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 |
| 국적 | 대한민국 |
|---|---|
| 출생지 | 전라북도 전주부 |
| 본관 | 남양 홍씨 |
| 학력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학사 |
| 직업 | 미술기관인, 미술품 수집가 |
홍라희(洪羅喜, 1945년 7월 15일 ~ )는 대한민국의 미술기관인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삼성그룹 제2대 회장 이건희의 배우자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어머니다.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의 관장을 역임했으며, 2025년부터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9대 법무부 장관과 제19대 내무부 장관, 중앙일보 회장을 지낸 홍진기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와 결혼하면서 삼성가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후 중앙일보와 삼성문화재단 등에서 활동했다.
1995년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 뒤 2004년 리움미술관의 개관과 운영을 이끌면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술품 수집가이자 문화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한국의 고미술품뿐 아니라 국내외 근현대미술 작품의 수집과 전시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삼성의 미술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20년 이건희가 사망한 이후에는 삼성그룹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으며, 유족들과 함께 고인의 문화재와 미술품 약 2만 3,000점을 국가에 기증하는 데 참여했다. 2026년에는 보유한 삼성 계열사의 주식을 아들 이재용에게 매도하거나 증여하면서 삼성가의 지분구조 변화에도 관여하고 있다.
개요
삼성그룹의 안주인이자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아 온 인물.
홍라희는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의 총수 가문에 속한 인물이지만, 단순히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삼성문화재단과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의 운영에 관여하면서 한국의 사립미술관 발전과 미술품 수집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홍라희가 주목받는 분야는 미술품 수집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생전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미술품 수집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이건희 역시 부친의 수집 활동을 이어받아 한국 문화재와 국내외 미술품을 수집했다. 홍라희는 이러한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 활동에 참여하면서 고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 분야에도 관심을 확대했고, 국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확보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리움미술관이 개관했다. 리움은 한국의 전통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함께 전시하는 사립미술관으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과 수준 높은 소장품으로 주목받았다. 홍라희는 미술관의 개관과 운영을 이끌면서 한국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다만 삼성가의 막대한 자산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미술품 수집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민간 자본을 활용하여 문화재를 보존하고 세계적인 미술품을 국내에 소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재벌가에 집중된 경제력이 미술시장의 가격 형성과 작품 유통, 미술관 운영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홍라희는 삼성가의 일원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했지만, 동시에 미술관 운영과 수집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형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동안, 홍라희는 삼성의 막대한 자본과 수집품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생애
출생과 성장
홍라희는 1945년 7월 15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진기는 당시 법조계에서 활동하던 인물로, 이후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중앙일보의 경영에도 참여했다. 어머니 김윤남은 홍진기의 배우자로, 홍라희는 두 사람의 장녀였다.
홍라희라는 이름에는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당시 아버지 홍진기가 전주에서 근무하던 중 딸을 얻자 전라도의 '라'(羅)와 기쁨을 뜻하는 '희'(喜)를 결합하여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홍라희는 이후 서울에서 성장하면서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했으며, 1967년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오늘날보다 훨씬 낮았으며, 특히 미술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여성의 사회 진출도 제한적이었다. 홍라희는 이러한 시기에 미술을 전공했으며, 이후에도 문화예술 분야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활동했다.
이건희와의 결혼
홍라희는 1967년 이건희와 결혼했다. 당시 이건희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셋째 아들로, 훗날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에는 양가의 오랜 친분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병철과 홍진기는 1950년대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후 두 집안은 혼인을 통해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66년 일본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만났으며, 이후 양가의 주선으로 교제를 이어갔다. 1967년 약혼과 결혼이 이루어졌으며, 홍라희는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는 1남 3녀가 태어났다. 장남 이재용은 삼성전자의 회장이 되었으며, 장녀 이부진은 호텔신라의 경영을 맡았다. 차녀 이서현 역시 삼성 계열사와 문화사업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막내딸 이윤형은 2005년 사망했다.
홍라희의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개인적인 혼인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 가문인 삼성가와 법조·언론계에서 성장한 홍진기 가문이 혼인을 통해 연결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홍라희를 이건희의 배우자라는 신분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의 이후 활동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결혼 이후에도 중앙일보와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미술관 운영과 미술품 수집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중앙일보에서의 활동
홍라희는 1975년 7월 중앙일보 출판문화부 부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앙일보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으며,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중앙일보는 홍라희의 아버지 홍진기가 경영에 깊이 관여했던 언론사였다. 따라서 홍라희의 언론사 활동은 친정 가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경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홍라희의 사회적 활동은 언론사 경영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는 미술계와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 삼성문화재단 이사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삼성의 문화사업에 관여했다.
