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945년에는 한국의 숙적 일본에게 원자폭탄 두 발을 쏴주시고, 1950년에는 또 하나의 숙적 북괴가 전쟁 일으켰을 때는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까지 하면서 한국 좀 살려보겠다고 미국 측에서 끊임없이 신경써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방 관계다.
한때는 ㄹ혜가 시진핑 꼬츄를 사까시 하면서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방 관계임에는 변함이 없다.
정확히는 대한민국과 미국은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법적 기반으로 하는 군사동맹이다. 그냥 서로 사이가 좋은 우방 정도가 아니라 한쪽이 태평양 지역에서 외부의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조약에 박아놓은 관계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2020년대 기준으로도 약 2만 8천 명 수준의 미군 병력이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한미연합군사령부, 연례 연합훈련,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까지 묶여 있기 때문에 한국의 국가안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존나게 크다.
경제 쪽에서도 관계가 상당히 깊다. 한미 FTA가 2012년 발효됐고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분야에서 미국에 수십~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과 투자국 가운데 하나라서 요즘의 한미관계는 옛날처럼 군사동맹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시대별 관계
한반도 독립 이전
사실 대한민국 수립 이전까진 동맹 관계는 아니었고, 미국도 한국에서 뭐 좀 챙길 거 있나 해서 침략했던 열강들 중 하나였다.
멸망 이전의 조선 왕조 측에서는 1880년 수신사 김홍집이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황준센)이 저술한 『조선책략』의 주장을 토대로, 미국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연미, 連美)는 친미 개화파와 오랑캐와의 수교는 없다는 위정척사파의 대립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대한제국은 1910년에 나라가 소멸했으므로 독립하는 1945년까지 사실상 한미 관계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임시정부 때? 당시 미국이 임정 존재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들어선 게 미군정이었다.
다만 아예 접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조선이 서양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 가운데 하나였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고종을 비롯한 조선·대한제국 지도층이 미국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서로의 동아시아 이해관계를 확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고 미국 정부는 을사조약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 상실을 인정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에서 외교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미국 정부가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승인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미군이 38선 이남을 점령하고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을 실시했다.
1945년 ~ 199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부에는 자유주의 진영의 대한민국 정부가, 이북에는 사회주의 진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들어섰다. 이때는 북한이 소련에게 굽신거렸던 시절이었다. 이때까지는.
미국은 자유주의 진영의 우두머리였고 한국(남한)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동맹국이 된다. 사실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어도 한미동맹이 깨질 가능성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희대의 깡패 괴뢰집단 부카니스탄에 맞서서 든든한 미국 응딩이 뒤에 숨을 수 있게 된 사실은 분명한 호재지만 이로 인해 사실상 한국의 적국인 일본과 불편한 동맹 관계를 맺어야 했고, 5000년 우방이었던 중국과는 적대적 관계로 대립해야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ㄴ 중국이 우리 우방이냐? 아니 여말선초, 임진왜란, 일제감정기를 제외하면 5000년 내내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은 일본이랑 고조선시대부터 한반도 국가들이랑 끊임 없이 전쟁한 중국이랑 비교를 하네 당장 고려 침략한 중국 세력 만 해도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이야 한국사 공부 안한거 티내고 다니는 꼬라지 좀 봐라
한국은 미국-일본과 동맹을 체결해 한미일동맹으로 북한에게 맞섰고 북한은 소련-중국과의 동맹을 맺고 맞섰다.
ㄴ 엄밀히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동맹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 역시 미국과 각각 별도의 방위조약을 맺고 있을 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상호방위조약이 없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한미일동맹'은 법적인 3자 동맹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그리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편의상 묶어 부르는 표현에 가깝다. 이건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이후 한미일 군사협력이 존나게 강화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한미관계는 아예 피로 맺어진 관계가 됐다. 미국은 유엔군의 주력으로 참전해 약 180만 명의 병력을 순환 투입했고 3만 6천 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고 1954년 발효됐다. 이후 주한미군이 장기간 주둔하면서 한국의 국방체제 자체가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한국도 베트남전에서 미국 편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누적 약 32만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됐고, 한국 경제와 군 현대화에도 미국의 지원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항상 좋았던 건 아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과 닉슨 독트린 때문에 한국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검토했다가 미국의 압박으로 포기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탄압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크게 올라간 시기도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냉전 종식이 선언된 이후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UN의 일원으로 가입하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노선이 세워지면서 한미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위에 웬 놈이 중국을 우방으로, 일본을 적국으로 적었는데 어머니가 장기 팔려서 실종된 건지 뇌에 춘장이 들은 조선족 새끼인지 모르겠다. 임정 시절 때 독립 운동 지원해줬던 우방 중화민국은 지도에서 지워지면서 반쯤 망했고(나라 자체는 대만에 있다) 지금 유엔에서 정통 중국으로 인정받는 중국은 중공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단지 6.25 때 우리 통일을 저지하고 국군을 죽인 빨갱이에 불과하다.
