기나 당시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서로 모순되는 말을 했기 때문에 "고발할까봐 전부 죽였다" 정도로만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첫 살인 이후 살인 자체에서 성적인 흥분을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까지 남겼다.

즉 걍 상습 성범죄자가 살인까지 결합해버린 최악의 형태다.

게이시의 범행이 막을 내리게 된 계기는 1978년 12월 11일 실종된 15세 로버트 피스트(Robert Piest)였다.

피스트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약국에서 어머니에게 "건설업자한테 일자리를 알아보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 건설업자가 바로 게이시였다.

경찰은 피스트의 행적을 추적하다 게이시가 과거 미성년자 성범죄로 교도소까지 갔다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게이시의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첫 수색에서 수갑과 경찰 배지, 총기, 마약 관련 물품, 여러 사람의 신분증과 반지 등 수상쩍은 물건이 대량으로 나왔다. 다만 이것만으로 바로 피스트 살인을 입증하지는 못했기에 경찰은 게이시를 계속 감시했다.

여기서 존나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감시 도중 게이시가 자신을 감시하던 경찰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한 형사가 화장실을 사용하다가 난방구 쪽에서 썩은 시체 냄새와 비슷한 악취를 맡았다. 이전까지 게이시는 집에서 나는 냄새를 하수도 문제나 죽은 쥐 탓으로 둘러댔었다.

수사가 좁혀오자 게이시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경찰도 12월 21일 추가 수색영장을 받아 집을 다시 뒤졌다.

결국 마루 밑 크롤 스페이스를 파기 시작하자 인간의 유해가 나왔다.

하나도 아니고 계속 나왔다.

그리고 또 나왔다.

게이시는 결국 경찰에게 다수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자백했고 집 아래에 시체들이 묻혀있는 위치까지 설명했다.

수사 결과 게이시의 집 부지에서 총 29구가 발견됐다. 이 가운데 26구는 집 밑의 좁은 크롤 스페이스에서 발견됐고 나머지 3구는 차고 등 부지의 다른 장소에 묻혀 있었다.

집 밑 공간이 더 이상 시체를 묻기 힘들 정도로 차자 마지막 피해자들은 디플레인스강에 버렸다.

강에서는 4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29 + 4 = 33명.

미국 범죄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정신나간 숫자다.

게이시는 시체를 강에 버리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집 밑에 더 이상 묻을 공간이 없었고 땅을 파는 것도 힘들었다는 식으로 진술했다.

결국 33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왜 더 빨리 못 잡았나

게이시 사건에서 지금도 존나게 비판받는 부분이다.

게이시는 1968년에 이미 미성년자 성범죄로 실형까지 살았던 전과자였다.

그런데 출소한 뒤에도 성폭행·고문을 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 사례가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78년 3월 게이시에게 납치와 성폭행, 고문을 당한 제프리 리그널(Jeffrey Rignall)이다. 리그널은 게이시에게서 살아나온 뒤 차량번호 등을 추적해서 사실상 직접 범인을 찾아냈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피해자가 성소수자이거나 성매매와 관련됐다는 이유 등으로 사건이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게이시 역시 지역사회에서 사업가이자 정치활동가로 알려져 있었다.

또 다른 생존 피해자들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게이시는 "합의된 성관계였다" 같은 개소리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결국 로버트 피스트 실종 사건에서야 경찰이 게이시의 과거 범죄와 여러 실종사건을 본격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하면서 6년짜리 살인행각이 끝났다.

광대 살인마라는 이미지

게이시 사건을 모르는 사람도 광대 살인마 사진은 본 적 있을 정도로 포고 더 클라운 이미지는 유명하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게이시가 광대복을 입고 살인한 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희생자를 꼬드길 때도 광대라는 신분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건설회사 일자리, 돈, 술, 대화 등을 이용했다.

즉 살인광대라는 별명은 "낮에는 어린이들 앞에서 광대 봉사를 하던 사람이 집에서는 연쇄살인을 했다"는 극단적인 이중생활 때문에 만들어진 이미지다.

오히려 체포 이후 언론이 포고 더 클라운 사진을 미친듯이 사용했고, 게이시 자신도 사형수 시절 광대 그림을 여러 장 그려 판매하면서 이 이미지는 더 강해졌다.

1980년대 이후 미국 대중문화에서 '무서운 광대'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강해지는 데 게이시 사건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물론 살인광대라는 캐릭터 자체가 게이시 때문에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아직도 신원을 모르는 피해자들

이 문서가 가리키는 대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 문서는 고역 같은 일이 진행 중임을 알려드립니다.
완전 불쾌합니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게이시가 뒤진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끝난 사건이 아니다.

