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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으로,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의 선사·고대문화부터 후백제, 고려·조선시대까지의 역사와 미술을 다룬다. 특히 전주가 조선 왕실의 본향이라는 점을 살려 전주와 조선왕실을 박물관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밀고 있으며, 서예문화와 전북지역 불교미술·도자공예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1]

1990년 10월 26일 개관했으며 대한민국에서 아홉 번째로 세워진 국립박물관이다.[2] 다른 지역 박물관이 신라나 백제 한 시대에 압도적으로 특화된 것과 비교하면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북 역사 전체와 조선왕실의 본향 전주라는 두 축이 강하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백제

국립부여박물관:

사비백제

국립전주박물관:

전북 역사 + 조선 왕실

대충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역사

국립전주박물관 건립은 1986년 9월 대통령의 건립 지시로 본격화됐고 1987년 12월 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1990년 10월 26일 문을 열었다.[2]

개관 당시부터 전북지역의 선사문화와 고고자료, 미술품, 민속자료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지역 거점 박물관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전북 각지의 발굴조사와 국가귀속문화유산 증가에 따라 소장품과 전시도 계속 확대됐다.

2002년에는 사회교육관을 새로 열었고, 이 건물은 2006년 문화체험관을 거쳐 2014년 어린이박물관으로 개편됐다.[2]

상설전시도 계속 바뀌었다. 2012년부터 약 4년에 걸쳐 기획전시실·역사실·미술실·어린이박물관·고고실 등을 순차적으로 개편해 2016년 전체 상설전시실 개편을 마무리했다.[3]

2026년 현재 본관과 어린이박물관에 역사실, 미술공예실, 전주와 조선왕실실, 서예문화실, 석전기념실 등 5개의 상설전시 공간이 있으며 약 1,500여 점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1]

전시

역사실

전북지역의 선사시대부터 마한, 백제, 가야, 통일신라, 후백제,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유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4]

전북은 서쪽으로 넓은 평야와 바다를 끼고 있고 동쪽에는 산지가 발달한 지역이라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와 해상·내륙 교류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청동기시대 유적과 마한계 고분, 백제 유물뿐 아니라 전북 동부지역에서는 가야계 문화유산도 확인된다.

그리고 전주 박물관답게 빠질 수 없는 놈이 후백제다.

견훤이 900년 전주에 후백제를 세우면서 전주는 다시 한 번 왕도의 역할을 했다. 후백제는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신라 말 혼란
→
견훤 등장
→
궁예 등장
→
왕건이 다 이김

정도로 존나 빨리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전주를 수도로 두고 수십 년 동안 한반도 서남부를 지배한 상당한 세력이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전북지역 출토품을 통해 이런 후백제 문화까지 함께 다룬다.[4]

고고실 개편 당시에는 완주 신풍유적에서 나온 잔무늬청동거울과 고창 봉덕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등 전북지역의 중요 유물 약 2,000점을 선보이기도 했다.[3]

전북 역사 보면 의외로 시대마다 뭐가 계속 나온다.

고인돌 있음. 마한 있음. 백제 있음. 가야도 있음. 후백제 수도였음. 조선 왕실 본향까지 됨.

전주박물관이 특정 시대 하나만 파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전주와 조선왕실실

국립전주박물관의 가장 특징적인 전시실이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관이자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왕실의 본향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조선왕조는 전주에 태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경기전을 세웠고,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위패를 모시는 조경묘와 묘역인 조경단도 조성했다.[5]

전시에서는 태조어진 복제품, 용비어천가, 이화개국공신녹권, 예종 태항아리, 왕실 어보, 전주부지도 등 전주와 조선왕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을 다룬다.[5]

전주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전주사고다.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을 여러 사고에 나눠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춘추관·충주·성주 사고의 실록은 모두 불타거나 사라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전주사고본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전주 지역의 관리와 유생들이 실록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내장산 등으로 옮겨가며 지켰고, 이 전주사고본이 이후 실록을 다시 복제하는 기본 자료가 됐다.[5]

즉 임진왜란 때 전주 사람들이 이거 안 들고 튀었으면 현재 우리가 보는 조선 전기 실록 상당부분이 그냥 날아갈 뻔했다.

왕조실록:

"나 좀 살려줘."

전주 사람들:

"들고 산으로 튀어."

결과적으로 국가기록유산을 살렸다.

2026년에는 전주와 조선왕실실 내부에 왕실 기록문화유산 공간도 새로 조성됐으며, 외규장각 의궤와 전주사고 실록, 어진 등 조선 왕실 기록문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6]

미술공예실

불교미술과 도자기, 금속공예 등 전북지역 미술문화를 다룬다.[7]

전북에는 미륵사지, 금산사, 실상사, 선운사 등 중요한 불교유적과 사찰이 많아 불교미술 자료도 상당하다.