ㄴ 사실 중화민국은 우방일지라도 청나라와 그 이전 중국 왕조들은 우방이라고 볼 수 있냐?
ㄴㄴ송나라와 명나라가 그나마 덜 적대적이었고, 나머지는 얄짤없다.
1992년 ~
한국과 중국 간의 수교가 새로 체결되고 한중관계가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한국은 친중 국가, 중국은 친한 국가가 되었지만 중국의 암묵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미국과의 관계도 그에 상관없이 좋은 상태로 유지되었다.
한편 일본과의 동맹은 사실상 깨져서 한미일동맹은 한미동맹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고 한미일동맹은 이제는 죽은 말이 되었다.
ㄴ 위에서도 말했지만 한일 양국 사이에 정식 군사동맹이 있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2010년대 후반 한일관계가 개같이 꼬였다가 2022년 이후 다시 안보협력이 복원됐고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회담 이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노태우 정권 이후에도 김영삼, 김대중은 친미정책을 기본 바탕으로 했다. 둘다 민주화 운동 하다가 뒤질 뻔한 거 미국이 여러 번 살려줬다. 이후 386 정권인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한반도 중립론이라는, 이미 대한제국 때 뒤져버린 노선을 꺼내와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이후 집권한 이명박이 한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여전히 미국은 한국의 제1우방 위치를 확고히 유지했으며 한국 국민의 미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는 몇몇 반미 병신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한미관계도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냥 반미해서 다 박살난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과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노무현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면서 워싱턴에서 우려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한국군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자이툰부대를 파병했고 2006년에는 양국이 한미동맹을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식 선언했다.[1]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미 FTA 비준과 발효가 이뤄졌고 오바마 행정부와의 관계도 상당히 좋았다. 미국에서는 한미관계를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박근혜의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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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근혜 정권이 들기 전부터 대놓고 중국과 친해져야 한다며 친중정책과 반일 외교(박근혜는 해외 순방을 그렇게 다니면서 일본 땅을 밟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일 코스프레 목적이었던 듯.)를 외치다가 중국이 북한 핵실험에도 별 거 아니라는 소리만 지껄이면서 뒤를 봐주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급박해져서 방어 무기 '사드'를 배치하게 되었다.
ㄴ 사실 그때 오바마가 방일을 하면서 일본과 친하게 지내던 모습이 아니꼬웠던 것도 좀 있었다. 미국이 우릴 버리고 일본과 친하게 지내다니 쒸익쒸익! 하면서 진핑이를 만나기 시작한 거지. 이건 2014년 2월에 있었던 조선일보 논평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이랑 일본이 너무하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함.
북한 뒤를 봐주던 짱깨는 드디어 흑심을 드러내며 엄근진 모드로 한국에게 거품을 물며 경제적 보복을 가했다. 친중정책이 개뻘짓이라는 걸 깨닫고 뒤늦게 미국 편에 붙으려고 했지만 그동안의 행보 때문에 미국에게 이미 찍힐 대로 찍혔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 말기의 한미동맹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다. 2016년 북한의 4·5차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이 이어지자 한국과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결정했고, 이 때문에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가 개박살났다.
문재앙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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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가 온갖 경제 보복을 하자 ㄹ은 WTO에서 딴지를 걸 방법을 찾고 있었던 모양인데 moon disaster는 찍소리도 안 하고 짱깨의 보복을 3불 약속과 바꿔왔고 이 보복도 다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이 와중에 트럼프가 일본은 일단 빼고 중국, 한국만 세트로 세이프 가드를 걸어서 경제 문제로 딴지를 걸자(보복 시작하는 건가?) 문재앙 정부는 귀신같이 WTO로 달려가서 징징거리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아사히 신문에서는 이번에 있을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미국에서 한국에 배치되는 전략자산 배치 비용 부담 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기사가 났는데 좆반도 깨시민들이 반도는 전략적 요충지라서 지랄 놔도 미국도 별 수 없으니 북한이 싫어한다고 전략자산, 연합 훈련 무르기 시작했는데 이제 미국에서 역으로 "우리 전략 자산이 그렇게 좆같으면 필요할 때 돈 내고 불러 ^^"라고 하고 있는 거 아니냐?