1978~1979년 시신을 발굴했을 당시 기술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피해자가 여러 명 있었다.

쿡 카운티 보안관실은 2011년 DNA 기술을 이용해 이들의 신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윌리엄 조지 번디(William George Bundy), 2017년 제임스 '지미' 바이런 하켄슨(James "Jimmie" Byron Haakenson), 2021년 프랜시스 웨인 알렉산더(Francis Wayne Alexander)의 신원이 새롭게 확인됐다.

특히 하켄슨은 1976년 16세의 나이로 미네소타 집을 떠난 뒤 시카고에서 마지막 연락을 하고 사라졌던 소년이었고, 알렉산더 역시 1976년경 게이시의 활동지역에서 행방이 끊겼다.

2026년 현재도 5명의 피해자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

쿡 카운티 보안관실은 이 5명의 유해에서 DNA 프로필을 확보한 상태이며, 1970년에서 1979년 사이 미국에서 실종된 남성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DNA 비교 검사를 요청하고 있다.

게다가 게이시가 실제로 33명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게이시의 전 변호사는 게이시가 디플레인스강에 실제로는 시신 5구를 버렸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강에서는 4구만 발견됐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34번째 피해자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현재까지 입증되지 않았다.

재판, 그리고...

1980년 2월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기존 문서에서 게이시가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재판에서 게이시는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를 주장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대량 살인을 자백했으면서 막상 법정에서는 자신이 정신질환 때문에 범죄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게이시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살인 당시 자신의 행동을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변호인이 증인으로 부른 사람이 게이시에게 성폭행과 고문을 당했다가 살아남은 제프리 리그널이다.

리그널은 게이시에게 클로로포름으로 기절당한 뒤 끔찍한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구토 증상 등에 시달렸다.

놀랍게도 이 피해자를 검찰이 아니라 변호인 측에서 불렀다.

게이시가 자신을 공격할 당시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짐승 같은 상태였다는 리그널의 증언을 이용해 "이새끼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논리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리그널은 법정에서 당시 일을 증언하다 울고 구토까지 해 증언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은 반대로 게이시가 피해자를 유인하는 방식, 시신을 은폐하고 범행 흔적을 없애는 방식, 사업과 지역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한 사실 등을 들어 자신이 뭘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던 계획적인 살인범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배심원들은 변호인의 심신상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0년 3월 12일 게이시는 33건의 살인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사형 선고.

게이시는 이후 수년 동안 항소를 반복했고 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기존 자백까지 뒤집으면서 자신은 33명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리노이주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들은 판결을 유지했다.

사형

처형당하기 전에 한 마지막 식사를 했는데, 메뉴는 다음과 같다.

자기가 젊을 때 KFC 3개 지점을 운영했던 놈이 마지막 식사도 KFC를 골랐다.

1994년 5월 10일, 게이시는 일리노이주의 스테이트빌 교도소에서 약물주사형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널리 알려진 그의 마지막 말은 "KISS MY ASS"다.

직역하면 "내 궁딩이에 뽀뽀나 해라"인데 실제 의미는 "좆까", "엿먹어" 정도에 가깝다.

다만 이 마지막 말은 여러 목격자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버전이고, 교정당국 관계자는 집행 직전 게이시가 "자신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상하지는 못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밝혔다. 아예 사형실 안에서는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어서 정확히 어느 말이 진짜 최후의 한마디였는지는 약간 엇갈린다.

그리고 사형 집행도 한번에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다.

첫 번째 약물이 들어간 뒤 두 번째 약물인 판쿠로늄 브로마이드가 IV 튜브 안에서 굳어버리면서 관이 막혔다.

약물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자 입회자들이 보고 있던 창문의 블라인드를 닫고 사형 집행팀이 튜브를 교체했다.

약 10분 뒤 블라인드를 다시 열고 집행을 계속했고 최종적으로 게이시는 오전 12시 58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즉 "1차 사형에서 살아남아서 2차 사형을 했다" 정도는 아니고, 사형 집행 도중 장비가 막혀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진행한 것에 가깝다.

당시 마취과 의사들은 기본적인 정맥주사 절차만 제대로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며 교도소 측의 미숙한 집행을 비판했다.

살아서도 사람들을 존나게 고생시켰는데 뒤질 때도 일을 하나 더 만들고 갔다.

다른 사형수들에 비해 꽤 복잡하게 뒤졌으며 지옥에서 영원히 애새끼 악마들에게 잘 얻어맞길...

ㄴ좀 재밌게좀 써라, 남간 포크해오면 재밌냐? 고칠게 존나 많아서 뒤지겠다.

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망하는 것은 쌤통입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그렇기에 천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따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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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고역 같던 일이 해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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