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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구황작물(救荒作物)은 흉년이나 기근 등으로 식량이 부족해졌을 때 기존의 주식작물을 대신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재배하는 농작물을 말한다. 비황작물(備荒作物)이라고도 부르며, 일반적으로 고구마, 감자, 메밀, 조, 기장, 수수, 옥수수 등이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알려져 있다.

구황(救荒)은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에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농업기술과 식량의 보존·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뭄과 홍수, 냉해와 전쟁 등으로 농사를 망치면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쌀과 밀, 보리 등을 충분히 수확하지 못할 경우 다른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구황작물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농업적인 수단이었다. 메밀처럼 비교적 생육기간이 짧은 작물을 다시 심거나, 고구마처럼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활용하고, 감자처럼 서늘한 기후에서 생육하는 작물을 재배하여 식량생산의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모든 구황작물이 가뭄과 추위, 홍수에 동시에 강한 것은 아니다. 작물마다 적합한 재배환경이 다르며, 어떤 작물이 기근에 도움이 되는지도 지역의 기후와 토양, 재배시기 등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비교적 척박한 토양과 일시적인 건조에 견디는 능력이 있지만 추위와 서리에 약하다. 반면 감자는 서늘한 기후에서도 재배할 수 있지만 심한 가뭄에는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구황작물이라는 명칭만으로 모든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는 작물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사에서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엄이 1763년 일본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구해 조선에 보낸 사건이 구황작물 도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조엄은 고구마가 흉년에 부족한 식량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후 강필리와 이광려 등 여러 인물들이 재배와 보급에 기여했다.

그러나 조엄이 고구마를 가져오기 이전에도 조선에서는 메밀 등 여러 구황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국가 역시 식량 부족에 대비하여 구황서와 농서를 편찬하고 곡물을 비축하거나 운송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 후기까지 메밀이 주요 구황작물로 이용되었으며, 고구마와 감자 같은 새로운 작물의 도입과 확산은 이후의 농업과 식량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1]

오늘날에는 고구마와 감자를 간식이나 일반적인 식재료로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명칭과 정의

구황이라는 의미

구황(救荒)은 흉년이나 기근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황(荒)은 농사가 잘되지 않거나 흉년이 든 상태를 의미하며, 구(救)는 그러한 위기에서 구제한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에서는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곡식을 나누어 주거나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운송하고,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식물 등을 식량으로 활용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틀어 구황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구황은 단순히 새로운 농작물을 재배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의 구휼정책과 곡물의 비축, 구황식품의 확보, 식량을 배분하는 제도 등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

구황작물의 특징

구황작물은 일반적으로 식량생산이 어려워졌을 때 보조적인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작물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비교적 짧은 생육기간, 특정한 불리한 환경에 대한 적응력, 높은 식용 탄수화물 생산량, 다양한 재배환경에서의 활용 가능성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구황작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메밀은 재배기간이 짧아 일반적인 곡물의 파종시기를 놓쳤을 때 대체작물로 활용될 수 있다. 고구마는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도 일정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서리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감자는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 적합하여 한반도의 북부와 산간지방에서 중요한 식량작물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구황작물은 하나의 생물학적인 분류에 속하는 식물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식량 부족에 대비한다는 농업적·사회경제적 역할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념이다.

구황작물과 구황식품의 차이

구황작물과 구황식품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밀하게는 구분할 수 있다.

구황작물은 기근에 대비하거나 식량을 보완하기 위해 재배하는 농작물을 가리킨다. 반면 구황식품은 흉년에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더 넓게 의미한다.

구황식품에는 재배한 농작물뿐 아니라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야생식물, 나무의 열매와 껍질 등도 포함된다.