경제 보복 우려
WTO에서도 소송 태클 걸고 평창 올림픽에서 펜스 부통령 뒤통수를 때리니까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 부분에 관세 폭탄을 먹인다고 한다. 전통적인 우방 캐나다, 독일은 제외됐는데 항상 넌씨눈 하던 반도는 들어갔다.
다행히 한국 존나 죽인다는 제안 말고 전세계 관세안이 채택되더니 뜬금포로 일본이 존나 맞고 반도가 협상으로 제외됐는데 상무부에서 올린 제안 중에 한국만 존나 볶는 안이 있었다는 게 우려스럽다. 일단은 미북정상회담 이슈로 반도에 훈풍이 부는 것 같은 착시일 수도 있으니 거품 꺼질 때까지 몸 사려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괜히 대등한 관계니 어쩌구 꼬추 세우다가 명치 맞는 것 보다는 낫잖아? 요즘 무역전쟁이네 뭐네 하는 판 돌아가는 거 보면 솔직히 이 사안에 대해선 정부가 빠른 협상으로 틀어막은 건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이 맘 바뀌기 전에 정부가 빠른 협상으로 빼먹은 것들을 어떻게 커버를 잘 치느냐가 관건일 듯하다. 안 그래도 덤핑 관세 몇 번으로 언론이나 지지율이나 경제가 출렁대는데... 통수 맞기 싫으면 어지간히 하겠지.
근데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이 대놓고 빡쳐서 관계 급속냉각되었다 ㅋㅋㅋ 재앙이가 이에 빡쳐서 비난 때렸는데 미국이 조까라면서 11월 21일까지 제한시간 걸어버림 ㅋㅋ
그리고 방위비 협상은 파열되었고 지소미아는 완전 파기되게 생겼다. 핵무기 들고 있는 빨치산 새끼들의 비위를 맞춰야지 왜 섬숭이들과 깡패의 비위를 맞추냐는 말도 있던데, 한 놈은 세계경제 3위고 한 놈은 그 핵무기가 한트럭인 걸 생각하면 도대체 누구 비위를 맞추는 건지 의문이다.
ㄴ 결과적으로 지소미아는 완전히 파기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22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했고 협정은 계속 유지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2023년 종료 통보 효력 정지를 철회하면서 법적으로도 완전 정상화했다.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사이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때문에 존나게 시끄러웠다. 트럼프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보다 몇 배 올려야 한다는 요구를 하면서 협상이 장기간 표류했고 한때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이 무급휴직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2021년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 체결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문재인 정부 후반에는 미국과의 관계도 다시 상당 부분 복원됐다. 2021년 5월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미사일지침을 완전히 종료했고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경제안보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즉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관계는 초반의 트럼프와 방위비·대북정책 문제로 존나게 흔들린 적은 있지만 동맹 자체가 파탄난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그간 미국 응디가 좌파 새끼들에게 데이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었는지 이날만 손꼽아 기다려온 미국은 역시 윤석열이 당선되자마자 활짝 웃으며 5시간만에 현충원 가는 길에 최단기로 바이든에게 전화를 받았으며 5월 하순 방한 논의까지 서로 주고받았고 취임 11일 만에 한국으로 달려왔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한미관계가 문재인 정부보다 명백하게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2022년 5월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취임 11일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국 정상과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는 상당히 빠른 기록이었다.
바이든은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고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윤석열과 함께 찾아가면서 한미동맹의 범위가 군사안보에서 반도체·배터리·공급망 등 경제안보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2023년은 한미동맹 체결 70주년이었다.
워싱턴 선언
2023년 4월 윤석열이 미국을 국빈방문하면서 바이든과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핵심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새로운 협의기구인 핵협의그룹(NCG)을 만들기로 했고 한국은 미국의 핵·전략기획 과정에 이전보다 깊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2]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으로 한국을 방어한다는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했고 전략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2023년 7월 미국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USS 켄터키가 부산에 입항했다. 미국 SSBN이 한국 항구에 들어온 것은 약 40년 만이었다.