19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며, 1998년까지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후에도 한국메세나협회와 예술의전당 후원회 등 여러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경력은 홍라희가 삼성가의 재정적 기반과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하여 미술관과 문화사업을 운영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1]
미술관 활동
호암미술관 관장
1995년 1월 홍라희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의 관장으로 취임했다. 호암미술관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평생 수집한 한국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바탕으로 1982년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이병철은 고미술과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도자기와 회화, 불교미술 등 여러 분야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러한 소장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홍라희는 관장에 취임한 이후 고미술품의 전시와 연구, 문화재의 보존, 관람객을 위한 교육사업 등을 추진했다. 또한 해외의 주요 미술관과 교류하면서 한국 문화재를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홍라희는 단순한 개인 수집가를 넘어 미술관 운영을 담당하는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호암미술관의 운영 경험은 훗날 리움미술관을 개관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리움미술관 개관
2004년 10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했다.
리움이라는 명칭은 삼성가의 성씨인 이(Lee)와 미술관(Museum)을 결합한 것이다. 미술관은 한국의 전통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함께 소개하는 복합적인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을 담당했다.
특히 리움의 건축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건축적 특징을 가진 공간을 결합하여 하나의 미술관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리움은 개관 당시부터 주목받았다.
홍라희는 리움의 개관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기존 호암미술관장 직책과 함께 리움미술관장도 맡았다.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뿐 아니라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와 수집 활동에 관여하면서 미술관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리움은 삼성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국내의 다른 사립미술관보다 큰 규모의 소장품과 전시시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해외 주요 미술관과 협력하여 국제적인 수준의 전시를 개최하는 등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만 리움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이다. 따라서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과는 운영 주체와 재정구조가 다르다.
미술품 수집 활동
홍라희는 한국 미술계에서 대표적인 미술품 수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은 이병철에서 이건희, 홍라희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병철이 주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미술품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건희와 홍라희는 한국의 근현대미술과 해외의 현대미술 작품까지 수집 범위를 확대했다.
홍라희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한국의 주요 근현대미술 작가들뿐 아니라 마크 로스코,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미언 허스트 등 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삼성가의 모든 미술품을 홍라희 개인이 소유하거나 직접 구매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삼성가의 미술품은 이병철과 이건희의 개인 소장품, 홍라희의 개인 소장품, 삼성문화재단의 소장품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작품마다 실제 소유자와 수집 경위가 달랐다.
이러한 소장품들은 리움과 호암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며, 한국 미술품의 보존과 현대미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집단이 미술품을 대규모로 구매하면서 국내 미술시장의 가격과 작품 유통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삼성의 미술품 수집이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대기업과 재벌가에 집중된 미술시장의 영향력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 문화교류와 후원
홍라희는 국내 미술관 운영뿐 아니라 해외의 주요 미술관과 문화교류 사업에도 참여했다.
삼성문화재단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기메미술관 등에서 한국 문화와 미술을 소개하는 사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해외 관람객들이 한국의 문화재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또한 삼성어린이박물관과 로댕갤러리 등 문화시설의 운영에도 관여했으며, 예술가와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후원활동도 전개했다.
2003년에는 이러한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가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홍라희가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미술문화 발전과 국제 문화교류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2]
관장직 사퇴와 복귀
2008년 첫 번째 사퇴
2007년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 의혹이 제기되면서 삼성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홍라희 역시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이용하여 고가의 해외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미술품의 실제 소유자와 구입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했으며, 홍라희는 2008년 4월 2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홍라희는 자신이 보유한 미술품을 개인 자금으로 구입했으며, 삼성의 비자금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후 특검팀은 홍라희의 미술품 구매 의혹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삼성그룹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면서 이건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홍라희 역시 2008년 6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 및 삼성문화재단 이사직에서 사퇴했다.
이는 홍라희가 19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삼성의 주요 미술관 운영에서 물러난 사건이었다.
다만 홍라희가 관장직을 사퇴했다는 사실과 미술품 구매 의혹이 형사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검은 관련 의혹을 조사했지만 홍라희의 미술품 구매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3]
2011년 복귀
2008년 사퇴 이후 홍라희는 약 2년 9개월 동안 미술관 운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건희가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한 이후 홍라희의 미술관 복귀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결국 2011년 3월 홍라희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다시 미술관의 전시와 소장품 관리, 해외 문화교류 등에 관여했으며, 한국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활동했다.