구분 구황작물 구황식품
기본 의미 식량 부족에 대비하여 재배하는 작물 흉년에 식량을 대신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먹는 식품
대표적인 사례 고구마, 감자, 메밀, 조, 기장 등 고구마, 감자, 메밀, 도토리, 칡뿌리, 산나물 등
확보 방법 주로 농사를 통해 생산 재배·채취·가공 등 다양한 방법
분류 기준 농업적인 재배와 식량생산 식량 부족 시의 실제 식용 가능성
범위 상대적으로 좁음 구황작물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

예를 들어 도토리는 과거 기근이 발생했을 때 중요한 식량으로 이용되었지만, 자연에서 자라는 참나무의 열매를 채취한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구황작물보다는 구황식품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소나무 껍질이나 칡뿌리 등도 기근에 활용된 기록이 있지만 이를 모두 구황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조선시대의 구황식품으로 칡뿌리와 메밀꽃, 도토리와 고사리, 소나무 껍질 등을 설명하고 있다.[2]

대표적인 구황작물

작물 주요 특징 구황에 활용되는 이유 주의할 점
고구마 덩이뿌리를 먹는 작물 탄수화물 생산량이 높고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도 재배 가능 추위와 서리, 과습에 약함
감자 덩이줄기를 먹는 작물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고 서늘한 지역에서도 재배 가능 가뭄과 병해에 취약할 수 있음
메밀 생육기간이 짧은 작물 다른 곡물의 재배에 실패했을 때 대체 파종 가능 고온과 과습, 생육기의 기상조건에 영향받음
조 전통적인 잡곡 품종에 따라 건조한 환경에 적응력이 높음 수확량과 기상 적응력에 품종별 차이가 있음
기장 전통적인 잡곡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고 건조지역에서 재배 가능 토양과 기후에 따라 생산량 차이 발생
수수 잡곡 및 사료작물 일부 품종의 내건성이 높음 추위와 생육환경에 따른 제약 존재
옥수수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 다양한 기후에서 재배할 수 있고 식량·사료로 활용 생육기의 가뭄과 고온에 따라 생산량 감소 가능
카사바 열대지역의 뿌리작물 비교적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환경에서도 재배 가능 독성물질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가공 필요

※ 작물별 특징은 일반적인 경향을 설명한 것이며, 실제 재배 가능성과 수확량은 품종 및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고구마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작물로, 땅속에서 비대해진 뿌리를 식량으로 이용한다.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며, 이후 세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고구마의 대표적인 장점은 식용할 수 있는 탄수화물을 비교적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재배조건에서는 비옥도가 낮은 토양에서도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일시적인 건조에도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다.

반면 고구마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며 추위와 서리에 약하다. 따라서 재배할 수 있는 지역과 계절에 제약이 있으며, 겨울철 종자를 보관하는 과정에서도 냉해와 부패가 발생할 수 있다.

고구마는 삶거나 굽는 방식으로 먹을 수 있으며, 가루나 전분으로 가공하여 여러 음식의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현대에는 간식과 건강식품, 가공식품의 원료로 널리 이용되지만 역사적으로는 식량 부족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작물로 주목받았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고구마가 여러 종류의 토양에서 재배할 수 있고 일정한 건조조건에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수확한 고구마의 보존기간과 병해충 피해 등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3]

조엄의 고구마 도입

1763년 조선통신사의 정사로 일본에 파견된 조엄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했다.

그는 고구마가 여러 방식으로 먹을 수 있고 흉년에 부족한 식량을 보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고구마의 종자를 확보하여 부산진으로 보냈다.

1764년 귀국길에도 다시 고구마를 구해 조선에서 재배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엄이 남긴 《해사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최초로 확보한 종자는 보관과 월동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조선의 환경에서 고구마를 실제로 재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했다.

강필리와 이광려

강필리와 이광려는 조선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고 보급하는 과정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이광려는 조엄이 종자를 가져오기 이전부터 중국의 농업서적을 통해 고구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고구마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외국에서 종자를 구하려고 했다.

강필리는 동래부사로 재임하면서 고구마의 재배방법을 연구했고, 그 성과를 《감저보》(甘藷譜)로 정리했다.