2024년에는 한미 양국이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까지 완성했다. NCG 역시 2023년 서울, 워싱턴에서 시작해 2024년과 2025년까지 정례적으로 열렸다.
캠프 데이비드
2023년 8월 18일 윤석열, 미국의 조 바이든,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가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열었다.
세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캠프 데이비드 원칙, 한미일 협의에 대한 공약을 발표하며 3국 안보협력을 제도화하기 시작했다.[3]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가동했고 3국 군사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2024년에는 한미일 최초의 정례 다영역 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가 실시됐다. 해상·공중·미사일방어·대잠전·사이버 등 여러 영역을 묶어 훈련하는 방식이다.[4]
같은 해 7월에는 세 나라 국방장관이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에 서명해 고위급 회의와 훈련, 정보공유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서 위에서 한미일동맹이 '죽은 말'이라고 써놨는데 정식 동맹은 여전히 아니지만 2023~2024년에는 적어도 실질적인 군사협력만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한미일이 가까워졌다.
IRA와 반도체 문제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와 미국 사이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이든 정부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면서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지 않은 전기차는 미국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는데 당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미국 판매 전기차 상당수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어서 한국 기업이 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의 CHIPS Act 역시 한국 반도체 업체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중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제한하고 회사 내부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조건 등이 붙으면서 논란이 됐다.
반대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미친 듯이 늘었다.
2020년대 들어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히 북한 막는 동맹국이 아니라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공급망에서 빼놓기 어려운 산업 파트너가 됐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파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미국도 예상하지 못한 존나게 큰 변수가 터졌다.
미국 정부는 사전에 계엄 선포를 통보받지 못했다.
계엄은 몇 시간 만에 국회의 요구로 해제됐지만 미국은 한국의 민주적 절차와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이후 윤석열이 탄핵되고 2025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될 때까지 한미관계 역시 정상 간 외교가 사실상 멈춘 상태가 됐다.
다만 정부 수반이 날아가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외교·국방당국과 한미연합체제는 계속 작동했다. 2025년 1월에도 한미 핵협의그룹 회의가 열리는 등 동맹의 실무체계가 대통령 개인과는 별개로 유지됐다.
이재명 정부
2025년 6월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이 당선되면서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섰다.
과거 이재명이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고 민주당 정부의 대북·대중정책 때문에 미국과 충돌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취임 뒤에는 예상보다 한미동맹을 상당히 강하게 유지하는 쪽으로 갔다.
이재명 정부의 대미외교에 대해서는 이재명 정부 문서도 참고.
트럼프 2기와 첫 정상회담
미국에서는 이미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상태였다.
이재명과 트럼프는 2025년 8월 25일 워싱턴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특유의 존나게 예측하기 힘든 외교 스타일 때문에 정상회담 전부터 주한미군, 방위비, 관세, 대미투자 문제가 한꺼번에 튀어나올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양측은 일단 동맹을 유지하면서 경제·안보 거래를 패키지로 협상하는 방식으로 갔다.
2025년 10월 29일에는 트럼프가 한국을 국빈방문해 경주에서 이재명과 다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이 같은 미국 대통령을 두 번 국빈으로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이후 발표된 한미 공동 설명자료에서는 양국이 한미동맹을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의 평화·안보·번영의 핵심축으로 재확인했다.[5]
관세와 3500억 달러 투자 합의
트럼프 2기에서는 옛날처럼 동맹이라고 무역에서 봐주는 시대도 끝났다.
2025년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대규모 상호관세를 예고했고 한미 간에 존나게 긴 관세협상이 벌어졌다.
결국 양국은 한국산 제품에 적용되는 미국의 상호관세를 기본적으로 15% 수준으로 조정하는 합의를 했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대한 미국의 232조 관세 역시 15%로 맞추기로 했다.
대신 한국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합의에는 미국 조선업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이른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성격의 투자와, 별도의 전략산업 투자 2,000억 달러가 포함돼 총 3,500억 달러 규모가 됐다.[6]
다만 2,000억 달러 부분은 한국 외환시장에 충격이 생기지 않도록 연간 실제 달러 조달액을 최대 200억 달러 수준으로 제한하고 시장 불안이 발생하면 일정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에 별도로 1,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투자를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를 약 360억 달러에 주문하기로 했다.
이쯤 되면 요즘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 이야기만 하는 회의가 아니라 투자은행 회의에 가까울 정도로 돈 얘기가 존나게 많아졌다.
