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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29일 (금) 06:55 판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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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법조인 출신 인물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권력 핵심부에서 활동했으며, 별명은 6공 황태자. 흔히 노태우의 처남이라고 대충 불리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 쪽 친척이다. 언론에서는 보통 노태우의 사촌 처남 또는 김옥숙의 고종사촌동생 정도로 설명한다. 아무튼 6공화국 시절에는 그냥 친척 A가 아니라, 권력 실세 중의 실세였다.

개요

1942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왔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로 일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을 거치며 권력 핵심부에 들어갔다. 특히 노태우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정책보좌관, 정무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지냈다. 제13대, 제14대, 제15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그냥 정치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권력 핵심에 있었고, 그냥 친인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6공 황태자다. 별명 하나는 진짜 시대 분위기를 잘 압축한다.

생애

검사에서 권력 핵심으로

박철언은 원래 검사 출신이다. 법조인으로 출발했지만 1980년대 신군부 체제에서 정치권과 권력기관 쪽으로 이동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법제사법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청와대 정무비서관,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이 시점부터 이미 단순한 공무원 테크가 아니라 권력 내부 테크를 타기 시작한 셈이다.

노태우의 측근

박철언은 노태우와 인척 관계였고, 동시에 정치적 측근이었다.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이후 정권 운영 과정에서 박철언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박철언은 대통령정책보좌관, 정무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맡았다. 당시 그는 청와대, 여당, 대북 라인, 정무 라인을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알려졌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그냥 장관 1명이 아니라, 정권 안의 운영체제 일부였던 셈이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6공 황태자

박철언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말이 6공 황태자다. 제6공화국 초반 노태우 정권에서 박철언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당시 그는 민정계 내부 권력 구도, 공천, 대북 접촉, 북방정책 등 굵직한 정치 현안과 연결되어 있었다. 노태우 정부가 소련, 중국, 동구권과 관계를 넓히던 시기였고, 남북관계에서도 여러 비공식 접촉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좋게 보면 냉전 말기 한국 외교의 전환기에 움직인 책사다. 나쁘게 보면 민주적 통제보다 권력 내부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던 시절의 비선 실세다. 이 양면성이 박철언이라는 인물을 복잡하게 만든다.

3당 합당과 김영삼과의 대립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지자,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가 한 당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은 거창한 보수대연합인데, 실제로는 한 냄비에 서로 다른 재료를 다 때려넣은 정치 잡탕찌개였다. 박철언은 노태우계 핵심 인물이었다. 반면 김영삼은 민주계의 거물이었다. 둘은 민자당 내부 권력 구도와 차기 대권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특히 내각제 개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컸다. 박철언 쪽은 내각제 개헌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고, 김영삼은 대통령 직선제 아래에서 차기 대권을 노렸다. 결국 김영삼이 민자당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서 판은 뒤집혔다. 한때 황태자였던 사람이 문민정부 들어서는 정리 대상이 된 것이다. 권력은 진짜 회전문이다. 어제 문지기였던 사람이 오늘은 문밖에 서게 된다.

슬롯머신 사건

박철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추락 지점은 슬롯머신 사건이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슬롯머신 업계 비호 세력 수사가 벌어졌고, 박철언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홍준표 검사가 이름을 알린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박철언 측은 이 사건을 김영삼 정권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문민정부 쪽에서는 5공·6공 시절 권력형 비리를 청산한 사건으로 봤다. 어느 쪽 해석을 택하든 결과는 분명했다. 6공 황태자의 몰락이었다. 그 뒤 박철언은 예전 같은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행보

박철언은 이후에도 정치권에 남아 활동했다. 통일국민당, 자유민주연합 등으로 옮기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고, 제15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하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사실상 정계 일선에서는 물러났다. 이후에는 변호사, 시인, 통일 관련 단체 활동 등으로 모습을 보였다. 2021년 노태우가 사망했을 때에는 빈소를 지킨 인물로 언론에 다시 언급되었다. 노태우 정권의 최측근이었다는 상징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셈이다.

평가

긍정적 평가

박철언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관계 개선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냉전 말기 국제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에 한국이 소련, 중국, 동구권과 관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실무적·정무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치 감각과 정무 능력은 확실히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괜히 황태자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권력판은 의외로 냉정해서, 무능한 놈은 오래 못 버틴다.

부정적 평가

반대로 박철언은 5공·6공식 권력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친인척, 측근 정치, 밀실정치, 비선 영향력, 권력형 비리 의혹 같은 단어들이 그의 이름 주변에 따라붙는다. 특히 슬롯머신 사건은 박철언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망가뜨렸다. 본인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중에게는 “6공 황태자 → 슬롯머신 사건 → 몰락”이라는 서사가 강하게 남았다. 또한 노태우 정권의 친인척 관리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자주 거론된다. 노태우가 전두환과 달리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더라도, 주변 권력 관리에서는 결코 깨끗한 그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담

별명은 6공 황태자. 노태우의 친처남은 아니고, 언론에서는 보통 사촌 처남으로 설명한다. 김옥숙과의 친척 관계 때문에 노태우 일가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홍준표가 검사 시절 유명해진 대표 사건 중 하나가 박철언이 연루된 슬롯머신 사건이다. 배우자 현경자도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노태우 사망 당시 빈소를 지키며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