이후 김장순과 선종한 등이 《감저신보》(甘藷新譜, 1813년)를 편찬했으며, 서유구도 《종저보》(種藷譜, 1834년)를 통해 고구마의 재배법을 소개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고구마는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점차 재배되기 시작했다.[4]

전국적인 보급

고구마가 조선에 전래된 1763년과 전국적인 식량작물로 정착한 시점은 구분해야 한다.

도입 초기에는 주로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재배가 이루어졌다. 중부와 북부에서는 겨울철 종자의 보존과 재배기술 부족 등으로 보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농민들이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려면 종자를 확보하고 재배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전국으로 확산하기 어려웠다.

고구마가 한반도 전역으로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15년 무렵 고구마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재배가 더욱 확대되었다고 설명한다.[5]

따라서 조엄이 고구마를 가져온 뒤 곧바로 조선 전체의 기근이 해결되었다는 설명은 부정확하다.

고구마 몇 개를 외국에서 가져오는 것과 그 작물을 수많은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감자

감자는 가지과에 속하는 작물로, 땅속줄기가 비대해진 덩이줄기를 먹는다. 고구마와 비슷한 식량으로 이용되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계통에 속한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일대다.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세계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식량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감자는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따라서 고구마와 비교하면 한반도의 북부와 고지대에서 재배하기에 유리한 면이 있다.

또한 적절한 조건에서 단위면적당 상당한 양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으며, 수확한 감자를 보관하여 이후에 먹거나 다음 해의 씨감자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감자가 모든 자연재해에 강한 것은 아니다. 생육기의 수분 부족은 수확량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병해충과 저장 중 부패에도 주의해야 한다.

조선으로의 전래

고구마가 18세기에 조선에 도입된 것과 달리 감자는 19세기 전반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1824~1825년 무렵 감자가 북쪽 국경지대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감자가 유입된 정확한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존재한다. 청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감자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다른 경로를 통해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감자를 특정한 한 사람이 어느 날 처음 가져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감자의 전래에 관한 북방설과 남방설을 소개하면서, 정확한 연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1824~1825년 무렵의 유입 기록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6]

북부지방의 구황작물

감자는 고구마보다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하기에 유리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북부와 동부 산간지역 등을 중심으로 점차 재배가 확대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 북부와 동부지방에서 빠르게 보급되어 고구마보다 넓은 지역에서 활용되었다고 설명한다.[1]

이러한 사실은 구황작물의 적합성이 지역마다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부지방에서는 고구마가 식량작물로 활용되기 쉬웠지만, 서늘한 지역에서는 감자가 더 적합할 수 있었다.

또한 감자는 조선 후기 이후 농업과 식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음식과 가공식품의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메밀

메밀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구황작물 가운데 하나다.

메밀은 벼나 보리와 같은 화본과 식물이 아니지만 곡물처럼 종자를 수확하여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작물을 가곡류(假穀類) 또는 유사곡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밀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다는 점이다. 품종과 재배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파종한 뒤 약 2~3개월 안에 수확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기존의 농작물을 제대로 심지 못했거나 재해로 농사를 망쳤을 때 대체작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여름철의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기존 작물의 재배가 어려워졌더라도 남은 생육기간이 충분하다면 메밀을 파종하여 가을에 식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메밀도 생육기의 기상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고온과 과습, 서리 등에 따라 수확량이 감소할 수 있으므로 언제나 안정적인 작물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대표 구황작물

조선에서는 고구마와 감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메밀을 구황작물로 활용하고 있었다.

메밀은 재배기간이 짧아 흉년이나 파종 실패에 대응하는 데 유용했다. 또한 수확한 메밀을 가루로 만들어 여러 음식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조선 정부도 기근이 발생했을 때 메밀을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거나 종자를 공급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 후기까지 메밀이 구황을 위해 주로 재배된 작물이었으며, 조선 초부터 국가가 기근에 대응하여 메밀 등의 종자를 운송했다고 설명한다.[7]

따라서 구황작물의 역사를 고구마나 감자가 도입된 18~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고구마가 등장하기 수백 년 전부터 조선 사람들은 이미 메밀을 이용하여 흉년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밀과 식생활

메밀은 오늘날 메밀국수와 메밀묵, 메밀전병과 같은 여러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과거 메밀의 의미는 현대의 별미나 향토음식이라는 이미지와 달랐다.