이 시기 리움은 한국의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해외 현대미술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를 지속했으며, 국내외의 주요 작가와 미술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홍라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미술관 운영에 복귀했지만, 이후 2017년 삼성그룹을 둘러싼 정치·사법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17년 두 번째 사퇴
2017년 3월 6일 홍라희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서 다시 사퇴했다.
당시 삼성문화재단은 홍라희가 일신상의 이유로 관장직을 내려놓았다고 발표했으며, 구체적인 사퇴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퇴가 이루어진 시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로 아들 이재용이 구속된 직후였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홍라희의 사퇴가 이재용의 구속과 삼성그룹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삼성문화재단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였으므로, 이를 반드시 특정 사건 하나만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홍라희가 관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동생 홍라영 등이 미술관 운영을 맡았으며, 이후 딸 이서현이 리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미술관의 운영에 관여했다.[4]
2025년 명예관장 복귀
2025년 4월 홍라희는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복귀했다.
삼성문화재단은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호암미술관에서 개최한 특별전 《겸재 정선》의 개막에 맞춰 홍라희를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추대했다.
홍라희는 2025년 3월 31일 열린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으며, 전시 도록에 인사말을 싣는 등 공식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재개했다.
이는 2017년 관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약 8년 만의 공식 복귀였다.
다만 명예관장은 과거의 실무 관장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홍라희가 2025년에 과거와 완전히 동일한 권한을 가진 정식 관장으로 다시 취임했다고 설명하기보다는, 명예관장으로 복귀했다고 구분하는 것이 정확하다.
2026년 10월 기준 홍라희의 공식적인 미술관 관련 직함은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다.[5]
삼성가와의 관계
이건희의 배우자
홍라희는 1967년 이건희와 결혼한 이후 약 53년 동안 혼인관계를 유지했다.
이건희는 1987년 이병철의 사망 이후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으며, 이후 반도체와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삼성의 사업을 크게 확대했다.
홍라희는 이러한 과정에서 삼성가의 가족 구성원이자 문화사업의 주요 운영자로 활동했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나 경영전략 등을 직접 결정한 최고경영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건희의 기업 경영 성과를 홍라희의 직접적인 경영 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홍라희가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분야는 삼성의 미술품 수집과 미술관 운영, 문화예술 후원사업이었다.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홍라희는 배우자와 사별했다.
이후 이건희가 남긴 재산의 상속 문제와 미술품 기증, 삼성 계열사의 지분 이전 등이 진행되면서 홍라희는 삼성가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가족관계
홍라희는 홍진기와 김윤남 사이에서 태어난 4남 2녀 가운데 장녀다.
남동생으로는 중앙일보와 JTBC의 경영에 관여한 홍석현, BGF그룹의 경영자로 활동한 홍석조, 사업가 홍석준과 홍석규가 있으며, 여동생 홍라영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총괄부관장을 지냈다.
배우자인 이건희와의 사이에서는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등 네 자녀를 두었다.
| 관계 | 인물 | 주요 사항 |
|---|---|---|
| 아버지 | 홍진기 | 전 법무부·내무부 장관, 중앙일보 회장 |
| 어머니 | 김윤남 | 홍진기의 배우자 |
| 남동생 | 홍석현 | 전 중앙일보 회장, 전 주미대사 |
| 남동생 | 홍석조 | BGF그룹 경영자 |
| 여동생 | 홍라영 | 전 리움미술관 총괄부관장 |
| 배우자 | 이건희 | 삼성그룹 제2대 회장(2020년 사망) |
| 장남 | 이재용 | 삼성전자 회장 |
| 장녀 | 이부진 | 호텔신라 대표이사 |
| 차녀 | 이서현 | 삼성물산 사장,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 |
| 삼녀 | 이윤형 | 2005년 사망 |
홍라희의 친정은 언론과 법조·경제계에서 활동해 온 가문이며, 혼인 이후에는 삼성그룹의 총수 가문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가족관계는 한국의 재벌과 언론사, 법조계의 인적 관계를 이해할 때 종종 언급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만 가족관계만으로 각 인물의 정치적·경제적 활동이 모두 동일한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2021년 4월 28일 이건희의 유족들은 고인이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와 미술품 약 2만 3,000점을 국가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기증된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누어 전달되었으며, 한국의 고미술품과 근현대미술 작품,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등이 포함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이중섭의 《황소》 등 여러 국보급 문화재와 미술품이 있다.
