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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갑족(海東甲族)은 우리나라의 유서 깊고 문벌이 높은 집안을 높여 부르던 표현이다. 다만 특정 시대의 개국공신 성씨들을 가리키는 공식적인 역사 용어나, 국가에서 지정한 고정된 가문들의 집단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보통은 신라 초기 시대부터 고려 무신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개국 공신 성씨를 말함.

ㄴ 정확히는 이렇게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다. 실제 고려시대 기록에서 해동갑족이라는 표현은 확인되지만, "신라 초기부터 고려 무신의 난 전까지의 개국공신 성씨 목록" 같은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문헌에서 오래된 문벌과 높은 관직, 혼인관계, 사회적 명망 등을 가진 집안을 칭송하면서 쓰던 표현에 가깝다.

한자 그대로 보면 해동(海東)은 중국에서 바다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던 표현이고, 갑족(甲族)은 여러 가문 가운데 으뜸가는 집안, 즉 명문거족을 뜻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대충 우리나라의 최상급 명문가 정도 된다.

실제 역사에서

해동갑족이라는 단어 자체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고려시대 금석문에서 실제 용례가 확인된다.

1149년에 작성된 이자원녀 이씨 묘지명에는 고려의 대표적 문벌귀족인 경원군 이씨, 즉 후대의 인주 이씨 계통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

閱其家世海東甲族也

”
 
— 그 가세를 살펴보니 해동의 갑족이다.

여기서 묘지의 주인공은 문하시중 이자연의 증손녀이자 이자원의 딸이었다. 외조부 역시 문하시중을 지낸 김경용이었다. 왕실과 반복적으로 혼인하고 재상을 여러 명 배출했던 고려 최고급 문벌귀족 가문을 두고 아예 해동의 갑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1]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12세기의 광양군부인 김씨 묘지명에는 김씨 집안을 두고

“

家世爲海東甲族 具有聞於時

”
 
— 집안이 대대로 해동의 갑족으로 모두 당시 명망이 있었다.

라고 적었다.[2]

이 집안 역시 조부 김양감이 문하시랑평장사, 증조 김정준이 문하평장을 지낸 고위 관료 가문이었다. 외가 또한 경원 이씨 계통이었다.

즉 고려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이 집안 족보 존나 세네 → 해동갑족

하는 식으로 쓴 표현은 맞다.

다만 중요한 건 해동갑족이라는 명칭을 가진 단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왕이 "오늘부터 이 열 집안을 해동갑족으로 지정한다" 하고 명단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해동갑족 회장이나 정기총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려 문벌귀족 연구에서도 경원 이씨처럼 재상을 여러 명 배출하고 왕실과 혼인하며 권력을 세습한 대표적 문벌을 설명할 때 사료에 나타나는 벌열(閥閱), 해동갑족 같은 표현이 언급된다.[3]

어떤 집안이었나

고려시대의 갑족이 되려면 현대식으로 단순히 돈 많은 집안이면 되는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중앙 관료를 배출하고, 재상급 관직을 여러 세대에 걸쳐 차지하며, 다른 명문가 또는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원 이씨다. 이자연 이후 왕실과 연이어 혼인했고, 이자겸 시기에는 권력이 너무 커져서 아예 왕권과 정면충돌할 정도까지 갔다. 고려 문벌귀족 이야기만 나오면 거의 빠지지 않는 집안이다.

하지만 이런 명문가라고 해서 처음부터 천 년 동안 무조건 귀족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 전기의 정치질서 속에서 관직, 혼인, 음서, 토지와 경제력 등을 통해 세력을 확대했고, 어떤 집안은 몰락하고 다른 집안이 올라왔다.

따라서 현대 족보에서 우리 집안은 신라 때부터 해동갑족임 이라고 써 있다고 해서 고려 정부가 발급한 해동갑족 인증서가 발견됐다는 뜻은 아니다.

문벌귀족과의 관계

해동갑족을 이해하려면 문벌귀족을 같이 봐야 한다.

고려 전기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고위 관료를 배출하고 서로 혼인하면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한 가문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경원 이씨, 해주 최씨, 파평 윤씨 등 여러 가문이 거론된다.