메밀은 쌀과 보리 등 주요 곡물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때 식량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농작물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는 문화에도 과거의 농업환경과 식량 부족에 대응했던 역사가 일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기장·수수

조

조는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재배된 곡물 가운데 하나다.

벼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분으로도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 존재하며, 논보다 밭에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는 밥과 죽, 떡 등 여러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과거에는 주요한 식량작물이었다.

따라서 조를 언제나 쌀을 대신하는 구황작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조 자체가 중요한 주식곡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환경에서 조의 재배가 식량 생산의 위험을 분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황작물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기장

기장 역시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재배된 곡물이다.

기장은 비교적 생육기간이 짧고 건조한 환경에서 재배할 수 있는 품종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식량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중요한 작물이 될 수 있었다.

기장은 밥과 죽, 떡 등 여러 음식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기장도 재배환경과 품종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단순히 가뭄에 절대로 피해를 받지 않는 작물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수수

수수는 곡물과 사료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되는 작물이다.

수수 가운데에는 가뭄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품종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건조한 지역의 식량자원으로 중요하게 이용되어 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수수밥과 수수떡 등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수수 역시 일조량과 온도, 강수량 및 토양조건 등에 영향을 받는다.

조와 기장, 수수는 모두 가뭄 등 불리한 조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곡물들이지만, 작물과 품종마다 재배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FAO는 일부 수수와 기장 품종이 건조한 환경에서 적응력을 보이며, 식량작물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8]

옥수수

옥수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원한 곡물로, 이후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옥수수는 식량과 사료, 전분과 가공식품 등의 원료로 폭넓게 활용된다. 일정한 재배조건에서는 높은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옥수수는 오랫동안 재배되어 왔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쌀과 다른 곡물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옥수수가 모든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재배되는 구황작물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다.

옥수수는 생육기의 수분 부족과 고온 등으로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옥수수의 구황작물로서의 가치는 지역적인 재배환경과 다른 작물의 생산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옥수수는 단순한 구황작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주요 식량·사료작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카사바

카사바는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뿌리작물로, 오늘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여러 열대지역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구황작물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한 기근 대비 작물 가운데 하나다.

카사바는 비교적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환경에서도 생육할 수 있으며, 뿌리에 탄수화물을 저장한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수확시기를 조절하여 땅속에 남아 있는 뿌리를 식량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카사바가 가뭄과 기근에 대비하는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는 카사바가 건조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수확시기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식량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9]

독성 문제

카사바에는 시안배당체라는 성분이 존재한다.

이 성분은 잘못 처리할 경우 유독한 시안화수소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식품으로 이용하려면 적절한 가공이 필요하다.

카사바는 품종과 재배조건에 따라 독성물질의 함량이 다르며, 단순히 껍질을 벗기거나 짧은 시간 동안 삶는 것으로 모든 품종의 독성이 충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카사바를 갈거나 발효하고 세척·건조하는 등 전통적인 가공방식을 통해 식품으로 이용해 왔다.

FAO는 카사바의 독성물질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료의 특성과 적절한 가공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10]

이는 어떤 식물이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아무런 처리 없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기근과 구황

흉년과 식량 부족

조선시대의 농업은 기상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농업기술과 관개시설이 발달하면서 생산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가뭄과 홍수, 냉해와 병해충 등으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곡물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식량 가격이 상승하고 농민들은 다음 파종에 사용할 종자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기근이 심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평소 먹지 않던 야생식물을 채취해 먹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식량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곡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생계가 무너지면 세금과 군역, 지역경제와 사회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정부는 기근을 국가적인 통치문제로 인식하고 여러 형태의 구황정책을 시행했다.