전시품에는 금동보살상, 사리기, 범종, 쇠북 등 불교 관련 문화유산이 있고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문화도 함께 보여준다.[7]

특히 전북은 부안군 일대가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였기 때문에 전남 강진과 함께 고려청자 연구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부안 유천리 등의 가마에서는 고급 청자가 대량으로 생산됐다.

고려 귀족들:

"청자 어디서 삼?"

전라도:

"우리 동네에서 구움."

이었던 셈이다.

서예문화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꽤 독특한 공간이다.

한국 전통 서예와 문인화를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실로, 옛 서예가와 전북지역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종이·붓·먹·벼루처럼 글씨를 만드는 도구와 문화까지 함께 다룬다.[8]

직접 글씨를 써보는 미디어아트 공간인 글씨의 정원도 마련돼 있다.[8]

전주는 예로부터 서예와 한지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어서 이런 별도 전시실이 생긴 것이 꽤 자연스럽다.

요즘 사람:

"폰트 뭐 쓰지?"

옛날 사람:

"내가 직접 쓴다."

글씨를 예술품으로 보던 시대의 문화다.

전주와 조선왕실

국립전주박물관을 이해하는 핵심 중 하나다.

조선의 수도는 당연히 한양이었지만 왕실의 뿌리는 전주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전주는 조선시대에 풍패지향이라 불리며 왕실의 본향으로 특별대우를 받았다.[5]

이 때문에 전주에는 경기전과 조경묘, 전주사고 등 왕실과 직접 관련된 시설이 들어섰다.

특히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됐다.

국립전주박물관의 상설전시에 나오는 태조어진은 기본적으로 복제품이고, 국보로 지정된 실제 태조어진전주 경기전의 어진박물관을 중심으로 관리된다.[5]

다만 2026년 2월 국립전주박물관의 왕실 기록문화공간 개관기념 전시에서는 실제 태조어진을 일정기간 특별전시하기도 했다.[6]

따라서

"국립전주박물관 가면 국보 태조어진 항상 있음."

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경기전 쪽이 본진이다.

박물관에서 전주 왕실문화를 보고 경기전까지 이어서 보면 딱 좋다.

후백제

전주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후백제를 빼먹으면 섭섭하다.

견훤은 900년 완산주, 즉 현재 전주를 수도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했다. 이후 후백제는 충청·전라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후삼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다.

전북지역에서는 후백제와 관련된 산성, 건물터, 기와와 각종 유물이 발견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 역시 후백제를 전북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다룬다.[4]

흥미로운 점은 전주가

900년:
후백제 왕도

1392년 이후:

조선왕실 본향

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왕조의 서사를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주 관광을 한옥마을에서 비빔밥 먹는 걸로만 끝내면 역사적으로는 존나 많이 놓친다.

전주한옥마을 근처 경기전은 조선왕실이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후백제까지 나온다.

주요 문화유산

국립전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이나 백제금동대향로처럼 박물관 하나를 혼자 먹여살리는 단일 스타 유물보다는 전북 여러 지역과 시대를 보여주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강점이다.

대표적으로 역사실에서는 완주 신풍유적 출토 잔무늬청동거울과 고창 봉덕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같은 고대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3]

고창 봉덕리 고분의 금동신발은 삼국시대 고분문화와 지역 엘리트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금속판에 화려한 문양을 새겨 만든 장례용 신발이다.

산 사람:

운동화

고대 지배층:

죽을 때 금동신발

장례 드레스코드부터 다르다.

미술공예실에서는 전북지역 불교미술과 고려청자·분청사기 등을 볼 수 있고,[7] 전주와 조선왕실실에서는 용비어천가, 왕실 관련 문서, 태항아리와 전주지역 서화 등을 볼 수 있다.[5]

서화류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정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방문시기에 따라 실제 전시작품이 달라질 수 있다.[5]

전주 여행과 함께 보기

국립전주박물관은 전주한옥마을 한복판에 있지는 않는다. 완산구 효자동 쪽에 있어 경기전이나 전동성당에서 걸어서 잠깐 가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전주 역사여행을 한다면

국립전주박물관
→
전주한옥마을경기전전주 전동성당전주향교

식으로 묶어볼 만하다.

특히 박물관의 전주와 조선왕실실을 먼저 보고 경기전에 가면 왜 전주에 태조어진을 모셨는지, 왜 전주사고가 중요했는지 이해하기 훨씬 쉽다.