기증 규모는 총 1만 1,023건, 약 2만 3,000점으로 발표되었으며, 이는 한국에서 개인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한 사례 가운데 매우 큰 규모에 해당했다.
홍라희는 이건희의 배우자이자 유족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러한 기증 결정에 참여했다.
다만 이 기증을 홍라희 개인이 소유한 미술품을 전부 국가에 기증한 사건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당시 기증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고 이건희의 소장품이었으며, 삼성가 전체의 미술품이 모두 포함된 것도 아니었다.
기증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했으며, 한국의 주요 지역 미술관에서도 순회전이 열렸다.
이로써 이전에는 일반 관람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공공 미술관에서 전시될 수 있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삼성가가 수집해 온 문화재와 미술품의 상당수가 국가에 기증되면서 일반 국민들이 이를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기증의 규모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 과정과 작품의 소유구조, 기증관 건립 비용 및 운영방식 등에 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는 대규모 개인 소장품이 공공의 문화재산으로 이전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쟁점을 보여준다.[6]
삼성 계열사 지분과 상속
이건희 사망 이후의 상속
2020년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삼성가에는 막대한 규모의 상속재산과 상속세 문제가 발생했다.
이건희가 남긴 재산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의 주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유족들은 이러한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약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납부해야 했다.
홍라희는 배우자로서 상속재산의 일부를 취득했으며, 이재용과 이부진, 이서현 등 자녀들과 함께 상속세 납부를 진행했다.
유족들은 2021년부터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세금을 마련했다.
2026년 4월에는 홍라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1,500만 주를 약 3조 1,000억 원에 매각했으며, 이를 통해 삼성가의 상속세 분할 납부가 마무리되었다고 보도되었다.[7]
다만 상속세 납부와 관련한 주식 매각, 개인적인 자산관리, 가족 간 지분 이전은 각각 법적·경제적 성격이 다르므로 이를 모두 동일한 거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2026년 이재용에게 지분 이전
2026년 홍라희는 자신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의 주식을 아들 이재용에게 이전하는 거래를 진행했다.
2026년 1월에는 삼성물산 주식 180만 8,577주를 이재용에게 증여했다. 이에 따라 이재용의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율은 약 19.93%에서 20.99%로 높아졌다.
같은 해 9월 9일에는 삼성전자 보통주 718만 8,793주를 이재용에게 장외매도했다. 거래금액은 약 1조 9,374억 원이었으며,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47%에서 1.58%로 높아졌다. 언론에서는 홍라희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받은 금융기관 대출을 상환하기 위한 거래였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구체적인 매도 목적이 공식적으로 모두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이어 2026년 10월 13일에는 삼성전자가 홍라희의 삼성전자 주식 1,115만 8,000주를 이재용에게 증여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당시 종가를 기준으로 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거래였으며, 예정대로 증여가 완료되면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58%에서 1.75%로 높아지고 홍라희의 지분율은 0.98%에서 0.81%로 낮아지게 된다.
다만 2026년 10월 18일 기준 증여 예정일은 같은 해 11월 12일이므로, 해당 주식 증여가 이미 완료되었다고 서술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련의 거래는 삼성가 내부의 주식 소유구조가 변화하고 있으며, 이재용의 주요 계열사 지분이 확대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8]
논란과 평가
삼성 비자금 특검과 미술품 구입 의혹
2007년 삼성그룹 내부의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면서 홍라희의 미술품 수집 활동도 수사 대상이 되었다.
당시 삼성의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비자금으로 해외의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 등 고가의 미술품이 의혹의 대상으로 언급되었다.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홍라희를 소환하여 관련 미술품의 소유권과 구입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했다.
홍라희는 미술품을 개인 자금으로 구입했으며,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행복한 눈물》은 개인이 소유한 작품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빌려서 보관했던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후 특검은 홍라희의 미술품 구매와 관련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설명할 때 삼성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사실과 수사 결과 홍라희의 관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함께 서술해야 한다.
다만 삼성그룹 전체의 비자금 및 경영권 승계 관련 의혹과 홍라희 개인의 미술품 구매 의혹은 구분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의 영향력
홍라희는 삼성의 재정적 기반과 미술품 수집 활동, 미술관 운영 경력 등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리움미술관은 국내에서 중요한 사립미술관 가운데 하나로 발전했으며, 국내외의 유명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와 소장품 연구 등을 수행했다.