보릿고개

보릿고개는 지난해 수확한 곡식이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보리를 수확하기 전까지 식량이 부족해지는 시기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봄철에 나타나는 식량 부족과 관련되어 있으며, 과거 농촌의 생활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농업생산량과 식량보존 능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수확을 기다리는 기간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저장해 둔 잡곡이나 감자, 고구마 등을 활용하거나 야생식물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식량 부족을 견디기도 했다.

그러나 보릿고개가 발생하는 시기와 정도는 지역과 시대,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달랐다.

모든 농민들이 매년 같은 기간 동안 동일한 수준의 식량 부족을 겪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구황작물의 재배

구황작물의 재배는 기근을 예방하거나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예를 들어 기존의 곡물 재배에 실패했더라도 다른 작물을 다시 심을 수 있는 시기라면 메밀 등을 파종할 수 있었다.

또한 평소에 고구마와 감자, 잡곡 등 여러 작물을 재배한다면 특정한 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을 때 다른 작물이 식량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농업에서 여러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과도 연결된다.

다만 흉년이 심각하게 발생한 이후에 새로운 작물을 심는 것만으로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작물을 파종한 뒤 수확하기까지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황작물은 곡물의 비축과 배분, 다른 지역에서의 식량 운송 등과 함께 활용되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구황서

조선에서는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구황서도 편찬되었다.

이러한 책에는 흉년에 이용할 수 있는 식물과 식품의 종류, 조리와 가공방법, 식량 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의 구제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구황서는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식량 부족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의 생존을 돕기 위한 실용적인 지식의 모음이었다.

구황촬요

《구황촬요》(救荒撮要)는 1554년(명종 9년)에 편찬된 구황서다.

당시 승지였던 이택이 기존의 구황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으로, 흉년이 발생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식품과 조제방법 등을 정리했다.

이 책에는 영양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과 평소 먹지 않던 식물을 식량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구황촬요》가 세종 때 편찬된 《구황벽곡방》 등을 참고하여 1554년에 간행되었다고 설명한다.[11]

《구황촬요》가 고구마와 감자의 전래보다 훨씬 이전에 편찬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조선에서는 새로운 작물이 도입되기 전부터 다양한 자연식물과 기존 작물을 활용하여 기근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간구황촬요

《신간구황촬요》(新刊救荒撮要)는 기존의 《구황촬요》를 보완하여 편찬한 구황서다.

여기에는 기존 구황서의 내용과 추가적인 구황방법이 수록되었다.

이러한 책은 기근에 대비하는 농업과 식생활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구황서는 당시 사용되던 언어와 식물의 명칭, 조리방법과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신간구황촬요》가 기존 《구황촬요》의 언해 부분을 일부 수정하고 신속이 편찬한 《구황보유방》을 합쳐 간행한 책이라고 설명한다.[12]

구황식품

기근이 심각해지면 기존의 농작물만으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산과 들의 다양한 식물을 채취하여 먹었다.

대표적으로 도토리와 칡뿌리, 소나무 껍질과 솔잎, 산나물과 들나물 등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물 가운데에는 그대로 먹기 어렵거나 유해한 성분을 가진 것도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과 오늘날에도 별도의 확인 없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도토리

도토리는 참나무류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다.

과거에는 곡물이 부족해졌을 때 도토리를 채취하여 식량을 보완하는 데 이용했다.

도토리에는 탄수화물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탄닌과 같은 성분으로 인해 떫은맛이 강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통적으로는 도토리를 가공하여 묵이나 다른 음식의 재료로 이용했다.

오늘날 도토리묵은 일반적인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는 식량 부족에 대응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었다.

도토리는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지만 일반적으로 농경지에 씨를 뿌려 재배하는 구황작물과는 구분된다.

칡뿌리

칡은 덩굴성 식물로, 뿌리에 전분을 저장한다.

과거에는 기근이 발생했을 때 칡뿌리를 활용하여 식량을 보완하기도 했다.