이들은 음서 등의 제도를 통해 자손이 관직에 진출하기 유리했고, 고위 귀족가문끼리 혼인하거나 왕실과 통혼하면서 권력을 강화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가세와 명망이 높은 집안을 사료에서 갑족, 벌열 같은 말로 높여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문벌귀족 = 해동갑족이라고 완전히 등치시키기도 어렵다.

문벌귀족은 현대 역사학에서 고려 전기의 지배층을 설명하기 위한 범주이고, 해동갑족은 당시 문헌에서 특정 집안의 높은 문벌을 칭찬하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쉽게 말하면 문벌귀족이 사회집단을 설명하는 말이라면, 해동갑족은 이 집안은 그중에서도 족보가 존나 셈에 가까운 표현이다.

삼한갑족과의 관계

삼한갑족(三韓甲族) 역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대대로 문벌과 명망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던 표현이다.

여기서 삼한 역시 꼭 마한·진한·변한 시기의 실제 세 부족국가 가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는 우리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됐다.

따라서 해동갑족 / 삼한갑족 둘다 대략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명문거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었다.

다만 이것 역시 법적으로 지정된 신분이나 고정된 성씨 목록이 아니다. 어느 족보에서 자기 가문을 삼한갑족이라고 부르고 다른 문집에서 해동갑족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별개의 귀족등급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가끔 삼한갑족 15대 가문 / 해동갑족 10대 성씨같이 마치 조선시대에 공식 랭킹표라도 있었던 것처럼 돌아다니는데 이런 식의 고정 명단은 조심해서 봐야 한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때문에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존나 많다.

작품에서는 해동갑족을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말까지 약 700년 동안 명맥을 이어 온 10대 명문가로 설정했다. 왕조가 뒤집히든 권력자가 바뀌든 살아남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장기 기득권 세력으로 나온다.

극중 대표적인 인물이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다. 작품에서는 황려 민씨의 대표이자 해동갑족의 수장급 인물로 등장한다. 민제의 딸 민다경 역시 해동갑족 출신으로 설정되어 이방원과 정략결혼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육산선생 역시 평양 조씨를 대표하는 해동갑족 인물로 설정됐다. SBS 측 인물소개에서도 육산을 해동갑족 10대 가문 출신으로 설명했다.[4]

작중에서는 이성계와 홍인방이 서로 싸울 때 이 해동갑족들이 누구 편에 서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나온다. 직접 군사를 끌고 싸우는 세력이라기보다 혼인, 재산, 관직, 인맥과 사회적 명망으로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처럼 묘사된다.

이 설정 자체는 고려 말의 유력 문벌과 권문세족, 혼인을 통한 정치세력 형성 등을 적당히 섞어 만든 사극적 장치라고 보면 된다.

2015년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해동갑족이라는 말이 실제 역사용어인지 드라마가 만든 말인지 논란이 있었고,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따로 다룰 정도였다.[5]

결론은 조금 복잡하다.

해동갑족이라는 표현 자체는 실제 역사에 있었지만 통일신라부터 고려 말까지 이어진 공식적인 10대 해동갑족은 드라마 설정이다.

10대 가문이라는 설정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계속 해동갑족 10대 가문이라고 부르지만 극중에서 실제 열 가문의 완전한 명단을 역사 교과서처럼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황려 민씨와 평양 조씨 등이며, 이들을 포함한 여러 유력 가문이 하나의 정치적 집단처럼 등장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 말의 유력 가문이 딱 열 집안으로 고정돼 있지도 않았다. 시대에 따라 권세를 누린 가문도 달랐고 같은 본관 안에서도 특정 계통만 고위 관료층을 형성한 경우가 있었다.

또 고려 후기에는 기존 문벌귀족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권문세족들이 강력한 정치·경제적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고려에는 해동갑족이라는 10대 재벌가문이 있었다정도로 외우면 시험에서 피 본다.

해당 성씨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10대 가문이라고 했지만 실제 찾아 보면 많다..