또한 삼성문화재단을 통한 문화예술 후원활동과 해외 미술관의 한국관 설치 지원 등은 한국 미술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에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집단의 막대한 자본이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소수의 대규모 수집가가 국내 미술시장의 주요 작품을 구매하고 미술관 운영을 통해 전시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미술계의 다양성과 시장의 투명성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따라서 홍라희의 문화예술 활동은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에 대한 기여와 함께, 재벌가의 경제력이 문화예술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홍라희는 삼성가의 막대한 경제적 기반을 활용하여 한국의 사립미술관 발전과 미술품 수집에 관여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미술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여담
- 홍라희는 1945년 7월 15일에 태어났다. 광복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으로, 출생 당시의 행정구역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전주부였다.
- 이름의 한자는 洪羅喜다.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아버지 홍진기는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중앙일보의 경영에 관여했다.
- 홍라희는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대학을 졸업했으며, 같은 해 이건희와 결혼했다.
- 이건희와의 결혼은 양가의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사람이 일본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 홍라희는 장남 이재용과 세 딸 이부진·이서현·이윤형을 두었다. 막내딸 이윤형은 2005년 사망했다.
- 동생 홍석현은 중앙일보와 JTBC의 경영에 관여했으며, 홍석조는 BGF그룹의 경영자로 활동했다.
- 여동생 홍라영도 미술관 운영에 참여했으며, 리움미술관의 총괄부관장을 지냈다.
- 홍라희는 1975년부터 중앙일보 출판문화부에서 일했고,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중앙일보 상무이사를 지냈다.
- 19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했으며,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 이후 두 미술관의 관장직을 맡았다.
- 2003년에는 문화예술 발전과 국제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되었다.
- 리움미술관의 이름은 이씨 성을 영어로 표기한 Lee와 미술관을 의미하는 Museum의 합성어다.
- 리움미술관의 건축에는 마리오 보타와 장 누벨, 렘 콜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 홍라희는 한국의 고미술품뿐 아니라 국내외 현대미술에도 관심이 많은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크 로스코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과 관련된 수집 활동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고가 미술품 구매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특검은 관련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홍라희는 2008년 미술관 관장직에서 사퇴했다가 2011년 복귀했으며, 2017년 다시 물러났다.
- 2025년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한 호암미술관 특별전 《겸재 정선》의 개막에 맞춰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복귀했다.
- 2021년 이건희의 유족들이 약 2만 3,000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홍라희 역시 기증에 참여한 유족 가운데 한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 2026년에는 삼성물산 주식의 증여와 삼성전자 주식의 매매·증여 계획 등을 통해 아들 이재용에게 삼성 계열사 지분을 이전했다.
- 2026년 10월 발표된 삼성전자 주식 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증여는 같은 해 11월 12일이 예정일이다. 따라서 실제 거래 완료 여부는 이후의 공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서울대학교 - 2003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홍라희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창회 - 홍라희 약력
- 리움미술관·호암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 연합뉴스 - 홍라희 삼성미술관·호암미술관 관장 사퇴, 2017년 3월 6일
- 뉴시스 - 홍라희, 8년 만에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복귀, 2025년 4월 2일
- 연합뉴스 - 홍라희 삼성 비자금 특검 소환조사, 2008년 4월 2일
- 한국경제 - 삼성 미술품 특검과 무혐의 결정, 2008년 4월 17일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국가 기증, 2021년 4월 28일
- 연합뉴스 - 삼성가 상속세 완납과 홍라희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2026년 4월 9일
- 연합뉴스 - 홍라희 삼성전자 주식 이재용에게 매도, 2026년 9월 9일
- 연합뉴스 - 홍라희, 이재용에게 삼성전자 주식 증여 계획 공시, 2026년 10월 13일
각주
-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창회 - 홍라희 약력
- ↑ 서울대학교 - 2003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홍라희
- ↑ 한국경제 - 삼성 미술품 특검과 홍라희의 무혐의 결정, 2008년 4월 17일
- ↑ 연합뉴스 - 홍라희 삼성미술관·호암미술관 관장 사퇴, 2017년 3월 6일
- ↑ 뉴시스 - 리움미술관 홍라희, 8년 만에 명예관장으로 복귀, 2025년 4월 2일
-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약 2만 3,000점 기증, 2021년 4월 28일
- ↑ 연합뉴스 - 삼성가 상속세 완납과 홍라희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2026년 4월 9일
- ↑ 연합뉴스 - 이재용, 홍라희 주식 1,116만 주 증여받아 지분율 상승 예정, 2026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