칡뿌리에서 얻은 전분은 식품의 재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칡뿌리가 식용에 활용된다는 사실만으로 산에서 발견한 모든 종류의 뿌리를 먹어도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야생식물은 서로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종류에 따라 독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 껍질

소나무의 속껍질은 과거 기근에 활용된 구황식품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식량이 부족할 때 소나무 껍질을 가공하여 먹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그러나 나무껍질은 일반적인 곡물과 달리 소화와 영양공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무분별하게 섭취하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과 현대에 이러한 방법을 권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시대의 구황식품으로 솔잎과 느릅나무잎, 상수리와 칡뿌리, 산나물 등을 소개하고 있다.[13]

산나물과 들나물

과거에는 여러 산나물과 들나물도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물들은 주로 비타민과 무기질, 식이섬유 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전분이 풍부한 곡물과 뿌리작물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부 야생식물은 적절한 가공을 거치지 않으면 독성물질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기근에 이용된 모든 식물을 같은 영양가와 안전성을 가진 식량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구황정책과 국가의 역할

조선시대의 구황정책은 새로운 농작물을 심는 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평소 곡물을 비축하고 기근이 발생했을 때 곡식을 나누어 주거나 다른 지역에서 운송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했다.

의창과 상평창, 환곡 등이 대표적인 관련 제도다.

의창

의창은 흉년과 식량 부족 등에 대비하여 곡물을 저장하고 백성들에게 대여하거나 구제하는 제도와 관련된 창고다.

농업생산량이 충분한 시기에 곡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이용하는 것은 전근대 국가의 중요한 구황정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곡물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었는지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었는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상평창

상평창은 곡물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제도다.

일반적으로 곡물의 가격이 낮을 때 매입하고 가격이 높을 때 방출하여 가격 변동을 완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흉년이 발생했을 때 곡물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식량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다만 곡물의 재고와 수송능력, 지역시장 상황 등에 따라 실제 효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환곡

환곡은 국가가 백성들에게 곡물을 대여하고 이후에 돌려받는 방식으로 운영된 제도다.

본래 식량 부족과 농업생산의 계절적 변화에 대응하는 목적이 있었지만, 운영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환곡이 지방재정의 수입원으로 이용되거나 관리들의 부정행위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환곡을 단순히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항상 정상적으로 운영된 제도로 설명할 수는 없다.

조운과 식량 운송

기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하는 일뿐 아니라 필요한 지역으로 운송하는 능력도 중요했다.

조선에서는 조운제도를 통해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운송했으며, 이러한 운송체계가 구휼용 곡물의 이동에도 활용되었다.

지역마다 기후와 농업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는 식량이 부족해도 다른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도로와 선박, 운송기술에 한계가 있었으며, 전쟁이나 악천후가 발생하면 식량을 운반하기 어려워졌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 후기의 교제창과 포항창, 제민창 등 곡물 비축·운송체계가 메밀을 포함한 잡곡의 이동과 구황에도 활용되었다고 설명한다.[7]

구황작물의 장점

식량생산의 위험 분산

구황작물의 중요한 장점은 식량생산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 특정한 작물만 대규모로 재배하면 그 작물에 불리한 기상조건이나 병해충이 발생했을 때 전체 식량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서로 다른 재배 특성을 가진 작물을 함께 재배한다면 특정한 작물의 수확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작물이 식량을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서늘한 지역에 적합한 감자와 따뜻한 지역에 적합한 고구마는 서로 다른 재배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작물을 재배한다고 해서 모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지역에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여러 작물이 동시에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육기간과 대체 파종

메밀처럼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은 작물은 기존의 농작물 재배에 실패했을 때 새로운 파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나 겨울이 가까워져 작물이 성장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토양과 기온이 적합하지 않다면 대체 파종이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 구황작물의 재배에서는 남아 있는 생육기간과 지역의 기상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식량의 확보

감자와 고구마 등 뿌리·덩이작물은 적절한 재배조건에서 상당한 양의 탄수화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곡물이 부족해졌을 때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확한 작물을 실제로 식량으로 활용하려면 보관과 운송, 가공 등의 조건도 필요하다.