반대로 경기전에서

"태조 이성계 사진 봄."

하고 끝났다가 박물관에 오면 그 뒤의 왕실 본향 개념과 기록문화까지 연결된다.

후백제에 관심이 있다면 전주 곳곳의 후백제 관련 유적까지 별도로 찾아보는 것도 좋다.

전주는

한옥
+
비빔밥
+
콩나물국밥

만 있는 관광도시가 아니다.

900년대에는 한 나라 수도였다.

관람

2026년 현재 상설전시실 관람시간은 10:00~18:00이며 입장은 17:30까지 가능하다.[9]

관람료는 무료다. 일부 특별전시는 별도 요금을 받을 수 있다.[9]

2017년부터는 월요일에도 개관한다.[9]

정기휴관일은

  • 1월 1일
  • 설날 당일
  • 추석 당일

이다.[9]

국립박물관 여러 군데 여행하다 보면 월요일 때문에 일정 꼬이는 일이 존나 많은데 여기는 그런 걱정을 덜 해도 된다.

어린이박물관은 10:00~17:30 운영하며 영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10]

박물관 전체 대지면적은 약 64,808㎡로 야외공간도 꽤 넓으며 본관과 어린이박물관, 정원과 야외전시시설 등이 배치돼 있다.[11]

평가

국립전주박물관은 한 방에

"와 저 국보!"

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박물관보다는 지역사를 차분하게 훑는 박물관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이 별로 없는 관광객에게는 국립경주박물관이나 국립부여박물관보다 첫인상이 덜 강할 수도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처럼

"이거 하나 보러 전국에서 옴."

하는 유물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대신 전북이라는 지역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역사를 거쳤는지를 보는 데는 상당히 좋다.

선사시대부터 마한·백제·가야문화가 섞이고 후백제의 수도가 됐다가 조선시대에는 왕실 본향이 된다.

특히 전주와 조선왕실실은 다른 지역 국립박물관에서 보기 어려운 국립전주박물관만의 정체성이 확실한 공간이다.

전주 관광객이 경기전만 보고

"아 이성계 고향 비슷한 데구나."

정도로 알고 넘어가기 쉬운 내용을 훨씬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서예문화실도 꽤 독특하다. 일반 국립박물관에서 서예는 미술전시 한 구석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아예 독립 상설전시실을 운영한다.[8]

한 줄로 정리하면

전북 역사 전체를 보면서 전주가 왜 왕실도시 취급을 받았는지 이해하는 곳.

전주에서 하루 이상 머무르면서 역사까지 볼 생각이라면 충분히 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국립박물관이라 공짜다.

여담

  • 1990년 10월 26일 개관했다.[2]
  • 대한민국에서 아홉 번째로 세워진 국립박물관이다.[2]
  • 건립지시는 1986년에 내려졌다.
  • 현재 주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다.[11]
  • 본관 1층에는 역사실과 기획전시실이 있다.[11]
  • 본관 2층에는 미술공예실과 전주와 조선왕실실이 있다.[11]
  • 서예문화실과 석전기념실을 포함해 상설전시실은 총 5개 공간으로 구성된다.[1]
  • 상설전시 유물은 약 1,500여 점이다.[1]
  • 후백제 관련 유물도 다룬다.
  • 견훤이 전주에 후백제 수도를 두었다.
  • 전주는 조선왕실의 본향으로 여겨졌다.[5]
  • 전주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사고본이었다.[5]
  • 경기전 태조어진 역시 임진왜란 때 피난시켜 보존했다.
  • 상설전시의 태조어진은 기본적으로 복제품이다.[5]
  • 실제 국보 태조어진의 본진은 경기전이다.
  • 2026년에는 실제 태조어진과 실록 등을 일정기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특별 공개하기도 했다.[6]
  • 서예만을 다루는 별도 상설전시실이 있다.[8]
  • 어린이박물관도 운영한다.
  • 2017년부터 월요일에도 문을 연다.[9]
  • 상설전시는 무료다.[9]
  • 전주한옥마을과 바로 붙어있지는 않는다.
  • 역사에 관심 없다면 경기전보다 우선순위가 낮을 수도 있지만, 경기전에서 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면 오히려 여기 설명이 훨씬 자세하다.
  •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공부하고, 국립공주·부여박물관에서 백제 공부한 뒤 여기 오면 후백제와 조선이 이어져서 한국사 투어하는 기분이 좀 난다.
  • 전주가 먹을 것만 유명한 동네인 줄 알았다면 여기 오면 생각이 약간 바뀔 수 있다.

같이 보기

각주