조선업
2025년 이후 한미관계에서 갑자기 존나게 중요해진 분야가 조선업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 해군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선과 군함을 실제로 건조하고 정비할 조선소 생산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졌다.
반면 한국에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세계적인 조선업체가 남아 있다.
그래서 미국 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를 한국 조선소가 맡기 시작했고 한화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Philly Shipyard까지 인수했다.
2025년 한미 정상 합의에서도 조선소 현대화, 인력양성, 공급망, 미국 상선·군함 건조 능력 확대가 핵심 협력분야로 명시됐다.
향후 미국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일부 건조할 가능성까지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핵추진 잠수함
2025년 한미관계에서 가장 존나게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문제였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핵추진 공격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다.
2025년 11월 백악관이 공개한 공동 설명자료에는 미국이 대한민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에 대해 승인했다고 명시돼 있으며 연료 조달 문제를 포함해 필요한 절차를 한국과 협력하기로 했다.[7]
동시에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국법에 따라 한국의 민간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확대를 위한 절차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게 한국이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NPT 회원국이며 양국 발표 역시 평화적 원자력 이용과 해군용 핵추진 체계에 한정돼 있다.
핵잠수함 역시 설계하고 원자로 만들고 연료 문제 해결하고 조선소까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취역까지는 한참 남았다.
국방비와 전시작전통제권
트럼프가 동맹국들한테
니네 돈 좀 더 써라
를 1기 때부터 존나게 외쳤는데 결국 한국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2025년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정부는 국방비를 가능한 한 빨리 GDP 대비 3.5% 수준으로 올리는 계획을 미국에 설명했다.
또 2030년까지 약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군사장비를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약 33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도 공동 설명자료에 들어갔다.[8]
대신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미국의 지원 아래 한국군이 북한의 재래식 공격에 대한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군사능력을 확대한다는 방향이다.
2026년 8월 이재명 대통령도 한국이 국방비를 GDP 대비 3.5%까지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한반도 안보는 대한민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트럼프의 생각에 공감한다고 밝혔다.[9]
즉 옛날의
미국 응디 뒤에 숨는다
에서 돈도 더 내고 재래식 방위 책임도 한국이 더 많이 가져가는 쪽으로 한미동맹 자체가 변하고 있다.
그래도 트럼프는 트럼프다
그렇다고 한미관계가 마냥 순풍인 건 아니다.
2026년 들어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중동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직접적인 군사참여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2026년 8월 16일 트럼프는 펜타곤에 한미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연례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10]
트럼프는 훈련비용 문제와 함께 북한과 다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연합방위태세는 유지한다면서도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는 긍정적인 입장이라 미국과 완전히 정면충돌하지는 않았다.
2026년 8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대화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재명은 자신은 페이스메이커, 트럼프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하면 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북대화를 싫어하던 바이든-윤석열 조합에서 다시
트럼프-이재명 대북대화 조합
으로 바뀐 셈이다.
다만 북한은 이미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까지 파견한 상황이라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처럼 미국과 북한이 갑자기 악수한다고 모든 게 해결될 상황은 아니다.
2026년 현재
2026년 현재 한미관계는 군사동맹 자체는 여전히 존나게 강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지켜주던 냉전기의 형태에서 서로 돈과 산업과 군사력을 거래하는 훨씬 복잡한 관계로 변했다.
안보 측면에서는 주한미군, 한미연합사, 핵우산, NCG를 포함한 확장억제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은 국방비 확대와 전작권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경제에서는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원전, AI가 동맹의 핵심 의제로 들어왔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은 한국산 제품의 관세와 핵연료·잠수함 같은 민감한 문제를 협상카드로 사용하는 구조가 됐다.
중국 문제에서는 한국도 미국과 상당히 가까워졌지만 중국이 한국의 최대급 교역국 가운데 하나인 데다가 중국 바로 옆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만큼 무조건적인 대중 봉쇄정책에 들어가기도 어렵다.
대만해협 문제에서도 역대 한국 정부는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대만 유사시 한국군이나 주한미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존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2025년 이재명-트럼프 공동 설명자료에서도 양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항행의 자유를 재확인했지만 구체적인 군사개입까지 약속한 것은 아니다.
한미일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에서 만들어진 실시간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공유와 프리덤 에지 등 3국 군사협력 구조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폐기되지 않았다. 2025년 한미 정상 합의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일본과의 3자 파트너십을 계속 강화하기로 했다.[11]
결국 1990년대까지의 한미동맹이 거의
북괴 막기
하나에 집중된 동맹이었다면 2020년대의 한미관계는 북한 핵무기부터 중국, 반도체, AI, 원전, 조선, 우주, 사이버, 핵잠수함, 관세까지 안 끼는 데가 없는 관계가 됐다.