생산한 작물이 썩거나 운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실제로 굶주림을 완화하는 효과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와 문제점

모든 자연재해에 강한 것은 아니다

구황작물이라는 명칭 때문에 감자와 고구마 등이 가뭄과 홍수, 추위와 더위에 모두 강한 작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구마는 추위와 과습에 약하며, 감자는 심각한 수분 부족과 병해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카사바 역시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뭄이 심해지면 수확량이 감소할 수 있다.

FAO가 수록한 2016년의 뿌리작물 연구에서는 카사바와 고구마가 건조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능력과 실제 생산량을 유지하는 능력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14]

따라서 구황작물은 어떤 자연재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특별한 식물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식량생산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작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영양의 불균형

구황작물은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특정한 작물 하나만으로 모든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고구마와 감자, 카사바는 탄수화물의 중요한 공급원이 될 수 있지만 단백질과 지방, 일부 필수영양소 등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다른 식품도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기근을 해결하는 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이 충분한 열량을 섭취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식품의 다양성과 영양적인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보관과 운송

감자와 고구마는 수확 이후 적절한 보관환경이 필요하다.

감자는 장기간 빛에 노출되면 녹색으로 변하고 글리코알칼로이드 함량이 증가할 수 있다. 고구마는 저온에서 냉해를 입거나 부패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작물은 수분함량이 높은 편이므로 건조한 곡물과 비교하면 보관과 운송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생산량이 높다고 해서 언제나 식량 비축에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종자와 재배기술

새로운 작물을 도입할 때에는 종자와 재배기술의 확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적절한 온도에서 씨고구마를 보관하고 새로운 순을 확보해야 한다.

감자 역시 건강한 씨감자가 필요하며, 종자를 통해 병해가 전파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작물의 도입은 단순히 종자를 구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민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재배방법과 저장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계의 구황작물

구황작물의 종류와 활용방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동아시아에서는 메밀과 조, 기장, 감자와 고구마 등이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수와 기장, 카사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남아메리카의 고산지대에서는 감자와 여러 종류의 토착 뿌리작물이 식량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특정한 작물을 언제나 구황작물로만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고구마가 흉년에 부족한 식량을 보완하는 작물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평상시에도 중요한 주식작물일 수 있다.

또한 수수와 기장, 카사바 등도 지역에 따라 일반적인 주식곡물 또는 주식작물로 이용된다.

따라서 구황작물이라는 명칭은 식물의 종류 자체보다 그 작물이 특정한 사회에서 어떤 식량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카사바와 아프리카의 식량안보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 카사바가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카사바는 비교적 건조한 환경에서 재배할 수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식량 부족이 발생했을 때 땅속의 뿌리를 수확하여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카사바는 재배기간이 비교적 길고 가공 과정에서 독성물질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카사바가 기근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작물이라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현대적인 의미

오늘날에는 농업기술과 국제무역, 냉장·냉동시설과 식량운송체계가 크게 발전했다.

따라서 과거처럼 한 지역에서 흉년이 발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주변에서 채취한 야생식물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량 부족이라는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쟁과 경제위기, 이상기후와 공급망의 붕괴 등으로 인해 식량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은 오늘날에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여 식량생산의 위험을 분산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정한 작물만 대규모로 재배하는 방식에서는 질병이나 기상이변이 발생했을 때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품종과 작물을 확보하면 식량생산의 안정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종자의 보존과 품종개량, 농업기술의 보급, 식량의 저장과 운송체계 개선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대적인 의미에서 구황작물은 단순히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먹는 작물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농업의 위험관리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여담