다만 아래 목록을 실제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해동갑족 명단으로 보면 안 된다. 인터넷 족보자료와 각 성씨 문중에서 해동갑족·삼한갑족 또는 고려 명문가라고 부르는 가문들을 넓게 모아놓은 성격에 가깝다.

  1. 경주 김씨
  2. 경주 배씨
  3. 경주 이씨
  4. 경주 최씨
  5. 철원 최씨
  6. 해주 최씨
  7. 공암 허씨
  8. 청주 이씨
  9. 파평 윤씨
  10. 이천 서씨
  11. 동래 정씨
  12. 청주 한씨
  13. 문화 유씨
  14. 김해 김씨
  15. 경원 이씨 = 인주 이씨·인천 이씨
  16. 안산 김씨
  17. 안동 권씨
  18. 봉화 금씨
  19. 능성 구씨
  20. 밀양 손씨
  21. 천녕 견씨
  22. 금천 강씨(衿川姜氏)
  23. 교하 노씨
  24. 정안 임씨
  25. 온양 방씨
  26. 남양 방씨

이 중 실제 고려시대 사료에서 해동갑족이라는 표현이 직접 확인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경원 이씨 계통이다.[1]

또 광양 김씨 계통의 묘지명에서도 집안을 해동의 갑족이라고 직접 표현한다.[2]

반면 위의 모든 성씨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수준의 권력을 누렸고 모두 공식적으로 해동갑족으로 분류됐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본관 하나의 역사가 수백 년에서 천 년을 넘어가면 고려 전기의 귀족계통, 조선시대의 양반계통, 현대의 같은 본관 사람들이 전부 같은 정치적 지위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경주 김씨 인구가 지금 수백만 명이라고 그 사람들이 전부 고려시대 갑족의 유산을 상속받은 귀족이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왜 명문가가 중요했나

고려 전기 사회에서는 개인의 시험성적만큼이나 출신 가문이 정치적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제도가 있었지만 고위 관료의 자손은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할 수도 있었고, 귀족가문끼리 통혼하면서 정치적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왕실 역시 유력 가문의 딸을 왕비로 맞으면서 이들과 관계를 형성했다.

경원 이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러 왕비를 배출하면서 왕실 외척으로 성장했고 이자겸 때는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영원히 유지된 것은 아니다.

1170년 무신정변 이후 기존 문벌귀족 정치질서가 큰 타격을 입었고, 몽골과의 전쟁과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권력집단이 성장했다.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러므로 원문의 신라 초기부터 고려 무신의 난 전까지의 개국공신 성씨라는 설명이 완전히 뜬금없는 방향은 아니다. 실제로 고려 전기의 오래된 귀족가문과 연결해서 이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국공신 성씨들 전체를 해동갑족이라는 하나의 공식 계급으로 묶었다고 보면 틀린다.

족보에서의 사용

해동갑족이라는 표현은 후대의 족보나 문집에서도 자기 가문의 유서 깊음을 강조하는 말로 계속 사용됐다.

족보 서문에서 우리 가문은 해동갑족이다라고 써놓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연히 족보는 자기 조상 자랑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볼 때는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현대 회사 자기소개서로 치면 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딩 컴퍼니정도의 문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진짜 업계 1위일 수도 있고 그냥 본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동갑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짜라는 뜻도 아니다. 고려시대 당대 자료에서 이미 실제 사용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정리

해동갑족에 대해 가장 헷갈리는 부분은 세 가지를 섞어서 보는 것이다.

첫째, 해동갑족이라는 표현 자체는 실제 고려시대에도 존재했다. 12세기 묘지명에서 유력 문벌을 해동의 갑족이라고 직접 부른 사례가 확인된다.

둘째, 특정 10개 가문으로 구성된 공식 정치조직은 확인되지 않는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나오는 해동갑족 10대 가문은 드라마 설정이다.

셋째, 후대 족보와 인터넷에서 해동갑족으로 불리는 성씨 목록은 매우 많다. 이 목록들을 역사적으로 공인된 하나의 명단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

그래서 해동갑족을 굳이 현대어로 옮기면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라의 최고급 명문거족정도로 이해하면 가장 무난하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