군사동맹
한미관계의 가장 중요한 축.
법적 기반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조약 제3조는 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이 태평양 지역에서 외부의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각자의 헌법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규정한다.
한미연합군사령부는 1978년에 창설됐고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연합작전을 지휘한다.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전환됐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은 여전히 한미연합군사령관이 행사하는 구조다.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정부 이후 계속 추진돼 왔으나 북한 핵·미사일 능력 증가와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정보·감시·정찰 능력 등의 문제 때문에 계속 미뤄졌다.
2025년 이재명-트럼프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확장억제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
쉽게 말해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군사능력을 사용해 대응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과거에는 그냥 '미국 핵우산'이라는 정치적인 표현이 강했지만 북한이 핵탄두와 ICBM을 계속 늘리면서 한국에서도
미국이 서울 지키겠다고 뉴욕을 핵 맞을 위험까지 감수하겠냐?
라는 의문이 존나게 커졌다.
그래서 202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NCG를 만들고 미국의 핵전력 운용계획에 한국이 이전보다 깊게 관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2024년에는 한미 양국이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을 채택했고 미국 국방부는 한국을 단순히 확장억제를 제공받는 수동적인 국가가 아니라 핵억제 계획에 참여하는 파트너로 표현하기 시작했다.[12]
물론 미국 핵무기의 최종 사용권한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경제 관계
군사동맹에 가려져서 그렇지 한미 경제관계도 존나게 크다.
2012년 한미 FTA가 발효된 뒤 양국 교역량은 크게 증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미 수출품은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전자제품, 기계류 등이며 미국에서는 원유·가스, 농축산물, 항공기, 반도체 장비 등을 많이 수입한다.
2020년대에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생산도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조지아에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세웠다.
SK와 LG 역시 미국에 반도체 소재와 배터리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에서도 한국 기업이 만드는 현지 일자리를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반대로 트럼프 2기 들어서는 관세와 대미투자를 안보 문제와 엮는 미국식 거래외교가 강해지면서 한국 입장에서도
동맹이면 관세 좀 봐주는 거 아니었냐
는 옛날식 계산이 거의 안 먹히게 됐다.
미국 내 한국계
한미관계는 정부끼리만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는 약 200만 명 안팎의 한국계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뉴욕·뉴저지, 워싱턴 D.C. 수도권,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애틀랜타, 시애틀 등지에 큰 한인사회가 형성돼 있다.
한국계 미국인의 정치적 영향력도 과거보다 커졌다.
미국 연방의회에는 한국계 의원들이 지속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한미동맹, 한국계 이민자, 북한 인권, 위안부 문제 등 한반도 관련 현안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 때문에 최근에는 기존 한인 밀집지역이 아니던 조지아, 텍사스, 앨라배마 같은 남부 지역에도 한국인 주재원과 협력업체가 존나게 늘었다.
문화 관계
2020년대 들어서는 문화교류도 한미관계에서 무시 못 할 정도가 됐다.
옛날에는 한국에서 미국 영화, 팝송, 청바지, 햄버거를 받아들이는 일방향 문화교류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방탄소년단, BLACKPINK, 기생충, 오징어 게임, 한국 음식과 화장품 등이 미국 주류시장으로 들어갔다.
2023년 윤석열의 미국 국빈방문 당시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윤석열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장면이 미국에서도 상당히 화제가 됐다.
정치와 외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세니 방위비니 싸우다가도 민간 교류는 계속 커지는 것이 현재 한미관계의 특징 중 하나다.
같이 보기
각주
- ↑ [미국 국무부 - Joint Declaration on the R.O.K.-U.S. Alliance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 ↑ [미국 국무부 - The United States of America-Republic of Korea Nuclear Consultative Group]
- ↑ [외교부 -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
- ↑ [미국 국방부 - 한미일 국방장관 공동성명]
- ↑ [외교부 -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
- ↑ [The White House -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 ↑ [The White House -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 ↑ [The White House -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 ↑ [대한민국 청와대 -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 ↑ [Reuters - Trump orders Pentagon to cut back military exercises with South Korea]
- ↑ [The White House -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 ↑ [미국 국방부 - Nuclear Threats and the Role of All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