  • 구황작물은 흉년이나 기근이 발생했을 때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재배하는 농작물이다.
  • 한자로는 救荒作物이라고 쓰며, 비황작물이라고도 부른다.
  • 구황이라는 단어는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을 구제한다는 의미다.
  • 대표적인 구황작물로는 고구마, 감자, 메밀, 조, 기장, 수수 등이 있다.
  • 그러나 모든 구황작물이 같은 기후와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 고구마는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 재배할 수 있지만 추위에 약하다.
  • 감자는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하기에 유리하지만 심한 가뭄과 병해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
  • 메밀은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아 기존 작물의 파종이나 재배에 실패했을 때 대체작물로 활용할 수 있었다.
  • 조선 후기까지 주요 구황작물로 재배되었던 것은 메밀이었다.
  • 따라서 조선에서는 고구마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구황작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 1763년 조엄은 조선통신사의 정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구해 조선으로 보냈다.
  • 조엄은 고구마가 백성들의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그러나 처음 가져온 고구마를 실제로 재배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발생했다.
  • 강필리와 이광려 등 여러 사람들이 종자와 재배법을 연구하면서 고구마의 정착에 기여했다.
  • 김장순과 선종한은 1813년 《감저신보》를 편찬했다.
  • 서유구는 1834년 《종저보》를 저술하여 고구마의 재배법을 정리했다.
  • 고구마가 한반도 전역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 따라서 조엄이 고구마를 가져온 1763년부터 전국의 백성들이 곧바로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 감자는 고구마보다 늦은 19세기 전반에 조선으로 전래되었다.
  •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1824~1825년 무렵 감자가 조선 북부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 감자는 북부와 동부 산간지방 등에서 식량작물로 보급되었다.
  • 고구마와 감자는 오늘날 비슷한 식품으로 여겨지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식물이다.
  • 고구마는 메꽃과 식물의 덩이뿌리를 먹으며, 감자는 가지과 식물의 덩이줄기를 먹는다.
  • 옥수수와 카사바 역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식량작물이다.
  • 카사바는 일부 열대지역에서 중요한 기근 대비 식량으로 활용된다.
  • 그러나 카사바에는 독성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절한 가공 없이 섭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 구황작물과 구황식품은 비슷하지만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 도토리와 칡뿌리, 소나무 껍질 등은 역사적으로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식물들을 모두 농작물인 구황작물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조선에서는 흉년에 먹을 수 있는 식품과 그 가공방법을 정리한 구황서도 편찬했다.
  • 대표적인 책이 1554년에 간행된 《구황촬요》다.
  • 《구황촬요》는 고구마와 감자가 조선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편찬되었다.
  • 이는 조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식량 부족에 대비하는 여러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기근에 대비하는 방법에는 새로운 농작물의 재배뿐 아니라 곡물의 비축과 운송, 식량의 배분 등도 포함되었다.
  • 의창과 상평창, 환곡 등은 조선의 구휼정책과 관련된 대표적인 제도다.
  •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로 항상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은 아니다.
  • 구황작물을 재배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근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자연재해가 매우 심하면 여러 작물이 동시에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저장과 운송이 어려워 식량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또한 특정한 구황작물 하나에만 의존하면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등 여러 영양소가 부족해질 수 있다.
  • 따라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식품의 공급과 균형 있는 영양섭취도 중요하다.
  • 오늘날에는 고구마와 감자를 간식이나 일반적인 식재료로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식량 부족에 대응하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 지금은 심심할 때 군고구마를 먹지만 과거에는 고구마가 없으면 굶주림을 견뎌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는 것이다.
  • 문익점의 목화 도입과 조엄의 고구마 도입은 외국에서 새로운 작물을 들여와 한반도의 경제와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비교되기도 한다.
  • 그러나 새로운 작물을 가져온 사람과 그것을 실제로 재배하고 보급한 사람들의 역할은 구분해야 한다.
  • 농업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러 작물을 재배하여 식량생산의 위험을 분산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국제적인 식량 공급망이 발달했다고 해서 전쟁과 기후변화, 경제위기 등으로 인한 식량 부족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 결국 구황작물은 단순히 과거에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기근과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발전시켜 온 중요한 농업적 생존수단 가운데 하나다.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